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부활 시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성령 강림으로 인류 구원의 사명이 완성되었고,
이러한 구원의 신비는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교회와 함께 계속된다는 의미이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일이 완성되었음을 경축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날을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탄생한 날로 본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문을 모두 잠가 놓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신 뒤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복음).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로 부활 시기는 끝납니다.
부활 성야에 ‘빛의 예식’으로 제대 주위를 밝히던 부활초도
이젠 거두어들입니다.
부활초는 세례대 옆에 보관해 두었다가
세례 예식 때 영세자들의 촛불을 거기서 붙여 주게 됩니다.
세례성사는 다시 태어남이고 또 다른 부활이기에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오늘 제1독서에서 들었듯이,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시어 그들의 새 출발을 도와줍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소명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렇듯 변화의 방향은 언제나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없는 성령’이나
‘예수님을 제외시킨 성령의 활동’은 성경의 내용이 아닙니다.
어느 날 제자들은 돌변합니다.
내적 힘을 지닌 사람으로 바뀝니다.
죽음도 겁내지 않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성령께서 그렇게 바꾸어 주셨던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에게도 삶의 변화를 주십사고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험난한 현실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기도를 바치는 날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던 날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적의 자리에 있었고
기적의 음식을 먹었던 그들임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은 당당하게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어찌하여 당당할 수 없었는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순교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습니다.
내면에서 솟는 힘과 용기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을 성령의 활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아직 공적으로 활동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어느 날 모습을 바꿉니다.
죽음을 초월한 모습으로 군중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넋을 뺏기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신을 잃을 만큼의 체험을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만났던 것입니다.
성령 체험은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전능을 깨닫는 체험입니다.
제자들은 이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용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도 그런 ‘체험의 은총’이 다가오는 날입니다.
마음을 열기만 해도 ‘성령의 모습’은 깨달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