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미나 자료인 듯하므로 인용할 수 있는 글은 아니지만, 공공성의 개념과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서 담아왔다.
------------------------------
2004. 5. 25 Topic Review 1
공공성의 개념과 의료의 공공성
김향자(서울대 의대 보건정책학 교실)
1. 서론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시 보건의료 12대 공약을 제시하였다. 건강 증진 및 질병 관리의 강화, 공공보건의료의 강화, 수요자 중심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의료 소비자의 보호, 민간의료기관의 건전한 발전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이 공약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사항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란, 혹은 의료의 공공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흔히 공공의료기관을 통해 행해지는 의료를 공공의료라 하며, ‘공공의료기관의 확충= 공공의료 강화’ 라고 보기도 한다. 노 대통령의 공약 중 10% 수준의 공공의료를 3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사항도 이러한 생각에 기초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변해온 과정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의 의미가 일면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공공영역이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를 매개하는 것으로 공론과 여론이 형성되는 사회적 공간이다. 근대 국가의 성립 이후 시장 경제 영역의 커다란 발전은 시민사회의 성장을 낳았고, 공공영역은 이 시민사회와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변화해 왔다. 공공영역의 의미를 살펴보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의 사전적으로 고정된 정의가 아닌 역사적 과정 속에서 변화되어 온 의미일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le public'이라는 단어는 궁정을 의미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단어의 의미는 파리 극장 특별석에 앉아 있는 소수의 부르주아 상류층과 일부 도시귀족으로 규정되고, 이후 문학작품의 독자, 연극의 관람객, 방청인 등을 칭하게 된다. 이는 궁정의 문화적 기능이 도시로 이양되면서 공공성의 개념이 변화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서구에서의 공공성의 개념이 형성, 변화되어온 과정을 역사적 맥락으로 살펴보면서,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공공성의 개념을 살펴보고, 보건의료에서의 공공성이란 무엇인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공공성의 개념
1) 공공성의 어원
public과 private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은 공공성의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짐작케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public의 어원은 라틴어 'pubes' 로서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인 성숙성(maturity)을 의미한다. 한편 private은 박탈(to deprive)을 의미하는 라틴어 ‘privatus'에서 유래한다. 박탈은 부족 혹은 모자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mathew, 1984;122,임의영 재인용)
영어로 public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기록에 의하면 그것은 사회내의 공동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로마 공화정의 ‘공적인(public)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지도자를 선출하거나 전쟁을 벌이는 등의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요 정책 결정을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시민모두의 참여에 의해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17세기 말 public은 어느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상태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private은 어떤 사람의 가족과 친구로 한정되는 보호된 생활 영역을 갖게 되었다. (sennett, 1982:32~40, 임의영 재인용)
현대에서 public의 사전적 의미는 ① 공중의, 일반 국민의, 공공의, 공공에 속하는 이라는 의미로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 혹은 보편적으로 관련되는 경우로, 여기서 공중(the public) 이라는 개념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② 공립의, 공설의 라는 의미로서 경제학에서의 공공재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③ 공적인, 공무의, 국사의 라는 의미로서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④ 공개의, 공공연한 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17세기 말 public의 의미와 같다 할 수 있다. (Essence 영한 사전, 2000)
이와 함께 소영진은 공신력으로서의 권위와 의료 교육의 공공성이라 할 때의 이타성도 공공성의 의미로서 포함한다.
2) 역사적 과정 속에서의 공공성
부르주아 공론장의 출현
중세의 지배형태는 사회적 재생산과 정치권력의 요소들이 결합된 것으로,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간의 구분이 생긴 것은 근대에서 ‘사회(society)’라고 하는 영역이 등장하면서이다. 중상주의적 규제는 자유시장 경제를 갈망하는 부르주아들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시장경제적 관계의 확장은 공권력으로서의 국가의 권력에 대항하여 상품 교환 영역으로서의 사적 영역에 대한 보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사회영역이 출현하는데, 처음에 이 사회영역은 이성과 교양을 갖춘 부르주아들의 문예적 공론장으로 시작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정당을 조직하며 이성에 바탕을 둔 그들의 요구를 법의 형식으로 정형화해 간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중세 왕권의 절대적 보편성에 대항하여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보편성을 요구하며, 이 요구 주체 또한 이성과 교양을 갖춘 합리적 공중이다. 부르주아 법치 국가의 주체로서의 공중은 원칙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속한다. 하지만 교양과 재산을 갖춘 인간에게만 적극적 시민으로서 공론장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하며, 그 이외의 소극적 시민들에게는 그러한 교양과 재산을 갖출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 이는 부르주아 법치국가에서의 기본권 개념에서 잘 나타나는데, 부르주아적 인권은 신분적 자유권과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 기본권이란 공론장의 영역과 사적 개인들의 영역을 보장하는 것, 즉 국민으로서의 그들의 정치적 기능 및 상품 소유자로서의 그들의 경제적 기능을 보장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사적 영역으로서의 부르주아 사회의 보존이라는 공동 이익에로 자동적으로 수렴되는 사적 이익을 가진다. 이들에게 인간 = 사적 소유자 = 공민(公民)이라는 식이 성립되며 사적 소유 질서로서의 안정을 돌보는 한 인간으로서의 사인(私人)과 공민 사이에는 어떤 단절도 없었다. 곧,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원천은 ‘재산 소유자가 곧 인간 자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 공론장 비판
맑스는 부르주아 법치국가에 대해 부르주아 사회 이전 사회의 정치적 신분들이 부르주아 사회에서 단순히 사회적 신분으로 해체되었다고 지적한다. 맑스에게서 정치 혁명이란 모든 신분, 조합, 길드, 특권을 파괴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 성격을 지양하는 것으로, 정치적 정신을 부르주아적 삶과 혼합된 상태로부터 해방시켜 공동체의 영역으로, 즉 부르주아적 삶의 특수한 요소들로부터 이상적으로 독립된 민중의 일반적 관심사의 영역으로의 지향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르주아적 사적 자율은 기회의 균등이라는 허구를 제시하면서 공론장을 그들의 사적 이해의 장으로 만든다. 여기서 공론장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참여와 공개성도 소극적 시민에게는 또 다시 하나의 허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873년 대공황과 부르주아 공론장의 변화 - 대의제
1873년의 대공황은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한다. 공황으로 위기에 몰린 시장 경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그 위기를 타계하고자 했으며, 이로써 신보호주의 정책이 채택된다. 이는 시장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가의 새로운 기능이 증가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장벽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국가는 법과 행정 조치들을 통해 상품 교환과 사회적 노동의 영역에 깊숙이 간섭해 들어간다. 부르주아 사회의 공적으로 주요한 사적 영역의 한 가운데에서 재정치화된 사회영역이 형성되는데, 여기서 국가제도와 사회제도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라는 기준으로 더 이상 세분화할 수 없는 하나의 단일한 기능 복합체로 결합하게 된다. 이와 함께 가족은 점점 사적이 되고, 노동 세계와 조직세계는 점점 공적이 된다. 국가의 개입에 의한 불완전 경쟁은 사회적 힘을 개인의 수중에 집중하게 되며, 이로서 상품 교환은 대기업화, 독과점화 되어 간다. 대기업은 자신의 사적 영역에서 노동하는 사람과 타인의 사적 영역에서 노동하는 사람 사이의 차별을 규정하며, 대기업을 통한 노동을 공무(公務)로서의 근무관계로 만든다. 이로써 대기업에도 공공적 성격이 부여된다. 직업 노동이 업무 시간과 업무 시간 외의 사적인 것의 보호구역으로 이분화 되면서 사회적 노동 일반의 기능 체계로부터 가족은 계속해서 분리해 나간다. 잔여의 사적 영역인 가족은 그 지위가 공적으로 보장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적 성격마저 상실한다. 일련의 사적 처분 기능들이 국가의 공적 보장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다.
한편 부르주아 공론장으로서의 정당은 제도권화되고, 선거를 통한 대의제 방식으로 여론은 수렴된다. 이성을 가진 공중의 직접적인 토론장을 통한 여론의 형성은 대표 선출이라는 한정된 행위로 변화하며, 이에 따라 여론의 기능은 단순한 권력 제한이 된다.
‘권력은 시민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이 행복의 유리한 대리인이요 중재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권력은 국민의 안정을 보장해주고,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고, 오락 시설을 제공하고, 중요 관심사를 처리하고, 산업 활동을 감독하며, 재산 상속을 조정하고 유산을 분배한다. 이런 권력이 스스로 생각하는 수고와 생활상의 근심으로부터 시민을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지 않겠는가?’(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中 p 242 : Toqueville)
그람시는 정당은 집단적으로 조직된 사적 이해에 직접적인 정치 형태를 부여하는 사회단체들 - 시민사회-과 함께 성장하면서 공공 영역의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였지만, 부르주아의 자유로운 시장 경제의 보호가 그 기본 목표인 법치 국가가 형성되면서 오히려 공공 영역위에 존재하게 된다고 본다.
토론하는 공중에서 소비하는 공중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라디오, TV 등의 대중 매체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공론장의 의미도 변화한다. 이제 공중의 여론 형성 무대는 살롱이나 커피하우스가 아니다. 개인들의 논의는 TV, 라디오 프로그램이 되고, 관람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상품 형태를 취하게 된다. 하버마스는 이를 ‘대화 자체가 관리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 때에 대중문화의 소비는 이를 위한 자격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 대중은 연습하고,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비한다. 논의하는 공중의 연결을 보장하였던 사회적, 사교적 교류의 제도들은 감소하며, 대중적 기반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부르주아 공론장에서 공중은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였지만, 현대의 공론장은 공중에게 소비자로서의 선택권만을 부여하며, 비판적 논의는 자극의 비인격적 소비로 대체한다. 이는 곧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일부 조직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든 의견을 소비자로서의 대중에게 포장하여 선전하고 동의를 받아 여론화하는 것을 말하며, 이때 공론장은 권력화된다.
한나 아렌트는 공론장의 변동 과정을 고찰하면서 ‘민족 경제’ 혹은 ‘민족 국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근대의 형성은 민족의 출현과 그 괴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근대 국가는 가족의 형태가 사회의 형태로 환원된 것으로서 일종의 ‘집단적인 살림’인 것이다. (주. 경제적으로 조직되어 하나의 거대한 인간가족의 복제물이 된 가족 집합체를 우리는 ‘사회’라 부르며 사회가 정치적 형태로 조직화된 것을 ‘민족’이라 부른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p 81) 그렇기 때문에 근대의 성격을 논하자면, 근대 민족국가의 전제적 구조가 전제 되어야 한다.
인간의 차이성을 인간의 기본 속성으로 보면서, 말과 행위는 이러한 차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작업이나 노동과는 구분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말과 행위를 통하여 다른 사람과 단순히 다르다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고대폴리스는 소수의 평등한 사람들이 자신의 독특한 행위와 업적을 통하여 자신이 최고임을 보이는 정치의 장으로, 공론 영역은 개성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다. 하지만 근대 민족주의적 전제 국가로부터 발전하여 온 현대 사회는 ‘익명의 지배’형태로 정부는 관료제화되며, 사람들의 행동은 표준화된다. 이와 함께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자신의 차이를 들어내는 ‘행위’는 사라진다. 하버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론장은 이제 고대 폴리스에서처럼 개개인의 개성을 표출하는 공간이 아닌(비록 폴리스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일정 조건을 가진 자로 한정되지만) 표준화된 대중들에 대한 권력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이란 익명의 지배아래 타인과 구분되는 개인이 아닌 표준화된 개인들이 합이다.
3. 한국에서의 공공성
근대 국가의 형성과 민족주의
현대 한국에 있어서 공공성, 공적 영역, 공적 세계의 개념은 이중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공식적인 것(officialness)으로서의 의미와 공적인 것(publicness)으로서의 의미가 그것이다.(백승현, 2002)
공식적인 것의 의미로 이해될 때, 공공성의 개념은 국가 또는 정부의 범역 내에서 이뤄지는 권력과 권위의 공식적인 행사와 관련된 범주의 활동이며, 공적인 것을 의미할 때, 공공성의 개념은 가정적 삶이나 개인적 삶과 구분되는 공공생활 혹은 공공문제의 의미로서 일정부분 common이라는 의미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서구의 공공성의 개념은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발전 과정과 함께 형성되어 왔다. 중세 봉건제에서 부르주아 세력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근대의 형성 과정은 서구와 같지 않다.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 문물의 도입 과정 즉, 밖으로부터의 유입과 그 맥이 통하며, 일제 식민지에 의해 왜곡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스의 폴리스나 근대 형성과정에서의 서구의 부르주아 공론장이 한국의 역사 속에 존재하였는가? 이 문제는 더 근원적으로는 한국사에서 사회 변혁의 동력은 무엇이었는가라는 것에 대한 물음이라 생각된다. 역사를 보편적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의 변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공통된 방향을 가지며,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시간적 선후 관계로 어디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었고, 어느 곳이 후에 시작되었느냐 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좀더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특수성에서 바라본다면, 각 나라별 사회의 변화 과정은 단순한 시간적 선후 관계가 아닌 그 사회의 물리적, 문화적 특성에 따라 인과 관계가 다르게 설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근대성도 민족이라는 개념이 그 중심에 있다. 하지만 서구가 세계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민족의 상념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근대 국가 건설의 과업을 수행해야 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족 개념은 근대 국가 형성의 구심점이 되었다. 특히 ‘단일 민족’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현재에까지 우리에게 민족이 중심에 자리잡도록 하고 있다. 이승만에서부터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기까지의 독재 정권이 사람들에게 아직도 아련한 향수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이면에 ‘단일 민족’이라는 정서가 강하게 깔려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서구에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면, 한국에서는 단일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위한 국가발전 이데올로기 속에 전체주의가 오히려 지향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때 국가와 국민(혹은 시민)의 관계는 서구의 국가와 시민사회와의 관계와는 다르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상호 견제를 통해 각각의 힘이 평형을 이루는 상태가 이루어지지 못하며, 국민은 단순히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는 소비 대중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경제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동해 내고, 가시적인 물적 풍요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한 이 소비 대중은 다만 국가에 순응할 뿐이다. 결국 국가에 대항하는 여론 형성의 장으로서의 공론장, 혹은 공공영역은 한국 사회에 부재하게 되거나 거의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김창엽은 공공부문에서의 공익 혹은 국가 실패를 이야기 하면서 타자화된 대상으로서의 국가를 말한다. 국민들에게 국가는 착취자, 혹은 억압자로 비춰질 뿐,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복지를 보장해주는 국민을 위한 보호자로서의 모습은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공공부문은 전근대적 봉건성에 기초하여 공익과 사익 추구가 혼재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다. (김창엽, 2003)
위의 두 견해는 언뜻 보면 상반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화된 국가 속에서도 우리는 ‘민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민족 개념을 제외한 표면적인 국가에 대한 비판은 민족 개념이 가지는 그 전체주의적 속성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시민운동과 새로운 공론장의 가능성
1980년대 후반, 권위주의적 정권이 제한적이나마 점차 민주화되어 가면서 한국사회에서도 시민운동이 활성화된다. 그 이전 강력한 군부 독재 하에서는 심각하게 왜곡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소수의 변혁 운동이 주가 되었다면, 이제 시민운동이 사회 운동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야기된 사회적 현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환경, 여성, 인권, 지역, 복지 등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백승현, 2002) 이러한 시민운동의 발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론장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서구에서와 같이 국가의 공권력에 정면에서 대항하여 국가와 힘의 평형을 이루는 시민들의 공론장으로서...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의 참여가 주가 되기보다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거시적 문제가 주요 안건이 되어 전문가 중심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공론장의 기본 전제가 참여와 비판적 공개성이라 할 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시민의 공론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시민사회를 능동적이고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정의할 때, 우리나라에 이 시민사회의 개념이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이러한 시민사회를 위해 시민운동이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영역은 언제 어디서나 참가자들 사이의 평등한 행동과 발언을 통해 창조되는 공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참여하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사라지는 잠재적 공간이다. (주.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中, 임의영, 2003 재인용) 사람들은 어느 때이고 자신을 반드시 주체로 또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유일한 인격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타인과 구별되는 주체로서의 개개인의 참여와 이를 통한 공론장의 형성이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양성과 개성에 대한 강조가 개개인의 인격을 드러내는 창구로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상품 소비의 영역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4. 보건의료의 공공성
공공보건의료란 국가(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또는 지역주민의 건강 수준 향상을 위해 제공하는 보건서비스이며, 공공의료기관은 공공보건의료를 수행하기 위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 관련 기관이 운영 주체가 되어 설정한 의료기관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보편적 의료서비스 또는 정부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나 수익성이 낮아 민간의료기관이 기피하는 보건의료분야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또한 공공성 강화란 영리 목적의 이윤 추구적 민간성을 지양하고, 사회일반이나 공중의 목적 즉 공익에 부합하는 행위나 사업을 우선하는 것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이권전, 2002)
공공성은 어느 측면에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나 내포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질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바라보냐, 아니면 삶의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공공성은 곧 국가 기관 혹은 공공, 공영 기관을 통해 구연되는 공공성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 때 우리는 건강권이 왜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져야 하며, 보건의료가 자율 시장 경제의 원리에 의하지 않고 국가의 규제에 제약되어야하는지 이야기하게 된다. 정보의 비대칭성, 수요의 불확실성 및 불규칙성, 치료의 불확실성, 공급의 법적 독점, 우량재로서의 성격, 외부 효과 등이 보건의료의 재화로서의 특징으로, 이러한 특징으로 보건의료는 자율적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게 되는, 이른바 시장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방법은 ① 정보제공 차원의 정부 개입, ② 규제 및 통제를 통한 정부의 개입, ③ 재정 보조정책을 통한 정부의 개입, ④ 정부가 의료서비스를 직접 생산 제공하는 방법 등으로 나누게 된다. 대부분이 이 네 가지가 혼합된 방식으로 정부 개입을 한다. 여기서 공공성 강화란 이 네 가지 방식의 정부 개입이 효율적으로 배합되어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정부의 개입이 효과적이려면 공공의료기관을 통한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 시행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시행의 파급력은 공공의료 기관이 차지하는 비중 만큼일 것이다. 즉, 공공의료기관이 수치상으로도 현저하게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의료 기관의 확충이 급선무인 것이다. 또한 제도적 측면의 강화를 위해 공공보건의료기관의 목표와 위상을 정립하고, 행정 관리 체제를 제고하며, 공공의료기관간 기능적 연계체계를 강화하는 등의 실질적인 제도적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삶의 측면에서 공공성이란 한나 아렌트가 말한 공론장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차별되는 개인의 다양성과 그 개인의 참여가 이루어질 때 실현되는 공공성이 그것이다. 혹자는 이를 의료의 사회화라 표현하기도 한다. 국가에 의해 주어진 강요된 공공성이 아닌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자발적이고 내재적 발전을 통한 ‘건강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창엽, 2003)
공론장은 국가와 대등한 관계에서 국가에 대항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하며, 공론장의 내용은 자발적 개인들의 참여와 감시를 통해 창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건의료에서의 공론장 형성을 위한 제반 조건은 무엇일까?
공론장의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참여이다.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가 갖는 가치를 이해하고, 자유로운 참여의 가능성을 증대시킬 방법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개개인은 참여를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며, 다른 구성원들과의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참여를 통해 보건의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교육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여에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그 시작일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소통의 조건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는 소통하는 사람들 간의 권력관계나 무지, 잘못된 소통 방식 등이 있다. 이를 위해 참여자들 간에 지배와 통제의 관계가 없어야 하며, 소통을 시작하는데 있어 억압적 상황이 없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버마스는 “이해에 도달하는 목표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이해, 지식의 공유, 상호신뢰, 그리고 일치로 종결되는 동의를 가져온다. 동의는 이해 가능성, 진리성, 진실성, 정당성 등 각각에 대한 타당성 주장의 인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라 하며 소통 능력에 있어서 타당성 주장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조건은 지식 공유이다.
앞에 제시한 두 가지 조건 - 참여와 소통을 위한 조건의 구축-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삶의 측면에서 보건의료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위한 모색이 될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의 공공성과 삶의 측면에서의 공공성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 관계에 있는 개념이라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제도적 측면에 한정되어 있으며, 공공의료에 있어 기본적인 물적 토대조차 부족한 현실에서 삶의 측면에서의 공공성을 논의한다는 것은 너무 때 이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에 있어 정해진 선후관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참여와 소통을 위한 조건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보건의료에 대한 패러다임을 재정립 하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5. 결론
공공의료의 기준이 ‘누구의 소유인가?’에 있다면 보건의료 공공성을 논의하는데 일면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에 대한 기계적 비교를 통해서만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가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기관에 의한 보건의료행위가 민간의료기관의 그것과 비교해 무엇에서 공공성에 대한 차별점이 있는가?’, ‘공공병원이 민간 병원과 차별되는 정체성이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 내에 잘 정립되어 있는가?’ 라는 물음이 앞서는 상황에서 소유를 기준으로 한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는 겉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공공성의 중요한 조건은 참여와 소통을 위한 공론장의 존재와 이 공론장과 대항관계에 있으면서도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국가이다. 이는 서구 사회의 특수성만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부분으로, 어디에서건 공공성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보편적 조건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탈중앙화와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구조가 모색되어야 하며, 이 과정은 시민의 통제권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ference
1. 위르겐 하버마스/ 한승완 역, 공론장의 구조변동, 나남 출판사, 2004
2.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편, 21세기 한국사회와 공공영역 구축의 전망, 문화과학사, 1998
3. 한나 아렌트/ 이진우∙ 태정호 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03
4. 김창엽, ‘공공’의 당혹스러움: 국가와 개인,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당대비평 2003년 봄호
5. 임의영, 공공성의 개념, 위기, 활성화 조건, 정부학연구 제 9권 제 1호, 2003
6. 소영진, 행정학의 위기와 공공성 문제, 정부학연구 제9권 제 1호, 2003
7. 백승현, 한국의 시민단체(NGO)와 공공성 형성, 시민정치학회보 제 5권, 2002
8. 김경수, 마르크스와 공공성의 논리, 2002
9. 김용익, 국민의 건강권 확보와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보건의료개혁 방향과 과제, 보건의료노조 2003년 제 4차 정책토론회, 2003
10. 김용익, 공공보건의료체계 기반 확충을 위한 과제와 실현 방안,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체계 강화를 위한 WORKSHOP, 2002
11. 이권전, 공공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과제와 실현방안,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체계강화를 위한 WORKSHOP,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