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의 코끼리를 방치하지 마라
"불황기는 창업에 좋은 기회이다. 창업가는 위기의식으로 무장해 있고 투자자들의 기대수준은 높지 않고 우수한 인력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소비가 급감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며 경제 전반이 꽁꽁 얼어붙은 요즘 창업은 확실히 큰 도전이다. 하지만 잘만 하면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도 있다. 내로라하는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도 어려운 시기에 잉태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이어진 대공황 때 창업한 모건스탠리·휴렛팻커드(HP)·버거킹·크리스피크림 도넛 등과 1973~75년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 침체기에 탄생한 마이크로소프트(MS)·페덱스·사우스웨스트항공 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창업 열기가 다시 뜨겁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총 경제활동 인구 중 12%가 신규 창업해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한국에서도 올해 10월 말까지 신설 법인이 6만2000개로 2004년(4만8000개) 이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20개 선진국 가운데 창업자 수는 16개국에서 증가했다(미국 기업가 조사기관 'GEM'). 성공률은 그러나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와 비슷하다. 미국 창업 기업의 25%는 1년 내 사라지고 5년 후에는 45%만 생존한다. 한국에서도 10년을 버티는 기업은 30% 남짓하다.
무엇이 창업가들의 발목을 잡는 걸까? 많은 전문가가 이런 의문을 품었지만 대부분 개별 사례나 에피소드 연구에 머물렀다. 노암 와서만(Noam Wasserman·43)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 교수는 더 실증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한 '기업가학(企業家學)'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와서만 교수는 창업가와 벤처캐피털리스트로도 직접 활동해 실전 감각을 겸비한 현장형(現場型) 전문가다. 대학 졸업 후 소프트웨어 기업을 세워서 3년 6개월 동안 운영했다. 그는 당시 직원을 19명으로 늘릴 때까지 인사·재무권 등을 모두 장악하고 중앙집권적 경영을 했다. 그가 학업을 위해 회사를 떠나자 핵심 인력들의 대거 이탈로 기업은 반년 만에 와해됐다. "회사를 '내가 꼭 장악하겠다'는 '열정'이 화근이었어요. 창업가가 권력의 고삐를 잡으려 할수록 성장은 느려지고 부자가 되는 길은 멀어진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위기의식이나 열정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지나친 열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와서만 교수는 "창업은 100m 달리기를 반복하는 마라톤 경주와 같다"고 말한다. 전환점마다 숨을 고르며 새로운 시작을 반복해야 하지만, 모든 과정을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피 말리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창업가는 ‘누구와 창업하느냐’부터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창업 무대가 전쟁터라면, 대다수의 부상자나 사망자는 아군(我軍)이 야기했다”며 “창업기업이 맞닥뜨리는 미래의 불행은 대부분 창업 초기, 창업팀 내부에 내재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창업가가 회사를 차릴 때, 최적의 타이밍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창업 시기에 고려할 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인맥·경험·투자금 같은 내 자본이 얼마나 쌓였느냐,
둘째, 내 아이디어에 시장이 호응할 것인가,
셋째, 가족 부양 같은 개인적 걸림돌은 없느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타이밍이다. 부족한 자본은 동업자나 투자자를 통해 메울 수 있다. 창업 성공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때를 놓쳐선 안 된다. 회사에서 지위가 크게 올라 고액연봉을 받는 ‘황금 수갑’을 차게 되면, 창업 의지가 사라질 수 있다. 창업을 하려면 수갑을 차기 전에 해야 한다.”
― 가족이나 친구는 신뢰가 돈독하고 창업에 강한 열정을 보일 수 있다. 왜 가족과의 창업을 극구 말리는가?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소규모 창업이라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벤처 창업, 기술 창업에선 얘기가 다르다. 가족이나 친구에겐 민감한 얘기를 잘 못해 회사를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동생에게 회사 재무를 맡겼는데 생각보다 성과를 잘 내지 못한다고 치자. 더 잘하라고 말하기 껄끄러울 수 있다. 나중에 해고하고 싶어도 못한다. 중요한 결정을 방치할 수도 있다. 가족과 회사 모두 잃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뜻이 워낙 잘 맞아 굳이 창업하겠다면?
“불장난이 재앙이 되지 않게 방화벽을 쌓아라. 그리고 방 안의 코끼리(누구나 볼 수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문제들)를 방치하지 마라. 창업팀 중 누군가 어떤 문제를 야기했을 때 징벌할 수 있다든지, 지분을 조정할 수 있다든지 하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민감한 문제라도 공론화시켜 토론하고 해결하라. 가족에게 직접 보고를 받지 않고, 객관적인 중간 책임자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과 창업해야 하나?
“과거 직장동료와 창업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들은 서로 장단점을 잘 알고, 적당한 위계질서가 있으며, 공동의 목표를 향한 열정도 공유하기 쉽다. 잘 모르던 사람도 창업에 필요한 전문가라면 가족이나 친구보다 낫다. 이들은 회사를 냉철하게 이끌 가능성이 크다.”
그는 “창업가가 회사를 크게 키우고 싶다면, 지나친 낙관이나 본능, 열정에 의존해 큰 고민 없이 내리는 결정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와서만 교수는 창업 초기, 멤버들과의 역할 조정과 주식 배분 방법이 성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연구 결과 3600개의 창업 기업 가운데 73%가 창업 한달 안에 주식 배분을 끝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분을 그렇게 서둘러 단순하게 나눠버리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류정 기자 / [2012-12-12]
*주: 가족이든 친구이든 원칙에 의하여 작동하는 경영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구멍가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