최다 판매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는 국내 수입차시장이지만 균형을 찾지 못해 불안한 모습이다. 특정 국가 특정 브랜드만 시장에서 주목받을 뿐 나머지 대부분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분위기여서다. 그런 가운데 꾸준히 소비자와 소통하고 영역을 넓혀 판매 신기록을 세운 업체가 등장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쏠림현상이 심해진 국내 수입차시장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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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의 유별난 유럽차 사랑
상반기 팔린 수입차 3대 중 1대는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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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수입차 점유율. /그래픽=김영찬 기자
올 상반기 국내 수입차시장은 유럽 브랜드 쏠림현상이 더욱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브랜드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온 유럽 브랜드가 2015년 ‘디젤게이트’로 휘청한 사이 일본 브랜드가 점유율을 빠르게 높였지만 2019년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현재 소비자의 관심은 오직 유럽 브랜드로만 향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유럽차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판매된 수입차 10대 중 8대는 유럽 브랜드 차종이었으며 특히 독일 브랜드의 강세가 돋보였다. 유럽 브랜드 점유율은 2015년 80.9%에서 2016년 76.2%, 2017년 72.7%까지 하락했다가 2018년 74.5%, 2019년 75.2%로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해 80.5%로 2015년 수준으로 올라섰고 올 상반기엔 81.9%까지 상승하며 역대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다.
수입차업계는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와 2019년 ‘노 재팬’ 불매운동이 이 같은 점유율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일본 브랜드의 판매량은 독일 브랜드 인기에 따라 큰 영향을 받았다.
상반기 국가별 수입차 등록대수. /그래픽=김영찬 기자
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리드·가솔린 차종을 앞세운 일본 브랜드는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이후 고효율·친환경을 앞세운 최신 디젤차의 대안으로 인기였다. 수입차협회 통계를 살펴보면 일본 브랜드는 2015년 11.9%였던 점유율이 2016년 15.7%, 2017년 18.7%까지 치솟았다. 2018년엔 17.4%로 점유율은 낮아졌지만 판매량은 전년보다 1671대 늘었다.
하지만 2019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해 무역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발생한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한국닛산이 철수를 결정하는 등 일본차 점유율은 2019년 15%에서 지난해 7.5%, 올 상반기에는 6.6%까지 하락했다.
그럼에도 일본차업계는 판매량이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렉서스는 올 상반기 4868대 판매로 전년 대비 36.3% 증가했다. 토요타 (14.7%, 3217대), 혼다( 16.1%, 1687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차업계 관계자는 “계약 후 몇 달 동안 출고를 기다려야 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일본 브랜드는 재고가 충분해 주문 즉시 받을 수 있는 데다 최근 신차 출시로 제품 경쟁력도 확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국 브랜드는 점유율을 착실히 높여왔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7~8%대에 머물렀지만 2019년 9.8%, 지난해 12.1%까지 증가했다. 올 상반기엔 11.5%를 기록하며 하반기 물량 확보에 따라 점유율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국가의 브랜드를 합쳐도 시장의 5분의1가량에 불과하다. 나머지 5분의4는 유럽 브랜드의 차지다. 올 상반기 수입차는 총 14만7757대가 등록됐으며 그중 유럽 브랜드는 12만1020대로 전체의 81.9%를 차지했다. 그중 독일 브랜드가 10만3346대로 69.9%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유럽 브랜드는 10만990대로 점유율 78.8%였고 독일 브랜드는 8만3647대로 65.2%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올해 성장세가 유독 돋보인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독일 브랜드의 강세는 특히 업계를 이끄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역할이 큰 상황”이라며 “두 브랜드의 합산 점유율은 무려 53.1%에 이른다”고 전했다.
수입차협회 집계에 따르면 업계 선두 메르세데스-벤츠의 올 상반기 점유율은 28.5%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3만6368대보다 16% 증가한 4만2170대를 기록했다. BMW는 자동차 화재 사고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리콜 사태를 잘 넘겼다. 그 결과 지난해보다 42.6%나 판매가 늘어 점유율 19.8%에서 24.5%(3만6261대)로 상승해 벤츠를 바짝 뒤쫓고 있다.
◆차종별로는 쏠림현상 더 심해
이 같은 분위기는 판매 차종에서도 살필 수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입차 판매 상위 10개 모델 중 메르세데스-벤츠 차종이 5종이었으며 ▲BMW 2종 ▲테슬라 2종 ▲아우디 1종 등이 뒤를 이었다.
상반기 판매 1위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표 세단 E클래스다. 라이벌 BMW 5시리즈가 지난해 9338대보다 17.7% 늘어난 1만991대를 판매했음에도 E클래스는 1만4733대를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 1만4646대보다 소폭 상승했다.
테슬라는 보급형 차종인 모델3가 3위, 덩치를 키운 모델Y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모델3는 6275대로 지난해 6839대보다 8.2% 판매가 줄어든 반면 새로 출시된 모델Y는 5316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다. 4위는 아우디의 대표 세단 A6다. 지난해 상반기 4810대가 팔렸지만 올 상반기에는 5555대로 판매가 15.5% 증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사진제공=메르세데스-벤츠
상반기 판매 5위 차종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라인업인 S클래스로 4485대가 팔렸다. 지난해 3420대보다 31.1% 늘어난 수치다. 7위는 BMW 3시리즈로 4389대가 팔렸고 8위부터 10위까지는 모두 벤츠의 SUV 라인업(GLE-GLC-GLB 순)이 차지했다. 상반기 판매량이 소폭 회복된 렉서스의 주력 세단 ES는 3180대를 기록해 11위에 올랐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판매 상위권을 유지하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본격적인 경쟁에 주목한다. 업계 관계자는 “BMW는 올해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리기 위해 온라인 한정판 출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벤츠는 가격을 낮춘 엔트리급 모델 투입과 고객 접점 강화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BMW 코리아에 따르면 회사는 각각 메르세데스-AMG, BMW M 등 별도 고성능 브랜드에 집중할 방침이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직접 체험하면서 차별화된 감성을 직접 느끼도록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서킷 체험주행과 고성능 모델 전용 공간 마련 등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입차업계에서는 쏠림현상이 이어질 경우를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되돌아보면 중심이 한쪽으로 쏠린 이후엔 반드시 부작용이 생겼다”며 “지나친 독일 브랜드 집중은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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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있다” 아우디·폭스바겐 추격한 볼보·지프
역대급 실적으로 ‘1만대 클럽’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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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국내 수입차시장은 유럽차와 독일차로 요약된다. 판매된 차종 10대 중 8대(81.9%)가 유럽 브랜드였고 독일 브랜드는 69.9%까지 점유율을 높였다. 그중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볼보와 지프 등 마니아층이 두터운 브랜드가 판매 신기록을 세워 주목받는다.
◆가격 앞세워 팔린 폭스바겐
폭스바겐은 2015년 디젤차의 가스배출량을 조작해 파문을 일으켰던 ‘디젤게이트’ 이후 판매가 중단됐다가 최근 들어 다시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대중적 브랜드라는 특징을 국내서도 강조하며 ‘수입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이처럼 가격을 앞세우는 전략을 세운 만큼 동급 국산차와 가격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 아반떼에 견주는 ‘제타’가 대표적이다. 올 1월 2021년형을 내놓으면서 기본 트림인 프리미엄을 2949만8000원, 상위 트림인 프레스티지를 3285만1000원으로 책정했다. 폭스바겐파이낸셜서비스 프로그램 이용 시 10% 할인에 최대 200만원이 지원되는 차 반납 보상 프로그램 혜택을 더하면 프리미엄 트림은 2450만8000원 수준까지 가격이 낮아진다는 게 회사의 주장이다.
지난 4월 내놓은 소형SUV ‘티록’은 판매 부진을 겪다가 최대 22%에 달하는 할인 카드를 꺼내 든 이후인 지난 6월 수입차협회 기준 1029대를 기록하며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폭스바겐 제타는 올 상반기 2418대가 팔려 수입차 판매 18위에 올랐다. 20위를 기록한 티구안은 2281대로 지난해 상반기 5908대보다 61.4% 판매가 줄었다. 티록은 1631대로 30위를 기록했다.
반면 아우디는 A6가 전체 판매를 이끌었다. 대표 세단 A6가 상반기 판매가 전년 대비 15.5% 증가한 5555대를 기록하며 브랜드 전체 판매인 1만802대의 절반을 넘어섰다.
◆역대급 실적 기록한 비독일권 브랜드
올 상반기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독일 브랜드의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스웨덴 볼보자동차와 미국 지프가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해 눈길을 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볼보자동차는 올 상반기 7631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525대와 비교해 17% 판매가 늘었다. 이는 국내 진출 이후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다시 갈아치운 것이다. 2017년 연간 판매대수(6604대)를 상회하는 수치라는 게 볼보자동차코리아 측 설명.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올해 1만대 클럽 가입을 넘어 올 초 밝힌 판매목표인 1만5000대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을 받는다.
모델별 판매는 XC60이 1697대가 판매되며 전체 판매의 22%를 기록했다. S90(1537대)과 XC40(1508대)이 뒤이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수입 E-D세그먼트 세단 시장을 겨냥한 신형 S90은 전년 대비 56%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볼보자동차코리아 관계자는 “전 모델이 고르게 판매를 견인한 것이 주 성장 배경이었다”며 “볼보가 인기를 이어가는 비결은 안전한 공간에 대한 수요”라고 말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지프도 약진했다. 올 들어 역대 최고 상반기 실적인 5929대 판매를 기록하며 연간 1만대 판매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213대보다 무려 40.7% 판매가 늘었다. 상반기 최고 판매 기록을 세운 2019년 4768대와 비교해도 24% 증가한 수치다.
지프의 아이코닉 모델 ‘랭글러’가 상반기에만 1661대로 전체 판매량의 28%를 차지했다. 막내 ‘레니게이드’도 1475대(24%) 판매로 두 모델은 전체 판매량의 50%를 넘으며 상반기 실적을 견인했다. ‘체로키’ 패밀리도 각각 누적 1000대 이상 판매됐다. 체로키는 1279대(21%), 그랜드 체로키는 1057대 (17%)가 판매됐다.
스텔란티스코리아 관계자는 “신차 2종이 출시 예정인 하반기에는 물량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연도별 수입차 판매대수 /그래픽=김영찬 기자
◆ ‘억’소리 나도 잘 팔린 차
수입차업계에서는 올 상반기 판매를 분석하며 ‘비싸도 잘 팔린 브랜드’를 주목했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롤스로이스·벤틀리·람보르기니·포르쉐 등 특수시장을 노린 브랜드 판매가 크게 늘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끝판왕’ 롤스로이스는 올 상반기 124대나 팔렸다. 지난해 77대보다 무려 61%나 증가한 것. 벤틀리는 지난해 136대에서 올 들어 208대로 49.6% 증가했다. 두 브랜드에 따르면 SUV 모델인 롤스로이스 컬리넌과 벤틀리 벤테이가 등의 인기가 증가했으며 소비자가 주문한 대로 만들어주는 ‘비스포크’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으며 만족도를 높인 점이 주효했다.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는 올 상반기에 무려 5428대가 팔렸다. 지난해 4440대보다 22.3% 증가한 수치다.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155대에서 올해 187대로 20.6%, 페라리는 82대에서 166대로 102.4% 판매가 늘었다.
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에는 폭스바겐 티록 2.0 TDI가 1029대로 판매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래그십 S클래스 중 최상위 트림인 S580 4매틱이 965대로 1위 티록과 64대 차이로 2위에 올랐다. 3위는 703대의 BMW 530e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