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고의 상인집단! 세계 최초로 주식제도, 은행, 공로주제도, 소유권과 경영권 분리를 실현하며 탁월한 경영 시스템을 구축한 경제 개척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다리를 놓고 학교를 세우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중국 사회의 리더! 시베리아 벌판을 넘어 일본과 유럽까지 세계 유통과 자본을 장악한 진정한 무역의 강자! 진상에게서 세계를 쥐고 흔드는 막강 중국 경제의 뿌리를 찾는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활약하는 ‘화상華商’은 모두 진상에서 비롯되었다!
21세기에도 빛나는 상업 정신과 부의 철학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계연計然이라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었고, ‘적저지리積著之理(재산을 모으는 이치)’라는 상업이론을 세웠다. 오나라에 패하고 와신상담하던 월왕 구천이 그를 찾아 나라 경제를 살릴 비법을 물었을 정도였다. 구천의 책사인 범려 역시 계연의 가르침을 받아 후에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진나라는 바로 현재의 산서성山西省, 계연은 산서상인 ‘진상晉商’의 시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지역 유대를 바탕으로 상업연맹이 형성되곤 했다. 명대에 이르면 10개의 거대한 상방商幇이 생기는데, 그 가운데 최고의 상인집단이 바로 산서성의 진상이다.
왜 진상을 중국 최고상인이라고 하는가? 우선 역사가 길다. 계연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춘추시대부터 수천 년간 상업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진상은 중국 최고의 상인이자 최초의 상인인 것이다. 두 번째로, 경영 범위가 대단히 넓다. 소금, 곡물, 비단, 철기에서 일상잡화, 차, 반찬 등 팔 수 있는 모든 물품을 취급했다. 게다가 중국의 유통과 자본을 장악하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세계를 누비며 무역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상인의 순위를 매기는 데 중요한 기준은 재산이다. 청나라 광서제 때, 산서성 열네 집안의 재산이 청나라 1년 재정수입과 맞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요즘 학자들은 실제 각 집안의 재산이 기록된 것보다 약 3~10배 많은 백은 1000만 냥 이상일 것으로 본다. 백은 1냥은 위안화로 200위안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8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19세기에 포브스 갑부 순위가 있었더라면 진상이 당연히 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진상은 300여 년 전 이미 현대 경영기법에 뒤지지 않는 탁월한 경영 시스템을 구축한 경제제도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고, 주식제도, 공로주제도, 은행업무 등을 시작했다. 인재 채용에서도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고 견습생 하나라도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채용했다. 이렇듯 진상은 상품관리, 인재채용, 이윤분배 등 경영 전반적으로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상점을 운영했다.
진상은 단지 돈만 많은 부자들이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다리를 놓고 학교를 세웠으며, 청나라 말에는 저물어가는 나라의 운명에 힘껏 맞서기도 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것이다.
최고의 상인집단이 말하는 3대 상업수칙
신용│작은 부자는 머리를 쓰고, 큰 부자는 덕을 짓는다! ‘군자는 재물을 구하되 도리로서 취한다’는 말은 진상의 핵심철학이다. 신용을 으뜸 덕목으로 삼은 진상은 다른 이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눈속임을 하거나, 경쟁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근면│참새가 있는 곳에 반드시 진상도 있다! 발이 닿는 어디든 진상이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진상은 비단, 도자기, 철기에서 소금, 반찬, 차까지 모든 물건을 상품화하여 러시아 대륙과 일본 열도를 종횡무진 누볐다.
지혜│시장은 스스로 기회를 찾는 자에게 열린다! 진상이 소금교역과 금융업, 유통업을 장악하고 중국 상업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쉼 없는 자기 수련과 열정 덕분이었다.
▶ 책 속에서
중국 전통의 유가 문화는 학문을 중시하고 상업을 경시했으며,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했으며, 의리를 중시하고 이익을 경시했다. 그러나 성공한 장사꾼들이 하나 둘 생겨나자 산서인들의 관념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들은 ‘배워서 뛰어나면 관직에 나아감’을 ‘배워서 뛰어나면 장사를 함’으로 바꾸었고, 순수한 상인으로 살고자 했다. 이런 생각은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일대 도전으로, 진상이 10대 상인 조직 가운데 가장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사상적 기초가 되기도 했다.
_35쪽
“작은 부자는 머리에 의존하고, 큰 부자는 덕에 의존한다”는 말이 있다. 즉 큰일을 이루는 사람은 권모술수를 쓰지 않으며 덕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략) 교씨의 ‘복’자 상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많음 상점들이 근량을 속이며 밀가루를 파는데 ‘복’자 상점에서는 밀가루 1근을 팔면서 실제로는 1근 2냥을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교씨는 바보, 천치였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으니, 그 후 교씨의 가게에서만 밀가루를 구입했고, 다른 상점들은 결국 문을 닫고야 말았다.
_97쪽
염유번이 표호 경영의 고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교치용은 아들 교경의에게 염유번을 모셔오라고 일렀다. 교경의는 일단의 인마를 거느리고 팔인교까지 대동한 채 기현으로 가는 길목인 자홍구에서 며칠 동안 염유번을 기다렸다. 염유번을 맞이한 그들이 돌아오자, 교치용은 친히 잔치를 베풀어 환대를 하면서 염유번에게 대덕항 표호의 총지배인이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12리의 신고(당시 총지배인의 신고는 대개 10리였다)를 약속했다. 염유번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대덕항을 운영하던 26년 동안, 결산기마다 1주당 이익 배당금은 무려 은자 1만 냥으로, 진상이 운영했던 표호 가운데 최고의 실적이었다.
_145쪽
성공한 진상은 하나같이 ‘의로써 이를 제약한다’는 우수한 전통을 고수했다. 명대 진상의 뛰어난 장사 수완, 성실과 신용, 기꺼이 선행을 베풀려는 마음 등은 청대 진상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고, 훨씬 더 심도 있게 발휘되었다. 진상의 우수한 장사의 전통은 이렇게 면면히 계승되었다. (중략) 상인에게 성공의 열쇠란 ‘기술’이 아니라 ‘덕’이다. 후세 사람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이유도 ‘재산’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진상을 이해한다면 그 의의는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_279쪽
전문경영인은 숲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과감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하며 사업의 기회를 절대 놓쳐서도 안 된다. 이굉령은 이런 자질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광서 29년(1903)에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북경에서는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사람들은 말굽은을 제조하는 노방爐房으로 몰려가 은으로 바꾸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쇄도하는 고객들로 노방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울풍후 북경 지점의 지배인으로 있던 이굉령은 노방의 파산이 불러올 심각한 후유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북경의 각 표호와 손을 잡고 거금을 들여 노방을 구제했고, 그 덕에 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_303쪽
대흉년이 들어 기근에 시달리던 그 해에는 사람과 가축이 기아로 죽어 차를 운반할 수많은 일손을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무역량은 감소했다. (중략) 이때 상씨 가문은 이미 800여 명의 식솔을 거느린 대가족이어서 그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씨 가문은 이재민 구제에 은자 3만 냥을 내놓았고, 거기에 다시 은자 3만 냥을 들여 희루를 지었다. 당시에 상가가 희루을 지은 것은 자신들의 향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향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먹고 살 만했던 고향 사람들이었다. (중략) 상씨 가문은 기아에 허덕이는 고향사람들이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희루였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고향사람들은 이제 자존심을 지키면서 노동의 대가로 얻은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상씨 가문에서는 벽돌 한 장을 나르더라도 하루 식사를 제공하도록 정했다. 대흉년은 그 후에도 3년간 지속되었고, 상씨 가문의 희루도 3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_354 ~355쪽
▶ 저자·역자 소개
지은이 량샤오민梁小民
1943년 산서성 태원에서 태어났다. 북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대 서양경제학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199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북경대학교, 북경상업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퇴임 후에는 청화대학교 등의 MBA, EMBA 과정에서 관리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국무원 특별초빙감사원 및 사회과학기금 평가위원 등으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량샤오민은 경제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중국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파헤치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경제 이론을 엮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그는 중국에서 가장 대중친화적인 경제학자다.
50여 권의 저·역서를 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홍콩과 대만에서도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 『경제학이란 무엇인가』『샤오민, 책을 읽다』『샤오민, 시장을 이야기하다』『칠판 위의 경제학』『미시경제학 가로지르기』『거시경제학 가로지르기』 등이 있다.
옮긴이 서아담
전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언론대학교와 절강대학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한·중 문화의 중계자가 되기 위해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열정과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불변의 법칙, 밥그릇 경영』이 있으며 현재 한국에 소개할 만한 가치 있는 중국 관련 서적을 기획하는 일에도 정열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