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③
* 위화도
고려 공민왕 때에 북쪽에서 홍건적이 침입해 와 공민왕이 복주(안동)까지 피난하기도 하였고, 남쪽에서는 왜구의 노략질이 계속되어 해안 지방을 황폐하게 하였다. 이에 고려는 적극적으로 남과 북의 외적에 대한 토벌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영과 이성계는 큰 전과를 올려 국민의 신망을 얻었다. 우왕 때에 이르러 권문세족이 토지 겸병을 확대하자, 최영이 이성계를 위시한 사대부 세력의 뒷받침을 받아 이인임 일파를 축출하였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마침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4불가론을 주장하며 위화도(압록강 하류에 위치)에서 회군하여(1388)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본격적인 개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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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4불가론
1. 소국이 대국을 거역함은 불가능하다.
2.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불가능하다.
3. 거국적으로 원정할 경우 왜구의 침입 우려가 있다.
4. 시기는 장마철이라 활이 녹고 대군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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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를 중심으로 모인 급진 개혁파(혁명파) 사대부 세력은 우왕과 창왕을 잇따라 폐하고 공양왕을 세운 후, 전제 개혁을 단행하여 과전법을 마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이성계와 급진 개혁파 사대부 세력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다(1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