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변형 (변화): 남자/여자의 쌍 (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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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변형 (변화): 남자/여자의 쌍 (18-25절)
a - 혼자인 인간 (18절)
18절의 이 말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협력자를 만들어 주리라”는 1장 26절과 비교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스스로에게 말씀하신다: 일인칭을 사용.
1,26: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모습처럼...만들자“
2,18: “...만들어 주리라”.
그러나 첫 번째 경우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가 문제였는데 비해, 두 번째 경우에서는 여자의 창조만을 말하고 있다.
18절은 “그에게 그의 협력자이며, 그의 앞에 있는[앞과 같은 또는 마주하고 있는] 누구를 내가 그에게 만들어 주리라”로 번역된다. 야훼께서 사람이 혼자라는 사실을 발견하신다. 고독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람이 혼자인데 대해 불평한 것이 아니다. “혼자”란 모든 인간성과 모든 동물성의 유일무이한 전형을 의미한다.(?) 이 인간은 “모든 것”이며, 혼자서 “전부”이다. 그가 혼자서 “전부”인 것은 좋지 않다. 혼자서 모든 것인 이 “전부”에 손을 대어야한다 (이 “전부”를 잘라내어야한다). 이 작업을 위해,
b - 첫 번째 해결책: 인간에 보다 가까운 것들로서 들짐승과 하늘의 새를 만드시다(19-20절).
19절 사람이 명명하다: 그는 고양이와 개를 혼동하지 않는다. 분별(구별)한다는 것은 혼돈을 물리치는 일이다. 그것은 “전부”에 대한 거부다. “총체성”이란 혼돈의 근원이다. 명명하면서 사람은 또한 그와 동물들 사이의 거리(차이)를 표하는 것이다.
20절 동물과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들 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지 못한다(20b): “사람을 위해서 원조자(협조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명명할 임무가 주어진다. 하느님이 결핍을 확인한다: 사람은 그의 원조자이며 그에 걸맞은(그의 앞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동물들의 형성은 인간의 “총체적” 상태와 그의 남자와 여자로의 분리 사이에 있다. 바로 여기에 여자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c - 두 번째 해결책: 여자의 창조 (21절, 여러 단계의 작업이 필요)
여자가 있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1. 사람에게서 일부를 제거 또는 추출해내기.
2. 이 “부분”을 바탕으로 해서 여자를 제작하는 것.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가 없다.
갈빗대 하나를 빼내는 것은 인간이 더 이상 하나의 “전체” 또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갈빗대는 “뼈”를 의미할 수 있다. 좀 더 뒤에 가서 “내 뼈 중의 뼈”라고 아담이 외친다. 혹은 건축 용어인 “측면”을 의미하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번역이다.
여자는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 진다. 만들기가 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다: 혼수상태, 갈빗대 하나를 추출, 살로 메우기(살로 봉함). 1, 27과는 달리, 텍스트는 여자 창조에 대해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혼수상태란 의식의 상실이다. 이 혼수상태는 하느님이 개입하시는 성서의 중요한 장면 속에서 다시 볼 수 있다: cf. 아브라함. 하느님의 작용이 있는 동안에 사람은 어떤 의식도 없다. 만약 사람이 의식 상태에 있었다면 갈빗대의 추출은 하나의 박탈이었을 것이다.
한 타자(他者)가 존재하기 위해 한 “부분”이 감해진다 (제거된다). 하나의 제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근원이었던 자와 공통적인 어떤 것이 있다. 살의 봉합은 과거에로의 복귀가 불가능함을 나타낸다.
결국, 양성 신화와는 반대로, 빼낸(제거된) 부분이 여자가 아니다.
d. 23절 - 사람의 詩
여자의 질료가 된 떼어진 일부분의 살은 상처난 인간을 초래한다.
황홀경의 시적 외침: 처음으로 인간이 복잡한 문장을 발설한다. 그는 여인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말도 “너”라는 말도 문장 속엔 없다: “이번에야 말로...이는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이는 여자라...”. 他子로 인해 새로운 무엇, 전대미문의 무엇인가가 그에게 일어났다. 저절로 마디마디 튀어나오는 말. 그 것은 인정을 받을만한 타자의 출현이다. 그는 그에게서 떼 내어져 나갔던 것에 대해 의식한다: “내 뼈에서 나온 뼈”, “살에서 나온 살”.
여기에 이타성에 대한 찬양이 있다. 인간은, 그가 타자로 인정하는 한 타자에 의해서 만 실현된다. 여자는 하나의 보충적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것은 앞에서 표명된 나쁜 충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타자를 고려에 넣어야 한다.
게다가, 그것이 성별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타자의 성을 발견하는 어린이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한 차이에 대해 인정하는 방식으로서의 성의 구별이다.
24절 혼인법: 생식적 관계 보다 더 강한 관계와 욕망.
첫 상태에서 혼자로써 “전부”이던 것과는 다른 온전한 단일성 곧 온전한 일치. 사랑의 발명이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의 살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분리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부부의 결합은 이타성의 결과다. 사랑의 욕망은 부모에 대한 애착보다 더 강하다. 그 것은 삶의 조건이다: 가정 그자체가 하나의 “전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한 가정의 내부에서 떼어내는 것. 과거에로의 어떤 복귀도 없다. 다만 모든 것이 미래로만 향한다.
25절 남자와 여자가 수치심 없이 알몸으로 살았다. 그들은 서로 감추어야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시선을 고정시킴으로써, 주의와 욕망을 독점할 몸의 일부를 착취하는 일 없이, 서로간의 조화롭고 투명한 관계의 표지인 것이다. 의복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부분적인 것들을 감춘다. 이쉬와 잇샤는 세분된 시선을 갖고 있지 않다. 타자는 떼어져 나간 하나의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 고려된다.
첫댓글 창세기 강의 요약 전문은 < 장 들로르므 성경 읽기 > 의 "창세기"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수고를 덜하게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