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李上疏【高麗】
鄭樞淸州人 李存吾慶州人 恭愍王方寵辛旽 樞存吾上疏曰 旽專國政 有無君心 常騎馬出入宮門 與殿下並據胡床 雖崔沆林衍 亦未若此 王怒 召樞等面責 時旽與王對床 存吾目旽叱之 旽惶駭不覺下床 王愈怒 命李春富李穡鞫誘者 樞曰 見上委政非人 將危社稷 不得黙黙 豈待人誘 旽陰使人誘存吾曰 若引慶復興 元松壽 則可免 存吾叱曰 身爲諫官 第論國賊 安有爲人所指 旽必欲殺之 穡謂春富曰 祖宗以來 未嘗殺諫臣 若殺之 領相之名恐由是而不美 春富白旽得减死謫外 存吾以憂成疾 疾革使 扶起曰 旽尙熾乎 旽亡吾乃亡 反席未安而卒
並據胡床敢抗衡 專權擅政國將傾 倘非二子忠誠激 冒死何人伏閤爭
王心蠱惑信姦回 可鑑玄陵養禍胎 怒目一言眞斧鉞 賊旽從此膽先摧
32. 정이상소(鄭李上疏)【고려】- 정추와 이존오가 상소를 하다
정추는 고려 청주 사람이요, 이존오는 경주 사람이다. 고려 공민왕이 중 신돈을 사랑하여 정사를 어지럽게 하였다. 정추와 이존오 두 사람이 상소하여 신돈의 죄상을 일렀더니, 임금이 대로하여 두 사람을 불러 꾸짖었다. 이 때에 신돈이 임금을 대하여 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존오가 눈을 부릅뜨고 신돈을 꾸짖으니, 신돈이 황망히 상에서 내렸다. 임금이 더욱 노하여, 두 사람을 잡아 심문하여 묻기를, “누가 너를 가르쳐서 상소하라 하더냐?”라고 하니, 답하여 말하기를, “임금이 몹쓸 놈에게 정사를 맡겨, 나라가 망하게 되었으므로, 잠잠하지 못하여 한 것인데, 어찌 남의 가르침을 받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신돈이 가만히 사람으로 하여금 이존오를 달래어, 제게 미운 사람을 대라 하므로, 이존오가 꾸짖어 말하기를, “몸이 간관이 되어 나라의 도적을 논핵(論劾)하였으니, 어찌 남을 대겠는가?”라고 하니, 신돈이 죽이고자 하였다. 이색이 〈이존오를〉 위하여 주선해서 귀양을 보냈다. 이존오가 병이 들어 죽을 때에 붙들게 하여 일어나 앉아 말하기를, “신돈이 그저 살았느냐? 이놈이 죽어야 내가 죽으리라.” 하고 도로 누워 즉시 죽었다.
어찌 의자에 걸터앉아 감히 임금과 마주하나
전권을 잡고 정사를 농단하니 나라 바로 기울어.
두 사람의 충성이 강렬하지 않았다고 할 것이면
어떤 사람이 죽음 무릅쓰고 궐 앞 엎드려 간하랴.
임금 마음 미혹하여 간사한 돌림말 믿으니
거울로 삼을 수 있으리 현릉 화의씨 길렀던 일을.
노한 눈으로 꾸짖는 한마디 말 참으로 칼 도끼 같아
역적 신돈도 이로부터 간담이 먼저 찢어졌으리라.
첫댓글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는 월간중앙 김영수 교수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5227
상소후 (부산) 동래현령으로 좌천되었습니다. 동래에 관한 "동래회고시"라는 연작시를 남겼습니다.
선조관련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왕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