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부산여행 (출연: 해숙, 은주, 정숙, 미아, 영아, 은주)/3월 28일 이야기
“우리 감천마을 가자” 2월 어느 날 오후에 받은 관장님의 문자 하나.
부산 여행의 시작은 관장님이다. 관장님이 가자, 하고 나설 때마다 한번도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섰으니 이번에도 다른 말은 없다. 내 내답도 언제나 정해져 있다. “부산은 차로 운전해서 가기는 너무 먼 길이니 KTX타고 가요, 같이 갈 친구들 모아서 함께 가요”
캐나다에서 놀러 온 은주씨, 얼떨결에 따라나선 미아씨, 봄바람 쐬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정숙씨, 놀러가자는 꾐에 빠져 누구랑 가는 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영아씨까지, 이렇게 모인 여섯 명의 여자들이 가슴에 풍선을 달고 부산으로 가는 새벽기차를 탔다.
부산역에 내리니 겨우 아침 아홉시 사십분. 새벽 댓바람부터 서두른 보람이 있다.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감천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기념촬영을 먼저 하고 해설사 할아버지 한 분을 섭외해서 안내를 받는다. 일행 중에 머리 하얀 할머니가 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우대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훗^^
감천마을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두평, 세 평 넓이의 작은 집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그 사이 사이 작은 골목들로 이루어져있다. 알록달록한 지붕과 벽으로 동양의 산토리노라는 말을 듣는다는데, 어려운 시절 배급받은 페인트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한다.
6.25전쟁이 나면서 생긴 피난민들의 마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해설사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흥미로운 사실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종교와 구원에 대한 잘못된 신앙과 그 신앙에 따라 사느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천마을에 숨겨져 있었다.
큰 둘레길로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고 난 후 젊은 친구들은 골목순례를 시작한다며 작은 골목길로 내려갔다. 나는 이번이 세 번 째 방문인지라 관장님과 함께 감천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찻집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논다. 목련은 이미 활짝 피어났고 벚꽃도 더러 꽃송이를 펼치는 따뜻한 봄날인지라 옥상 테라스에서 햇볕을 쬐며 마시는 커피가 참 좋았다.
한참 만에 골목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친구들과 합류해 오늘의 점심메뉴로 결정된 생선구이를 먹으러 자갈치 시장으로 간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여기요, 이리로 오이소” 하는 유혹을 여러 번 거절하고 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자리 잡았다. 시락국과 함께 나오는 생선구이는 일단 무지하게 컸다. 우리 동네서는 보기 힘든 엄청나게 큰 갈치, 고등어, 볼락,,,, 근데, 맛은 생각보다 ㅠㅠ. 살짝 아쉬웠다.
점심을 먹고 자갈치 시장에서부터 국제시장을 지나 보수동 헌책방 골목까지 한가하게 걷는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나니 이른 새벽부터 움직인 피곤이 몰려온다. 헌책방 까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세계문학전집, 중국서화집, 펜글씨교본들 같은 헌책에 둘러 쌓인 책방 까페.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 불편한 의자, 뭐 이런 것들은 제쳐두고 무지하게 낭만적이라고만 정리하자. 우리의 끊임없는 수다가 오래된 책들의 먼지를 털어냈을 거라는 것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저녁 8시로 예약해 두었더니, 차를 마시고 난 후에도 한 곳 더 들러 볼 수 있을 것 같아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부산은 뭐니뭐니 해도 바다!!
다시 택시를 타고 송도해수욕장으로. 그런데 가는 도중에 관장님이 급한 전화를 받으신다. 도서관에서 강의를 해주기로 약속한 김은하 선생님이다. 뭔가 잘못되었는지, 전화를 받는 관장님 목소리가 심상찮다. 송도 바닷가 모래밭에서 계속된 전화와 미아씨와의 회의를 거쳐 이야기가 마무리되기까지 한참이 지났다. 멀리 있으니 바로 대처할 수 없어서 곤란했었나보다. 원래, 멀리 길 떠나면 돌발 상황이 생긴다. 다행히 마무리 되었다니 다시 여행 모드.
모래밭을 걷고 바다 위로 연결된 다리에 올라 바닷 바람도 실컷 쐬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바다가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찻집을 다시 찾아들어간다.
봄날의 저녁해가 지고 있다. 2층 넓은 창으로 해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진하게 마시는 커피, 수다와 농담과 웃음이 저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온다.
바다에는 저녁이 찾아오고 식구들이 찾는 전화도 우리를 찾아온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돌아오는 식구들은 뭐 하냐고, 언제 오냐고, 뭐 먹는냐고 전화로 묻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가는가 보다.
부산역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탄다. 둘씩 자리 잡고 앉아서 나누는 이야기, 이야기들. 나는 은주씨랑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은주씨 글쓰는 이야기, 영어배우는 이야기, 나 노는 이야기, 나 영어배우는 이야기..... 그리고 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더라.....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03년이던가, 2004년 이던가? 오래 알고 지냈고, 캐나다로 떠난 후에도 카페에서 글로, 쪽지로 인연을 이어 온 사람. 얼굴도 이쁘고 마음도 무척 참한 이 어여쁜 사람은 늘 나를 응원해 주었었지. 내가 쓴 글에 길게 댓글을 달아주고, 나보다 훨씬 잘 쓰는 글을 쓰면서도 내 글의 팬이라며 칭찬해주었었지. 잘 챙기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 사람의 칭찬 덕분이다. 내가 원래 칭찬에 엄청 약하니까^^ 이번 여행이 내게 특별한 건 순전히 은주씨 덕분이다. 오며가며 기차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니까.
아산역에서 송탄 사는 이 다섯이 내리고 서울 종착역까지는 은주씨 혼자다. 며칠 후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며 헤어지는 우리들과 포옹을 나누었다. 늦은 밤, 떠나는 열차에 손을 흔드는 낭만 한 컷이 마지막으로 추가 되었다.
관장님, 경로 할인한 기차티켓, 그냥 제값 다 받아서 죄송해요. 나중에 알고도 환불 안 해드린 거 용서해 주실 거죠? 그걸로 이미 맛있는 거 다 사 먹었어요.
은주씨, 담에 올 땐 권정생 선생님 뵈러가요. 이번에 못 갔으니 담엔 꼭 가요. 내가 은주이용권 준 거 잊지 마시고^^
내가 더 사랑하는 정숙씨, 마음 따뜻한 이쁜 미아씨, 내 친구 영아씨, 모두 함께 해서 행복한 하루였어요. 나 참, 능력있는 가이드였죠^^
이 날의 즐거움을 꼭 글로 남겨놓고 싶었어요. 근데 날마다 놀러 나댕기니 글 쓸 시간이 있어야지. 오늘부터 며칠 동안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하는 사정이 생겨서리... 드디어 이 글을 쓰네요.
아, 기분 좋아라~
(캐나다에서 이 글을 읽을 은주씨랑, 미쿡에서 읽으실 관장님 생각하니 더 기분 좋아라. 날 마구마구 칭찬할 테니까. 그죠? )
첫댓글 그날의 풍경과 이야기가 제 눈앞에도 펼쳐지는듯 합니다.
우리의 '감천마을' 여행 마무리 깔끔하다~~ 능력있는 만인의 여행 가이드 은주!! 고마워...
미국땅에 도착해서 하루 이틀 멀쩡한 듯하더니 점점 수렁으로 빠져가는 거 같다. 헤롱헤롱 정신 못차리고 있다.
은주언니 고마워요. 정말로 얼떨결에 따라나섰는데 횡재했어요. 관장님 덕분에 참 오랫만에 부산에 다녀왔어요. 영아언니랑 정숙언니랑 나눈 수다도 최고였구요. 먹고 마시고 놀고... 이보다 좋은 공부는 없을 겁니다. 캐나다로 잘 돌아갔죠? 내년에 또 오실거죠? 늘 가까이에 있는 조은주언니. 은주언니가 사준 커피맛은 잊을 수 없을듯해요. 또 사주세요^^
여정 속에 녹아있는 멤버들의 우정이 부럽습니다^^
봄날의 부산여행 글을 읽으며 내내 부러웠습니다... 나도나도 함께 하고 싶다~~~가 막 외쳐지네요!!!
조은주언니가 온줄도 모르고 관장님이 어느새 미국에 가신것도 모르고 아쉽고 아쉽습니다.
한달후 돌아오실 관장님도 또 한국에 오실 조은주언니도 다음엔 꼭 뵙고 또 다음엔 이런 좋은여행 함께 하기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장은주언니의 글은 언제나 참 좋습니다.. 장은주언니도 잘지내시죠???
글을 보니 언제나 처럼 멋지게 잘사시는거 같네요~~~ㅎㅎ
내가 꼴찌로 읽었네..언니 메일 받고서야 알고...TT
나야말로 이 여행을, 함께했던 사람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세월이 흐르고 수첩 속의 전화목록은 짧아지고 잊고 잊히는 게 서글퍼지고...
한국 갈 때 마다 슬며시 쑥스러워하며 찾아가면 어제 만난 것 같이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기운을 내고..모두 고마워요.
은주 언니..하는 짓마다 우찌 이리 멋지노. 그날 그대는 완벽한 인도자였다우..언니 글 읽으니 넘 좋네요. 메일 고마워요.^^
스마트폰이 생긴후로 글쓰는 일이 더 줄었어요. 시시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카페에 올리곤 했었는데 말이어요. 오랫만에 이런 글을 썼어요. 그러면서보니 모든 건 글이 마무리해주는 것 같아요. 이 기분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사소한 것들이 모여 추억이 되는 이 기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