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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와 사냥꾼 2
17.흡혈박쥐
흡혈박쥐는 칠흑 같은 어둠속을 무리 지어 소리 없이 날아다니면서 잠자는 동물들에게 살그머니 달라붙는다. 수십 마리가 달라붙으면 소도 죽고 사람도 죽었다.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소탕전에 나섰다.
그곳은 브라질과 페루의 접경지역 이었다. 아마존 강의 지류인 주루에나 강 유역에 울창한 원시림이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 등 도시에서 백인과 원주민들 사이에서 태어난 부지런한 혼혈족들이 그곳까지 들어와 현지원주민들과 함께 꽤 큰 방목을 했다. 그들은 대여섯 개쯤 되는 목장 단위로 수천 마리의 소들을 방목했다.
목장들은 잘 되어갔다. 축사나 울타리를 만들 필요도 없고 소들에게 사료를 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들은 마을과 강과 밀림 등에 둘러싸인 광대한 관목지대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들이 할 일이란 소들이 밀림지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일이었고 밀림지대에 서식하는 재규어나 퓨마 등 맹수들이 소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소들을 보호해주는 일이었다.
동물수집가인 리카드 가르토는 1928년 6월 그곳에서 가장 크게 방목을 하고 있는 친구 조나단의 초청을 받고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애인인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 마드리드도 함께 있었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그 날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조나단이 침실에 뛰어 들어왔다. 예의바른 그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소몰이가 죽었어. 그것도 세 명이 한꺼번에….”죽은 소몰이꾼들 중에는 그의 사촌동생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예삿일이 아니었다.“재규어의 소행인가?”
“모르겠어. 재규어나 퓨마가 한 짓은 아닌 것 같은데 범인을 모르겠어. 사람이 한 짓인지도 몰라.”네 명의 소몰이꾼들은 어젯밤 술을 마시고 야영을 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보니 세 사람이 전신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더라는 말이었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현장에 달려갔다. 시체들은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시체들은 창백한 얼굴들이었다. 잠을 자고 있는 자세로 숨져 있었으나 그 얼굴색이 이상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색이었다.
시체에서는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 사람의 몸에서 열서너 군데나 자그마한 상처가 있었고 거기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많은 피가 흘렀고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시체를 자세히 조사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체의 경직(硬直)상태로 봐서 소몰이꾼들은 죽은 지 세 시간 이상이 되는 것 같았는데 피는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피가 응고되지 않고 있어.” 마드리드의 말이었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피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진득진득해지다가 아주 굳어져 버리는데 그 시체의 피들은 굳어지지 않고 있었다.
“박쥐야. 범인들은 흡혈(吸血)박쥐들이야.”마드리드는 런던의 리치 동물원에서 흡혈박쥐를 사육하려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흡혈박쥐의 생태를 잘 알고 있었다. 흡혈박쥐의 침에는 피의 응고를 막는 용액제 (溶液劑)가 포함되어 있었다. 동물의 피에 그 침이 섞이면 피가 응고되지 않았다. 범인이 흡혈박쥐라는 말에 목장주인 조나단도 동의했다. 최근 소들이 시들시들 하다가 자꾸만 죽어갔는데 그 소들의 몸에서도 피가 흘러내리더라는 말이었다.
살아남은 소몰이꾼의 말도 마드리드의 판단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전날 밤 그들은 너무 많은 술을 마셨다는 말이었다. 자기는 몸이 불편해 술좌석에서 떠나 간이천막 안에서 잠을 잤으나 세 사람은 풀밭에서 그대로 잤다는 말이었다. 만취가 된 소몰이꾼들은 인사불성의 상태로 잠을 잤기 때문에 흡혈박쥐의 밥이 된 것 같았다. 흡혈박쥐는 주로 소나 돼지 등의 피를 빨아먹었으며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조나단은 인근 원주민 마을에서도 최근 원인 모르게 죽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흡혈박쥐의 소행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날 마드리드가 조사한 결과 최근 석 달 동안에 흡혈박쥐의 희생이 된 소들은 100여 마리가 되고 사람은 열서너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목장주들의 요청에 의해 흡혈박쥐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그들은 두 가지 방법을 쓰기로 했다.
우선 흡혈박쥐들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들을 찾아내 닥치는 대로 죽이기로 했고 될 수 있으면 그들이 숨어 있는 소굴을 찾아내 소탕하기로 했다. 다음에 할 일은 흡혈박쥐의 전문가를 초청하는 일이었다. 박쥐들을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흡혈박쥐를 멸종시킬 수 없었다. 마드리드는 자기의 지도교수인 영국 왕실박물관의 동물학자 키나린 박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키나린 박사는 러시아 태생의 여류학자였는데 익수목(翼手目) 동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마드리드는 그 자신도 흡혈박쥐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대학동창인 조안나 양과 만나게 되어 있는 약속을 취소하고 조앤너를 현지로 불렀다. 약제사인 조앤너도 흡혈박쥐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가르토도 목장주들과 현지 산림보안관들과 협조하여 흡혈박쥐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다. 목부(牧夫) 들과 원주민들에게 옥외에서 잠을 자지 말라고 경고하고 부득이 잠을 잘 때는 꼭 모닥불을 피워 그 옆에 잠자리를 만들도록 했다.
방목하고 있는 소들도 되도록 한군데로 집결시켜놓고 밤중에 순시(巡視)를 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그런 경고나 지시가 제대로 지켜질 것 같지 않았다. 그 광대한 지역에서 방목하고 있는 많은 소들을 매일 밤 한군데로 집결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런 소들을 보호하기 위해 순시를 한다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가르토와 목장주 조나단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밤에 직접 순시를 하기로 했다.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를 했는데도 마드리드도 따라 나섰다. 그 날 밤은 달도 없는 날이었다. 광대한 방목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덮여 있었다. 박쥐나 마귀들이 돌아다니기에 좋은 밤이었다.
순시대는 횃불도 들지 않았고 손전등도 켜지 않았다. 불빛을 보면 박쥐들이 도망 가버리기 때문이다. 순시대는 발짝 소리까지도 죽이면서 방목지를 돌아다녔다. 어미의 젖을 찾는 송아지들의 칭얼대는 소리와 게으른 소들의 하품소리들이 들리는 방향으로 더듬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아무 일도 없었다. 방목지는 평화스러웠다.“없는데…. 놈들이 없어.”조나단이 중얼거렸으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박쥐들은 태양 빛의 여영(餘映)이 완전히 사라지는 한밤중에 나오는 법이었다.
밤 12시가 지났을 무렵 방목지에는 뭔가 요기(妖氣)가 떠돌고 있었다. 뭔가가 느껴졌다. 어떤 냄새가 코에 느껴지고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박쥐들이야. 흡혈박쥐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마드리드가 속삭였다. 그런 것 같았다. 흡혈박쥐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피를 부르는 고함을 지르면서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으나 사람의 눈과 귀에는 그게 들리지 않았다.박쥐란 밤의 동물이었다. 밤은 그들의 무대였으며 흡혈박쥐는 그 무대에서만 설치는 악마였다.
야행성 동물이라는 것들이 있어 부엉이 등 밤새들과 고양이과와 개과의 동물들도 밤에 활동을 했으나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밤 동물이 아니었다. 부엉이나 재규어, 들개들은 밤에도 눈이 보였으나 그건 다른 동물들보다 좀 더 잘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어둠 속에 조금이라도 빛이 남아있어야만 그들의 눈이 보였다. 아주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그들의 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박쥐는 그런 어둠 속에서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박쥐는 음파를 발사하여 그 음파가 다른 물체에 반사해오는 것을 귀로 잡아내어 나는 방향을 정한다. “숨어요. 저 바위 뒤에 엎드려 숨어 있어요.” 박쥐들은 이미 사람들을 발견하고 설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바위 뒤에 납작 엎드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숨어 있어야만 박쥐들의 경계를 풀 수 있었다. 음파가 바위에 부딪쳐 사람들에게는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약 한 시간쯤 뒤에 방목지는 조용해졌다. 흡혈박쥐들의 춤이 그친 것 같았다.
그들은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먹이를 먹고 있었다. 소들의 피를 빨고 있었다. 흡혈박쥐는 동물의 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오직 피만을 마시면서 그들은 살아갔다. 마드리드는 리치 동물원에서 흡혈박쥐를 사육하려고 매일 밤 동물들의 피를 제공했었다. 피를 뽑아서 제공해도 소용없었다. 피가 이내 응고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토끼나 쥐 등이 제공되었다. 흡혈박쥐는 그들의 피를 빨았다.
밤에 토끼를 넣어주고 아침에 가보면 토끼는 피바다 속에서 죽어 있었다. 피를 몽땅 빨렸기 때문이다. 마드리드는 그래서 그 악마를 사육하는 일을 포기했다. 순시대원들은 바위 뒤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소들이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으나 마드리드는 그걸 들을 수 있었다. 악마가 피를 빨아먹는 소리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피를 핥아먹는 소리였다.
흡혈박쥐는 드라큘라처럼 동물의 목을 따 피를 빨아먹지 않는다. 흡혈박쥐는 목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피부면 어느 곳이든 피를 빨 수 있었다. 드라큘라보다 훨씬 유능한 흡혈귀였다. 흡혈박쥐는 드라큘라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먹이에게 덮쳐들지 않는다. 흡혈박쥐는 잠을 자고 있는 먹이에게 소리 없이 달라붙는다. 흡혈박쥐는 잠을 자고 있는 소나 사람의 숨소리를 조심스럽게 살펴가면서 끌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보드라운 피부를 조금씩 갉아낸다. 목덜미 귀밑 손발 어디든 노출된 피부면 좋다. 흡혈박쥐는 그런 피부의 껍질을 아주 엷게 벗겨낸다. 그래서 소나 사람은 고통을 받지 않고 계속 잠을 잔다.
흡혈박쥐는 먹이의 피부를 2㎜정도만 벗겨내면 거기에 침을 발라 섞는다. 2㎜정도가 벗겨진 피부에서는 피가 스며 나오는데 거기에 흡혈박쥐의 침이 섞이면 피는 주르르 흐르기 시작한다. 흡혈박쥐의 침은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는 용혈제(溶血劑)였기 때문에 그게 섞이면 피는 맑은 물처럼 묽어졌다. 그게 흡혈박쥐의 먹이였다. 흡혈박쥐는 주르르 흘러내리는 피를 핥아먹었다. 혀의 양측을 바깥쪽으로 말아 관(管)처럼 만든 다음 그걸 상처에 대고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먹는다.
피가 잘 흘러내리지 않으면 혀로 상처를 핥아 용혈제를 섞은 다음 다시 피를 빨아먹는다. 동물원에서 흡혈박쥐를 사육한 경험이 있던 마드리드는 흡혈박쥐가 상처를 핥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찍찍하는 소리였다. 흡혈박쥐는 피를 빨아먹는데 정신이 팔려 사람들이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찍찍하는 소리가 나는 곳 바로 앞까지 기어갔다. 조나단이 갑자기 손전등을 켰다. 20m 앞까지 보이는 강력한 손전등이었다.
손전등의 불이 켜지는 순간 가르토는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전등 불빛에는 커다란 암소 한 마리가 비춰졌는데 그 소의 전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목덜미 귀밑 옆구리 엉덩이 등 열 군데가 넘는 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핏속에 까만 물체가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흡혈박쥐들이었다. 동물수집가인 가르토는 여하한 동물을 봐도 놀라지 않는 사냥꾼이었으나 그 흡혈박쥐를 봤을 때는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건 동물이 아니라 악마였다.
그놈의 눈은 빨간빛을 내고 있었고 콧등에는 나뭇잎처럼 너풀거리는 괴상한 혹이 있었다. 길 다란 혀는 피가 흐르고 있는 상처를 게걸스럽게 핥고 있었고 피가 한 모금씩 들어갈 때마다 배가 불룩거리고 있었다. 박쥐라는 동물은 모두 기괴하게 생긴 동물이었으나 그 중에서도 흡혈박쥐는 가장 추악하게 생긴 흉물이었다. 소의 몸에 착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던 박쥐들은 강한 빛을 받자 꿈틀거렸다. 그들은 드라큘라처럼 빛을 두려워했다. 박쥐들은 얼른 도망가려고 했으나 잘 날지 못했다. 워낙 많은 피를 빨아먹었기 때문에 배가 너무 불렀다.
어떤 박쥐는 공중에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박쥐는 날아오르려고 필사적으로 퍼드덕거렸으나 그저 기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박쥐들은 아예 나는 것을 포기하고 풀밭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빨아먹은 피가 소화되어 몸무게가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피에 굶주린 그놈들은 제 분수를 모르고 너무 많은 욕심을 내다 그 꼴이 되었다. 박쥐는 새 종류가 아니었기에 나르는 재주에는 한계가 있었다.
박쥐의 날개는 엄밀하게 말하면 날개가 아니다. 학자들은 그걸 익수(翼手)라고 한다. 박쥐는 진화과정에서 손가락 뼈가 아주 길게 뻗어 그 사이에 비막(飛膜)이 생겨 그게 날개 구실을 하고 있었다. 놈들은 그래서 포유류 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행을 할 수 있었으나 그 재주에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조나단이 달려가 발로 그 박쥐들을 밟았다. 박쥐의 아가리와 항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뿌려졌다. 얼마나 많은 피를 빨아먹었던지 피가 조나단의 얼굴에까지 튀었다.
흡혈박쥐는 몸길이가 10Cm정도밖에 안 되는 동물이었으나 몸 전체가 공처럼 부풀어 오를 정도로 피를 빨았으며 수십 마리가 달라붙으면 소도 치명상을 입었다. 박쥐들이 도망간 후에 소들이 잠에서 깨어났으나 그들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일어나려고 하다가 힘없이 주저앉아버리기도 했다. 여섯 마리의 소들이 위험했다. 박쥐들이 도망간 후에도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소들은 모두 살아났다. 가르토 등이 박쥐들을 일찌감치 쫓아버렸기 때문에 소들은 빈혈에서 오는 죽음은 면했다.
악몽과 같은 밤이 지나가자 가르토와 조나단은 긴급대책을 세웠다. 흡혈박쥐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그 박쥐들은 어디서 날아오는 것일까. 그들의 소굴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쥐들은 낮에는 깊은 동굴이나 큰 나무의 공동(空洞) 등에서 잠을 자는 범인데 그곳을 찾아내야만 했다. 조나단을 비롯한 목장주들도 단결하여 원주민들에게 호소했다. 흡혈박쥐들이 숨어 있는 동굴을 찾아내는데 협조해달라는 호소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곳을 몰랐다.
흡혈박쥐가 숨어있는 동굴이 있다는 제보들이 있기는 했으나 찾아 가보니 흡혈박쥐가 아니었다. 그 박쥐들은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박쥐들이었으므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로운 동물들이었다. 그 박쥐들은 몸길이가 20Cm나 되는 큰 박쥐들이었는데 원주민들은 그들을 마구 사냥했다. 고기가 맛이 있었던 것이다. 원주민들은 그들이 흡혈박쥐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흡혈박쥐라고 우기면서 총으로 소탕해달라고 말했다. 고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물론 가르토는 그 요청을 거부하고 그런 이로운 박쥐는 죽여서는 안 된다고 원주민들을 설득시켰다. 흡혈박쥐의 소굴을 찾아내는 일을 계속하면서도 가르토는 매일 밤 흡혈박쥐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미끼로 쓰는 소에게 일부러 상처를 내 피 냄새가 나도록 만든 다음 이를 맡고 몰려드는 박쥐를 죽였다. 가르토는 그러기 위해서 산탄총을 사용했다. 산탄총은 여러 개의 탄환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총탄이었으므로 어둠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하룻밤에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총에 맞아죽었다. 그리고 연달아 울려 퍼지는 총소리도 박쥐들을 쫓는데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흡혈박쥐들에 의한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피해가 생겼다. 박쥐들은 가르토가 지키고 있는 소들을 습격하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덮쳤다. 가르토는 원주민들에게 옥외에서 잠을 자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으며 적도 하에서 사는 그들에게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집안에서만 자라고 하는 요구부터가 무리였다. 그래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희생자가 생겼다.
한두 마리의 흡혈박쥐에게 피를 빨리는 경우는 생명에는 직접적인 위험이 없었으나 서너 마리가 되면 위험했고 열 마리가 넘으면 치명적이었다.
가르토는 흡혈박쥐에게 피를 몽땅 빨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봤다. 하얗게 껍데기만 남은 시체였다. 희생은 옥외에서 자는 원주민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목장주 조나단의 부인은 그 날 밤 흡혈박쥐 사냥에 나간 남편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방문을 꼭 닫지 않았는데 그 문이 조금 열린 것 같았다. 부인은 잠결에 젖가슴에 어떤 감촉과 체온을 느꼈다. 뭔가 보드라운 생체(生體)가 밀착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인은 남편이 돌아와 입맞춤을 해주는 것으로 알았다. 그 감촉은 그만큼 감미로웠다. 부인은 그 날 밤 혼자 밤을 지내야 되는 무료감에 술을 좀 마셨기 때문에 남편이 편리하도록 자세만 고쳐주고 그대로 잠을 잤다. 그러나 그건 남편이 아니었다. 조나단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에 돌아왔다. 그는 부인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며시 부인 옆에 누웠다.
조나단은 그때 소리를 들었다. 찍찍하는 소리였으며 어린아이가 엄마 젖을 빨 때 들리는 소리였다. 조나단은 후다닥 일어나 불을 켰다. 부인은 옷을 벗은 채 팔다리를 벌리고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그 목과 하체에 무서운 악마가 찰싹 붙어 있었다. 악마가 붙어 있는 곳에서는 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이 새끼들이….” 조나단은 목에 붙어 있는 박쥐를 힘껏 잡아떼어 방바닥에 내던졌다. 그 사이에 하체에 붙어 있던 박쥐는 떨어졌으나 그 놈도 날아가지 못했다.
박쥐들은 너무 많은 피를 빨아먹었기 때문에 날아오르지를 못하고 방바닥에서 퍼드덕거리다가 조나단에게 밟혀 죽었다. 그 작은 몸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부인은 그때까지도 잠을 자고 있다가 남편이 몸을 뒤흔들자 겨우 눈을 떴다. 부인은 그러나 자기의 목과 하체에서 흐르고 있는 피와 방바닥에 핏덩이가 되어 죽어 있는 괴물을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나무나 놀라 까무러친 것이었다.
다행히 부인은 새벽에 의식을 회복했으나 그녀가 원기를 회복하는 데는 사흘이나 걸렸다. 그 일이 일어난 후부터 가르토는 소를 지키는 일을 중단하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녔으나 희생자는 계속 생기고 있었다. 가르토는 초조해졌고 사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마침 그때 원군(援軍)이 도착했다. 박쥐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키나린 박사가 아침에 먼저 도착했고 저녁때는 마드리드의 친구인 조앤너와 가르토의 친구인 오만이 함께 도착했다. 반갑고 믿음직스러운 원군이었다.
가르토는 키나린 박사와 조앤너가 올 것은 미리 알고 있었으나 오만이 조앤너와 함께 올 줄은 몰랐다. 오만은 브라질의 거물 실업가의 아들이었으며 모험을 좋아하는 사나이였다. 그는 낚시광이었고 사격의 명수이기도 했다. 조앤너는 낯을 붉히면서 실토를 했다. 그녀는 옛 애인인 오만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었으나 마드리드와 가르토가 흡혈박쥐와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는 말이었다.
키나린 박사는 마드리드와 조앤너의 대학 선배였고 가르토와 오만 조나단은 모두 고등학교 동창이었으며 가르토와 마드리드, 오만과 조앤너는 애인 사이였다. 그들 사이에 얘기의 꽃이 피었으나 결국 화제는 흡혈박쥐로 돌아갔다. 15년 동안이나 박쥐를 연구해온 키나린 박사는 역시 깊은 지식과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박사는 시골 초등학교의 여선생님처럼 부드러운 여인이었으나 박쥐를 연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박사는 그곳의 흡혈박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 페루에서 흡혈박쥐 소동이 벌어졌지요.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페루 정부는 대대적인 박쥐 소탕을 했습니다. 박쥐들의 소굴을 찾아내 수만 마리의 흡혈박쥐를 죽였습니다. " 그러나 페루에서 흡혈박쥐는 멸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흡혈박쥐는 끈질긴 생명력과 왕성한 번식력을 갖고 있는 동물이었다. 그들은 한 배에서 한두 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빈번하게 교미를 하고 출산을 하기 때문에 대단한 번식력을 갖고 있었다.
페루에 서식하던 흡혈박쥐들은 서남쪽으로 이동하여 거기서 번식했다. 페루와 브라질 국경지대에 있는 원시림이 그들의 소굴이었다.“여기서 바로 50Km쯤 떨어진 곳이지요.”박쥐는 먹이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먼 곳을 날아다녔다. 특히 흡혈박쥐는 몇 십Km를 예사로 날아다녔다.“됐습니다. 흡혈박쥐들이 숨어있는 소굴을 알았으니 이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가르토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자 키나린 박사가 반문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어떻게 보면 그 미소는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그야 소굴을 찾아내 몰살을 시켜버리지요.”“박쥐들의 소굴이 있는 원시림은 위험한 곳입니다. 페루정부의 관리들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군대를 앞세워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조나단도 그 말이 옳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재규어 퓨마 독사들이 우글거릴 뿐만 아니라 차이카족 들이 돌아다녔다. 차이카족 들은 원시림 안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하는 유랑수렵족 들이었는데 그들의 사냥감에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2년 전에 미국의 지질조사단은 그곳에 들어갔다가 아홉 명이 몰살당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흡혈박쥐의 소굴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대로 둘 수는 없지요.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입을 것입니다.”오만도 가르토의 말에 찬동했다. “나도 가겠어. 이제 곧 주르즈가 도착할 테니까 셋이서 한번 해보는 거야.” 주르즈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사나이들은 모두 미친 사람 같다고 키나린박사는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뜻을 담은 시선을 대학후배인 마드리드 양에게 보냈다. 그러나 마드리다나 조앤너는 긴장했다. 그 사나이들을 미친놈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마드리드나 조앤너는 그 사나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과 앞으로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는 주르즈라는 사나이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두려움을 모르는 사나이들이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악어와 뱀을 잡았고 수십 마리의 사자 범 등을 사로잡은 사나이들이었다. 키나린 박사는 후배 여자들의 표정을 읽었다. 미친 사나이들의 헛소리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키나린 박사는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리고 목장주들에게 말했다.
“흡혈박쥐를 잡는 데는 그물이 효과적입니다. 박쥐들은 음파를 발사하여 날으는 방향을 정하는데 아주 가늘고 튼튼한 명주실로 짠 그물은 그 음파를 받지 않습니다. 음파는 그물 눈 사이로 통과해버리지요.” 키나린 박사는 그 그물을 갖고 왔다. 세로가4m 가로가10m쯤 되는 그물이었다. 키나린 박사는 그날 밤에 흡혈박쥐가 모여들만한 곳에 그 그물들을 쳤다. 마을 어귀와 소들이 몰려있는 초원 등에 대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물을 쳤다.
키나린 박사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그물을 쳤다. 키나린 박사는 정말 세심하고 꼼꼼한 여자였다. 그녀는 박쥐들이 날아오는 방향과 주위에 있는 바위 나무 등을 모두 고려하여 그물을 칠 장소를 선정했고 그물을 칠 높이도 몇 번이나 고쳤다. 박쥐들은 날아올 때는 꽤 높은 공간에서 날았으나 돌아갈 때는 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아주 낮게 날아갔다. 그래서 박사는 거기에 맞추어 높이를 책정했다. 키나린 박사는 다음날 새벽에 벌써 그물을 쳐놓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물에는 박쥐들이 걸려 있었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그물 하나마다 대여섯 마리의 박쥐들이 걸려있었다. 박사는 모두 여섯 군데에 그물을 쳤는데 그 그물들에는 박쥐들이 고루 걸려 있었다. 수백 마리의 박쥐들은 먹이 장소로 정한 곳까지 함께 날아왔으나 거기서부터는 열 서너 마리 단위로 분산하여 각기 먹이를 덮친 것 같았다. 그래서 모두 서른 마리의 박쥐가 잡혔다. 가르토 등 사냥꾼들이 밤새 돌아다니면서 잡은 박쥐는 고작 열 마리 정도였으니까 아주 효과적인 박쥐 사냥이었다.
박사는 잡은 박쥐를 처분하는데도 빈틈이 없었다. 그녀는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 그물에 걸린 박쥐들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그녀는 잡힌 박쥐 중에서 두 마리는 그물에서 풀어 날려 보냈다. 그건 흡혈박쥐가 아니었다. 해충을 잡아먹는 그 박쥐들은 사람에게 이로운 박쥐였다. 박사는 그 나머지 흡혈박쥐들을 죽였으나 그것도 그냥 죽이지 않았다. 독이 든 주사기로 찔러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였다.
박사가 오고 난 후부터 흡혈박쥐의 피해는 약간 줄어들고 있었으나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하룻밤에 30여 마리를 잡아도 흡혈박쥐의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박쥐는 번식력이 강한 동물이었으므로 총이나 그물로는 근절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키나린 박사도 그 점은 시인했다. 키나린 박사가 도착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스페인에서 주르즈가 도착했다. 그는 사냥꾼이고 동물작가였으나 나쁜 버릇이 있었다.
그는 예쁜 여자만 보면 그대로 있지 않는 사나이였는데 그의 능숙한 유혹을 받으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나가 떨어졌다. 멋쟁이인데다 구변이 달콤했다. 주르즈는 도착하자마자 키나린 박사에게 뜻이 있는 각별한 인사를 하면서 접근했으나 키나린 박사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박사는 10년 전에 결혼했으나 이내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은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던 사람이었다. 키나린 박사는 그 후부터 남자 기피증에 걸려 재혼은 물론 연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쌀쌀맞게 주르즈를 물리쳤다. 가르토는 주르즈가 도착하자 흡혈박쥐 소탕계획을 세웠다. 언제나 그런 모험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세 사람이 주동이 되어 흡혈박쥐의 소굴을 찾아내기로 했다. 흡혈박쥐 소탕에는 목장주 조나단도 참가했고 원주민 사냥꾼 네 사람도 참가했다. 모두 여덟 명이었다. 인원수에는 부족이 없었으나 장비가 문제였다. 일행은 흡혈박쥐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간이천막들을 갖고 가기로 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장비를 갖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일행은 조미료 몇 가지만 준비하고 다른 식량은 갖고 가지 않기로 했다. 현지 조달을 할 계획이었다.그럭저럭 준비가 완료되어 일행은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마드리드와 조앤너가 갑자기 함께 가겠다고 나선 것이었다.“안 돼. 그곳은 사람이 들어가지 못 할 곳이야. 맹수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식인종들도 돌아다니고 있고 … .”
“그런데 남자들은 왜 가겠다는 거지 ? 남자들은 특수한 인간들이라는 말인가요? 우리도 자기 몸을 방어할 용기와 능력이 있어요.” 마드리드가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들었다. 결코 멋으로 차고 있는 장난감이 아니었으며 그걸 증명하기 위해 권총을 쏘아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사격대회에서 입선을 할 정도로 권총을 잘 쏘았다. 말싸움으로 출발이 한 시간이나 지연되었는데 결국 여자들이 승리했다. 그녀들은 용약 흡혈박쥐 토벌에 참가했다.
하지만 출발하려 했을 때 또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키나린 박사가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박사님은 안돼요. 흡혈박쥐의 소굴을 찾겠다는 우리를 미친놈이라고 말한 건 당신이 아닙니까?” 키나린 박사는 웃었다. 그곳에 와서 처음 보이는 웃음이었다. “미친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성한 나도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사실 흡혈박쥐들의 생태를 끝까지 규명하려는 그녀의 집념은 미친 사람들의 광기와 비슷했다.
그녀도 결국 흡혈박쥐 소탕부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키나린 박사는 그녀의 연구기구 등을 들어주려는 주르즈의 도움을 당호하게 거절하고 스스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갔다. 그녀뿐만 아니라 마드리드와 조앤너도 역시 남자들의 도움을 거부했다. 브라질과 페루의 국경지대는 사람들이 들어간 적이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지역이었다. 그곳도 열대다우림이었으나 보통 밀림과는 달랐다.
최근 아마도 10년 전후에는 그곳에는 큰불이 난 것 같았으며 그때 광대한 밀림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 잿더미에는 다시 나무와 잡풀들이 자라났으나 나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그 나무들을 칭칭 감고 있는 기생 등줄기 등이 자라났다. 그리고 잡풀 등과 가시덤불 등이 무성했다.
물론 그런 곳에 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보통 밀림 같으면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그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산도(山刀)로 나뭇가지나 가시덤불 등을 쳐 길을 만들면서 기어가야만 했다. 전진은 지지부진했다. 그곳에는 태양 볕을 가려주는 높은 나무들이 없었으므로 적도의 태양 볕이 바로 내리 쪼이고 있었다. 대원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땀에 흠뻑 젖었다가 이내 뻣뻣하게 말라 굳어졌다. 정말 불쾌한 피부 감촉이었다.
대원들은 벌써 첫날에 지쳤다. 모두가 노출된 피부에 화상을 입어 얼굴들이 참담하게 얼룩져 있었다. 일행은 차라리 밤을 기다렸으나 그 밤도 결코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타오르는 열기는 식었으나 그 대신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모기떼들이 덮쳐들었다. 낮에는 조용했던 밀림이 밤에는 시끄러웠다. 짐승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재규어들이 포효하고 있었는데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일행이 천막을 치고 그 속에 피신했을 때 박쥐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들이 들렸다.
수천, 수만 마리나 되는 박쥐들이 모기를 잡아먹으려고 깜깜한 밤하늘에서 난무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흡혈박쥐 들도 있었다. 피 냄새를 맡은 흡혈박쥐들이 천막에 철썩 붙어 퍼덕이고 있었다. 그놈들은 사람들이 잠드는 시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가르토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같이 자고 있던 원주민 사냥꾼들의 코고는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맹수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그의 귀에는 몰래 다가오는 동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재규어가 아니면 퓨마였다. 놈은 나직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맛있는 먹이를 사냥하려고 기어오다가 긴장에 못 이겨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묵직한 소리였기에 아무래도 재규어인 것 같았다. 체구가 작은 퓨마는 그런 묵직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위험했다. 천막 따위는 놈의 기습을 막을 방패가 되지 못했다. 여자들만이 자고 있는 천막이 염려되었다. 재규어는 고양이 종류 중에서는 범 사자 다음 가는 큰 고양이였다. 체중이 100Kg이나 되는 놈이었으므로 놈이 덮치면 천막이 무너질 것이었다.
가르토는 총신에 손전등을 묶어 들고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 저쪽 여자들이 자고 있는 천막과 오만 등 남자들이 자는 천막 사이를 검은 그림자가 그쳐 지나갔다. 네 다리를 갖고 있는 짐승이었으나 발짝 소리가 없었다. 가르토도 발짝 소리를 죽이면서 그쪽으로 기어갔다. 여자들의 천막 뒤쪽에 살기가 느껴졌다. 재규어가 거기에 숨어 천막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가르토는 엎드렸다. 재규어가 덤벼들면 손전등을 켜고 총을 발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르토는 실수를 했다.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사람을 노리는 마물(魔物)은 재규어뿐이 아니었다. 뭔가 검은 물체가 찰싹 얼굴에 달라붙었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고 숨이 막혔다. 흡혈박쥐였다. 흡혈박쥐는 얼굴뿐만 아니라 목덜미에도 붙었다. 피에 굶주린 그들은 사람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람이 아니라 소 같으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어 있었다. 콧등과 목덜미는 소들의 취약점이었다. 앞발이 닿지 않고 뿔도 쓰지 못하는 곳이었다.
입과 코가 막혔기 때문에 숨도 쉬지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그래서 소는 대가리를 마구 흔들며 날뛰다가 쓰러졌다.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덤벼들면 소는 서너 시간 내에 피가 없는 껍데기가 되어버린다. 가르토는 오른손으로 얼굴에 붙은 박쥐를 떼어냈다. 거머리처럼 붙어 있었기에 힘껏 대가리를 비틀어 뜯어냈다. 그때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났다. 그리고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은 연달아 발사되고 있었다.
겨우 박쥐를 뜯어낸 가르토는 손전등을 켜고 뛰어갔다. 가르토가 휘두르는 전등 빛 속에 사람과 재규어와 흡혈 박쥐들이 떠올랐다. 사람은 오만이었다.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이 자고 있는 천막을 지키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오만은 여자들의 비명소리를 듣자 총과 손전등을 들고 뛰어나갔다. 암사자만큼이나 큰 재규어가 앞발로 천막을 찢어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되돌아섰으나 오만은 퓨마를 조준하여 총을 발사하지 못하고 공중을 향하여 공포를 쏘았다.
총탄이 빗나가면 천막 안에 있는 여자들이 다칠 위험이 있었다. 재규어는 오만에게 덮쳐들었다. 6-7m나 되는 거리를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날아왔다. 다행히 재규어는 오만의 어깨를 타넘고 도망갔는데 그때 뒷발이 오만의 뺨을 스쳤다. 재규어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가르토의 전등 빛에 숲속으로 도망가는 놈의 뒷모습이 잡혔는데 놈은 엉덩이에 오만이 쏜 총탄을 맞은 것 같았다. 가르토도 총을 발사했으니 재규어는 숲속으로 달아났다.
가르토의 전등빛에 비친 물체들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흡혈박쥐들이었다.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깜깜한 하늘에서 난무(亂舞)를 하고 있었다. 흡혈박쥐들은 피 냄새를 맡고 미쳐 날뛰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면서 도망가고 있는 재규어를 추격하면서 덮치고 있었다. 어떤 놈들은 재규어가 뚝뚝 떨어뜨리고 간 피를 핥기 위해 풀밭에 납작 붙어 있었다. 가르토와 오만은 여자들의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모두들 괜찮아요?”
여자들은 괜찮았으나 얼굴들이 창백했다. 마드리드는 권총을 들고 있었다. 조앤너가 찢어진 천막을 손가락질했다. 천막은 마치 면도날로 자른 것처럼 50Cm나 찢어져 있었다. 재규어의 발톱이 해놓은 짓이었다. 흡혈박쥐 소탕대의 대장격인 가르토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반대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단호한 어조였다.“지금부터 여러분의 천막에 남자 경호원을 배치하겠습니다.”
이번엔 키나린 박사도 반대하지 않았다. 가르토는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으나 키나린박사의 반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키나린 박사는 여자들만이 잠자는 천막에 남자가 들어와 함께 밤을 지낸다는 말에 펄펄 뛰면서 반대를 했는데 재규어보다는 남자가 낫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마드리드는 웃음을 죽이고 있었고 조앤너는 오만에게 눈깜짝이를 했다. 주르즈도 싱글벙글 했으나 바람둥이인 그에게 여자 경호역할이 돌아갈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그 날 밤은 무사히 넘어갔다. 오만이 재규어의 발톱에 할퀸 상처는 바늘로 꿰매어야할 정도는 아니었다. 상처를 소독해준 조앤너가 화농되면 위험하다고 주장했으나 마드리드는 그런 위험은 없다고 웃고 있었다. 치료를 핑계로 오만하고 자주 만나려는 조앤너의 속셈인 것 같았다. 일행은 계속 원시림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산도(山刀)로 나뭇가지 가시덤불 등을 쳐내면서 한발 한발 들어가야만 했는데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이었다.
나뭇가지를 감고 있던 독사의 대가리가 날아갔다. 거기에 뱀이 숨어있는 줄도 모르고 내리친 산도에 뱀이 횡사한 것이었다. 그 산도는 또한 하마터면 왕벌의 집을 건드릴 뻔했다. 몸길이가 5Cm나 되는 그 벌의 집을 건드렸다면 일행들 모두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10m앞도 볼 수 없는 숲 속에서 뭣이 뛰어나올지도 몰랐다. 퓨마는 야행성 맹수였으나 재규어는 낮이든 밤이든 먹이만 보면 덮치는 맹수였다. 그런데 일행은 그 날 하오 늦게 정말 무서운 발자국을 발견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의 발자국이었다. 남미에서 그렇게 큰 발자국을 갖고 있는 두발 동물은 사람 외에는 없다. 산도를 휘두르면서 앞장서고 있던 원주민들이 정지했다. 불안과 공포의 일그러진 얼굴들이었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원시림 속에서 사는 식인종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들이었다.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은 많은 사람의 유골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유골들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된 흔적이 있으면 그 범인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그 법인은 바로 사람들 이었다. 사람 외에 그런 잔인한 짓을 하는 동물은 없었다.
식인이란 인간들의 오랜 관습이었다. 그리고 그 관습은 원시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흡혈박쥐의 소굴을 찾아내려고 계속 원시림 안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식인종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해 되돌아가느냐. 모두들 대장인 가르토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아마존의 밀림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가르토는 말했다. 식인종은 재규어나 퓨마 악어 뱀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서운 존재라는 말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사냥하는 전문가였다. 그들은 숲 속을 꿰뚫어보는 눈을 갖고 있었고 그 어느 동물보다도 더 기묘한 은신술을 알고 있었다. 자기들은 상대를 보면서 상대에게는 자기들이 보이지 않게 하는 은신술 이었다. 원시림의 식인종들은 기다란 대나무통에 대바늘을 넣어 입으로 불어 날리는 바람화살을 무기로 쓰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무젓가락 길이의 독이 묻은 화살은 30m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과녁을 맞췄다. 가르토의 말에 모두들 전율을 느꼈다. 키나린 박사는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다.“그렇다면 돌아가야 된다는 말이 되겠군.”오만의 말을 가르토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그들에게도 약점이 있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약점이지.” 사람은 가장 잔인하고 사나운 동물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겁이 많고 비열한 동물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투쟁의 본능이 나타날 때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상대가 자기보다 더 강하다고 판단되면 목숨을 지키려는 본능이 적을 죽이려는 본능을 항상 억제하고 도망쳤다. “내가 알기에는 이곳에 살고 있는 차이카족 식인종들은 가장 비겁한 무리들이야. 그들은 언제나 숨어서 살고 있으며 바람에 스치는 풀 소리만 들어도 움찔거리는 무리들이야.
그들은 식인종이지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인간이야. 그들은 특히 총을 갖고 있는 인간을 무서워하고 있어. 총을 든 인간을 보면 소스라쳐 도망가지.”“그렇다면 계속 밀림 속으로 들어가자는 말인가?” 가르토는 머리를 끄덕였다.“앞으로 식인종에 대해서는 철저한 경계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백인들도 식인종들을 지나치게 흉악한 것으로 상상하고 있어.”“하지만 그 차이카족들이 미국인 지질조사단을 학살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키나린 박사의 반문에 가르토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무 과장되었지요.” 2년 전에 아홉 명의 미국인 지질조사단이 인근 밀림에 들어갔다가 차이카족들의 기습을 받고 몰살되었다. 미국인들은 총을 갖고 있었으나 한 발도 쏘지 못하고 참살 당했다. 하지만 차이카족들은 미국인들의 고기를 먹으려고 그런 잔인한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실종된 사람들을 수색하던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 만에 유골을 발견했는데 조사한 결과 차이카족들이 인육을 먹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죽은 미국인들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지질조사단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금광을 찾으려는 광부들이었는데 금덩이에 미친 그들은 차이카족의 영토를 마구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움막집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차이카족들은 광대한 밀림 여기저기에 움막집들을 지어놓고 사냥을 할 때는 사냥터에서 가장 가까운 움막집을 이용했다. 차이카족의 여자나 아이들은 그 움막집에서 사냥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 움막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다. 날은 어둡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막을 칠 여유가 없어 그런 짓을 했는데 그게 실수였다.
그 날 밤 사냥에서 돌아온 차이카족 사냥대들은 자기들의 움막집에 백인들이 머물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움막집에 있던 아이와 여자들이 모두 살해된 것으로 오인했다. 사실은 차이카족 여인과 아이들은 백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미리 피신했었는데 사냥대들은 그들이 몰살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차이카족들은 움막집 안에서 잠자던 미국인들을 기습했다. 움막집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미국인을 바람화살로 쏘아 죽이고 집안으로 들어가 창과 칼로 백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 차이카족들은 그 후에 경찰 수색대에 의해 60여 명이 죽고 무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행이 발견한 발자국들은 그 수가 열 명이 넘지 않았다. 그들이 사람 사냥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흡혈박쥐 소탕계획은 계속되었다. 차이카족들은 이미 일행을 발견하고 미행을 하고 있었다. 서너 명의 그림자들이 집요하게 일행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공격은 하지 못했다. 그들은 겁을 먹고 감시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르토 등은 대원들의 식량보급을 위해 가끔 사냥을 했는데 그럴 때 미행자들을 발견했다. 미행자들은 가르토가 사냥감을 잡기 위해 쏘는 총소리에 놀라 도망 가버렸다. 밀림에 들어간 지 나흘쯤 뒤에는 밀림의 지형이 바뀌고 있었다. 차츰 경사가 급해지고 바위 등이 많아지고 있었다. 앞쪽에 보이는 바위산 너머에는 꽤 높은 산줄기가 보였는데 그곳이 브라질과 페루의 국경지대였다. 박쥐의 전문가인 키나린 박사는 이젠 박쥐들의 소굴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쥐의 똥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었다.
“저기 저 바위산이 수상해요. 저런 산에는 동굴들이 있을 것이고 그 동굴들이 바로 박쥐들의 소굴이 됩니다.”키나린 박사는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피로했는데도 태도는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 사나이들을 미친 놈 취급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가르토는 침착하고 치밀했다. 그는 밀림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밀림 안을 걸어갈 때는 여자들을 가운데 세운 후 앞뒤에 경호원을 배치했고 잠을 잘 때나 잠시 쉴 때에도 요소요소에 보초를 세웠다. 그래서 재규어 같은 맹수는 물론 차이카족 식인종이 기습을 할 수 없었다.
가르토는 또한 물과 식량을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고 있었다. 마실 물이 없을 때는 대나무를 잘라 그 안에 담겨있는 물들을 여자들에게 주었고 식량이 떨어지면 날아가는 새나 토끼 등을 쏘아 잡았다. 주르즈도 처음 생각한 것처럼 경박한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천성이 페미니스트였기에 여자들에게 친절한 것뿐이지 꼭 나쁜 의도만으로 그러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키나린 박사는 어느 날 밤 마드리드와 조앤너가 가르토와 함께 오만의 상처를 살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남자 천막으로 건너간 후 혼자 여자 천막에 있었는데 그때 주르즈가 들어왔다.
키나린 박사는 그가 반가웠다. 광막한 광야 속에서 혼자 있다는 고독감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키나린 박사는 주르즈에게 차를 끓여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동물작가인 주르즈는 박학다식했다. 그의 주장에는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들이 많았다. 특히 피그미침팬지의 얘기가 그랬다.“피그미 침팬지들은 자유롭게 사랑을 합니다. 마음만 맞으면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사랑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성도덕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그 성도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도덕 자체를 한번 생각해봐야 될 것입니다. 거기에 바탕을 둔 혼인제도도 다시 검토해야 될 것이고 ….”키나린 박사는 바로 자기가 그런 성도덕의 희생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에 실패한 후 그녀는 10년 동안을 혼자 고독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아메리카에 온 후부터 그녀는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원시림에는 오직 자연이 있을 뿐 문명사회의 거추장스러운 도덕이나 제약이 없었다. 밤은 아주 깊어갔으나 바깥으로 나간 남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총총거리는 별빛 아래서 그들은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키나린 박사는 주르즈의 가슴에 안겼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입술에 뜨거운 감촉을 느꼈으나 그녀는 반항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르르 떨고 있었으나 그건 감미로운 전율이었다. 주르즈는 능숙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여체(女體)를 잘 알고 있었으며 10년 동안이나 혼자 지내온 그 여체를 곱게 다루고 있었다. 드디어 여체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폭발하고 있었다. 부끄럽지 않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으나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고 싶었다. 두꺼운 남자의 가슴속에서 떨어지기가 싫었다. 그 날 밤부터 키나린 박사는 달라졌다.
그녀는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일행은 다음날 정오께 바위산에 도착했다. 브라질과 페루의 국경지대였다. 예상했던 대로 바위산에는 동굴들이 있었고 그 안에 박쥐들이 있었다.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흡혈박쥐들이 동굴의 천장과 벽에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가르토는 동굴 안에 불을 지르려고 했으나 키나린 박사가 반대했다. 너무도 잔인한 짓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흡혈박쥐 토벌대는 흙과 돌로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박쥐들은 동굴 속에 갇혀버렸다. 흡혈박쥐는 사나흘 동안만 굶으면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키나린 박사는 여섯 개의 동굴 중에서 수십 마리 정도 적은 수의 흡혈박쥐가 살고 있는가장 작은 동굴 하나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아무리 나쁜 동물이라도 씨를 말리면 안 된다는 키나린 박사의 말이었다.
- (끝) -
흡혈박쥐
학 명 Desmodus rotundus Geoffroy,1810 | |
계 |
동물계 |
문: |
척삭동물문 |
강: |
포유강 |
목: |
박쥐목 |
과: |
필로스토무스과 |
속: |
흡혈박쥐속(Desmodus) Wied Neuwied, 1826 |
종: |
흡혈박쥐 (D. rotundus) |
흡혈박쥐는 흡혈박쥐아과에 속하며 학명은 Desmodus 이다. 몸길이 75-90㎜, 앞발길이 50-63㎜, 몸무게는 15-30g이다. 귀가 뾰족하고 엄지손가락이 길며 털이 없는 퇴간막이 있고, 꼬리가 없다. 20개의 이빨이 있는데 두 개의 끌과 같은 상절치와 두 개의 위송곳니가 가장 크다. 보통 동굴에 주거하지만 고목 속이나 오래된 광산의 갱도, 비어 있는 건물 등에도 산다. 약 20종의 박쥐가 같은 서식처에서 발견되는데 평균 100마리 내외의 떼를 이룬다. 암수가 함께 살며, 날이 어두워지면 은신처를 떠나 지상 1m 위를 난다. 임신 기간은 90-120일이며 연 1회 이상 임신한다. 새끼는 어미와 붙어 다니지 않고 집에 남는다. 보통 말·당나귀·소의 피를 빨아먹으며 가끔 사람을 습격하기도 한다. 모든 온혈동물을 습격하는데, 동물 가까이에 날아가 붙은 다음 날카로운 이빨로 동물의 피부를 뚫고 혀로 피를 핥아 먹는다. 위아래턱의 앞어금니와 송곳니는 날카롭고 서로 맞물린다. 위(胃)가 무척 길고 가늘며 식도도 가늘어 혈액 이외의 먹이는 취할 수 없다. 흡혈박쥐에 물린 상처는 통증이 심하지 않고 손실된 혈액량도 많지 않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질병에 전염될 수 있다. 잠자고 있는 동물을 습격하여 날카로운 이빨로 피부를 뚫고 빠는데, 그 동안 습격당하고 있는 동물은 잠에서 깨지 않는다. 광견병이나 말·당나귀의 전염병을 옮기고 상처는 병원균과 기생충에 감염되기 쉽다. 박쥐 자신도 이들 질병으로 인하여 죽기도 한다. 수명은 12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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