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맹(血盟)/이광찬-
피시익, 한 사나흘 병 깊은 얼굴로 누워 계시던 아버지, 급기야 한 死色에 잠기신다. 당신의 머리맡엔 반생을 변함없이 함께 해 온 꽁초들이 재떨이에 수북하다. 한순간 연기처럼 흩어지고 말, 자욱한 몇 모금의 생을 위해 나는 또 얼마나 오랜 세월 비벼 끈 결심들에 불을 당겼을까. 그때마다 피로 맺어진 父子의 緣처럼 당신의 검지와 장지 사이, 명줄 질긴 불씨는 매번 되살아나곤 했던 것이다. 당신의 폐부 깊숙이, 어지러운 혈맥을 타고 흐르던 타르와 니코틴. 이미 내 피 속에도 당신의 유전인자가, 그 중독성 강한 DNA가 서서히 몸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 이 자명한 이치를 몸소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이라야 고작! 뼛가루 곱게 빻은 한줌 재로 변해 있을 당신은, 어쩌면 하얀 광목천에 둘둘 말린 채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생의 마지막 불씨를 당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갑 속 마지막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무는 동안 울며불며 통곡하던 방안이 온통 뿌옇다. 저 불안의 필터까지 쪽쪽 빨아댄 흔적들, 이것은 대를 잇는 혈맹. 그러므로 누군가는 또 그렇게 장초에 불을 당길 터. 구겨진 담뱃갑, 命을 재촉하는 경고문구들만이 불똥을 튀기며 바닥에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