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인문산행의 백미, 봄날의 백악에 오르다
2024년 4월 서울학교는 <삼청동천-백악-백사실계곡-탕춘대성>
봄바람 타고 4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99강은 조선의 5백 년 도읍 한양의 주산인 백악과 그곳에서 발원하는 삼청동천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속살 같이 그윽한 백사실계곡에 깃들어 있는 역사유적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봄빛으로 가득 물든 백악의 숙정문 가는 길Ⓒ서울시
서울학교 제99강(제6기 제9강)은 2024년 4월 14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9시,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5-6(삼청동길 111-2)) 앞에서 모입니다.(총리공관 오시는 길 : 지하철 1호선은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서울프레스센터 방향으로 나와 서울프레스센터 앞에서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타고 삼청동주민센터에서 하차, 건너편에서 조금 후진하십시오. 3호선은 경복궁역에서 동문(건춘문)쪽으로 나와 길 건너 법련사 앞에서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타십시오.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풍문여고→정독도서관→삼청동길로 약 15분 걸어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유있게 출발하여 모이는 시각을 꼭 지켜주세요^^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총리공관앞-삼청동문암각글씨-맹사성집터-북촌한옥단지-말바위-숙정문-촛대바위-삼청동천발원지-청운대-백악-창의문-백사실계곡(백석동천/월암/별서터)-세검정-조지서터-장의사당간지주-점심식사 겸 뒤풀이-이북5도청-탕춘대성-암문-상명대학교-홍지문-오간수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4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와 독감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4월 <인문산행의 백미 : 삼청동천-백악-백사실계곡-탕춘대성>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백악에는 백악신사가 있었습니다.
백악(白岳 342m)은 한양 도읍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에서 북쪽에 위치하며 달리 면악, 공극산으로도 불리는데, 흔히들 ‘북악’이라고도 하지만 그 이름에 대한 역사적인 연원이 없고 단지 한양도성의 내사산 중에 북쪽에 있다고 북악이라 하였습니다.
백악이라 한 것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백악 산신을 모시고 진국백(鎭國伯)에 봉하였기에 신사의 이름을 따라 백악으로 불렀습니다.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태조 때부터 백악 산단에 제사를 올렸으며, 가뭄이 오래 가면 나라에서는 영험한 이곳 산신께 기우제도 드렸습니다.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분인 계곡 장유 선생의 <계곡선생집>에는 삼각산, 백악산, 목멱산에 기도를 올린 제문[三角白岳木覓祈禱文]이 실려 있습니다.
면악(面岳)은 고려 시대에 불리던 이름으로, 남경을 설치하려고 궁궐터를 찾던 중 ‘삼각산의 면악 남쪽이 좋은 터’라는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면악 남쪽에 남경의 궁궐인 연흥전을 지은 것으로 보이며 그곳이 지금의 청와대 자리이고 면악은 바로 지금의 백악을 일컫는 것입니다.
공극산(拱極山)은 1537년(중종 32) 명나라 사신이 명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러 조선에 왔는데 그때 명나라 사신이 한림원 수찬으로 있는 운강 공용경(龔用卿)입니다. 조선에서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글 잘하고 인품 있는 소세양이 접빈의 책무를 맡았습니다. 다행히 분위기는 좋았고 글 잘하는 공용경에게 대궐에서 바라보이는 산 이름도 작명을 청하여 받으니 인왕산은 필운산(弼雲山), 백악은 공극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극이란, 공(拱)은 두 손을 맞잡는 공손한 자세이고 극(極)은 북극성입니다. 북극성은 하늘의 제왕으로, 비견하면 명나라 황제입니다. 즉 조선의 도읍 한양의 주산인 백악은 명 황제에게 공손한 자세로 섬김을 다한다는 사대적인 발상의 작명입니다. 이 산 아래에서 둥지를 틀고 조선 후기 최대 문중이 되어 세도정치를 자행한 안동김씨 즉, 장동김씨는 굳이 백악을 공극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의 권력을 독점한 인조 이후의 서인, 영조 이후의 노론에게 절대가치는 주자의 성리학과 재조지은(再造之恩,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의 명나라였습니다.
정약용은 34세이던 1795년(정조 19) 4월에 북악에 올라 한양도성을 바라보면서 조정이 분열 상태인 현실 정국을 우려하는 마음을 토로한 칠언율시를 남겼는데 노론 세상에서 남인으로 살아야 하는 다산의 아픔도 엿보입니다.
登北嶽(등북악) 북악에 올라
西北層城壓翠微 (서북층성압취미) 한양 서북쪽 높은 산성이 푸른 산 압도하고
七陵佳氣入彤闈 (칠릉가기입동위) 일곱 능의 상서로운 기운 대궐로 모여드네.
山分鐵嶺行千里 (산분철령행천리) 산맥은 철령에서 나뉘어 일천 리를 달려오고
水割龍門作兩畿 (수할용문작양기) 물길은 용문서 갈려 경기를 둘로 나눈다.
新貴樓臺花的的 (신귀누대화적적) 신임 고관들의 누대에는 꽃이 선명하다만
正陽宮殿艸霏霏 (정양궁전초비비) 제왕의 북궐에는 풀만 무성하다니.
紛紜二百年來事 (분운이백년래사) 어지럽구나 이백 년간 조정에 있었던 일
蠻觸交爭孰是非 (만촉교쟁숙시비) 만과 촉처럼 서로 다툰다만 누가 과연 옳은가.
한양도성 인문산행의 백미, 봄날의 백악에 오르다
2024년 4월 서울학교는 <삼청동천-백악-백사실계곡-탕춘대성>
봄바람 타고 4월, 서울학교(교장 최연. 서울인문지리역사전문가) 제99강은 조선의 5백 년 도읍 한양의 주산인 백악과 그곳에서 발원하는 삼청동천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속살 같이 그윽한 백사실계곡에 깃들어 있는 역사유적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봄빛으로 가득 물든 백악의 숙정문 가는 길Ⓒ서울시
서울학교 제99강(제6기 제9강)은 2024년 4월 14일(일요일) 열립니다. 이날 아침 9시,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45-6(삼청동길 111-2)) 앞에서 모입니다.(총리공관 오시는 길 : 지하철 1호선은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서울프레스센터 방향으로 나와 서울프레스센터 앞에서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타고 삼청동주민센터에서 하차, 건너편에서 조금 후진하십시오. 3호선은 경복궁역에서 동문(건춘문)쪽으로 나와 길 건너 법련사 앞에서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타십시오.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풍문여고→정독도서관→삼청동길로 약 15분 걸어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유있게 출발하여 모이는 시각을 꼭 지켜주세요^^
이날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총리공관앞-삼청동문암각글씨-맹사성집터-북촌한옥단지-말바위-숙정문-촛대바위-삼청동천발원지-청운대-백악-창의문-백사실계곡(백석동천/월암/별서터)-세검정-조지서터-장의사당간지주-점심식사 겸 뒤풀이-이북5도청-탕춘대성-암문-상명대학교-홍지문-오간수문
*현지 사정에 따라 코스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4월의 서울학교 답사도Ⓒ서울학교
*코로나19와 독감 관련,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회원님은 항상 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4월 <인문산행의 백미 : 삼청동천-백악-백사실계곡-탕춘대성> 답사에 대해 들어봅니다.
백악에는 백악신사가 있었습니다.
백악(白岳 342m)은 한양 도읍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에서 북쪽에 위치하며 달리 면악, 공극산으로도 불리는데, 흔히들 ‘북악’이라고도 하지만 그 이름에 대한 역사적인 연원이 없고 단지 한양도성의 내사산 중에 북쪽에 있다고 북악이라 하였습니다.
백악이라 한 것은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백악 산신을 모시고 진국백(鎭國伯)에 봉하였기에 신사의 이름을 따라 백악으로 불렀습니다.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태조 때부터 백악 산단에 제사를 올렸으며, 가뭄이 오래 가면 나라에서는 영험한 이곳 산신께 기우제도 드렸습니다.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분인 계곡 장유 선생의 <계곡선생집>에는 삼각산, 백악산, 목멱산에 기도를 올린 제문[三角白岳木覓祈禱文]이 실려 있습니다.
면악(面岳)은 고려 시대에 불리던 이름으로, 남경을 설치하려고 궁궐터를 찾던 중 ‘삼각산의 면악 남쪽이 좋은 터’라는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면악 남쪽에 남경의 궁궐인 연흥전을 지은 것으로 보이며 그곳이 지금의 청와대 자리이고 면악은 바로 지금의 백악을 일컫는 것입니다.
공극산(拱極山)은 1537년(중종 32) 명나라 사신이 명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러 조선에 왔는데 그때 명나라 사신이 한림원 수찬으로 있는 운강 공용경(龔用卿)입니다. 조선에서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글 잘하고 인품 있는 소세양이 접빈의 책무를 맡았습니다. 다행히 분위기는 좋았고 글 잘하는 공용경에게 대궐에서 바라보이는 산 이름도 작명을 청하여 받으니 인왕산은 필운산(弼雲山), 백악은 공극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극이란, 공(拱)은 두 손을 맞잡는 공손한 자세이고 극(極)은 북극성입니다. 북극성은 하늘의 제왕으로, 비견하면 명나라 황제입니다. 즉 조선의 도읍 한양의 주산인 백악은 명 황제에게 공손한 자세로 섬김을 다한다는 사대적인 발상의 작명입니다. 이 산 아래에서 둥지를 틀고 조선 후기 최대 문중이 되어 세도정치를 자행한 안동김씨 즉, 장동김씨는 굳이 백악을 공극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의 권력을 독점한 인조 이후의 서인, 영조 이후의 노론에게 절대가치는 주자의 성리학과 재조지은(再造之恩,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의 명나라였습니다.
정약용은 34세이던 1795년(정조 19) 4월에 북악에 올라 한양도성을 바라보면서 조정이 분열 상태인 현실 정국을 우려하는 마음을 토로한 칠언율시를 남겼는데 노론 세상에서 남인으로 살아야 하는 다산의 아픔도 엿보입니다.
登北嶽(등북악) 북악에 올라
西北層城壓翠微 (서북층성압취미) 한양 서북쪽 높은 산성이 푸른 산 압도하고
七陵佳氣入彤闈 (칠릉가기입동위) 일곱 능의 상서로운 기운 대궐로 모여드네.
山分鐵嶺行千里 (산분철령행천리) 산맥은 철령에서 나뉘어 일천 리를 달려오고
水割龍門作兩畿 (수할용문작양기) 물길은 용문서 갈려 경기를 둘로 나눈다.
新貴樓臺花的的 (신귀누대화적적) 신임 고관들의 누대에는 꽃이 선명하다만
正陽宮殿艸霏霏 (정양궁전초비비) 제왕의 북궐에는 풀만 무성하다니.
紛紜二百年來事 (분운이백년래사) 어지럽구나 이백 년간 조정에 있었던 일
蠻觸交爭孰是非 (만촉교쟁숙시비) 만과 촉처럼 서로 다툰다만 누가 과연 옳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