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즈키타, 이슬람 예술에 반하다
세비야에서 당일치기로 코르도바를 다녀오고 그라나다를 가려고 했는데, 세비야에서 지낸 숙소의 연장이 되지 않아 코르도바로 직접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코르도바는 세비야와 그라나다 사이에 있어서 코르도바에서 하루를 머물고 그라나다로 가는 것이 시간과 교통비 절약에도 도움이 될 듯해서 급하게 결정하고 세비야에서 코르도바행 오전 9시 알사버스를 탔다. 세비야에 하루 더 머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1월 30일 알함브라 궁전 입장표를 출국하기 약 2개월 전에 미리 예매해 둔 터라 입장 하루 전에는 그라나다에 도착해야 해서 코르도바의 메즈키타를 보기 위해서는 세비야 일정을 단축해야 했다.
코르도바는 옛 스페인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그 역사를 증명하듯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이슬람 건물의 정원에 있는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로 줄지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비야 워킹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오렌지껍질은 불이 잘 붙는 물질이 있어서 화약의 재료로 쓰기 위해 오렌지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라이터로 직접 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었다. 가로수에 열린 오렌지 열매는 쓰고 맛이 없어서 노숙자들도 따 먹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코르도바 숙소는 작은 골목 안에 있어서 찾기가 어려웠다. 세비야에서 중국 코로나 소식을 들어서, 사람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접근을 꺼릴까 살짝 긴장했지만 모두 친절하게 도와주어서 여러 차례 길을 물은 후에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 오후 2시 전이라 아직 방 청소가 완료되지 않았다며 휴게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스탭이 코르도바 명소와 맛집을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 휴게실에 있는 간식을 먹어도 된다고 해서 간단하게 차와 토스트를 먹는 사이 청소가 끝났다고 해서 방에 짐을 놓고 메즈키타를 가려고 나왔다. 메즈키타를 가는 길도 골목으로 연결되어져 있었는데 골목길마다 이슬람풍의 기념품 가게들과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메즈키타는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오디오 기계도 대여해서 메즈키타 안으로 들어갔다. 메즈키타는 이슬람 성지로 기도를 하는 곳이어서 햇빛이 잘들어오지 않아, 뜨거운 안달루시아의 한 여름에도 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하니 특히 겨울에는 반드시 따뜻한 옷을 입고 가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디오 기계의 설명을 따라 실내의 그림과 장식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메즈키타 실내에 줄지어 세워진 아치형 기둥들은 무언가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고, 기도실의 벽과 창문과 천장의 문양과 장식은 매우 아름다워서 이슬람 사람들의 예술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스페인 역사는 이슬람과 가톨릭 세력의 전쟁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코르도바에서 꽃피운 이슬람 문화의 전성기도 15세기 가톨릭 왕들의 국토수복 운동으도 쇠퇴했지만 이 메즈키타는 워낙 아름다워서 가톨릭 왕들도 이 사원을 보존하고 가톨릭 조각들과 그림 등으로 장식하여 가톨릭성당으로 재사용하여 오늘날 까지 보존되었다 한다. 전쟁의 승리의 표시로 파괴하기에는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메즈키타에서 나와 두번째 명소 로마교로 나갔다. 로마교는 2천년 전에 지어진 다리라는데 역사의 흐름을 따라 로마인들이 만들고 이슬람 교도들이 정비하고 후에는 가톨릭 교도들이 보수하면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지어진 다리인데 양 옆으로 물길을 분산시키는 교각들이 인상적이었다.
다리 위에서 노을이 지는 것을 보다가 저녁을 먹으러 숙소 스탭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갔다. 입구 밖에 놓여있는 메뉴를 보다가 뒤를 돌아보니, 같은 숙소에서 보았던 대만에서 온 대학생이 야외테이블에 앉아 있어서 합석을 했다. 코르도바는 소꼬리찜 요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것과 해물샐러드와 와인을 주문하고 나누어 먹었다. 우리나라 소갈비 찜과 비슷한 맛이었고, 해물샐러드의 해물도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는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메즈키타 주변 골목을 돌어다녔다. 그러다가 세비야 같은 숙소에서 있었던 April을 만났다. 뜻밖에 거리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골목길을 구경하다가 헤어졌다. 저녁 8시에 숙소에서 무료로 샹그리아를 마시러 바에 간다고 했는데, 피곤해서 나는 기권하고, 그라나다 숙소를 검색하고 2박을 예약했다. 예약을 마치자 그라나다 숙소에서는 친절하게도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로 찾아오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는 메일을 금방 보내왔다.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타고 20분 정도 가야하는 곳이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
다음 날 그라나다에 숙소에 도착하여 입구로 들어가니 리셉션에 중국에서온 키 큰 여자가 주인과 마주앉아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광저우에서 온 체육교사 Iris라고 했다. 숙소 주인은 내게도 의자를 권해서 나도 함께 체크인을 했다. 숙소에는 한국인들도 많이 다녀 갔었는지 호의적으로 내게 한국어로 인사도 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는 2층 여자 4인실 2층 침대를 배정 받았다. 나는 예약할 때 1층 침대를 원한다는 메모를 남겼는데, 이미 1층 침대를 사용하고 있는 여행자가 있어서 그날은 2층에서 자고 다음날 1층 침대를 쓰는 사람이 체크아웃하면 1층 침대로 옮겨주겠다고 했다. Iris는 1층 남녀혼합 4인실로 갔다.
숙소에 주방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저녁을 만들어 먹으려고 주인에게 마트의 위치를 물어보고 Iris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Iris는 준비성 있게 접었다 펼수 있는 헝겊 장바구니까지 챙겨왔다. 스페인도 마트에서 비닐봉투는 따로 돈을 내고 사야해서 장바구니를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나는 그동안 감기로 입맛을 잃어서 맛집을 다니는 즐거움을 크게 느끼지 못해서 굳이 음식점에 가서 사먹는것이 조금 아까웠다. 그런 한편, 잘 챙겨 먹지 못해서 그런지 아침에 양치하고 세수하러 서있는 동안에도 다리가 아프고 약간 후들거리는 것이 느껴져서 억지로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스테이크용 소고기와 샐러드용 채소믹스 봉지를 샀다.
장 본 음식을 비닐 봉지에 담아 주방 냉장고에 넣고, Iris와 그라나다 대성당을 보러 갔다. 성당을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했다. 유럽 여행의 반 이상은 성당을 보는 것이어서 나는 그라나다 성당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Iris는 오디오 기계까지 대여해서 성당 내부를 보러 들어갔다. 그동안 나는 근처의 아랍시장과 주변의 골목길을 혼자 돌아다니다가 1시간 후에 그녀와 성당 출구 앞에서 만나서 숙소로 돌아와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었다. 숙소 주방에는 프라이팬과 냄비 등 요리 도구와 식용유와 소금 등의 조미료가 있어서 그라나다에서 지낸 이틀 내내 저녁은 Iris와 각자 요리를 하고 함께 먹었다. 집에서 엄마가 '입맛이 없어도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하시던 말이 생각났다.
져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오니 내 아래 1층 침대에는 일본 여대생이 있고, 맞은편 1층 침대는 헝가리 여대생이 있었다. 일본 여대생은 다음날 체크아웃 한다고 하고, 헝가리 여대생은 1주일 동안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헝가리 여대생 침대 위는 아직 비어있는 상태였는데, 나중에 보니 다음날 나와 알함브라 궁전에 동행하기로 한 한국인 여자 (R)가 밤 11시 넘어서 들어왔다. R도 네이버 유럽여행 카페에서 알함브라 궁전 동행 구하는 글을 올려서 나와 궁전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국에서 부터 약속을 정했었던 건데, 우리가 그라나다에 도착하는 날 카톡으로 약속을 확인하다가 같은 숙소에 예약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워낙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라 미리 입장권을 예매해야 한다고 해서 한국에서 예매를 하고 왔다. 입장 시간 30분 단위로 인원을 제한해서, 나는 오전 10시 30분에 입장하는 예약했는데 그녀도 같은 시간을 예약해서 함께 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고 했다.
다음날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는데, R은 매우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화장을 마치고 출발하자고 한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 할 것 같아서 그녀에게 먼저 버스타고 가라고 했다. 숙소 근처부터 버스타고 20 여분 정도 걸리는데 그녀가 너무 일찍 서두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R은 자기가 입장 시간을 9시 30분으로 잘못 알고 일찍 왔다며 나에게 서두를 필요 없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나도 버스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 입구에 내려서 R에게 어디 있는지 카톡을 보냈더니 - 알함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 나스리 궁 근처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나스리 궁 입구에 도착해서 밝은 베이지색 롱코트를 입고 있는 R을 보았다.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특히 한국과 중국 단체 여행객들이 많았다. 입장 시간이 되어 표를 확인하고 드디어 나스리 궁에 들어갔다.
클래식 기타 음악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TV에서 볼 때 나오는 궁전이 나스리 궁전이다. 그동안 여행 프로그램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TV에서 볼 때는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궁 안의 벽의 문양, 둥근 돔의 천장에 그려진 문양, 창문의 장식 등이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궁전 바닥의 조약돌까지 문양을 맞추어 깔아 놓아서 이슬람 문화와 예술에 대한 나의 좁은 편견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 나즈리 궁은 내가 보았던 건축 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슬람을 정복한 가톨릭 왕국은 전날 방문했던 이슬람 교회 메즈키타를 가톨릭 성당으로 만들었지만 알함브라 궁전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R은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인지, 내생각과 다른지 내가 멋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별로 반응이 없었다. 사람마다 취향이나 느낌이 다르니까...
R과 사진을 찍으며 궁을 돌아보고 2시가 조금 넘어서 나와서 중심가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늦은 오후에 친구가 그라나다에 도착해서 만나기로 했다며 숙소에서 쉬다가 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라나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여행안내소에 가서 종이 지도를 얻고 Iris에게 어디 있는지 메신저로 물었다. 그녀는 무슨 산을 오르고 있다고 했다. 안내소 직원에게 그 산이 어디 있는지 지도에 표시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곳은 내가 있는 곳과 제법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녀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그라나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그녀는 성미구엘 전망대가 더 높다며 나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한다. 구글맵을 검색하니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 외에 다른 특별한 계획이 없던 터라 가보기로 했다. 전망대라는 장소여서 거의 오르막 길이었다. 근처에 오니 갈림길이 나왔는데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못찾고 혼자 왔다갔다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아저씨를 보고 길을 물었더니, 그분은 자전거에서 내려서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왠지 인자한 성품의 사람인 것 같은 인상이어서 '그라시야스'라고 인사를 하니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다시 전망대를 찾아 올라가니 전망대 벽 바깥 쪽으로 다리를 내리고 벽 위에 앉아있는 Iris를 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거기 까지 올라가는 데 등산하는 것 처럼 땀이 났다. 그녀가 있는 곳에 가서는 입고 있던 쟈켓과 후디를 벗고 한참동안 땀을 식혔다. 그녀 옆에 앉아 보니 맞은 편으로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고 그 사이에 마을이 있었다. 아랍인 마을이라고 했다. 성미구엘 전망대에도 야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우리가 앉아 있던 벽 바로 뒤에 있던 교회마당에서는 한 남자가 버스킹을 하고 있어서 나름 운치있는 저녁시간이었다. 해가 지면서 노을이 지고 어두워 지기 시작하자 알함브라 궁전에 조명이 밝혀져서 신비롭게 보이기도 했다. 이날은 패딩을 벗고 사파리쟈켓을 입고 있어서 밤공기에 추위를 느꼈다. Iris가 장갑을 빌려 주어서 끼고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랍인 마을 골목을 지나가는데 동네꼬마들이 우리를 보고 옷깃으로 코를 막으며 '코로나 코로나'하면서 장난을 쳐서 살짝 기분이 나빴다. 그 때만 해도 아직 한국에는 코로나 환자가 없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라나다 숙소에서 같은 방에 있던 헝가리 학생은 1주일 더 지내다 갈 거라고 했는데, 첫째 날은 외박하는 것 같더니, 둘째 날은 숙소를 옮겨 나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방에 일본인과 한국인 두명이 있는 것이 꺼림직해서 나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돌아와 Iris와 저녁을 만들어 먹고 다음날 말라가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샤워를 하고 일찍 잤다.
첫댓글 홀로 자유여행을 즐기시는
비타민님이 부럽네요
덕분에 여행기 잘보고 갑니다
매일 걸어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했답니다.^^
사이프러스나무와 오렌지나무로 멋지게 치장한 입구 들어가면 형형색색 여럿 문양의 아라베스크무늬에 눈이 휘둥그레ᆢ천정ㆍ벽ㆍ바닥 온갖곳에ᆢ
아랍인마을서 보는 알함브라궁전야경이 최고라던데 ᆢ패키지의 한계라 여기며 비타민님 후기보니 조만간 가봐얄 듯 해요 후기 감사해요
네. 코로나 끝나고 추진해 보세요.^^
혼자하는여행은 마치고왔을때
더 찐하게 남는 뭔가있더군요
이리저리 맞추려하면 힘드니 혼자휙 ~떠남도 좋을듯해요
또 좋더라구요 ㅎ
맞아요. 그래서 자유여행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