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이 이상의 '권태'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내재된 분위기가 약간 다르면서 재미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모자를 벗을 기회가 오면 벗어야 하기 때문에 모자를 쓴다' 토마스만을 읽다가 밑줄을 친다. '이봐, 다이너. 넌 남자와 관계할 때 음낭이 밖에 있는 건지 스틱과 함께 질안으로 들어가는 건지 아니?' 캐리 피셔를 읽다가 밑줄을 친다. 읽던 책 여기저기에, 검거나 혹은 푸른 밑줄을 그으며 여름(1992년)을 맞았다. '맥아더가 나더러 항복하라고 요구했다던데, 우리에겐 그런 습관이 없다구' 김일성. '난 여느 사람처럼 모든 것을 내 무지 탓으로 얼버무렸다. 그 시절에는 무지라는 것이 유행이었다.' 귄터 그라스 등등. 무언가를 하염없이 읽었나 보다. 2백 개도 넘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데 난 아직 그 부분을 다시 읽지 않았다. 다시 읽다니. 아마 그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설쓰기란 결국,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거나 진지한 것을 하찮게 생각하기 둘 중 하나다. 소설을 위해 궁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따위가 다 그렇다. 그렇다, 고 생각했다. 그 여름, 포도와 참외 같은 걸 먹으며 나는 우주를 떠올렸다. 포도씨 하나엔 포도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다. 내가 먹은 포도씨가 땅에 떨어져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싹 틔운다면, 그 나무엔 적어도 수십 송이의 포도가 열릴 것이고, 수십 송이의 포도에서는 수백 혹은 수천개의 포도씨가 생기겠지. 그것들이 또 싹을 틔우고 틔우고 틔운다면? 황홀한 기하 급수다. 포도알 하나 먹은 내 배가 갑자기 우주만해졌다. 전업 초기에 나는 전업이라는 걸 다음과 같이 생각했었다. 전업이란, 월요일 저녁에 입은 잠옷바지를 다음주 월요일 저녁까지 줄창 입고 있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그런데 전업 2년차였던 지난 여름, 나는 우주만해진 배를 안고 자주 광화문과 종로엘 다녔다. 오늘은 어떤 하찮은 얘기들이 진지하게 출판됐으며, 누구의 진지한 얘기가 하찮게 출판됐는가 보려고. 광화문 교보문고는 작가의 한숨들로 가득한 곳이다. 종로를 찾았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밥을 먹으러 갔던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일행이 있을 때는 그곳으로 밥 먹으러 가지 않는다. 종로 3가역에서 5가역 쪽으로 백 걸음 정도 걸어가면 세운 상가가 나온다. 상가 밑을 오른쪽으로 꺾어돌면 조명 기구, 각종 전선, 공구, 피혁 따위를 파는 벌집 같은 가게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아주 좁고 더러운 골목이 구멍처럼 뚫려 있다. 그곳이 내가 혼자일 경우 찾는 식당 골목이다. 청국장이 아닌 다른 음식도 팔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청국장을 먹으러 그곳엘 갔다. 담장 벽돌 하나하나에도 청국장 냄새가 깊숙이 배어 있는, 그런 곳이다. 장군의 아들이 '꼬붕'을 데리고 오가던 거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그 곳에서 아무 말없이, 어깨를 꺾고, 끈적거리는 식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청국장 백반 한 그릇을 비웠다. 여덟 개의 커다란 쟁반을 머리 위에 포개얹고 배달 나가는 아주머니는, 볼 때마다 불가사의다. 내가 밥을 사먹고 나오는 모양은, 대낮 사창가 골목을 빠져나온 신사처럼 은밀하고 잽싸다. 큰길로 나와서는 공연히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못 봤지?라는 식이다. 식당 안은 너무도 어수선하고 불결하다. 죽은 파리들을 다닥다닥 달고 있는 끈끈이가 무려 여섯 개. 물컵에는 세제 거품이 묻어 있기 일쑤고, 벽에 붙어 털털거리는 선풍기엔 먼지와 기름때가 켜켜로 쌓여 있다. 문득문득, 이곳이 어떤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세워 놓은 난민 보호소 야외세트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난 그런 곳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이 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입가를 쓱쓱 문지르며 큰길가로 나와선, 두리번거리고, 아닌보살 하는 거겠지. 그런데도 나는 혼자일 때면 그곳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가서는 늘, 허겁지겁 먹고, 빠져나와 시치미를 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청국장집에서 나와 종묘 주차장 쪽으로 큰길을 건너야 집까지 오는 1호선을 탈 수 있다. 자주 걷는 길인데도 걸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놀란다. 종삼약국과 롯데리아 사이에 새점 치는 노파가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있을 것이다. "새점 치세요." 라고 말한 뒤, 노파는 2, 3초 후에 똑같은 말을 똑같은 억양으로 반복한다. 그 "새점 치세요." 란 말의 억양과 음색이 나를 놀라 멈추게 한다. 소름이 끼치니까 자연 모골도 송연해진다. 나는 몇번이나 길바닥에 털퍽 주저앉고 싶었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괴상하지도 않지만, 무의식 어딘가를 맹렬하게 강타하는 소리.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반응을 살핀 적도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노파의 억양에 흠칫 놀라는 축도 없지 않았다. 저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려나. 노파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조금 전에 더럽고 어두운 골목 식당에서 청국장을 먹었다는 사실을 들켜 버린 것 같아진다. 새점 치라는 말이 "다 알고 있어, 임마."라고 하는 것 같다. 청국장 맛과 냄새, 식당 분위기, 그리고 노파의 음성은 아주 오래 전에 내가 버린 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코 다시 찾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도 혼자일 경우 나는 어느 틈에 종로를 찾는다. 새점 치는 노파 앞을 지나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1호선을 탈 수 있는데, 나는 마치 깜박 잊었다는 듯 번번이 그녀 앞을 통과한다. 엉뚱하고 하찮은 상상력이 내 뱃속에서 우주만큼 자라는 날이면 말이다. 한 해에 단편을(그럴 수는 없겠지만 하여튼) 한 열 편 정도 쓴다고 하자. 문예지에 연재도 한다고 하자. 이만하면 작가로선 대성공이다. 아내는 그러나 용납하지 않는다. 원고료로 따져 보자. 가장 많이 주는 계간지 원고료로 계산해도 다 합해 8백만원이다. 일년 열두 달을 8백만원 가지고 살 수 있어? 나는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내는 애 둘 데리고 살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살 수 있다고 한다. 청국장처럼. 그러면 아내는 말한다. 당신 일년에 단편 몇편 발표해? 지금까지 연재라는 걸 한 번이나 해봤어? 나는 자꾸 헛배가 불러서 종로 3가를 찾다가, 이 도시를 떠나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 육신이, 거대해진 복부 한켠에 붙어 있는 작은 부속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아주 떠나는 게 아니라 한 보름 정도. 난 아주 떠나게 생겨먹질 않았다. 길면 한 스무 날 정도. 청국장집 같은 데서 삼시 세끼 밥을 먹고, 새점 치는 노파 목소리에 몇날 며칠 갇혀 살아 보고 싶었다. 그러면 배가 좀 꺼지려나. "잘 팔리는 소설 한번 구상해 보려고. 잘 팔리는 소설 말야." (중략) 40분 가량을 그와 더 서성인 끝에 나는 버스에 올랐다. 차가 움직이자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던 그가 몇걸음 뛰어오며 절박하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잘 가요! 라고, 절규하다시피 그는 외쳤다. 혈육의 가슴 저리는 이별 장면을 흘러간 영화에선 종종 그렇게 처리한다. 기이한 이별이군,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버스가 달리는 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개의 흰 선과 한 개의 노란 선이 끝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붉은빛 섞인 초가을 양광 아래 키 작은 코스모스들이 힘에 겨운 듯 봉오리들을 가누고 있었다. 물가의 은빛 갈대꽃이 바람에 쓸려 한쪽 방향으로만 누었다 일어서고 누웠다 일어섰다. 하품을 해서 맑아진 눈으로 나는 하늘을 보고 호수를 보고 길 위의 노란 중앙선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나무를 스치고 개울을 건넜다. 많은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났다. 농촌 아낙과 중절모를 쓴 노인들이 바깥 풍경에 넋을 놓은 채 앉아 있었다. 버스 통로에는 들깻단 묶음과 어느 농기계의 내연기관인지가 뒹굴었다. 주유소도 지나고, 몇몇개의 초소도 지났다. 한 시간은 충분히 넘게 달렸을 것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산봉우리들을 유심히 보고, 시냇물의 흐름과 길의 높낮이도 살폈다. 손차양을 만들어 해를 보고 내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을 가늠했다. 그리고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길 위에서 십여 분을 흘려보낸 뒤 나는 저만치 서 있는 공중전화로 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집에 있었다. 나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어떡하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