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은 역사적 민주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아시안 게임이 열린 다음 해였고, 또한 민주적 발걸음도
매우 충만한 시기였다. 부대 내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86년
부터 그러한 사회적인 무드?는 올라 있었다.
그때 부대에서 임무를 복창할 때, 우리는 '육군중앙기동예비대'
라고 했다. 명칭은 거창했지만, 쉽게 말하면 너희들은 시국에
따라서 출동할 수 있는 기동 공수부대다...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도 수도 없이 검열이 내려오고 비상 걸리고 하사로써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나마 86년이 지나면서 나는 하사로써
위상이 조금 높아졌다. 16기들이 들어왔고, 일부 17기 초반
차수들이 86년도 말에 들어왔다. 17기 1차는 가을에 들어왔다.
하여간 해가 바뀌자 계획된 전술종합이 내려왔다. '아 씨바
또 한 달간 뺑뺑이 돌겠구만....내무반 보다는 낫다...히히'
그런데 전술종합 브리핑을 받는데 영용하신 짱돌 중대장님이
브리핑 작대기를 잡으셨다. 이분은 공적인 브리핑에서도
가끔 야자타임 처럼 말이 흐르는 경향신문이 있다.
"지역대원 여러분, 이번 전술종합은............골때립니다.
자 지도를 보세요. 우리는 먼저 양평으로 가서, 물론....
걸어가서....히히. 양평시내에 대한 1-2차 타격작전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나서 유명산에서 고등유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광주 무갑산으로 이동합니다. 거기서 최종
마무리 대대 전체 타격작전을 합니다. 그리고 3일간 생존을
하고, 2일 정도 정비를 한 후에 천리행군으로 자대 복귀
합니다. 여기서.......흠. 좀 이상한 거시 보이지요? 아니
경기도 일원에서 인천까지 어떻게 천리행군을 하느냐...
이렇습니다. 13지역대 여러분....빙빙 돕니다....그냥 서울을
중심으로 빙빙 돕니다....높은 산 없어서 좋잖아! 걍 빙빙
돌다보면 부천이 나타납니다.....지루한 훈련이 되겠어효!!!"
그렇게 시작된, 내 기억으로는 1987년 2-3월의 전술종합....
니미 전술종합을 우리 부대 막사에서 행군으로 출발한
것은 사상 처음이지 마지막이었나보다. 그렇게 3일간
전술종합 초기 군장 졸라 무거운 거슬 지고 180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서 양평에 도달했다.
당시 내 군대생활의 두번째 지역대장은 9공수 소위시절
부터 버틴 양반으로, 지역대장 뭐 있어?....하고 모르는
하쎄이들이 툴툴 대다가 사격장에서 지역대장에 대한
영점을 잡았다. '어, 지휘관 맞네!'
한 하사가 총을 쏘는데 정말 안맞았다. 졸라 맞고 올라와서
또 쏘는데 자꾸 미쓰빵. 그런데 이 하사가 얻어맞은 것이
억울한지, 밤의 행사를 염두에도 두지 않고 이빨을 날릴
것이다. "지역대장님, 제 총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저 새끼가 뒤질라고 환장했나. 오늘밤 살짜기 옵써예구낫!'
그러자 지역대장이 "총 줘 봐." 그러더니 선 채로 총을
이리저리 보더니, 소리친다. "야, 200미터 사로 올려봐!"
그래서 타켓이 올라오자 3초나 됐을까. 빵~~!! 한 발을
쐈다. 그리고 맞아서 넘어가는 타켓.....서서쏴로....
"총 이상 없네....죽을래?"
'오 저분이 우리의 지휘관 지옥대장님이시구낫!'
'9공수 쏘가리 출신 구라빨 아니구나.....!'
'오 씨바, 설래발치다가 좆되는 수가 있어!'
'씨바, 오리지날 공수부대 무궁화다!'
(그 하사는 그날밤 요람을 흔드는 손가락을 느낀다)
그런데 이 지역대장님 진짜 과묵하시고, 억지명령 안내리시고,
병사들에게도 인상 한번 안 쓰시는 분이, 이 전술종합 초기행군
에서 끙끙 대셨다. 2일차인가에 불침번으로 지역대장 텐트
옆에서 불침번을 섰는데 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일어나시는 용안을 뵈니, 무임금 6개월 노동한 연변
노동자와 같은 힘든 표정으로 텐트 앞에 동공이 열린채
허탈하게 이재민처럼 앉아 계신다. "어 공수부대.....허."
이럴때 우리의 농담: '그래도 권총만 달랑차고 행군하지않어?'
이럴 때면 공수부대 장교
소령 계급장이 불쌍하게만 느껴진다.
출발 때가 되면 그도 묵묵히 릭샥을 꾸리고
군화끈을 조인다....
그런데 우리는 나중에 알았다. 지역대장의 릭샥이 그리 부풀어
보이지는 않지만, 당시 시국 때문에 따로? 혼자 지고가야 하는
물품이 릭샥에 좀 있었다는 것. 당시는 우리 팀장은 대대로
내려가고 부중대장이 팀장대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경계용 실탄을 팀장이 릭샥에 휴대했는데, 우리가 보는
군용 넥타박스 만한 철제 탄약통을 통으로 짊어지고 다녔다.
물론 그 안에는 실탄과 공포탄(훈련용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닌)
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래서
"중댐, 릭샥도 홀쭉하니 부식 좀 받으십쇼." 하면,
"에이, 내 경계용 실탄이랑 바뀌 질래?" 하는 답변.
시국이 불안해지면 우리는 경기도 부근 야전에서 바로 이 실탄
으로 무장하고 서울시대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정치군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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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3일간 좆빠지게 걷고, 한 3-4일간 정찰과 타격작전을
그 높은 00산을 넘어다니면서 하고, 다시 일주일간 바위에
매달려서 고등유격하고, 다시 행군으로 이동해서 2차 타격
작전하고,
정말 생존을 위한 생존을 하고 (이때 생존을 위한 민가 전빵
습격작전은 정말 엄숙하고도 각종 특수전 전술이 행해졌다.
민가와 산 아래를 지키는 대대계원들 감시병을 따돌리고
우리는 라면 한 봉을 얻기 위하여 얼어붙은 논바닥과 땅을
박박 기었다. 생존훈련은 별거 없다. 일정 구역에 가둬놓고
식량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힘이 빠지자 칡, 각종 나무 뿌리,
심지어 물가의 올챙이까지 먹었다. 나중에 생존 기간 끝나고
밥지어서 한술 떠 넣자, 정말 눈깔이 앞으로 쑤욱 나왔다..
배가 고파서 양지녘에 고요히 기대어 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한번 길게 써 보겠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복귀행군, 천리행군이 남았다.
그러나 당시를 기억해보면 정확히 천리는 안 되는 거리였다.
사령부는 불안한 시국에 훈련부대들이 빨리 복귀하여 자대에
존재하고 싶어 했나보다...그래서 천리행군이지만 약 300킬로
정도의 복귀행군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높은 산도 없고 하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에
그만그만한 산들을 자주 넘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문제는 행군로가
지그재그로 시간을 끌면서 거리를 채우는 형식이었다. 그러니 지치기는
두배로 지치고, 중사들도 아예 지도도 안본다. "씨바, 이렇게 지루한
행군은 처음이다. 천리행군은 도를 넘을 때 이정표 보면서 짜릿이라도
하지...이건 뭐. 재미도 없고, 반전도 없고, 김치수급작전도 잘 안되고,
지나간 자리 가까운데 또 지나가고....."
그렇게 지그재그로 가다보면 지그재그 끝자리에 보통 작전장교가
기다리고 있다가 지역대장과 눈도장 찍고 사라진다. 그렇게 3일
정도가 지나자 정말 지쳤다. 거기다 날씨는 낮에는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하고, 밤에는 춥다. 땀이 펄펄 나다가 해가 지면 오솔오솔 떨렸다.
그리고 3일차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봄비...나를 울려주는 봄비....
마구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끊이지 않는 폭우였다. 판초나 간부야상을 뒤집어
써도 이미 모두가 홀딱 젖었다. 오직 젖지 않은 것은 내
가슴에 있던 비닐로 싼 음어 암호낭 뿐......
지역대가 피난민처럼 힘겹게 늘어지면서 걷기 시작했다.
폭우는 끝없이 내리고 행군 중에 10분간 휴식을 해도 땅이
진흙탕이 되어 아무도 앉는 사람이 없다. 그냥 군장만 벗고
서서 서성인다. 가끔 머리를 파묻고 쭈그리는 졸병들이 있을
뿐.....장대비는 쏟아지고.....주변은 빗소리 외에 고요하고....
이러한 행태의 훈련에 모두가 앙탈이 날 때로 나 있었다.
그러자 지역대장이 간부를 소집해서 쏙닥거리기 시작했다.
"지역대 전체 모여!!!"
원래 수염이 많아서 산적처럼 된 지역대장이 우리를 모아놓고
입을 연다. 인상은 스님과 같은 상태다. 우리 지역대장도 여단에
있다가 와서 한 오랫만에 행군에서였는지 매우 힘겨운 기색이
역역하다.
"지역대원 들어라. 이게 참 힘든 상황이다. 앉아서 쉴 수도 없고,
민간에 들어가지 마라는 엄명이고, 비는 계속 내리고, 어때?
내가 제안한다. 우리 그냥 밥 먹을 때 빼고 그냥 휴식 없이
그냥 빼자. 그냥 빨리 오늘 목적지 바람고개까지 빨리 가자.
시간도 늘어지고....."
그러자 지역대원들이 말을 이었다.
"빼시죠. 지겹습니다. 그냥 기래이로 고 하죠."
"시간 맞춰가느니 그냥 휴식 없이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빨리 가서 오래 쉬죠..."
"아싸 가오리...."
모두가 악에 받쳐서 가자 가자 소리를 쳤다.
인사계 : 비 맞으니 새끼들이 다 미쳤나....
(당시 복귀행군은 4박5일로, 5일차 아침에
여단으로 들어가는 형식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자 지역대장이 힘을 받았다.
"그럼, 씨바, 졸라 쉬지 말고 빼자."
지역대원들이 호응을 했다.
"통신병, 지금부터 대대본부(작전참모) 송신
받지마. 개무시하고 그냥 전진한다....."
그리하여 약 10시간 이상의 무휴식행군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지역대장이 결심을 내린
것은 새벽이었다. 사실은 우리가 몇 시간 더
걸은 뒤에 은거지 잡고 5-6시간 정도를 자야
한다. 그러나 그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또
A텐트 치고 자고 불침번 서고 일어나고 준비하고
출발하고를 생략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4-5시간을 빼자, 무전기에서 난리가 났다.
"13골프 등장하라. 어디 있나? 전망대기 전망대기.
13골프. 13골프. 여기는 브라로. 응답하라. 13골프."
통신병 '좆까 씨바. 우리는 뺀다...'
중간에 한번 밥을 해먹었다. 비가 얼마나 쏟아지는지
군대생활을 2년간 나로써도 너무나도 힘들고, 어깨는
뽀개질 것 같고, 군화에는 진흙덩이리에 길은 진창이고
거기다가 불을 피울려니 지랄 같았다. 불알도 오그라든
것 같았다. 난 당시 바지도 찢어져 있었다.
그런데 회심의 미소.
폭파주특기들이 잔유 폭약을 몽땅 내놓았다.
주류가 C4와 TNT다. 이것의 화력은 안 해 본 사람은 모르리라.
확실한 화력으로 비가 와도 거의 꺼지지 않고 완전연소된다.
지역대원들이 화목을 모아다가 끌어모았다. 우리으 히틀러
싸계님이 소리친다.
"야! 화목 가운데로 길게 모으고 폭약으로 한꺼번에 싸질러.
각 팀 반합에 쌀 씻지 말고 그냥 물만 부어서 작대기로 한번에
걸어. 국거리도 없고 국 만들지 마. 시간 걸려. 만들어봤자 씨바
시래기꺼리도 없고....확 싸질러서 한번에 확 해먹고 가자!!!
팀 구분 없이 2인 1조로 반합걸어서 취사....빨리 먹자...."
우중에 잘도 싸질러지는 폭약에 감사하고,
폭파 주특기에 남모를 애정도 생기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대로 판초로 좀 막아보겠다고
발광을 떨고 불이 확 싸질러지자 후끈거리면서 기분도
좋아졌다. 그리고 약 20분만에 질퍽한 진흙탕에 판초
안에 모여서 쪼그리고 앉아 얼마 안되는 밑반찬에
아침 겸 점심 겸 혹시 모를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반합, 물에 대충 헹구고 다시 출발....
우리는 매산리 뒷산을 넘었다. 처음에는 나도 잘 몰랐다.
어느 좀 높은 산 하나 넘어서 가는데 앞에서 누가 환성을
지른다. 16기 놈들이다. 왜냐하면 16기부터 매산리에서
훈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비는 철철 내리는 가운데
능선을 속보로 내려왔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씨발놈들 훈련 안 하냐~~~~~~~~~!!"
"내무반서 좆 잡고 정비하냐~~~!!"
"기구 띄워~~~~~!! 구경 좀 하자!!!"
허허벌판이 보이고 십자로가 보이고 제임스본드의 항공기
모형이 보였다. 벌판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미새끼 하나
없었다. 높은 산을 넘어 거의 뛰다시피 반 속보로 내려가는
기분 졸라 최고였다.
계속 무전이 날아왔다.
"야이, 씨바 13골프. 나 브라보 쓰린데, 니들 진짜 무전
안 받을 꺼야? 뒤질래? 어이 13골프. 13골프....."
비가오는 가운데 비닐로 싼 P-77에서 들리는 외계통신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지역대 본부 팀의 대대망을 잡은 통신병이
나에게 불안하게 묻는다.
"조하사님, 이러다가 복귀해서 우리 통신만 졸라 깨지는
거 아임까? 불안해 주겠씀다. 수 십번도 더 호출했슴다."
"좆까. 씹어!"
걱정은 좀 되었다. 바람고개에서 대대장한테 우리
지역대장 이단옆차기 되는 거 아닌가....하고...
행군은 계속 되었다. 보통 행군을 하면 10분간 휴식 소리를
기다린다. 그것은 천사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이미 포기한
상태로 빼다보니 그냥 앞 새끼만 따라서 가면 된다. 발바닥도
워밍없이 되면 안아프지만, 휴식하고 일어설 때 지랄을 한다.
그냥 고다. 고다. 씨바. 어쨌거~~나 저쨌거~~나....부대와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고 마지막 행군이니까....
매산리를 통과하여 정기강하때 복귀 행군하는 길로 들어서니
지도도 필요 없다. 알아서들 길로 간다. 매산리에서는 처음에
고속도로를 만나는 것이 1차 목표다. 내 기억에 한 20킬로 미터
정도 된다. 그 다음에는 길이 여러개다. 수원으로 가는 길과
안양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안양쪽은 민가가 많아서 보통
안 다닌다....그러나 젹댐은...
"안양으로 꺽어!"
(그 길이 살짝 거리를 단축한다)
그때 이미 무전기의 작전과장은 열이 받고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열을 받을 것도 없이, 이 지역대
인원이 이 복잡한 수도권 도로에서 원더우먼을
하겠는가 어쩌겠는가......
"13골프. 니들 정말 죽을래? 응신 안해?"
우리는 안양으로 가는 한 골짜기에 들어섰다. 이미 주변에는
이러저러한 도로들이 많이 보였다. 지금도 거기가 어디였는지
모른다. 8-9시간을 그렇게 휴식 없이 행군했다.
드디어
무전기에
브라보장이 등장했다.
"어이 13골프. 나 브라보 그 자체인데, 니들 어디야?"
지역대장은 고심했다. 아이 이거 졸라 깨지는 거
아냐? 그래도 이건 안 받으면 안 되겠다...
"당소. 13골프 이상!"
"얼싸? 젹대장 너 어디 있나?"
"바둑판으로 날리겠슴다. 이상."
"알았다. 브라보 쓰리 바꾼다. 이상."
그렇게 작전참모에게 지역대장은 좌표를
음어화해서 날렸다. 그러자...
"아니, 도대체 어떻게 거기 있을 수 있습니까? 완료."
"낸들 아나? 오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완료."
"여기는 오늘 밤중에 통과해야 할 곳임다. 완료."
"아니 씨바 그럼 온 거를 돌아가? 완료."
"그럼 거기서 일단 휴식하십쇼. 완료"
"아니, 그냥 우리는 바람고개까지 뺀다. 완료"
"이러지 마십쇼. 이상"
"아니 우리가 원더우먼 한 것도 아니고..이상."
그렇게 교신을 한 후에 한 시간 정도를 더
걷고 있는데 군용 짚차 한 대가 나타났다.
작전참모였다.
다짜고짜 지역대장에게 달려간다.
"여기서 이러시면 어떻합니까?"
"어떻하다니 걷는 거 안보여?"
"지금 여기 있으시면 안되잔습니까?"
"이 정도 시간에 이딴 행군거리를 딴
니가 잘못이지. 내가 근무한 공수부대
사상 이렇게 느리게 설정한 행군거리
시간은 처음이다. 거기다 다 민가 붙어
있고 은거지 정하면 신고들어갈 건데.
수도권에서 은거지 잡을려면 행군하다
도로 산에 들어가서 잡아야 돼. 우리는
그냥 안 쉬고 걸은 거야...안다스탠?
누군 지금 뭐 편해서 빼고 있냐? "
"아니 사령부에서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라는 것을 저는 어떻합니까?"
작전참모가 한 숨을 내쉬더니 대대장에게
무전기를 든다. 그리고 잠시후 짚차에서
교신을 하더니 돌아온다....
지역대원들은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설마 빽도 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안 쉬고 걷는 것도 전투력이지...
대대장은 우리를 이해했다.
"13골프는 하던대로 이동해서 바람고개
은거지 정찰하고 자리 잡으랍니다."
"브라보장 화이팅~~~~~~!!"
우리는 그날 사심 없이 그냥 걷고 또 걸었다.
비는 끊임 없이 내렸고 모든 것이 젖었다.
그렇게 되자 비도 무서워지지 않게 되었다.
우중에 판초를 써도 덥고 끈적하고 땀이
난다. 우리는 모두 판초를 벗었고 간부우의도
벗었다.
대대장이 그냥 가라는 말에 기분도 좋아졌고,
우중에 우리는 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사가는,
단 한 구절도 여기에 적을 수 없다.)
누가 보면 어떤 길고 긴 거지떼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있는 광경을 보리라...
하루만 지나면 이제 따스한 막사로 들어간다.
한달 간의 지겨운 땅내음과 풀, 새소리, 바람
소리. 불 피우고, 반합밥 해먹기, 밤에 맨날
가출한 놈마냥 싸돌아다니기 로부터 해방이다...
그런데 다시 이런 것이 그리워지며 어쩌지...?!!
막사에서는 야전이 그립고....
야전에서는 막사가 그립다....
솔로이면 구관이 그립고.....
막상 사귈 때는 지겹다.....
군대에 道 가 있나니....
1986-7년 쯤의 잇빨하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