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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제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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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자료실 애절양(사회복지를 열심히 공부해야 . . .)
이성하(2010) 추천 0 조회 155 12.01.21 14:24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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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1.21 15:22

    첫댓글 2012년은 제가 52년 임진년 9월생이니 , 양과 스피드에서 올해 상반기가 지나면 , 질과 숙성의 시기로 모드를 바꿔야할 듯 합니다. 댓글은 병주성님이 책임을 지실것이고, 조선의 천재 , 우리역사에서 최고의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는 다산 정약용선생의 강진유배시절의 그 유명한 저서 목민심서에 나오는 시를 통해 , 우리역사의 명암을 옮겨 봤습니다. 영국의 세계적 세기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갈파(喝破) 했다고 . . . (아시여문).

  • 12.01.21 18:06

    그러문요.감사합니다.사족을 붙이자면요 어떠하든 丁若鏞 그훌륭한 분이 호남지역 강진에 18년이상 사시면서 무지목매한 백성들을 깨우침을 주셨고 그곳에서 목민심서등 훌륭한 행정지침서를 크게파급함은 국보급입니다.더구나 해남윤씨 멍문가가 외가이다는점은 전라도지역의 자부심이기도...

  • 12.01.21 20:02

    문뜩~행정은사랑하지만 정치는싫어한다는 현뉴욕시장 재력가 마이클 블름버그 그분이 생각난다.그인 정치가싫은이유를 정치란 불가사이한분야라고 겸손을강력히 피력했다. 정치는아무나 못한단 얘기죠. 하나님이 각자주신 재능과 품격의 달란트를 인정하며 어디까지나 열공하고 기막힌도전도하며 자유경쟁의 기회균등이라면 더이상 바라서 뭐하리요.말하자면 각자의세계관이 문제일것이다.시크릿에서는 부정적마인드는 부정으로,긍정적마인드는 잘되는쪽이라니 그걸읽혀야..하지만 결국 세상사란 천태만상...암튼 정약용 실학사상등을 工夫좀..모쪼록 정치지망자등은 SNS시대이기 쭈울로 나는꼼수다등 언론회자에 처신등을 명심하시겠지오들..

  • 작성자 12.01.21 17:59

    정약용의 어머니가 해남 윤씨. 그리고 윤선도는 정약용의 6대 외조부. 강진 다산초당도 윤단의 산정이었고, 다산초당에 책을 가져다 준 이들도 해남윤씨 문중. 그리고 다산의 18명의 제자중에도 윤종기 종벽,종삼등 6명이 윤단의 손자들로서 해남윤씨. 다산이 18년간 강진에서 유배 살이를 하는 동안에 다산은 여러가지로 해남 윤씨로 부터 도움을 받았고. 다산은 외동딸을 해남 윤씨에게 시집을 보낸다고. 초라한 초가집 한 칸 다산초당에서 18년을 사는 동안 정약용은 50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12.01.21 17:59

    [한국의 명가 명택]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남한의 100여군데 명택 중에서 가장 호방한 터에 자리잡은 집을 꼽아보라면 단연 윤선도 고택, 호방함에서 , 이 집은 호남을 대표하는 고택일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남은 호남에 비해 산들이 많고 들판이 좁아서 집터가 오밀조밀하여 , 근세에 회자되었던 “경상도 부자는 3000석을 넘기 어렵지만, 전라도 부자는 1만석이 넘는다”는 말도 영?호남의 지리적 관련을 잘 보여준다 .

  • 작성자 12.01.21 18:04

    고려와 조선의 풍수 지리학의 원조 도선 국사가, 조선천지를 손금 보듯이 두루 살펴, 모든 고을의 천년의 앞날을 내다보며, 각 고을의 이름을 다 지으면서, 이곳에서 여생을 마무리 했을 만큼, 우리 전라 광양이 첫째요. 왜군 대장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명령하기를 경상도는 백색(=협조)으로 표기하여서 절대 죽이지 말라 하였고 전라도는 붉은 적색(=결사저항)으로 표기하여서 모두 죽여서 코를 베어 오라고 하였다 한다. 발해고(渤海考) 의 저자로 유명한 유득공 이 1795년 (정조19년) 에 정조왕의 명에 따라 이충무공 전서를 편찬 하였는데 그 서간문 모음집에 실려 있는 이순신 장군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 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

  • 작성자 12.01.21 18:04

    기록된 말이, 절상호남 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 이말은 竊想湖南 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竊(절)은 ‘자기의 의견을 확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곧 자신의 의견을 낮추어 겸양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매우 조심스런 주관적인 의견 개진’이라는 뜻이다 ,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라.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호남인은 불의에 비굴하지 않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맨먼저 목숨을 바쳐 국가를 수호하여 싸워 이긴 외세항쟁 정신이 동학농민 운동과 광주학생독립 운동으로 계승 발전하여 5.18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을 민주화 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작성자 12.01.21 18:18

    朝鮮之 全羅道, 全羅道之 光陽, 光陽之 骨若, 骨若之 成隍이라 , 저는 그래서 경북 김천에서 포항 10년을 준비해서, 광양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만 , 그렇게 되었고 , 완전 띵호와 , 참고 : 띵호아란 말의 유래 여러분들은 혹시 왕서방의 연서를 아세염? 1938년에 발표되어 단번에 만요가수 김정구의 이미지를 굳힌 이 '왕서방 연서'는 중국과 관련된 유행가 가운데 대중적인 인기를 가장 많이 누린 곡으로서 가사인데염 .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어 띵호와 띵호와 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명월이 하고 살아서 돈이가 무유데 띵호와 워디가 반해서 하하하 비단이 팔아서 띵호와

  • 작성자 12.01.21 18:19

    비단이 팔아도 명월이 잠이가 들어도 명월이 명월이 생각이 다다유 왕서방 병들어 누웠어 띵호와 띵호와 병들어 누워도 띵호와 명월이하고 살아서 왕서방 죽어도 괜찮아 워디가 반해서 하하하 비단이 팔아서 띵호와 명월이 얼굴이 띵호와 명월이 마음이 띵호와 비단이 팔아 다 줘도 명월이 돈이 안 받어 띵호와 띵호와 명월이 없어도 띵호와 명월이하고 안 살어 돈이가 많이 벌어 띵호와 돈이가 많이 벌어 하하하 비단이 팔아서 띵호와 위의 대중가요 가사에 나온 띵호와를 유래로 한국인들의 입주위에 띵호와라는 말이 오고가게 되었는데요. 그렇다면 왕서방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아는것이 의문을 푸는 핵심 포인트라고 할수가 있겠습죠? ^^;

  • 작성자 12.01.21 18:21

    조선족 출신 지룽이(池龍一) 닝보(寧波) 시과학기술원구 서울사무소 대표는 예전에 옛부터 전세계에 차와 비단을 내다 판 게 닝보상인인 만큼 '비단장수 왕서방'은 닝보이외의 다른 곳이 고향일리 없다는 주장을 했었습니다. 닝보는 상하이 밑쪽의 면적 9365제곱km(서울15배)의 도시(상해에서 차타고 반나절을 가야함)로, 인구는 5백40만명이상이며, GDP는 1191억위안(약19조원)입니다. 따라서 왕서방이 띵호와의 유래이며, 왕서방의 고향이 닝보이므로 북경표준어를 쓰지 않았음을 추측할수있습니다.

  • 작성자 12.01.21 18:21

    따라서 方言이 심한 중국의 특성상 해당지역 억양으로 발음된 Ting Hao A~ 는 한국인에게 띵호아로 들린겁니다. 挺 好 阿~ ing Hao A 挺 Ting -> 1.형용사 꼿꼿하다,곧다 2.동사 곧게 펴다,지탱하다 3.부사 매우,대단히,매우 好 Hao -> 1.형용사 좋다,훌륭하다,건강하다,~하기쉽다 2.부사 오래됐다. 阿 a -> 1.문장의 어미에 뭍어 감탄,찬탄을 뜻합니다. 위와같은 단어의 구성으로 매우좋다 라는 감탄문이며, HaoJiLe,HenHao,HaoBang 등의 표현을 써도 같은 의미이지만, 노래의 은율상 Ting Hao A가 쓰여진것으로 보여집니다.

  • 12.01.21 21:34

    다소 엉뚱하긴합니다만, 뭐~삼천포지역 소식좀..

  • 작성자 12.01.21 23:24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다가 장벽에 부딛히거나 혹은 곤란한 지경에 이르면 흔한 말로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라고 말하곤한다. 또는 길을 가다 목적지가 아닌 다른 장소에 도착해서도 똑같은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을 그냥 들으면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않는다 그렇지만 이 말에는 재미있는 그 말을 사용하게 된 유래가 있다 우선 이 말을 이해 하려면 실제 존재하는 사천에서 삼천포간의 도로를 주행해보면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진주에서 33번국도를이용해 사천을 거쳐 고성을 가려 하면사천을 조금지나 3번 국도와 겹쳐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 작성자 12.01.21 23:25

    여기에서 무심코 가기 쉬운 직진코스를 선택하여 가다보면 3번 국도의 육지로는 끝자락인 삼천포에 도착하는 것이다. 삼천포에서는 다시 돌아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육지의 끝이다 지금은 3번국도의 끝인 남해와 연결되어 있지만 이 말이 처음 유래될 때는 그렇지 못하여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되돌아 나오면서 한마디 하는 말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네" 하고 아쉬운 여운을 남겼다한다. 이 말에는 주의하지않고 경솔히 행동한 아쉬움과 괜히 헛고생을 한 자기잘못의 자조적인 시인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좀더 주의하고 잘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교훈도 담겨 있는 말이다.

  • 작성자 12.01.21 23:25

    일을 진행함에 있어 탈없이 잘진행 되다가 갑자기 또는 마지막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거나 어긋난다는 뜻임. 가장 유력한 유래입니다. 옛날에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진주를 갈려면 객차의 앞부분 열차칸에 타야 했습니다. 뒷부분 객차는 삼천포행 입니다. 쉽게 설명해서 열차가 총 4칸짜리라면 앞칸두개는 진주행 뒷칸 두개는 삼천포행 이였죠... 이 열차가 진주를 막 들어서기전의 기차역인 개양역에서 분리 됩니다. 당시 진주행 사람이 많다 보니 삼천포행 뒷객차에서 잠을 자거나 멋모르고 잘못 객차를 타게되면 원하는 진주가 아닌 삼천포에 도착 하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 12.01.21 23:26

    시대적으로 보면 약 1965년~1970년 입니다. 70년대 이후에는 진주~삼천포간 철도가 없어지고 군용선으로 진주~사천만 남아 있습니다. 버스가 발달하게 되므로 자연적으로 기차의 활용도가 작아지게 되죠. 마지막으로 이말의 표현은 삼천포 시민들에게 좋지 않은 지역적 표현이 되기 때문에 이전부터 이어져온 속담이라 할지라도 되도록 삼가 해야 함 (특히 자칭 공인이라고 하는 신분들) 삼천포에 가서 이런얘기를 함부로 하면 본인에게 득 보다 실이 많음.. 지금은 관광지역으로 돈 없으면 놀려갈수도 없는 도시가 되어버림 흔히들 '삼천포로 빠진다.' 하면 비웃는 말이 되지요, 이른바 사오정 이 된다는 말인데,

  • 작성자 12.01.21 23:26

    어원의 과정은 이렇답니다. 조선조 후기의 수군들이 은어로 쓰던 말이었습니다. 조선조 후기에는수군(지금의 해군) 이 두군데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우수영(수영 = 수군의 본영 = 수군본부) 과 좌수영이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동해사령부, 서해사령부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두군데의 좌, 우수영을 통합하여 지휘하는 곳이 총사령부격인 통영인데 이 통영이 있던곳이 지금의 통영시(예전엔 충무시) 인데 어느날 이 통영에 보고를 하러 왔던 몇 척의 수군들(좌수영이나 우수영의 수군이겠지요.) 이 보고를 마치고 본대로 귀환하는데서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작성자 12.01.21 23:27

    다른 배들은 모두 통영항을 빠져나와서 몇개의 섬을 통과하여 전부 남해로 다 나갔는데 그 중에 한척의 배가 길잡이(지금의 항해사)가 잘못지시하여 약간 우측으로 가는 바람에 통영의 옆 동네인 삼천포구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통영의 지겨운 점호를 받고 겨우 본대로 귀환하는데 길잡이의 잘못으로 결국은 통영의 옆으로 다시 되돌아 가는 꼴이 됐지요. 나중에 잘못된 것을 알고는 다시 항로를 변경하여 본대로 돌아왔는데. 당연히 늦게 도착했겠죠. 길잡이는 늦게 도착한 죄로 신나게 상관에게 욕을 먹고 그 배의 수군들은 다른 배의 수군들에게 놀림을 당했죠,

  • 작성자 12.01.21 23:28

    놀림을 당한 병사들이 상관인 길잡이를 보고 뒤에서 욕을 했지요. "에이 그거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갔고 이 망신을 당해.... 에이 .... 쯧 쯧,,,,," 이 말이 널게 퍼져서 수군들 사이에선 엉뚱한 짓이나 실수를 하면 곧잘 "거 왜,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하면서 상대를 비웃었지요. 이것이 육지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 ..... 삼천포로 빠져....." 하는 말의 기원입니다. 먼저 삼천포로 빠지다의 유래 그 자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선임. 60년대 진삼선(진주-삼천포) 개통에 따른 열차편성에 따른 설도 있지만 이미 시일야방성대곡으로

  • 작성자 12.01.21 23:28

    유명한 장지연의 경남일보를 보면 1920년대 이미 이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기사가 있다. 심지어 외국사람인 1930년대말에도 남강범람때 남강댐 건설 관련 해서 일본기술자들도 사용할 정도로 흔한 말이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어원은 과거 평안도 모든물산의 반이 평양에 있고 경상도 모든물산의 반이 진주에 있다란 말이 있다. 물론 경상도에 수많은 곡창지대가 있는데 왜 첩첩산중 산으로 둘러싸인 옛 진주면에 그런말이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진주에 큰시장이 있었던 거 같다. 오늘날로 말하는 남대문시장이나 성남모란시장처럼 전통시장이 아닌 가락동농산물 노량진수산 시장 같은 일종의 옛날버전의 상품시장

  • 작성자 12.01.21 23:29

    같은 것이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전라도의 전주 역시 내륙이지만 농산물은 물론 수산물도 집결하는 곳으로서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북평양 남진주 라고 해서 평양과 진주 역시도 음식문화 매우 발달한 곳이다. 개성거지탕에 밀리고, 전주비빔밥에 밀리고, 안동헛제사밥에 밀리고, 평양냉면에도 밀리지만 진주에도 진주거지탕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사밥 진주냉면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 옛날사람들이 진주시장에 왔다가 돌아갈 때 사천부근서 그렇게 통영(두룡포)과 삼천포를 많이 혼동 했다 한다. 또한 조선시대 진주에 경상우도 병영이 통영에는 수영이 있었는데

  • 작성자 12.01.21 23:30

    오늘날로 굳이 말하면 뭐 육군 해군이다. 역시나 그렇게 잘 가다가도 사천부근서 통영으로 못가고 삼천포로 빠졌다고 한다. 즉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 이렇게 그 자체가 매우 오래 된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유례들에서 보듯이 하나같이 모두가 다 부정적인 뜻이다. 그래서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듯 하다. 학자들도 전라좌수영 충무공이순신이 한산대첩 노량대첩 등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던 통영(두룡포)과 삼천포를 혼동해서 어디서 무슨 승리했는지 가끔 혼동한다. 그만큼 아리송해서 진주서 두룡포와 삼천포 가는 길에 대한 여러 이야기 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 12.01.23 23:26

    너무너무 잘 배웠습니다.그렇다 손 치드라도 아무튼 삼천포상식 긍정적 미소속에 잘소화 했답니다.그나제나 내일이 설 이니 헛제사음석좀 먹으러 가야것습니다.이성하선배님께서도 그 떡국 잘드시길 바랍니다.아참 떡본김에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4.11총선즈음해서 사천소식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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