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연구] "이기기 위해선 수단-방법 안가린다" (2001.10.16)
'우승 제조기' 김응룡 감독 요체는 '조직우선' 승부근성
프로야구야말로 전문경영인을 가장 먼저 도입한 비즈니스다. 프로야구가 태동했을 때부터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라 할 수 있는 감독은 철저하게 실력과 리더십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끈 김응룡(金應龍ㆍ60) 감독은 어지간한 최고경영자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김 감독은 그 누구도 우승시키기 어렵다는 삼성을 14년 만에 정규시즌에서 우승시켰다. 해태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優勝) 9회’에 빛나는 김 감독은 이번에도 ‘우승 제조기’다운 모습을 과시했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개인 역량에도 불구하고 ‘모래알 군단’이라 비유되는 삼성을 ‘초일류 야구단’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물론 아직 코리안시리즈가 남아있긴 하지만 삼성의 승리를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의 거장인 나가시마 요미우리 감독이나 뉴욕 양키스를 월드시리즈 3연패로 이끈 명장(名將) 조 토레 감독처럼 깔끔한 용모도 아니다. 그들처럼 말주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외모에서도 명석하다는 느낌을 전혀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김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최고경영자로서 갖춰야 할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그의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일까.
◆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 프로야구단의 목표는 우승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어렵다. 그래서 책임자 교체가 잦다. 하지만 김 감독은 1983년 해태 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한번도 해임된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팀에서 모셔가려고 안달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해 말 삼성 사령탑을 맡은 뒤 "왜 삼성으로 옮겼는가"라는 질문에 “우승하러 왔다”고 간단히 답변했다. 김 감독다운 대답이다. 해태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김 감독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경기 중 승부처라고 판단되면 초반 번트작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투수 운용도 마찬가지.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승리투수 요건인 5회를 넘기지 못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게 마련이다. 만일 5회에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오면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곤 한다. 그러나 김 감독은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다. 3대 2로 이기고 있는 5회 수비에서도 선발투수의 볼을 가차없이 빼앗는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그런 경기 운영이 때로는 프로답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프로는 이기는 것이다"라고 김 감독은 못을 박는다. 바로 이런 강한 승부욕이 그의 리더십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김 감독’하면 ‘우승 감독’이라는 등식(等式)이 성립된다.
◆ 철저한 팀 정신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스타 요기 베라는 "야구는 90% 이상이 마인드 게임이다. 나머지 10%가 실력과 체력이다"고 야구를 정의(定義)했다.
▲ 해태감독 시절 코리안시리즈에 우승한 뒤 선수들이 김응룡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김응룡 감독은 삼성 감독으로 취임한 뒤 선수단에 "정해진 주전은 없다. 1군, 2군 구별없이 실력으로 가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해태 시절부터 누누이 강조했던 그의 철학이다. 김 감독의 철학이 ‘베라의 정의’와 상반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같다고 볼 수 있다. 김 감독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선수단의 마인드를 바꾸기 위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펼쳤고 팀의 목표인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조직이 살아남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즌 중엔 국민타자 이승엽(李承燁)을 제자리가 아닌 6번으로 기용하는 모험을 걸었다. 김 감독은 팀에 대한 ‘충성’이 떨어지기 쉬운 분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밖의 선수들을 일일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감독의 의중은 자동으로 파급됐다.
주전 선수를 일부러 라인업에서 제외할 때도 있다. 늘 주전이던 선수로서는 황당한 일. 처음엔 “흥”하고 넘어가지만 한두번이 지나면 미친다. 스스로 분발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훈련 때도 다름없다. 올해 삼성 선수단은 미국 하와이와 애리조나에서 50여일 동안 해외 전지(轉地)훈련을 가졌다. 김 감독 스스로가 훈련을 매우 중요시하는 터라 강도(强度)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이때 예외는 없었다. ‘훈련이 곧 우승’이라는 호령에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의 명장 가운데 한 사람인 진 모크씨는 일전에 "감독이 25명의 선수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25명의 선수들이 한 감독을 이해하는 것이 백번 낫다"는 명언을 남겼다. 김 감독은 이 명언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자신과 팀을 따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김 감독은 팀을 생각하는 마음에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다. 훈련 때 김 감독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제(私製) 모자나 운동복도 거부하고 반드시 팀에서 나누어준 것만 항상 착용한다.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 감독이다.
◆ 구조조정의 황제
김응룡 감독의 야구는 관리야구에 가깝다. 철저한 관리야구를 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김 감독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겁내지 않는다. 선수가 나태해지면 그날부터 두번 다시 기용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의 단적인 사례. 김 감독은 '제2의 장효조'로 알려졌던 정성룡(鄭成龍)(은퇴)이나 슬러거였던 이병훈(李炳勳)(현 SBS해설위원)이 지나친 술로 나태해지자 가차없이 처단했다. 또한 1990년 해태에 입단했던 포수 정회열(鄭會烈)의 실력을 인정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공신이었던 장채근(張彩根) 주전 포수마저 포기했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선동열(宣銅烈)(현 한국야구위원회 홍보이사)에게도 칼을 들이댔다는 점. 구조조정의 의미를 확대한 것이지만 그 충격요법의 효과는 대단히 컸다. 지난 90년의 일이었다. 김 감독은 투수로서 최고봉에 올랐다고 생각한 선동열이 다소 해이해지자 ‘국보급 투수’에게 형벌을 가했다. 방법은 시즌 막판 이미 승부가 난 경기에 한국 최고 투수라는 선동열을 패전 처리용 투수로 활용한 것. 이렇게 하고도 김 감독은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태 감독으로 부임할 때인 1982년의 일이다. 당시 해태에는 ‘군산파(군산상고)’와 ‘광주파(광주일고)’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누군 되고 누군 안되다는 목소리가 양대 파에서 엇갈리면서 팀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이를 수습한 사람은 김 감독. 편 가르기를 철저히 배격한 김 감독은 사령탑을 맡은 이후 파벌 싸움을 종식시켰고 더 이상의 내분을 불허했다.
김 감독은 역(逆) 구조조정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윗선의 눈치에 상관없이 자기만의 운영방식을 고집한다. 김 감독은 지난 82년 15명이었던 해태 선수단을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5명까지 늘려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당시 35명도 타 구단에 비해서는 작은 숫자였다. 경영의 노하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반대로 올해처럼 지원이 확실한 삼성에서는 특별하게 선수단 증강(增强)이나 트레이드 없이 지난해와 같은 전력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다.
◆ 감성 지능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은 지난 4월 30일자에서 양키스의 조 토레 감독을 세계적 CEO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회장을 능가하는 전문경영인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뛰어난 사령탑으로 그를 비유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이 주창한 이 감성 지능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인간형이 인정받는다는 논리를 말하는데, 그런 점에서 토레 감독을 전문성과 감성을 겸비한 이른바 ‘신(新)감성형 리더’라며 추켜세웠다. 토레 감독은 호화 멤버를 자랑하면서도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 단 한차례의 우승도 일궈내지 못한 ‘모래알 군단’인 양키스를 월드시리즈에서 3연패시켰다.
사실 김응룡 감독은 토레 감독처럼 선수들을 대상으로 1 대 1 ‘감성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김 감독만큼 여린 사람도 없다. 고향이 이북(以北)인 김 감독은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만 시청하면 눈물을 흘릴 정도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20년간 김 감독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유남호(柳南鎬) 삼성 코치는 “김 감독의 속은 마누라도 모를 것”이라면서도 “정이 넘치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했다. 겉으로는 모르는 척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신상 자료에 대해 누구보다 훤하며 개인적인 애정도 넘쳐날 정도라고 한다. 오히려 선수들이 지레 겁을 먹고 김 감독을 어려워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취재 일선에 있는 기자들도 코끼리만한 김 감독을 가까이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번 정이 붙으면 180도 달라진다.
김 감독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겉치레에 둔감하다. 이런 점이 상대방을 편하게 하고 존경심을 유발시킨다. 음식도 술도 가리지 않으며 작은 승용차라도 불평 없이 몸을 구겨가며 운전한다.
◆ 어울리지 않는 꼼꼼함
김응룡 감독의 리더십을 논할 때 '뚝심'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무조건 ‘밀어붙이기’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있는 ‘뚝심’을 선호한다.
김 감독은 최고경영자답게 자료를 꼼꼼하게 챙기고 연구에 연구를 반복한다. 그래서 자신의 야구를 ‘기술 야구’ 또는 ‘머리 야구’로 표현한다. 1963년에 첫 인연을 맺은 야구 선배 신용균(申鎔均) 삼성 2군 감독은 “김 감독은 집에서 치밀하게 연구한다. 또 새롭게 발간되는 야구책을 항상 끼고 산다. 야구 감독 중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맹수와 같은 순간적인 직감, 경기의 흐름 파악, 적절하고 잦은 선수 교체 등은 그만큼 철저히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코치들은 김 감독의 용병술(用兵術)에 두 손 든다. 유남호 코치는 “많은 작전을 구사하진 않지만 김 감독만큼 야구 흐름을 가장 잘 아는 감독도 없다”고 밝혔다.
◆ 나만의 고집
선수와의 타협이 없는 김응룡 감독은 구단을 대외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프론트와의 타협도 없다. 해태 때는 물론 삼성에 와서도 간섭을 혐오한다. 이왕 맡긴 선수단 운영에 대해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고집을 갖고 있다. 물론 성과가 뒤따르지 않으면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을 각오다.
▲ 지난해 삼성라이온즈와 입단 계약을 맺은 김응룡 감독.
외부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나만의 고집을 고수하는 것은 선수단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 윗선에 휘둘리며 중심이 서지 않는 사령탑을 믿고 따라갈 부하는 없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를 노리는 김 감독의 또 다른 처세술이다.
김 감독은 상부의 간섭에 반발하는 바람에 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 감독 시절이던 1978년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 감독은 한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 임원 중 한 명이 작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자 다음날 경기에서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모두 번트 사인을 지시했다. 선후배 위계질서가 강한 스포츠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항명(抗命)’을 한 것. 그러나 김 감독의 고집스러운 자기 스타일에 그 임원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더 이상 간섭을 하지 않았다. 선수 구성과 작전은 감독의 고유권한임을 확인시킨 셈이다.
◆ 참모의 활용
모든 일을 혼자서 도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김응룡 감독은 경기 내내 덕아웃에서 꼼짝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일언반구(一言半句)하지 않는다. 표정없는 모습은 코끼리 그 자체다. 사실 투수 교체 때도 마운드에 올라서는 적이 드물다. 대부분 코치들에게 지시한다.
하지만 일방적인 지시는 아니다. 코치에게 많은 권한을 양도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 그러고는 최종 결정을 내린다. 팀 훈련의 진행 및 선수 컨디션 체크 등은 모두 코치진의 몫이다. 코치진은 김 감독의 의중을 이미 꿰뚫고 있어 김 감독의 생각에 어긋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토대 위에서 김 감독은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한다. 유남호 코치와 떨어지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다. 신용균 2군 감독을 계속 끼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 감독은 자신 때문에 발이 묶인 유남호 코치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 코치도 그런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쉽게 짐을 싸지 못하고 있다.
[김응룡 감독 약력]
- 1961 한일은행 야구선수(1루수)
- 1961 ∼ 1972 국가대표
- 1973 ∼ 1981 한일은행 야구감독
- 1977 대륙간컵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 1977 ∼ 1980 국가대표 감독
- 1982 ∼ 1983.06 미국 서틴조지아대 야구수업
- 1983 ∼ 1997.11 해태 타이거즈 야구감독
- 1997.12 ∼ 2000.10 해태 타이거즈 야구감독(연봉1억3000만원 재계약)
- 2000.09.15 ∼ 2000.10.01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
- 2000.10.30 현 삼성 라이온즈 11대 야구감독
(이종률 야구해설가 bellaw29@hanmail.net)
[취재 뒷이야기] 김응룡 감독 리더십 연구
안녕하십니까. 주간조선 최홍섭 기자입니다. 이번호에 게재된 김응룡 감독의 리더십 기사를 소재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사실 이 기사는 야구전문가인 이종률씨가 작성을 했지만 기사의 발주(發注)부터 데스킹(일종의 기사 보완 및 마무리 작업을 말합니다)까지 제가 맡았습니다. 이종률씨의 해박한 야구지식과 이를 경영학에 연결시키는 분석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70년대초였지요. 당시 한일은행의 왼쪽 강타자 김응룡은 국가대표 4번 타자를 치던 전성기에서 물러나 겨우 국가대표에 뽑혀 이따금씩 대타로 나오곤 하는 신세였습니다. 같은 부산 출신에 같은 왼 타자인 박영길씨가 김응룡의 대를 이어받았기 때문이지요. 당시 ‘김응룡의 홈런포’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렸습니다.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 그가 선수복을 벗으면서 이제 모든 영광은 사라지는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응룡은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해태를 최강 구단으로 만들었고 올해는 ‘매년 우승후보지만 늘 탈락하던’ 삼성을 시즌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코리안시리즈가 남아있지만 삼성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김 감독의 역량이 단순한 감독 보다는 탁월한 리더십에서 나온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호 이종률씨의 기사를 잘 읽어보시면 자세한 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올시즌 삼성의 정규시즌 우승 원동력을 보면 먼저 삼성의 주전 선수들 가운데 연고지(대구) 출신이 거의 없다는 점이 눈길이 갑니다. 삼성은 지난 99년 임창용 김기태, 지난해 김동수 이강철, 올해 마해영 등 각 구단의 간판스타들을 싹쓸이했습니다. 올해는 일본 무대에서 인정받은 갈베스, 메이저리그 올스타출신 바에르가 등 용병들마저 막강한 재원을 바탕으로 골라왔습니다. 올해 주전에서 연고지 출신은 마운드의 김진웅(대구고) 배영수(경북고), 타선에선 이승엽(경북고) 강동우(경북고) 정도뿐입니다. 화려한 외인부대지요.
하지만 옥구슬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지난 87년 이후 삼성은 화려한 멤버구성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1위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 구슬들을 잘 꿴 것은 김응룡 감독입니다.
김응룡 감독은 인기 스타들을 팀플레이에 치중하는 무명스타처럼 만들었습니다.
올해 기록을 보면 그많은 스타들을 보유하고도 삼성에선 홈런부문 이승엽(39개), 승률부문 갈베스(0.714)를 제외하곤 개인 타이틀을 획득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타격 10걸 안에도 삼성 선수들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던 삼성 선수들이 ‘나보다는 우리’를 앞세우는 팀플레이에 주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실책도 8개구단 가운데 가장 적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기했음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단결력이 생긴 것은 바로 개인성적보다 승리를 최우선시하는 김응룡 감독의 선수단 장악능력과 리더십 때문입니다.
이종률씨 기사에도 나오지만 김응룡 감독은 찬스에선 스타인 이승엽과 마해영에게도 번트를 시켰고 선발투수가 승리를 눈앞에 뒀어도 불안하면 5회이전에 가차없이 교체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팀을 이끌고 나가니 이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눈길은 코리안시리즈에 갑니다. 코리안시리즈 승률 100%를 자랑하는 김응룡 감독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화면에서 다시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