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화요일 경기도 가평군 운악산 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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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三)충(忠)단檀
가평군 하면 하판리 488-1
이삼(三)충(忠)단(檀)은 조병세(趙秉世),최익현(崔益鉉), 민영환(閔泳煥)선생 세분충신의
충절(忠節)을 기리는 제단(祭壇)이다.서기 1905년 일제(日帝)는 강제(强制)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締結)하였으며 드디어 국권(國權)마저 침탈(侵奪)하는
만행을 자행(自行)하였다.
당시 조병세(趙秉世) 선생(先生)은 의정(議政)대신(大臣)으로 있다가 가평에 은거(隱居)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상경(上京)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의 무효를 주장하며 이 조약에
서명(署名)한 오적(五賊)을 처단(處斷)하고 하루속히 국권(國權)을 회복(回復)해야 한다는
상소(上疏)를 올리며 항거(抗拒) 하였으나 왜헌(倭憲)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결(訣)고(告)국(國)중(中)사(士)민(民)서(書)라는 유서(遺書)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忠臣)이고 최익현(崔益鉉) 선생을
을미의병운동의 태두(太頭)이었는데 소위 오조약(五條約)의 체결을 보고 통분(痛憤)하여
다시 의병(義兵)을 봉기(蜂起)하여 왜구(倭寇)토벌(討伐)에 앞장서 싸우다가
체포(逮捕)되어 대마도(對馬島)로 이송(移送)구금(拘禁) 되었으나 단식(斷食)으로
항거(抗拒) 하다가 순국(殉國)한 충신(忠臣)이다.민영환(閔泳煥) 선행은
시종(侍從)무관(武官) 이었는데 을사조약(乙巳條約)을 보고 대한(大韓)문(門)앞에나가
석고대죄하며 국권회복(國權回復)의 상소(上疏)를 올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國民)과 각국(各國)공사(公事) 에게 보내는
유서(遺書)를 남기고 자결(自決)한 충신(忠臣)이다.
이삼충단은 일제치하이던 1910년에 설(設)단(壇) 되었으며 1989년에 복원(復元)하고
매년(每年) 11월25일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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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바위
한국,중국 등 유교 문화권에서는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삼불거(三不去) 외에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풍습이 있었으며, 남근석(바위)은 예로부터 아들 낳게 소원하는
상징의 대상이 되었다. 남근 형상과 비슷한 자연물에 대하여 여러 가지 명칭들이 있으나
대부분 남근석(바위)이라고 부른다.
운악산 정기를 이어 받은 남근석(바위)에 소원을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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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바위
자연적으로 형상화된 암석으로써 옆모습이 코끼리 얼굴의 길게 늘어진 코와 비슷하여
코끼리 바위라고 부르고 있으며, 자연의 신비함을 감상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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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涵)허(墟)당(堂) 득통(得通) 기화(己和)대사(大師) 부도탑
당호 : 涵墟, 법호 : (得通), 법명 : (己和)
조선 태종11년(1411년)에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대사의 사리탑으로 조선 초기 부도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함허대사(1376~1433)는 출가하기 전 성균관에서 유학을 익혔고 21세(1396)에 출가,
22세 때 양주 회암사에서 무학대사에 가르침을 받았으며 42세(1417)때부터 금강경오가해를
강의 하였다. 그 후 임금의 명령으로 대자(大慈)사(寺)에 머물기도 하였고 56세(1431)때에
문경 희양산 봉암사를 중건 58세(1433)에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금강경오가해」2권, 「금강경륜관」1권,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설의」3권,
「선종가집과주설의」2권, 현정론」1권, 「함허당 득통화상어록」1권이 있다.
함허대사의 사리탐은 현등사 외에도 그가 주석했던 강화도 정수사, 문경 봉암사,인봉사 등 네
곳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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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팔번뇌(108계단)의 진리
「중생의 번뇌수가 108가지가 있는데
6근(根)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로
6진(塵) 색(色)성(聲)향(香)미(味)촉(燭)법(法)을 대할 때
저마다 호(好) 오(惡) 평등(平等)의 세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번뇌를 일으키고
또 고(苦) 락(樂) 사(捨) 의 3수(受)가 있어
18번뇌를 내니 모두 합하여 36종.
또 이를 삼세(三世) 과거. 현재. 미래에
배(配)하여 108번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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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현등사
현등사는 하면 하판리 운악산(935m)중턱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23대 법흥왕(540년)이 인도에서 포교 차 신라에 오신 마라가미 스님을 모시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로서 우리나라 불교역사와 그 맥을 같이하며 현등사는 그 후 여러 차례 중창이 있었다.
첫 번째 중창은 신라 말 효공왕2년(898년 고승 도선국사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동쪽의 지세가 약함에 여행을 하던 중 운악산의 산세기 빼어나 이곳에 와보니
옛 절터가 있어 새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중차은 고려 희종6년(1210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운악산 중턱에 불빗이 있어 이를 이상히 여겨 와 보니 절터의 석등과
미륵바위에서 불이 밝혀져 있음을 보고 중창하여 현등사라 했다.
그후 조선 태종11년(1411년) 함허득통화상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내 부도에
함허무준이라고 새긴 명문을 볼 수 있는 등 수많은 고승들이 머물렀던 고찰이다.
현등사는 강화 보문사 및 관악산 연주암과 더불어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경기도 3대 기도성지이고 전통사찰 제46호이며, 향토유적 제4호로 경내에는
경기도 지정문화재인 삼층석탑(제63호),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지진탑(제17호),봉선자증(제168호),
목조아미타좌상(제183호), 아미타회상도(제185호),청동지장보살상(184호),지장시왕도(제124호),
화엄신중도(제193호),현등사지성광여래도(제125호),수월관음도(제198호),
함허당득통화상 부도 및 석등(제199호),등이 모셔져 있다.
또한 현등사 삼층석탑에서 도굴되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2006년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되돌려 받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봉안되어 만 중생이 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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