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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 그 설경 속으로!
2월 2일(화) ~ 2월 5일 (금)(3박4일)
1일째 : 대구공항-인천공항-기내식 점심식사-치토세공항-삿포로 구도청사-시계탑-맥주 박물관-오도리공원-다베호우다이 저녁식사-노보텔 삿포로 호텔
2일째 : 키타이치 가라스 마을-오르골 박물관-오타루 운하-점심식사-후끼다시 공원 용수 약수터-사이로 전망대-도야 선팔레스 호텔
3일째 : 도야 호수 유람선-유스산 니시야마 화구-쇼와신산-점심식사-노보리벳츠 시대촌(린자쇼, 오이단쇼관람)-지옥 협곡-노보리베츠 마호로바 호텔
4일째 : 아이누민속촌-치토세 공항-기내식 점심식사-인천공항(저녁식사)-대구공항
북해도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Love Letter)에서 이쓰키가 사고를 당했던 산을 향하여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라고 절규하며 오열을 토하던 히로코의 모습,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던 새하얀 설경과 함께 기억되어지는 곳이다.
그곳으로 떠나는 우리들은 첫사랑을 가슴으로 만지작거리며 설렘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 40분 대구공항에서 만나 탑승수속을 끝내자 드디어 눈의 고장 북해도로 떠난다는 것이 실감났다. 날씨는 쾌청하였고, 비행은 순조로웠다. 인천공항에서 도착, 일본 쓰루 가이드를 만나 출국 절차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은 후 출국 수속을 밟았다. 여러 가지 국제적인 정황으로 출국 수속은 꽤나 까다로웠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런들 어떠리? 우리는 지금 설원으로 떠나는 길인 것을...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창밖을 내다보니 비행기는 새하얀 눈을 아래에 두고 나는 듯하였다. 구름이 그토록 희었던 것은 앞으로 우리가 4일간 보게 될 훗카이도의 설원을 예견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찾아 본 훗카이도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훗카이도는 일본의 북단에 있는 섬으로, 넓이가 약 834만ha이며 오스트리아의 넓이와 거의 같고, 근해에는 세계적인 어장을 가지고 있으며, 예부터 ‘에조’라고 불렸다고 한다. 기후는 아한대 기후를 보이며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크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며, 혼슈 다음으로 2번째로 일본에서 큰 섬이고 세이칸 터널을 통해서 혼슈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초창기 훗카이도 지역에는 아이누 인들이 살았는데 이들은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나 문자가 없어 문화가 구전되어질 뿐이라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제한되는 선에서 일본사람들과 훗카이도의 아이누 족이 무역을 하였으며, 홋카이도의 하코다테항이 1859년 개항함으로써 무역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단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북해도 개척이 시작되면서 아이누 인들도 일본식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일본어를 구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1869년부터 1882년까지 홋카이도에 개척사가 설치되어서 본격적으로 개척이 시작되었는데, 무리하게 아이누 인들을 일본으로 편입하다 보니 지금은 아이누 어를 하는 사람의 수도 많이 줄어들었고, 아이누 출신 사람들이 일본 본토로 많이 건너가서 사람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홋카이도 지명의 약 8할은 아이누어에 유래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누어의 지명은 모르는 장소에서도 그 이름으로부터 지형이나 위치 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현재는 가타카나나 한자로 표기되고 원음과 다른 경우도 있지만, 본래는 아이누 민족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전통적 생활 속으로부터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아이누 문화의 의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단다. 홋카이도라는 지명의 유래는 선주민족이었던 아이누 족이 이 지역을 '카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에도 시대 말기에 ‘마츠우라 타케시로’라는 탐험가가 홋카이도에 와서 ‘에조’라고 불리던 이곳을 바꾸어 ‘홋카이도’라고 부르면서 지금의 홋카이도가 되었다는데, ‘삿포로’도 아이누어이다.
2시간 50분만에 삿포로 신 치토세 국제공항에 도착, 버스로 훗카이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인 삿포로로 이동하였다. 삿포로는 도시와 자연이 함게 어울러져 있는 매력적인 도시로 많은 공원과 광활한 녹지대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거리는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 도시이다. 또한 13m까지 눈이 쌓이는 지역으로 제설작업비만 연간 5천만엔이 들 정도라 하니 눈이 얼마나 많은 지역인지 짐작이 된다.
첫 여정은 삿포르 구 도청사! 「아카렌가(빨강 벽돌)」의 애칭으로 친숙한 삿포로의 명소, 1888년에 건설된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써, 높이가 5m인 천정이나 갈색이 빛나는 기둥, 무거운 목조의 문 등이 깊은 중량감을 느끼게 하여 개척시대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옛 장관·지사실이였던 곳은 기념실이나 역사 갤러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일본은 러시아와도 국토분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중에 1881년에 지어져 12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맑은 종소리가 변함없이 울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시계탑을 차창 밖으로 보았다. 이 시계탑은 1879년 삿포로 농업학교 교감 ‘호이라’ 박사의 구상에 근거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현존하는 시계탑으로서는 일본 최고이며 내부에는 시계탑의 역사적 사료가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 도착하자 흰 눈이 쌓인 눈 위로 사락사락 내리기 시작했고, 저녁 어스름도 스멸스멸 내려앉기 시작했다. 개척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 삿포로 맥주 공장 내에 있는 이 박물관에는 맥주 제조의 과정, 재료, 맥주 제조의 역사, 훗카이도 개척의 역사, 관련 물건들을 전시, 소개하고 있었다. 다양한 맥주들을 한 잔씩 시켜 맛을 보는 즐거움도 이 박물관을 구경하는 또 다른 재미였으며, 맥주 한잔에 따라 나오는 안주용 치즈의 맛도 일품이었다.
첫날 여정의 마지막 코스는 오도리 공원, 1872년 화재 예방선으로 설치되었던 이 공원은 거리 구조의 기축이 되어 동서남북을 나누고 있었다. 삿포로는 계획된 도시로 남쪽에는 병원과 관공서, 북쪽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었다. 오도리 공원은 눈 축제, 라일락 축제, YOSAKOI 소란 축제 등 많은 축제가 열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는 삿포로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로 공원과 가로수에는 나뭇가지마다 37만개의 일루미네이션이 장식되어 흰 눈과 함께 아름다운 밤을 수놓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짐을 푼 후 100년 이상 된 라면가게를 찾아 밤길을 나섰다. 호텔로비에서 준 지도와 노선을 보면서 길을 물어물어 간 라면 거리는 우리의 교동 뒷골목 같은 느낌이었다. 홋카이도 라면의 역사는 2차 대전 이후 급속도로 홋카이도 사람들의 식생활에 정착하면서, 한랭한 기후의 영향으로 진하고 깊은 맛을 내는 라면이 대표적인 식문화로서 발전하였는데, 라면가게가 즐비한 이 거리는 홋카이도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다. 실제로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라면가게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2일째는 삿포로에서 러브레터의 고향 오타루로 이동하여 키타이치 가라스 마을과 오르골 박물관을 구경하였다. 키타이치 가라스 마을에 도착하자 함박눈이 막 퍼부었고, 서둘러 우산을 꺼내었으나 눈은 막무가내였다. 언덕 곳곳에 눈사태를 막기 위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것은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었다. 눈을 맞으며 유리공예의 마을 키타이치 가라스를 돌아보며 오르골 전시장에 도착하자 우리 일행은 동시에 “우와~~”를 연발하였다. 눈부신 오르골들의 아기자기함과 고풍스러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앤티크인 암적색 벽돌을 이용한 오르골 박물관은 전국 최대 규모의 오르골 전문점으로 수천 종류의 오르골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슈크림빵과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카페에서 마신 무료 커피는 언 손과 입을 녹여주고 여행의 여유와 멋을 더하여 주었다.
그 다음 코스는 향수와 아늑함을 느끼게 해 주는 복고풍의 거리와 운치 있는 오타루 운하! 우리의 신천보다 작은 강이었지만 100여년 전부터 훗카이도의 현관으로 발전해 왔으며, 은행과 기업이 진출하여 ‘북부의 월가’라고 불릴 만큼 융성했다고 하니 새삼 다시 보였다. 옛날에는 짐을 싣고 내리던 나룻배로 가득했던 운하는 변화무쌍한 세월 앞에서도 여여히 흐르고 있었으며, 벽돌과 석조로 된 창고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유리공예점과 찻집, 레스토랑과 쇼핑몰 등으로 그 맥을 잇고 있었다. 창고 맞은 편에서는 눈 조각축제 준비로 한창이었다. 석양 무렵이 되면 돌 블록의 가로에 가스등이 밝혀지는 복고풍의 거리 풍경으로 향수와 아늑함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하나 우리는 벌건 대낮에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오타루는 언덕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언덕이 많아 ‘지고쿠자카(지옥언덕)’라는 이름의 급경사길, 휘감아 도는 듯한 스릴이 있는 커브의 ‘후나미자카’등도 볼만하다고 한다.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변하는 뒤쪽의 ‘덴구산’에서는 시가지 뿐만 아니라 항구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로프웨이도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창고 같은 쇼핑센터 겸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후끼다시 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동안 길은 눈으로 뒤덮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눈은 나무둥치를 푹 싸안고 있었다. 길과 산이 구분되지 않아,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도로 폭을 표시해줄 정도였다. 그런데도 차는 전혀 미끄러지지 않고 운행되었는데, 이곳은 눈이 워낙 많다 보니 모두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한다고 하였다. 후끼다시 공원은 어깨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었고, 약수터 물은 차라리 따뜻했다. 약수터까지 걸어가는 길은 지천이 눈밭이라 저도 모르게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를 외칠 것만 같았다. 아, 원 없이 본 설원! 덤으로 갓 구운 고로케의 고소함이라니…
다시 버스는 눈 속을 달려 도야호수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사이로 전망대로 우릴 데려다 주었다. 도야호수를 ‘소녀의 호수’라고 한다 했던가? 호수 전체를 좀체 보여주지 않는 수줍음으로 인한 별칭답게, 그날도 호수는 일부만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흰 눈이 호수를 불렀는가?
눈 덮힌 도야에 너를 묻어 두고
나, 떠날 수 있을까?
호수가 눈이 되고 눈이 호수가 되고
내가 너이고 너가 나였던 기억들을
여기 도야에 두고 갈 수 있을까?
내 가슴에 남은 너의 기억만큼
눈은 그리움의 두께로 다가오고
시간이 흐르고 햇살이 호수를 비추어도
내 그리움은 단단해지기만 할 뿐
너는 그렇게 내 가슴에 또 하나의 설벽으로 남는다.
3일째 여정은 상큼한 아침과 함께 도야호수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훗카이도의 남서부에 위치하는 도야호수는 시코쓰 도야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20세기 초엽에 화산활동이 거듭되면서 함몰하여 생긴 호수라고 한다. 광활한 느낌으로 다가오던 도야호수는 둘레 43킬로미터의 칼데라 호수로 일년 내내 결빙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선상에 올라 오밀조밀한 섬들의 이름을 지어보려 애를 썼으나 사랑이 그만큼 깊지 못함이었던지 섬 하나에도 제대로 이름 붙이지 못하고 말았다. 사랑은 세상을 창조하는 원천이려니.
그 다음으로 간 유수산 니시야마 화구는 2000년 3월에 대규모 분화가 발생하면서 생긴 화구로, 인근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지금도 그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용암에 묻힌 과자 공장 가옥, 차량, 전신주 등이 있다고 하나 눈이 많아 멀리서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지금도 화구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1943년의 지진에 의한 지각변동으로 일대가 융기하여 생긴 ‘쇼와신산’으로 차는 이동하였다. 쇼와신산은 1943년 보리밭이 갑자기 융기하여 300미터 정도의 산이 된 이후에 폭발하여 화산활동이 시작되어 현재 443미터의 성장 중인 기생활화산으로 산이 붉게 타고 있는 모습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다. 화산활동으로 융기한 산은 세계에서 여기뿐이란다. 화산광인 ‘미마쯔 마사오’라는 우편배달부가 그 당시 쇼와신산의 화산활동을 관찰 기록하였는데, 화산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의 공적을 기려 그의 동상이 쇼와신산 앞에 세워져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노보리벳츠 시대촌으로 이동하여 린자 쇼와 오이단 쇼를 관람하였다. 닌자(忍者)는 일명 시노비노모노(忍の者:しのびのもの)로 탐정, 첩자, 자객, 도둑 등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들은 변장과 은신, 암살, 교란, 추리 등의 달인으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얼굴에 가면, 복면, 인피면구 등을 쓰거나 옷으로만 바꿀 수도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닌자 집단은 이가(伊賀), 코가(甲賀) 등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복장은 집단마다 다르며, 닌자의 복면은 형태마다 다른데 얼굴가면형 복면, 눈가면 형태의 복면, 입을 가리는 복면 등으로 되어있으며 이들은 속에 메쉬 티를 입었다고 전해진단다. 그리고 이들은 수리검(手裏劍 : 십자, 봉 형태의 표창)과 쇄겸(鎖鎌 : 사슬낫), 만력쇄(萬力鎖 : 추가 달린 사슬무기), 바람총(독침을 입으로 통해 부는 총) 등을 다룰 뿐 아니라 독, 미혼향(迷混香 : 마취제)을 사용하기도 한단다. 538년에 출현한 이들은 쇼토쿠 태자의 소가씨에 대한 정보 수집으로 이용되었고 후에 오다 노부나가의 정리 정책으로 타격을 입고 위축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17세기 초에 다시 부흥하여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을 바쳤다고 한다. 그들의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여자 닌자를 ‘쿠노이치(くノ―)’라 한단다. 닌자 쇼는 우리나라의 ‘점프’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에도시대 밤의 꽃 오이단은 지금의 밤거리의 여자와는 달리 고전문학, 단가, 서도, 다도 등 학문과 예능이 모두 뛰어난 기녀로 소수의 부유층 남자들만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외출 행렬이 화려하여 천천히 요염하게 걷는 모습에 시민들이 감탄하고 ‘오이단 도츄’라 불렀다고 한다. 이 쇼는 일본의 유명한 기녀에 대한 이야기로 남자 주인공을 관객 중에 한명으로 즉석 선발하여 쇼를 하는 것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일본인의 토막 영어와 한국말이 쇼의 재미를 더하였다.
노보리벳츠 시대촌은 28만평이 넘는 부지에 일본 에도시대 94동의 목조건물과 거리를 재현한 테마파크로, 마을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옛무사들이 갑자기 나타나며 닌자가 달려가기도 하여 에도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둔갑의 집과 유령의 집을 거쳐 숙소 가까이 있는 지옥 협곡으로 향했다.
약 1만년 전의 티케야마라는 활화산의 흔적으로 산골짜기를 따라 300여개가 되는 용출구와 분화구가 있었다. 지옥협곡은 벌거숭이산 곳곳의 유황 화구에서 뜨거운 열기가 김과 수증기로 부글부글 끓어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하여 도깨비가 사는 지옥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흰 눈과 유황, 그리고 연기! 그곳이 정영 지옥이었던가? 발이 시리도록 기다렸건만, 5분마다 분출한다던 물줄기는 미동도 하지 않아 우리 일행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런 자연재해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의 힘으로 바꾸는 것을 보면 일본은 참 대단한 나라구나 싶었다.
4일째, 마지막 훗카이도의 날은 아이누 민속촌에 들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아이누 민속촌은 치세를 본 뜬 독특한 건물로 아니누 족의 의식주나 신앙, 생활양식, 보물, 수렵방법, 자장가, 사랑가, 축제의 모습을 재현하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치세 처마 밑에는 수백 마리의 연어가 대롱대롱 매달려 찬 눈바람에 마르고 있었으며, 민속촌 옆의 호수는 눈으로 뒤덮여 그것이 호수인지 평지인지 구분치 못할 지경이었다. 아이누 족의 촌장인 ‘코탄콜클’의 동상이 거대하게 세워진 아이누 민속촌을 뒤로하고 북해도에서의 3박4일 일정을 마무리하는 우리들 가슴에는 끝없이 펼쳐지던 설원과 온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던 온천의 기운이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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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 읽고간다 좋은 여행 되었나 보내 그런데 배곱만 보이네요 나만 안 보이나???
나는 잘 보이는데. 이상타. 이것도 뭐 있나??
상명아, 학교서 보니 나도 배꼽이다..ㅋㅋㅋ
영미야. 그림은 어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