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선생 이종훈 교장(가운데)이 이형택(왼쪽) 백승복과 장충코트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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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마지막 날, 전국을 강타하던 게릴라성 장마도 누그러지고, 한 여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김천종합스포츠타운 테니스코트는 제25회 교보생명컵 꿈나무체육대회 테니스 개인전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다.
부동의 초등랭킹 1위인 홍성찬(우천초)과 2위인 한재석(우천초)의 결승 경기가 열리는 코트의 펜스 뒤에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분이 낡은 서류 뭉치를 메모지 삼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계셨다. 성찬이나 재석이 아버지는 아닌 것 같고, 아마 할아버지겠지? 참, 대단한 할아버지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필자와 스치면서 “어! 저기 뭐하시는 분이세요?” 하고 물으셔서, “네, 기자에요. 경기하는 거 보고, 플레이하는 사진 찍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니, “그럼, 나하고 우리 애들 사진 좀 찍어줘요.” 하시길래 “네, 있다가 시상식 끝나고 센터코트에서 찍어드릴게요. 우천초 잘하니 좋으시죠, 이형택 선수 모교이기도 하고” 하니 “내가 우천초 교장 이종훈이에요. 도끼선생하면 다 아는데, 국가대표했던 백승복이 이형택이 가르쳤었지, 84년도 그때 백승복이가 5학년 이형택이가 3학년이었지”라는 말씀에 얼핏 본 기사가 아! 하고 떠오르면서 ‘도끼선생’ 이종훈 교장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이 시작되었다.
41년 외길인생, 이시대 참스승
올해로 교육 경력 41년째를 맞는 이종훈(우천초)교장은 1949년 12월 3일생으로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 신동초-춘천중-춘천고를 거쳐 춘천교범(현.춘천교대)을 졸업하고 1969년 3월 1일자로 영월군 흥월초등학교가 첫 부임지로 출발해 원주시 단계초, 명륜초를 거쳐 횡성군으로 발령받아 우천초, 공근초, 조항분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2000년 9월 1일 둔내초 교감으로 강림초등학교 교장을 거쳐, 25년 만에 다시 국가대표 백승복(산업은행)과 한국테니스 간판스타인 이형택(삼성증권)을 키운 우천초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제2의 이형택 만들기, 꿈나무 육성에 남은 교육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이종훈 교장은 지난 2006년 강원 체육발전에 공로를 인정받아 강원 으뜸교육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08년 5월 15일. 제27회 스승의 날에 40년 체육교육 한길인생이 대한민국 체육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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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람이 되라
전국소년체전에 테니스(초등부)가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자 전국 시.도 교육청 마다 테니스부 창단으로 분주할 때, 이종훈 교장은 테니스 특기 교사이어서 우천초등학교에 1984년 3월 2일자로 강제로 발령을 받고 테니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년체전 출전을 위해 4, 5학년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여 가르치고 있었는데, 늘 오후 늦게까지 집에도 안가고 테니스장 철망에 매달려 구경을 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그 학생이 대한민국 테니스 간판스타 이형택이었다. 그 시절 이형택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일하러 서울 가시고, 할머니 슬하에서 아주 어렵게 자라던 때였다. 당시 이형택은 싸움도 잘하고 거친 아이였다고 첫 만남을 회고했다.
이향택을 이형택으로
그렇게 한 학기가 흘러가고 2학기가 되어 이형택을 불러 “그때 애들이 ‘형택’이를 ‘향택’이라 불렀어요, 이상하다 싶어 알아보니 족보에는 형택이로 되어있는데 학교 오니 ‘향택’이라 부르더래요, 그 당시에는 수기로 서류를 작성할 때라 亨(형;형통할)자를 享(향;누릴)자로 아마 잘못 옮겨 적어서 그렇게 되었을거라 생각하고, ‘향택’으로 불리던 이름을 다시 이형택(李亨澤)으로 바로 잡아주고 테니스부에 입단시켰지.”
그렇게 이형택이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게 되었다. 3학년말에 테니스 라켓을 잡은 이형택은 타고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반군의 실력을 보이면서 테니스선수로 커갔으며, 이형택은 이에 보답하듯 1987년 전국종별테니스대회에서 남자초등부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무엇보다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이종훈 교장의 ‘먼저 사람이 되라’라는 가르침에 거칠었던 이형택이 테니스에 재미를 느끼면서 성격이 바뀌고, 공부에도 재미를 붙이고, 머리는 참 좋았다고 회고하며, 특히, 이형택이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남자다운 성격과 근성이 그때부터 생겨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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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훈련은 체력훈련 위주로 학교 뒤 매화산을 오르내리는 산악훈련을 매일같이 하고, 냇가에서 수영하기와 돌맹이 밟기, 통나무 발로 굴리기 등을 하면서 테니스에 필요한 기초 체력과 균형감각을 익히는 훈련을 놀이처럼 했다고 한다.
‘도끼선생’ 이종훈 교장의 애제자인 백승복(36세, 산업은행)과 이형택(34세, 삼성증권)은 둘 다 아직 현역에서 활동을 하면서 테니스계에서는 스포츠맨쉽과 좋은 매너, 자기관리에 철저한 선수들로 정평이 나 있다.
이종훈 교장은 이형택이 ATP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우승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愛제자 백승복, 이형택과의 에피소드
1995년 5월. 백승복(산업은행)으로부터 목요일 저녁 늦은 시간에 “선생님, 내일 서울에 오실 수 있나요?” 라며 전화가 왔었단다. 애제자인 백승복(당시 23세.산업은행)과 이형택(당시 21세.건국대)이 서울국제퓨처스대회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는 것 이었다.
“ ‘내 제자 두 명이 국제대회 결승에 올랐다는데 못 가본다는 것은 도끼답지 못하지’라 생각하고, 당시 분교에 있을때라 본교 교감 선생님께만 허락을 구하고 조용히 장충코트로 출발했다. ‘둘 다 응원한다. 똑 같이, 누가 이겨도 좋다’라 생각하며 사과, 바나나 두 박스씩을 챙겨서 장충코트에 도착하니 선생님 오셨다고 두 녀석이 얼마나 좋아하던지”라며 그 날을 떠 올리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두 선수의 불꽃 튀는 멋진 경기에 관중들은 환호하며 열광했지만 이 교장은 두고온 학교일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맘에 전화기만 들고 초조한 마음으로 결기를 관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고 한다.
당시 강원도교육청 김장학관님이 “이 선생님! 잘 있어요? 지금 어딥니까?” 하는 물음에 앞이 순간 캄캄했다고 한다. 도끼선생 성격에 거짓말을 하지 못해 사실대로 제자들 경기 때문에 장충코트라고 답하니, “지금 KBS TV 생중계에 이 선생님 나오고 있어요.
KBS 김성배 해설위원이 오늘 두 선수를 길러준 이종훈 선생님이 직접 과일을 사 오셔서 두 선수를 격려해 주는 모습, 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라고 멘트를 했다고 한다. 아찔한 순간 정직하고 곧은 도끼선생 이종훈 교장의 성품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테니스 인생 45년, 다시 꿈나무를 심는다
이종훈 교장은 처음 운동을 접한 것이 춘천 신동초 시절 축구, 탁구, 정구선수로 활동하면서 만능스포츠맨으로 통하였고, 춘천중 시절까지 많은 도 단위대회에서 입상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춘천고에 입학하면서 정구에서 테니스로 전향하게 되었고 도민체전과 학도체전에서 입상을 하면서 그의 테니스 인생 45년이 시작되었다.
춘천교범(현.춘천교대) 시절 테니스 특기 교사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동호인 테니스대회에서 우승을 하였고, 특히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대회에서 3회 우승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종훈 교장은 “지금도 전국에서 테니스 좀 친다 하는 사람 만나면 횡성 도끼선생 아냐고 물어 봐, 이종훈 선생하면 몰라, 도끼선생 해야지, 알지.” 라며 그의 별명 ‘도끼선생’처럼 아직도 목소리 하나하나에 건강하고 강직한 힘이 실려 있다.
그리고 영원한 체육인이었던 이종훈 교장은 테니스 국제심판으로도 활약을 하며 1998년 데이비스컵 한국대 인도전의 심판을 맡기도 했었다.
1998년 그의 나이 50. 테니스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 터졌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개최된 제4회 월드마스터즈 세계테니스대회에 ‘도끼선생’ 이종훈 교장이 한국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한국대표로 출전한 월드마스터즈 세계대회에서 덜컹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 상금을 300만원 넘게 받았단다.
이를 계기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난해서, 돈이 없어 힘들게 운동을 하는 꿈나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 장학금도 주고, 월드마스터즈대회 우승상금 300여만원과, 강원체육상 수상금, 모범공무원 수당, 그리고 월급에서 조금씩 쪼개어 꿈나무장학금으로 적립해 오고 있단다.
‘너의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라는 믿음으로 강원체육 꿈나무의 등불인 그가 다시 제2의 이형택 만들기, 돈이 없어 운동을 그만두는 학생이 없기를 바라며 불우한 선수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월드 꿈나무 페트론(Patron)' 장학회를 만들어 꿈나무 육성에 남은 생을 바치는 것이 계획이자 사명이라고 한다.
11월에 ‘월드 꿈나무 페트론(Patron)’ 장학회 출범 예정
필자와 함께 있는 동안 이종훈 교장의 전화기 벨은 쉴 세 없이 울렸다. 여기저기서 안부 전호와 우천초 우승 축화 전화들, 그리고 횡성군청 직원의 전화가 왔다. 테니스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한규호 횡성군수가 만나자고 한단다.
이형택이가 우천초 다닐 당시 우천면장으로 있다가 후에 민선시장된 전임 조태진 군수(3선)도 국제주니어대회와 주니어로컬대회를 여는 등 많은 후원을 했다고 한다. “11월에 횡성에서 45년 테니스인생을 걸고 만들 ‘월드 꿈나무 페트론(Patron)' 장학회 출범식 얘기를 드렸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고 하며 깨알같은 메모로 빡빡한 오래된 서류뭉치를 꺼내 보여 주었다. 2000년대 초반 대한테니스협회 임원 명부와 강원도테니스협회 임원 명부였고, 뒷면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전국의 테니스인들의 연락처가 쓰여 있었다.
11월에 이 교장의 41년 교육인생과 45년 테니스인생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횡성군으로 초대해 불우한 환경의 꿈나무들과 결연을 맺어주거나, 장학 후원을 하기위해 ’월드 꿈나무 패트론(Patron)' 출범식을 준비하고 있단다.
필자와 5시간 남짓 짧은 만남동안 1시간가량의 대화를 했지만, 결승전 시상식후 국가대표상비군 훈련장에 직접 챙겨 온 과일 박스들을 건네는 모습은 손자, 손녀들을 챙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고, 영락없는 참 교육자의 모습이었다.
손을 흔들며 11월에 횡성에 꼭 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도끼선생’ 이종훈 교장의 뒷 모습을 비추는 눈 부신 7월 하늘의 태양처럼 한국테니스의 앞날도 밝아 오리란 생각이 그 어느 청량제보다 더 머리를 말고 시원하게 해 주었다.
김천=정하대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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