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한없이 부드러운 봄날을 위하여, 통영바다를 걷다
2024년 5월 두발로학교는 <통영 '예술가의 길'에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5강으로, 경남 통영으로 떠납니다.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통영은 백석 시인의 감탄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나가고 싶은 곳”인데요.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습니다. 통영의 수려한 자연이 그들의 예술 세계에 들어왔던 것이죠.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번 여행은 1박2일로 통영에 깃든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골목길을 누비고, 연대도 지겟길을 걷습니다. 연대도 품에 안긴 지겟길은 비교적 평탄해 걷기 좋고,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이 일품입니다. 눈부신 5월, 통영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눈부신 남해 섬 풍경. 연대도와 만지도를 잇는 출렁다리다.Ⓒ통영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5강, 2024년 5월 4(토)-5(일)일(연휴), 1박2일로 준비하는 <통영 ‘예술가의 길’, 연대도 ‘섬길’ 걷기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왜 통영은 많은 예술가를 배출했을까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박경리 여사는 우리가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충렬사 앞에 자리한 백석의 시비(부분). <통영2>가 적혀 있다.Ⓒ진우석
백석, 충렬사 돌계단에 앉아 질질 짜던 모던보이
충렬사와 명정골 일대는 특이하게도 백석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백석은 1935년 6월, 다음해 1월과 12월 총 3차례 통영을 둘러보고 여러 편의 여행시를 남긴다. 실은 그가 좋아했던 ‘난’(본명 박경련)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난의 고향이 통영이다. 난은 당시 이화여고 학생으로 조선일보의 동료였던 신현중 소개로 만났었다. 백석은 산문 <편지>에서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 하였습니다. 머리가 까맣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시 <통영2>는 그때 이야기다.
▲충렬사의 동백나무 고목Ⓒ진우석
통영(統營)2
(이해 안 되는 단어나 구절은 아래 해설을 보면 도움에 된다. 시에 나오는 숫자는 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넣었다)
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2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3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4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5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다음은 저의 해설
1
이 시는 1936년 1월, 백석이 두 번째로 통영을 찾았을 적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백석은 배를 타고 통영에 갔다. 1930년대 대중교통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석은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여 지선인 마산선으로 갈아타고 종착역에 닿은 다음, 부두로 걸어가서 배를 탔다. ‘반날’은 반나절. ‘갓 나는 고당(고장)’은 통영을 말한다.
통영은 머리에 쓰는 갓이 유명했는데 이를 ‘통영갓’이라 했다. 당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그런데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통영 가는 육로가 열악했던 모양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보고 싶다. 섬과 바다를 헤쳐가며 통영으로 입성하는 맛이 어떨까. 백석은 배를 타고 얼마나 설렜을까.
2
아개미-아가미
호루기-호레기? 주꾸미 일종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얼마나 감각적인가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젤 좋아하는 시구다.
3
황화장사-행상꾼
5
명정샘-충렬사 앞 길 건너에 있다. 두 개의 샘. 하나는 주민들을 위한 것. 하나는 이순신장군 전용이다.
오구작작-왁자지껄
낡은 사당의 돌층계-충렬사 돌계단
녕-이엉
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짝사랑 ‘난’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잘 생긴 모던보이가 눈에 선하다.
▲백석이 짝사랑했던 난Ⓒ진우석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 전혁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과 음악,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 화가 이중섭이다.
▲서피랑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이 통영에 살 때 그린 그림이다.Ⓒ진우석
서피랑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게 이중섭의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 그림이다. 이중섭은 통영에 몇 년 머물면서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쳤다. 이때가 이중섭 그림의 전성기였는데, 그의 대표작인 <황소> <흰소> <달과 까마귀> <부부> 등의 역작이 모두 통영 시절에 그려졌다. 또한 잘 안 그리는 풍경화도 제법 그렸다. 그중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서포루 동쪽에 자리한다. 남망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전망대 같은 널찍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 그림이 걸려 있고, 강구안과 남망산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서피랑 정상에 자리한 서포루Ⓒ진우석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물섬, 연대도
통영은 바다로 열려 있다. 44개 유인도와 526개 무인도를 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는 매물도, 한산도, 추봉도, 비진도 등 보석 같은 섬이 흩뿌려져 있다. 그중 여행 떠나기 좋은 섬이 연대도다. 연대도는 육지에서 가깝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만든 ‘연대도 지겟길’이 나 있어 걷기 좋다.
▲연대도 지겟길1Ⓒ통영시
연대도는 달아항에서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게 좋다. 배편이 많아 편리하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이 일품이고,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한다.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본다. 만지도까지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의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설렌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이 모습이 정겹다.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다. 연대도란 이름은 연대에서 나왔다.
▲연대도 지겟길2Ⓒ통영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이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떠오른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따른다. 대문 옆의 문패가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등등. 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로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깝다.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