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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임새와 돈의 이름 ☆
돌고 도는 돈의 이름과 상면이다. 같은 돈도 용처에 따라 상큼
한 멋과 맛깔스런 호칭이 붙여지게 마련이다. 그 같이 고상한 품
격의 뼈대를 지닌 개념으로 거듭나 고유한 때깔을 뽑내는가 하
면 더럽고 천하게 쓰이는 경우도 흔하다. 그들은 자기들을 부리
는 언중(言衆)의 폐부에 곰살갑게 똬리를 틀고 새콤달콤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다양한 쓰임새에 걸맞게 돈의 이름을 일일이 열
거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말밭에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어 갈래에 따라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은 전
문가의 식견이 있어야 하는 몫이 아닐까! 그런 까닭에 문외한으로
서 모래알에서 보석을 찾아내듯이 돈의 이름 찾기 여정은 무진장
흥미로운 여로가 될 성싶다.
이웃과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호불호
를 차치하고 축하의 뜻으로 전하는 축하금, 초상집에 부조하는
부의금이나 남의 죽음을 슬퍼하는 의미의 조의금, 다른 사람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위로금, 어떤 일을 하는데 용
기나 의욕을 내라는 뜻의 격려금 따위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네 정서상 품앗이나 두레같이 끈끈한 선린관계이자
미풍양속이다. 이렇게 가용에 쓰이는 돈 중에는 부부 사이에 소
유 주체가 불분명하여 다툼이나 시비가 일면 철면피한 남정네
들은 '주머닛 돈이 쌈짓돈' 운운하여 적당히 눙치거나 둘러대며
얼렁뚱땅 궁지를 넘기기도 한다.
조직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노라면 때로는 선행이나 뛰어난
업적을 이뤄 상금을 받을 수도 있고, 직장에서 업적이나 공헌도
가 높아 상여금을 받는 횡재를 누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렵
사리 장만한 낡은 아파트 재건축을 한다고 재건축 분담금 통지서
을 받는가 하면, 우여곡절을 겪으며 창업한 1인 기업이 장려금 대
상이 되는가 하면, 뜻하지 않게 윗사람으로부터 하사금을 받는 행
운이라도 따른다면 운수대통인 셈이다.
아무리 신산한 삶이라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자선단
체 같은 곳에 기부금을 쾌척하거나 종교인의 경우는 주일이나
축일에 헌금을 한다. 또한 밉상으로 계륵(鷄肋) 같은 존재의 정
치인들이 밉지만, 친소에 따라 보험을 들거나 적선을 하는 셈 치
고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 그 외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작별할 사
람에게 전별금을 건네는 인사도 잊지 않는 게 우리네 뿌리 깊은
정이다. 이런 까닭에 수입이 빤한 샐러리맨들은 비상시에 긴요
하게 쓸 요량으로 비자금을 여투려고 아등바등하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비자금은 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뜨거운 감자이며 멀리
하기 어려운 요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팍팍한 세상 때문에 영혼마저 메말라 버렸던가! 요즈음 인륜
지대사를 앞두고 예비 사돈댁에 까발려놓고 얼토당토않은 지참
금을 요구하는 수전노를 닮아 쓰레기 같은 인간 말종도 더러 있
다. 내 집이 없어 남의 집을 전전하면서 가용을 위한 생계형 대출
에 원금에다가 이자를 더한 상환금을 제때 갚지 못해 연체를 밥
먹듯이 하기도 한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전세나 월세에 따른 계
약금이나 중도금 혹은 잔금 문제로 끌탕을 치며 곤고한 나날을
꾸리는 서민들과 다른 세계에 사는 별종들의 얘기이다. 어쩌다
가 상류사회 기득권층에서 오랑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참금을 요구할 만큼 영혼이 더럽게 타락했는지 아무리 접어
주려 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변태이다. 상류층일수록 우리는 명
예(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존경을 받는 법인데
반드시 깨부숴야 할 악습이다.
현대를 살면서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같은 각종 공과금 부담
은 필연적이다. 한편, 사노라면 때로는 규칙을 위반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벌금을 무는가 하면, 과속으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함으로써
탐탁하지 않은 범칙금 고지서가 집으로 날아들기도 한다. 이와
유사해 보이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에 불법 주차를 하면 과태료가
부가된다. 아울러 부지불식간의 남에게 손해를 끼친 대가로 오지
게 변상금을 지불할 처지로 몰리기도 한다. 늘 험한 일만 겪고 서
럽게만 사는 게 아니다. 이웃이 어쩌다가 영어의 몸이 되었을 경우
국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다소 간의 차입금을 넣어주는 따스한 마
음은 진정한 정의 표시이리라. 가뭄에 콩이 나는 겪일지 몰라도
호시절을 만나면 뜻하지 않은 선행으로나 업적으로 포상금을 받
는 것을 비롯해 원조금, 각종 보조금이나 지원금의 수혜를 받는
축복을 누리기도 하는 게 우리의 생이다.
크나큰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위약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피하여 현상금이 걸렸던 사람도 법정에 서면 변호사에게 변론
을 의뢰하고 착수금을 지불한 다음에 법적인 보호를 받는 좋은
세상이다. 삶의 여정에서 재화를 매개로 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
은 상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때 예약에 담보로 치르는 관행인 예
약금이나 용역 따위를 제공하기로 하고 전체 금액의 일부를 먼저
받는 선수금을 비롯하여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미리 지급
하는 선급금이 당사자 사이에 오가게 마련이다.
상거래에서 필연적인 지급금과 미지급금(미불금)을 샅샅이 뒤
져 미수금 관리를 해야 한다. 아울러 거래 이행에 필수적인 위탁
금이나 보증 등을 목적으로 맡기는 예치금, 채무 변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권자에게 제공하는 담보금, 적립금 따위를 꼼꼼
하게 따지고 챙겨서 최종적으로 잔여 인수금을 지불하려는 대응
자세가 바람직하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규가 개인의 견해와 상충되는 경우가 종
종 발발해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영어의 몸이 되면 신체
적 구속은 물론이고 지녔던 현금도 강제로 영치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그 외에도 법규에 따라 나라나 공공단체가 징수하는 징수금
이나 아파트에 거주하려면 내키지 않더라도 관리비에 수선 충당금
을 군소리 없이 납부하는 게 기본적인 의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떤 일에 드는 경비를 대기 위해 여럿에게 나누어 떠맡기는 돈
인 폐기물 분담금, 행정기관이 기업에 명령한 폐수배출시설을 제
대로 갖추지 않았을 경우 부과하는 과징금 등도 볼멘소리 없이
다소곳하게 따라야 하는게 성숙한 민주 시민의 의식이다. 이런
돈의 범주와 격을 달리하는 또 다른 얼굴이다. 어쩌다가 투자한
회사가 자기자본 중에서 자본금을 초과하는 금액인 잉여금이 크
게 증가하거나 배당금이 지난해에 비해 몇 배로 증가하는 대박은
표정 관리가 어려운 꿈에 시련이리라.
탈무드에서 "돈으로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 하지만 돈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마라. 왜냐하면 돈을 밝히면 지혜로운 눈이 먼다."라
고 했다는 얘기이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見金如石)'라고 경고했던가? 누군가 일갈한 "돈이 없으면
부자처럼 행동하고,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 행세를 한다."는 일
깨움에 뜻을 더하고 싶다. 참되게 돈을 부리고 지니기 위해서는
'돈을 하인으로 삼지 않으면 돈이 주인이 된다.'는 금언의 진솔한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어 볼 참이다.
【 출처 】말밭산책 ( 한판암 수필집 중에서 )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