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의 사랑은
삶의 도착지가 저만쯤에서
산 모퉁이를 돌아 돌아서
봄비에 풀잎이 젖어들듯이
고양이 걸음으로 슬몃 다가왔다.
낮에는 아는 사람의 눈을 피해가며 만났고
밤에는 어둠이 있어서 좋았다.
금방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그 헤어짐도 아쉬운 헤어짐은 아니었다
곧 또 만난다는 기다림이 더 행복해서 였을까.
그와 만나면서 부터 나이를 잊고
청춘은 갓 잡아올린 생선의 파닥 거림처럼 되살아났다.
버스 안에서 그와 나란히 앉아서
은밀히 그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
손바닥에도 성감대가 있음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가 장난처럼 머리결을 쓰담 만져주면
마냥 그에게 기대고만 싶었다.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았고
그에게 부담이 되는 언행은 삼가했다.
그렇게 세월은 더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계속됨속에도 언제 부터인지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목마름 이었다.
그는 헤어짐에 충실했고
헤어질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는
그래야만 될것같아서
그가 빨리 귀가 하기를 종용하곤 하면서도
한번쯤은 둘이서 하루라도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고
그냥 당일치기 기차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어지는
오롯이 함께 하고 싶은 그런 바램이 있었나 보다.
이런 작은 바램 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는 척 하는 그가 얄미웠고
그 얄미움이 쌓이고 있었을까
속마음을 들어내어서 투정도 하지 못하는 내 자존심 또한 싫었다.
어느날인가
갑자기 그가 보고 싶었다.
약속도 없이 저녁시간 그를 찾았다.
그는 후배들과 술자리에 있었다.
그 후배들은 나이든 조폭들로 보이는 사람들 이어서
평소에 나는 그가 그런 사람들과 만나는것에 불만을 표하곤 했었다.
그는 그들이 조폭 그런거는 아니고
그냥 자기를 좋아하는 동생들이라면서 그들을 두둔하곤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와서 나와 만나기를 요구 했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쉽게 일어서지를 못했고
나는 그 우유부단함에 짜증이 났다.
그걸로 우리는 심한 언쟁을 했고
이렇게 까지 하면서
내가 왜 그를 만나야 하는지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다.
이는 내가 만든 괴로움이지만
그도 그 안에 가두어 놓지는 않았을까...
이 나이에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것이 주책 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었고
젊은이 들이 보면 비웃을것이다 하는,
특히 부적절한 관계에서
이건 아니다 하는 상념들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두피 속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에게 당분간 만나지 말자하자
이유를 묻는 그에게
연애도 젊은이들이 하는 것이지 나이든 우리들의 일은 아닌것 같다. 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달았다.
그후
의식적으로 그와 통화 하거나 문자도 하지 않은 며칠이 지나갔다.
그에게서 긴 문장의 글이 왔다.
청춘들아.
너희 사랑만 사랑이더냐.
60세의 나이를
만 59세이니
50대 라고 우기는
너무도 이쁜
소녀같은 그녀는 나의 여인이다.
만날때 마다
눈부신 웃음 함박으로
두손을 벌려 다가와
내 두손을 잡고 조물락 거린다.
가자.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냥 냉큼 팔짱을 끼고 걷는다.
삽겹살 좋다.
돼지 껍대기면 어때....
우리 둘만 있으면 되지.
그녀는 청하에 취하고.
나는 그녀에 취한다.
영화도 보고
고궁도 걷는다.
젊음의 거리를 기웃 대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눈동자에 빠지기도 하며
때로는
길고 달콤한 입맞춤에 몽롱해 지기도 한다.
우리가 제일 잘 하는거
그건 쌈질이다.
늦게 왔다고 싸우고
빨리 들어 가라고 싸우고
끼니 거른다고 싸우고
모르는 모임에 나갔다고 싸운다.
싸울일이 없어서도 싸운다.
그러며 그러며
수시로 헤어진다.
그거는 헤어지지 않으려는
치열한 헤어짐이다.
젊은 청춘들아
그런 우리를
낯설고 추한것 보듯이 흘끔 거리지마라.
우리는
너희와 다른 것이지
틀린게 아니란다.
우리는 외계인이 아닌
미래의 너희란다.
너희에게
피끓는 젊음이 있다면
흰머리 청춘인 우리에겐
너희가 절대 알수없는
사무치게 절실한
내밀한 영혼의 떨림이 있다.
너희는
사랑을 서둘지 마라.
너희에겐 시간이 많으니
젊은날의 너희였던 우리는
이제 시간이 너무 아쉽단다.
우린 서둘러야 한다.
빨리 빨리
사랑을 서두르고 있는
우리들을 이해해 주렴.
그건 동정이 아닌
너희의 미래 이기도 하니..
60대가 생물학적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사랑을 포기 하라고
압력을 넣지는 마라.
그리고
만59세라며
50대 라는 나의 자기야
나를 속이려 하지마라.
나는 자기가
붉은 장미꽃보다 정열적이지만
백합꽃 보다 수줍은
20대 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
누가
피끓는 청춘만이
피가 붉다 하느냐
60대의 피도 붉더라.
청춘의 이별 아픔이 격렬함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너희는 결코 모르는
드러내 놓지 못하는
60대의 이별아픔은
너무 아리고
치유할 시간이 짧게 남아
더 서럽고 서럽다.
..............................................
마음속 깊이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니 공감이 될까봐 억지로 밀어내 본다.
그는 고심해서 쓴 글이겠지만...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나갔다.
조석지변으로
그와 헤어지고 만나고의 갈등이 반복되는
변덕스런 여편네가 되어
마음은 헝크러진 쑥대머리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첫댓글 섬세한 전개에 재밌게 읽었어요..
청춘에게 주는 편지 내용이 좋아요
젊은날의 너희였던 우리는
이제 시간이 너무 아쉽단다에서
갑자기 세월의 벽에 부딪힌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군요ㅡㅡ^^
감사 합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는 공감으로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