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시 영상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70일이 된 1981년 3월 30일, 레이건 대통령은 오후에 AFL-CIO의 건축업 부문 전국회의에서 연설한 후 하원 세입위원회의 공화당 위원과 회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 30분경에 레이건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오려던 길목에서 수발의 총성이 터져나왔다. 존 W. 힝클리라는 정신착란 환자가 레이건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 것이었다.
순간 레이건을 수행하던 백악관 공보비서 짐 브래디가 쓰러졌고, 동시에 레이건 대통령도 입가에 피를 흘리며 비스듬히 넘어지는 자세로 곧바로 경호원들에 의해 리무진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레이건을 태운 리무진은 곧바로 워싱턴 대학병원으로 향했고 대통령은 즉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나서 5분 후 의사들이 대변인에게 전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출혈이 심하여 사망할 것 같고, 아직 정확한 상처부위를 찾지 못해 출혈 원인을 모르고 있으며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고 심장박동이 부정기적이다."
사태가 위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후 몇 분인가 더 지났을까 응급실에서 누군가가 나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총에 맞았습니다. 왼쪽 팔밑의 가슴부위가 뚫렸습니다."
충격적이고도 어두운 소식이었다. 일단 사태를 파악한 의사들은 수혈과 정맥주사로 레이건의 상태를 안정시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레이건 대통령은 의식이 있었고 농담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셔츠는 벗겨져 있었고 셔츠를 입지 않은 그의 신체는 70세 나이에 걸맞지 않게 탄력 있어 보였다.
한참 후에 레이건 대통령은 외과 수술을 받기 위해 응급실에서 실려나갔다. 이때 레이건 옆에는 낸시 여사가 그의 손을 잡은 채 무엇인가 얘기하고 있었다. 그중 분명하게 들린 한마디는 레이건 대통령이 "여보, 내가 몸을 날렵하게 피하는 것을 잊었소."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한편,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구름같이 모여든 기자들 틈에서 대변인이 이번 사건 내용을 발표하려 하고 있었다.
이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미군이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까?"
"내가 아는 바로는 아직 아닙니다."
이어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현재 누가 정부를 이끌고 있습니까?"
이와 동시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대통령이 수술을 받고 마취상태에 들어가면 현재 텍사스에서 워싱턴으로 오고 있는 부시 부통령이 즉시 권한 대행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저격사건 이후의 흥분상태에서 누구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변인 자신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상황실 내에서 극적인 사건은 이날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대통령직 계승에 대한 25차 헌법개정조항에 관한 토론이 벌어졌고, 한편으로는 텍사스 주에서 미 공군 2호기로 돌아오고 있는 부통령 부시와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토론의 결론은 '25차 헌법개정조항에 의거한 조치는 정식으로 발동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되면 미국 국민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대통령이 매우 위독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게 될까 염려해서였다.
부시 부통령은 오후 6시 30분 워싱턴 교외에 있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백악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책상머리에 앉아 위기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부시가 이날 밤 즉시 지휘권을 장악하는 모습은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강하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때 국무회의와 국회지도자 회의를 다음날 개최한다고 발표한 후 부시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사태가 정상으로 돌아가면 더욱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상태가 고무적이라면, 정국이 될 수 있는 한 정상적으로 운영되길 바랍니다. 모두 각자의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어 빨리 회복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날 밤 10시 이후부터는 사태가 빠른 속도로 진정되어 갔다. 그리고 다음날 백악관 대변인으로부터 "레이건 대통령은 낙농업 지원 법안에 직접 서명하였고 이것이 그 복사본입니다."라는 보고가 있었다.
마침내 레이건 대통령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부상당한 지 약 12시간 후인 3월 31일 오전 일찍 그는 의식을 회복했고 의사들과 간호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몇 시간 후에 그는 중환자실에서 특실로 옮겨졌다. 그날 밤 레이건 대통령은 저격 사건 때문에 24시간 연기되었던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보기 위하여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암살기도 12일 후인 4월 11일에 레이건은 백악관으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말했다.
"내 건강 상태는 좋다."
범인은 총 6발을 발사했고, 대통령 경호원과 지역 경찰관은 사망했다
범인은 25세의 존 힝클리 주니어 였다. (1955년생)
그는 독일제 22구경 'Rohm RG 14 Revolver' 권총으로 레이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는 즉시 호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우측 뇌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결국 남은 생애를 불구로 살아야했다.
제임스 브래디는 백악관 대변인과 대통령 비서관까지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건 대통령에게 상당한 신뢰를 받았던 인물로 파악할수있다.
그는 레이건 이후에 취임한 대통령들에게도 수차례 초청되어 의미있는 연설들을 했으며, 2014년에 뇌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여러 합병증을 앓다가 사망했다. (1940년 출생 - 2014사망)
아주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빗겨난 왼쪽 가슴에 피격을 당한 레이건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레이건 대통령은 정통으로 저격당한것이 아니라
암살범 힝클리가 발사한 탄이 대통령 방탄차량을 맞고, 그 탄이 레이건의 가슴을 향해 튕겨나오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위 사건으로 미 전역은 큰 혼란에 휩싸였지만 레이건이 안정적인 병상 집무를 보면서 사태는 차츰 안정기를 맞는다.
이후 퇴원한 레이건은 재선에도 성공했고 미소 냉전종식, 90년대 미국 경기호황의 교두보 마련이라는 굵직한 업적을 남기며 81~89년 까지의 8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
레이건 대통령은 1911년생으로 1981년에 대통령 취임을 했었으니(만70세) 고령의 대통령이 암살 시도를 당했기에 더 큰 우려가 있던게 사실이었다.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의 기록도 오랬동안 이어졌다. 최고령 기록은 2017년에 취임한 1946년생의 트럼프 대통령(만71세)에게 경신되었다.
한편, 퇴임후 오랬동안 치매를 앓던 레이건은 2004년에 만 9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일부 증언들에 따르면, 레이건은 총을 맞고 수술을 받은 이후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암살범 존 힝클리는 여러 사유의 정신병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연방법원으로부터 1급살인 무죄를 선고받는 동시에 정신병원격리+감금치료 판결을 받았다.
결국 힝클리는 작년에 병원에서 나왔는데, 우리나라 언론이 말했던 '석방' 이라는 표현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이 아니기때문에 틀린것이다.
미 연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입원조치해제'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볼수있다.
존 힝클리는 더이상 타인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호전되었다는 주치의의 보고서에 따라, 연방법원의 입원조치해제를 받고 35년간의 격리치료를 마친다.
레이건 암살미수 사건은 워낙 유명하며, 존 힝클리가 범행을 저질렀던 동기 또한 정말 유명하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던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본인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는 자백을 했기 때문이다.
존 힝클리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는 것 또한 증언했다.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 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하고,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완성도가 매우 높았던 사회물 영화로 기억한다.
또한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유명 정치인을 암살하려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담겨있었다.
해당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는 미성년자 매춘부 역할을 맡아, 주인공인 로버트 드니로와 호흡을 맞췄다.
실제로도 조디 포스터는 이 영화를 만들때 만 14세였다. (조디 포스터 1962년생, 택시 드라이버 제작 1976년)
자신이 언급된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겪게 된 조디 포스터는, 사건이 벌어진 81년 인터뷰에서 은퇴까지 고려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리 정신병자의 증언이라지만 결국 범행자의 유일한 증언의 핵심이 '조디 포스터' 였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배우로서 약간의 침체기를 겪던 조디 포스터는
88년에 개봉한 '피고인', '91년에 개봉한 '양들의 침묵' 같은 걸작들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얻는다.
참고로 조디 포스터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다.
첫댓글 이당시 신문기사가 생각 나는것이
레이건 대통령 피습당시 경호 실장이 그를 방탄 리무진으로
밀어 넣자 레이건은 옷이 구겨지는것이 신경 쓰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