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821호(종묘 영녕전)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
▲ 종묘 영녕전 |
종묘는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종묘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종묘의 정전과 영정전 및 주변 환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묘제례와 음악·춤의 원형이 잘 계승되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종묘 어정(서울 유형문화재 56호) |
|
|
▲ 종묘 입구에 위치한 어정과 귀부 |
유일하게 서울 4대문 안에 보존되어 있는 우물로, 조선 역대 왕들이 종묘 왕래시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하여 ‘어정(御井)’이라 부른다. 우물의 형태는 둥글고, 깊이는 약 8m에 지름은 1.5m로, 우물 속은 온통 돌벽으로 쌓여 있다. 우물 윗부분은 원래 사각의 긴 돌을 井자 모양으로 짠 후, 그 위를 그 모양새에 따라 돌로 쌓아 올린 형태였던 것을, 일제 시대 때 콘크리트를 발라 그 모양이 바뀌었고, 1985년 보수하면서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석재를 쌓는 방법과 석재가 닳은 상태로 보아 조선 전기에 만든 우물로 추정된다. |
종묘 정문(외대문) |
|
|
▲ 종묘 정문 입구에 위치한 하마비 |
▲ 종묘 정문 모습 |
종묘의 정문은 남쪽에 사묘(祠廟)의 표문(表門)답게 정면 세 칸의 평삼문(平三門)으로 되었고, 정문 좌우로는 종묘외곽을 두르는 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정문 안 서쪽으로는 본래 종묘를 지키는 수복방이 있었다. 정문은 원래 전면 중앙에 난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 도로를 조성하면서 도로 면이 높아지게 되어 땅에 묻히고 지금은 단벌의 장대석 기단만 있다.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정문은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검박하고 단순하다. 정문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된 어정(御井)이 있다. |
종묘대제 어가 행렬은... |
|
|
▲ 종묘로 진입하는 어가 행렬 모습 |
어가 행렬은 출궁하는 날 임금을 모시는 신하들과 호위관원들로 구성된 출궁행렬이 정렬하면, 임금은 명정전 밖에 서 있는 연에 오르고 연 뒤로는 일산과 부채를 든 시위와 신하들이 함께 하며 그 뒤에는 호위부대인 현무대가 따른다. 종묘정문까지는 연으로 행차하시나 종묘 정문 앞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 여로 바꾸어 타고 재궁으로 행차하신다. |
|
|
종묘 제례는 왕조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하며 조선 왕조가 지내는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 대제(宗廟 大祭)'라 불린다. 본래 연 5회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만 봉행하고 있다. 어가 행렬 재현은 덕수궁을 출발하여 태평로-세종로 4거리-종묘로 이어진다. |
|
|
공민왕 신당 |
|
|
▲ 종묘에 들어서면 우측에 위치한 공민왕 신당 |
공민왕 신당은 망묘루 동쪽에 있는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
망묘루와 향대청 |
|
|
▲ 망묘루 |
▲ 향대청 |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지당(池塘)이 있고, 그 동쪽으로 망묘루, 공민왕 신당, 향대청 일곽이 있다. 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는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
재궁(어숙실) |
|
|
▲ 재궁 전경 |
정전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은 어숙실이라고도 하며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고, 서쪽에는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이 있다. |
정전 우측으로 들어서면... |
|
|
▲ 정전 동편으로 들어서면 전사청이 보입니다. |
전사청 |
|
|
▲ 전사청 전경 |
전사청(典祀廳)은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 |
제정 |
|
|
▲ 전사청 우측에 위치한 제정 모습 |
제정은 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을 말하는데 정전 전사청(典祀廳)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찬게 특이하다고 한다. 네면을 담장으로 둘렀고, 남쪽에 팔작지붕의 일각문(一脚門)이 있다. |
정전 동문 입구에는... |
|
▲ 정전 동문 입구 모습(동문과 수복방이 있습니다) |
정전 수복방 |
|
|
▲ 정전 동문 우측에 위치한 수복방 |
정전 동문 북쪽에 위치한 수복방은 두벌 장대 기단위에 정면 4칸, 측면 단칸의 맞배집으로 수복들이 머무는 곳이다. |
|
|
▲ 정전 동문(왕과 제관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들어서면서 바라 본 모습과 안쪽에서 바라 본 모습 |
|
|
▲ 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
종묘 정전(국보 227호) |
|
▲ 남문에서 바라 본 정전 |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정전(正殿)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永寧殿)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태조 3년(1394)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정전과 영녕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8년 다시 지었고, 몇 차례의 보수를 통해 현재 19칸의 건물이 되었다. |
|
정전은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탁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
|
▲ 좌측에서 바라 본 정전 모습 |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1실에서부터 태조와 왕비, 태종과 왕비, 세종과 왕비, 세조와 왕비, 성종과 왕비, 중종과 왕비, 선조와 왕비, 인조와 왕비, 효종과 왕비, 현종과 왕비, 숙종과 왕비, 영조와 왕비, 정조와 왕비, 순조와 왕비, 문조와 왕비, 헌종과 왕비, 철종과 왕비, 고종황제와 황후, 순종황제와 황후의 신주가 각 칸 1실씩으로 하여 제19실에 이르기까지 모셔져 있다. |
|
▲ 우측에서 바라 본 정전 모습 |
이 건물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다. 종묘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한 제례 공간으로, 그 건축 양식은 최고의 격식을 갖춘다. |
|
▲ 서편에서 동편 방향으로 바라 본 정전 모습 |
홑처마에 지붕은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의 둥근 기둥이고, 정남쪽에 3칸의 정문이 있다. 종묘 정전은 선왕에게 제사지내는 최고의 격식과 검소함을 건축공간으로 구현한, 조선시대 건축가들의 뛰어난 공간창조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는 건물이다. |
공신당과 칠사당 |
|
|
▲ 공신당과 칠사당 모습 |
공신당은 조선 왕조 역대 83명의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동쪽에 있으며 창건 때는 3칸에 불과하였으나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 칠사당과 같은 구조 형식으로 매우 간소하게 되어 있는데 왕의 신실과 한 울타리 안에 있어서 일부러 그 형식을 낮추었다고 생각되며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 칠사당은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쪽의 서쪽에 있던 것으로 봄에 모시는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과 그밖에 중류의 7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쌓았다. |
종묘 제례악(중요 무형문화재 1호) |
|
▲ 종묘대제 행사 중, 정전에서 제례악을 연주하는 모습 |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종묘)에서 제사(종묘제례)를 지낼 때 무용과 노래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을 가리키며,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
|
종묘제례의식의 각 절차마다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의 종묘악장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무인 보태평지무(선왕들의 문덕을 칭송)와 무무인 정대업지무(선왕들의 무공을 찬양)가 곁들여진다. |
|
종묘제례악은 본래 세종 29년(1447) 궁중회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창작하였으며 세조 10년(1464) 제사에 적합하게 고친 후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는 종묘대제에서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이 연주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기악연주와 노래·춤이 어우러진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
|
|
종묘제례 및 제례악은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2008년부터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관리되고 있다. |
종묘 제례(중요 무형문화재 56호) |
|
▲ 종묘 제례를 지내는 모습 |
종묘 제례(宗廟 祭禮)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키며, ‘대제(大祭)’라고도 부른다.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국가존립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상징물로 정전(19실)과 영녕전(16실)이 있다. |
|
종묘 제례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뉘어, 정시제는 4계절의 첫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지냈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지냈으나, 해방 후부터는 5월 첫 일요일에 한번만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 있어서 모범인 의식만큼 순서와 절차는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
|
|
제례는 크게 신을 모셔와 즐겁게 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취위(就位) →영신(迎神) →행신나례(行晨裸禮) →진찬(進饌)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변豆) →망료(望僚)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되며, 종묘제례가 있기 전 왕은 4일간 근신하고 3일간 몸을 깨끗하게 한다. |
|
|
종묘 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유교 사회에 있어 예술의 기준이 된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
종묘 영녕전(보물 821호) |
|
▲ 영녕전 |
영녕전(永寧殿)은 종묘의 일부로 정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태실이 부족하므로 정전(正殿)에 대한 별묘(別廟)를 건립하여 태조의 4대조를 함께 옮겨 모시고, 그후로 정전에 계속 모시지 않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다. |
|
|
▲ 영녕전 입구 전경 |
현재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
|
그리고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
|
▲ 서편에서 동편 방향으로 바라 본 영녕전 모습 |
17세기 중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이 건물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목적에 맞도록 구조와 장식·색 등이 간결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
|
▲ 서편에서 동편 방향으로 바라 본 영녕전 모습 |
일부 구조에서는 옛 방식을 따라 입구에 널문을 달고 발을 쳤으며, 건물 안쪽 방 사이에는 담벽을 치지 않고 발을 늘여 나누어 놓았다. 신위를 모시는 집으로 옛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
|
▲ 동편에서 서편 방향으로 바라 본 영녕전 모습 |
악공청 |
|
|
▲ 정전 악공청(좌)과 영녕전 악공청(우) |
종묘 제례시에 주악하는 악사들이 대기도 하고 연습을 하기도 하는 건물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
종묘 현황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