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요즘의 막가파식 탄핵정국에 개탄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어찌 이지경까지 왔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반대냐 찬성이냐를 떠나서, 참담한 심정일 것입니다. 더욱 더 우려되는 건, 국민들 사이의 갈등의 심화입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내내 국민들끼리 싸움만 하는 극한 대립만 전개되는 현실이 암담합니다.
어째서 여기까지 왔나? 그 1차적인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2차적인 책임은 야당에 있습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벌써… “이 XX 한나라당 알바네…”라고 접고 들어갈 분들이 계시겠지만, 계속 써내려 가겠습니다.
먼저 이번 탄핵안의 시발점이 된, 선관위의 대통령에 대한 “경고조치” 부터 봅시다. 이 일을 야당에서 들고 일어나서, 처음에는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바로 곧이어서 탄핵안 발의를 민주당에서 들고 나왔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 뚱단지 같은 탁핵안 발의인가?’, ‘가능 하기나 하냐? 그 동안 먹은게 한꺼번에 터져서 뒷탈나고 내분중인 한나라당이 동의 해야 하는데…’, ‘어디 지들이(한나라당) 감히 탄핵안을 내놓아…’ 저 역시 조순형 대표가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사실 민주당에서 대통령의 사과 시한을 정해 놓기는 했지만, 어떤식으로든 대통령이 사과와 유감표명을 했으면(그걸 민주당에서 만족하던 안하던 간에…) 탄핵안이 발의될 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탄핵안을 발의할 명분이 없어질 것이고, 그에 따른 여론변화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상당수가 청각장애 또는 시각장애 증세를 가지고 있어서 정확한 민의를 파악하는데는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얼토당토 않은 일을 꾸며 민의와 반대하는 방향으로만도 나가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민심과 반대로 나가는 행동을 많이 했지만, 그는 민심을 거꾸로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나 당리당략에 의해 그 반대가 “정반대”만은 아니라는 믿음으로 밀고나간 경우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처럼 메가톤급 “탄핵안”에 대해서 그들이 눈 가리고 귀 막고 나간 것만은 아닙니다. “탄핵은 반대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는 다수의 국민들의 생각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양쪽다 잘못 한다는 얘기입니다. 선관의의 경고조치와 탄핵안 발의를 운운하던 시점을 놓고 볼 때, 양쪽의 득실을 따진다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훨씬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었습니다. 만약 대통령께서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면, 저 같이 어정쩡한(한나라당 지지 철회, 열린우리당 지지하지는 못 하겠음)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 양반 원칙도 있고, 도량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더 가관입니다. 야당의 정략적인 사과요구라고 규정하고 ‘굴복’하지 않겠다. 고 선언했습니다. 정말 남의 나라얘기인 ‘미국’의 예를 들기도 했고(미국에서는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면 탄핵발의 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랑 그거 해서 탄핵발의가 됐던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위증”을 했기 때문에 탄핵발의가 됐었습니다. 물론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거짓말들’ 안하셨습니까?), 총선 이후 문제가 된 선거법 개정까지 운운했습니다. 저같은 사람들 마음 돌리는 정도의 ‘득’에 만족하지 못 하셨나 봅니다. 열린우리당이 지지도 1위라지만 그건 당에 대한 지지도이기에 실제 총선에서 100석이상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만은 없습니다.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대박의 꿈” 압도적인 승리를 향한 대박의 꿈… 깨끗하게 사과하고 넘어가면 ‘옹졸한’ 소인배 야당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왔던 노무현 대통령의 은근한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대박의 꿈을 꾼게 분명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 가겠습니다. 노사모님들과 친노지지자들 께서는 이번 탄핵을 극렬 반대하시면서, ‘대통령이 사과할 필요도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전 정권들과 군사정권들에서 보여진 전직 대통령들의 선거 개입을 예로 듭니다. 당시 모든 정치권이 탄핵에 대한 일언반구 말도 없었기에, 지금의 행태는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선관위’의 경고도 없었습니다.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선거개입에 대한 ‘해석’을 하는 것과 헌법에 기반을 둔 ‘선관위’에서 내린 ‘경고’는 엄연히 다릅니다. 선관위에서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인 일이고 개혁적인 일입니다.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법을 되살리고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분위기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열을 올리고 있는 개혁의 산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도 지난 정권 보다 낳으니, 내 경우는 적당히 봐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내세우는 개혁은 서슬 시퍼런 ‘절대’ 순결주의 였지, 어정쩡하게 혹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였습니다. 이와 같은 순결주의 개혁은 1/10 발언과 극과 극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께서는 이런일이 있을 때 마다 과거 정권들 아니 아예 군사독재정권과 비교하며 얘기를 풀어 나가십니다. 진보와 개혁을 논한다는 분들이 ‘수구적’ 논쟁거리를 현재로 끌고와서 비유하시는 것은 옳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저에게, ‘너는 군사독재정권때 뭐했냐?’라고 말씀 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그땐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는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만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착각하는데서 나온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 지지자분들. 왜 그분들의 일부라도, 애초부터 ‘대통령이 넓은 도량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셨습니까? 상당수의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탄핵은 안된다고 말하며, 대통령의 사과 정도로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할 때 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이른바, ‘대박의 꿈’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시점에서 탄핵안은 어떻게든 국회 재적의원수의 1/2인 135명 이상의 동의로 발의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발의 마져도 가까스로 가능할 것이다. 결국 탄핵안 가결은 아예 불가능하다. 가결도 불가능한 탄핵안으로 민생현안을 처리하지 못 하고 16대 국회를 마감하며, 거대 야당들의 후안무치를 성토하는 여론이 높아지면 결국 탄핵안 발의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자살골”이다. 결과는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이어진다.
민주, 한나라당이 탄핵안 발의를 논한 시점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콧방귀도 끼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다들 알다 싶이, 양당 모두 최근 내홍, 내분에 시달리고 있으며, 1달 남짓 남은 국회의원들의 임기 때문에 지도부의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탄행안이 159명의 발의로 상정되었습니다. 발의 정족수 135명을 겨우 넘긴 것이 아닌 14명이나 많은 159명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예상을 빗나간 이 같은 탄핵안 발의의 현실화에 화들짝 놀란 것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입니다.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청와대의 발표와는 달리,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물리력에 의한 저지를 방안으로 삼고 “의연하게” 국회에 이부자리를 깔아 버렸습니다. 대통령이 의연하고 청와대가 의연하다면, 열린우리당이 그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콕방귀’도 안뀌는 대응에 여론은 반대로 몰리는 형국이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대통령의 11일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만에 하나 “가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걸 반증이라도 하듯, 항상 차분하고 깔끔한 목소리를 내던 정동영 의장이 매우 흥분한 모습을 TV에서 보았습니다. 김근태 원내총무 역시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입디다. 참 잘못 하였습니다. 두분 모두… 대통령께 “사과하고 넘어가자. 그래도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자신에찬 고언을 하는 대신 “대통령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 참으로 잘 못된 것입니다. 하긴 같이 ‘대박의 꿈’을 꾸었으니 그리 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금와서 보니, 이번 탄핵안 발의 부터가 매우 치밀하게 계산되고 실행되어 진 것 같습니다. 민주당이 앞서가고 한나라당이 어정쩡해 하던 것 역시 계산된 “쇼”였다고 느껴지니 말입니다. 엉성하고 가소롭게, 자살골을 넣을 것 같이 연출된 “쇼” 말입니다. 발의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의 현재 입장을 정리해 놓은 명단을 보고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섬뜩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들중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10명의 국회의원이 모여 있는 자민련을 보니 그 섬뜩한 느낌이 들더군요. 탄핵안에 대한 자민련의 당론은 “반대”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가 정말 “반대” 같아 보이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김종필, 이한동, 김종호,…, 이인제, …정진석, 조부영” 정치인 김종필씨는 다들 악고 있는 막후 협상의 대가입니다. 국민의 지탄을 받던 3당 야합도 그의 작품이며, 내각제 개헌을 담보로한 DJ 지지 역시 그의 작품입니다. 한국정치사에 소위 “big deal”로 표현되는 사건의 대부분에 그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고,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지만, 고작 국회의원 10명이 있는 군소정당 자민련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탄핵안 가결을 위한 끊임 없는 애정공세를 보내고 있습니다. 김종필씨가 항상 주장하는 ‘내각제 개헌’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나, 다른 기타 정치적 딜이 성립된다면 자민련은 표결 직전 10개의 찬성 표를 보탤 수 있습니다. 설령 은밀한 내부적 당론변경에 의해 10개가 안보태 진다고 해도, 최소 3,4표는 더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적어도 이인제 의원은 던지겠죠.) 게다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내부에도,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방심하게 하기위해, 발의에는 참가하지 않고 “유보”로 현재 입장을 표명하며, 실제로는 ‘찬성’하기로 되어 있는 의원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작금의 사태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가 포함되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탄핵 표결에 반대표를 던지기를 그래서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기를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담화때만은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어법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투박하고 진솔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늦기는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대박의 꿈’은 날라가겠지만 그래도 원금에서 크게 밑지지 않는 수준에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탄핵안에 포함된 사유들이 정말 탄핵에 합당한 사유인가를 논하기 전에, 그 사유들은 사실이고 대통령의 적지 않은 허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회에 ‘이부자리’펴신 열린우리당 의원님들, 이제 이부자리 거두세요. 개혁하신 다는 분들이 긴박할 때는 ‘물리력’을 동원하십니까? 지난 청문회때 이미 한번 봤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지나치십니다. 이후에 한나라당이 그리 해도 할말이 없어지십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천명한 대로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