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고향 이름을 따서 ‘모란’
평소에는 공터 공영 주차장. 한 달에 여섯 번 4와 9가 들어가는 날에는 그 공터에 장이 선다.
서울 시내에서 넉넉잡고 1시간 거리. 에디터가 장에 간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어서인지 소문에 듣던 원숭이 묘기를 보여주는 옷장사나 만담꾼 약장사는 나오지 않았다. 이 장을 두고 지명과는 관계없는 ‘모란’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이러하다. 평양 출신의 육군 대령은 홀어머니를 두고 남쪽으로 내려와 이 지역을 개척하게 되었다. 개척지라 지명도 없었던 곳의 마땅한 이름을 생각하다 평양에 두고 온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모란’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사람이 모이니 필요한 것이 생기고 자연스레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장이 서게 되었다. ‘모란장’은 이렇게 1960년대 성남(당시 광주) 대원천 하류 모란에서 시작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들
시장 입구에는 화훼상이 펼쳐지고 그 옆으로 잡곡상, 약초상들이 이어진다. 산수유 열매도, 메밀 껍질도, 잣송이도, 굼벵이도 모두 처음 보는 에디터는 구경하랴 질문하랴 받아 적으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새빨간 산수유 열매의 과육은 당귀를 조금 섞어 은근한 불로 달여두고 마시면 몸의 노폐물을 배출시킨다고 한다. 메밀 베갯속을 파는 집에서는 메밀쌀도 팔고, 메밀도 판다. 메밀의 껍질을 벗긴 알맹이가 메밀쌀인데 믹서에 갈아 메밀묵을 쑤거나 부침개를 부치거나 1:4 비율로 쌀과 섞어 잡곡밥을 지어 먹는다. 쌀을 빼낸 메밀 껍질이 메밀 베갯속인데 메밀 껍질 가격은 1kg당 2천원. 2kg은 있어야 베개 하나를 만든다고 한다.
여기서는 사도 배달은 안 되어 장보러 나온 아줌마들이 망설이다 돌아가곤 했다. 솔방울의 10배 정도 되는 크기의 새파란 잣송이는 새끼손톱만 한 잣만 봤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크기. 잣송이는 여성용, 솔방울은 남성용으로 소주에 석 달 열흘 담가두었다가 소주잔으로 끼니때마다 한 잔씩 먹으면 ‘그렇게 좋다’는 것이 아저씨의 설명이다. 어른 손가락보다 더 굵은 굼벵이는 몸까지 움츠리며 소스라치게 소리를 쳤을 정도로 징그러웠는데 이놈이 그렇게 힘이 좋아 운동하는 학생들이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는 인기 상품이라고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에디터가 ‘신품’에 어리둥절하는 것을 오히려 신기하게 보던 사십 줄의 사진기자도 모란장에서 처음 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차가버섯과 상황버섯. 차가버섯은 기포가 빠져나간 용암처럼 생겼고, 상황버섯은 시골 제과점의 옥수수빵 모양새다. 게다가 상황버섯 포장에 ‘순국내산’이라고 쓰여 있어 기자 일행은 ‘북한에서 온 빵’이라고 짐작했을 정도.
펄럭 귀 에디터, 남의 말 듣고 쇼핑
약재를 파는 아주머니는 XX가 몸에 좋다하고, OO 파는 아저씨는 오늘 들어온 게 알이 굵어 드문 상품이라 한다. 그 말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이미 에디터 손가락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두어 개 걸려 있다. 자기 물건 나쁘다 하는 상인은 아무도 없을 테니 이성을 찾으니 이제 좌우로 지나치는 아줌마들의 말이 들린다. 어물전 고등어를 두고 “물 정말 좋다”며 지나가기에 고등어 한번 살펴보고, “매실 알 좋다” 하기에 매실 1kg 달라 하고, 할머니가 파는 고추 모종을 두고 대가 좋다는 평에 1천원어치(5포기) 사고, 알아주는 경산 대추가 경동시장보다 싸다기에 또 한 주먹 샀다. 시장 물가가 과연 싸기는 싼지 두 손 가득 들었지만 두 식구 한 끼 먹으려고 집 앞 마트에서 장본 금액보다 턱없이 적었다.
모란시장에는 듣던 대로 개 뼈도 있고, 둥그런 박 바가지도 있고, 몇 달 전 에디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기름집도 대규모로 모여 있었다. 철이 되면 수도권의 모든 고추가 도매로 모란장에서 거래된다고 하니 마트에서 산 참기름이 떨어질 가을 즈음 구경 겸 또 와야겠다.
1 ‘진짜 후추’라는 재밌는 푯말이 꽂혀 있는 통후추 대야. 주인 아줌마는 임의로 작은 되, 동그란 깡통, 큰 되 3가지를 만들어 2천원·3천원·5천원에 팔고 있다. 2 약초상 아주머니가 꼭 먹어보라고 했던 손으로 밀어 만든 칼국수와 올챙이처럼 미끌미끌하게 움직이는 올챙이국수. 3 시원하고 머리 건강에 좋다는 메밀 베갯속에 넣는 메밀 껍질. 4 대둔산에서 채취한 산삼은 겉에 내놓고 팔지 않고 묻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모양인지 둘러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5 기자 일행이 ‘북한 빵’으로 착각한 순국내산 상황버섯. 6 모란시장 입구 오른쪽 골목으로 내려가면 기름집이 펼쳐진다. 기름집은 장이 서지 않는 날도 상설로 영업을 한다. 7 원래 자연산 마는 가늘고 꼬불꼬불하다.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주먹마니 장마니 하는 것은 자연 마의 종자를 개량해 재배한 것.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file.nate.com%2Fdownload.asp%3FFileID%3D26470318)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file.nate.com%2Fdownload.asp%3FFileID%3D26470319) 모란시장 입구.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과 사러 온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5일장하면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지나 가는 곳이려니 한다. 도시화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닷새에 한번 장이 열리는 '비효율'적인 시장을 도시와 현대 문명은 인정하지 않는다.
도시 주변에서 모두 사라져 버린 그 5일장이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아직 남아 있다. 지하철 8호선의 마지막 역(모란역, 분당선도 이 역에 선다)엔 아직도 매 4일과 9일에 아직도 5일장이 선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대의 5일장이다. 지하철 타면 서울 도심에서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file.nate.com%2Fdownload.asp%3FFileID%3D26470320) 화훼부에서는 난초뿌리와 알로에도 팔고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계절 꽃과 화분을 살 수 있다. 난초 파는 아주머니가 난초를 뿌리의 상태로 구분해서 팔고 계셨다. 그다지 전문적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장 한편에 차려진 빈소. 돌아오지 못할 이웃에 대한 시장 사람들의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처음 모란장은 지금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처음 생겨난 60년대에는 성남시 수정구 수진2동(지금의 모란예식장 주변)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성남시외버스터미널과 상설 모란시장, 성남대로변으로 넓게 자리잡았었다. 지금의 장터인 중원구 성남동 대원천 옆 공영주차장으로 90년 9월 24일에 옮겼다.
생선과 약재도 모란시장의 주요 품목이다.
대충 자리 잡은 것 같아 보이지만 상인들은 자기 자리를 갖고 있다. 상인회에 등록된 상인들(950명이 넘는다고 한다)은 지정된 자기 자리에서 장사를 한다. 이외에도 자리를 갖지 못한 노점상들과 자신의 생산물을 팔러 나온 농민들을 모두 합하면 1,500명이 넘는다고 말한다. 주변의 상설시장까지 합하면 엄청난 규모이다. 상인회의 전체 구역을 13개 묶음으로 나누는데 화훼, 잡곡, 약초, 생선, 음식 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의류, 신발, 잡화, 야채, 애견, 가금 등이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file.nate.com%2Fdownload.asp%3FFileID%3D26470323) 모란시장 배치도
지하철 역에서 나와 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화훼부가 있다. 계절 화분과 꽃들을 파는데 알로에도 팔고 난초뿌리도 판다. 그 다음이 잡곡부다. 쌀, 보리, 콩 등을 취급한다. 잡곡부 지나서 자리잡은 약초부에서는 굼벵이, 지네, 인삼 등 온갖 약재가 거래되고 있다. 이 곳의 약초부는 지방의 장터를 돌며 수집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의류부·신발부·잡화부·생선부가 이어진다. 생선부에서는 살아있는 민물 활어도 살 수 있다. 이어서 나타나는 음식부는 모란시장의 명물이다. 우묵·콩국수·칼국수 등을 3000천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file.nate.com%2Fdownload.asp%3FFileID%3D26470324) 손님 앞에서 썰어서 만드는 칼국수. 콩국물에 말아낸 우묵 맛도 일품이다.
고추부에선 고추와 마늘을 파는데 산지를 제외하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한다. 고추부는 도매와 소매가 함께 이뤄지는데 고추 도매장은 장이 서기 전날인 3일과 8일 새벽과 오전 중에 이뤄진다. 주로 서울과 경기도 남부 지역의 고추방앗간을 상대로 한다.
개가 팔리고 있다. 살아있는 개 뿐만 아니라 식용으로 가공이 끝난 개도…. 사실 개를 잡아서 식용으로 가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작은사진. 사진은 남대문시장에서 발견한 '개고기'팝니다. 여기 모란시장에선 '개고기'란 세 글자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사진 찍히는 걸 무척 싫어 한다. 개고기시장이란 사회적 비난을 무서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애견부와 가금부가 자리하고 있다. 애견부는 모란장을 대표한다. 식용으로 사용될 개와 가금류를 거래하는 도매장은 3일과 8일에 형성된다. 주변의 상설 시장에서도 팔린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란시장이 개시장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칼국수와 콩국수를 싼 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내 조카가 좋아하는 번데기를 천원짜리 몇장이면 봉지가득 살 수 있는 정감 넘치는 곳이다. 김장 준비하는 어미니들이 소래포구를 찾듯이 고추를 사러 가는 곳이다.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도식 속의 5일장이다.
찾아가는길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file.nate.com%2Fdownload.asp%3FFileID%3D26470326)
자가용 1.판교-구리간 고속도로에서 성남광주로 나오면 바로 왼쪽 2.서울(양재)쪽에서는 성남쪽으로 계속 직진, 경원대를 지나 고개 두번을 넘으면 오른쪽 3.판교톨게이트에서 나와 첫 신호에서 좌회전 신호 받아 직진, 시흥사거리 다리 건너기 전에 우회전 하면 모란 대형주차장
지하철 8호선 분당선 모란역 5번 출구(시외버스터미널)로 나와 직진, 오른쪽
버스 잠실에서 분당 오는 버스는 무조건 모란역을 경유 (2, 2-1, 3, 3-1, 30, 70, 7-5, 10-1, 17, 32, 33, 67, 70, 77-1, 80, 820, 906, 116, 117, 11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