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황령산 산사태 지역 인근에 고층아파트를 짓는 문제를 두고 자치단체와 건설사가 1년 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법원은 1, 2심에서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관할 지자체는 산사태 위험을 강조하며 상고할 방침이어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지법 행정2부(문형배 부장판사)는 17일 (주)보은램이 부산 남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주택사업계획 승인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 대한 승인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항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보은램은 지난해 4월 남구 대연동 산 35 일대 9399㎡의 부지에 지하2층, 지상 18~25층 아파트 3동(270세대)을 짓기 위해 주택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남구청이 산사태 발생 우려와 환경 훼손을 이유로 승인하지 않자 건설사가 제소해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남구청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남구청은 '제2의 황령산 산사태' 위험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황령산 산사태는 지난 1999년 9월 집중호우로 황령산터널 옆 절취 사면이 무너지면서 20여 만t의 토사가 도로를 덮쳐 시민 4명이 숨지거나 다친 사고다. 이후 남구청은 장마철이 되면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일대 지질이 조금만 힘을 가해도 비스킷처럼 쉽게 부서지고, 물을 흡수하면 미끄러지는 특성을 지닌 점토층인 점도 남구청의 염려를 더하는 요인이다. 남구청 관계자는 "건축허가를 신청한 사업부지는 황령산 산사태 발생지역과 불과 450m 가량 떨어져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지대"라고 말했다.
반면 법원은 건축 평등권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부지 인근에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조성돼 있어 황령산 자연환경 보전을 이유로 개발을 불허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현재 보은램의 사업부지보다 높은 곳에 청구 경동메르빌 대우 등의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과거 남구청이 이들 아파트의 건축허가를 내줬으니 이번에도 건축을 허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또 "아파트가 건축된다 하더라도 조망권을 침해한다거나 심각한 자연경관 훼손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