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7장1절-13절
우리는 사사기 17장에서 두 가지의 사건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에브라임의 미가라 하는 사람이 자기의 집에 한 신상,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필요한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제사장을 자기 아들로 세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베들레험에 살던 레위인 하나가 미가의 집에 가서 개인의 제사장이 되는 사건입니다.
사사기 16장까지 여러 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사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죄를 짓고 이방의 압제를 받아 고통받던 이스라엘을 구해냅니다. 이러한 반복이 사사기에 6번에 걸쳐 등장합니다. 그런데 부르심을 받은 사사들도 하나같이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었고 그 약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시는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거룩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책임이 끝이 나고 저들이 죽고 나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스라엘은 이제 사사인 삼손이 죽고 나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타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그 첫 번째로 등장하고 있는 내용이 오늘의 17장의 내용입니다.
첫 번째 장면은 미가가 어머니의 돈을 훔치고 다시 돌려주게 되면서 어머니가 그 돈의 일부로 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위하여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의 역할을 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라고 보실 수도 있지만 일단 도덕이 무너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돈을 버젓이 훔치고 또 돌려드렸더니 어머니가 자녀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모든 것이 돈의 논리입니다. 돈 때문에 어머니를 속이고 또 돈을 돌려주니 아들에게 복을 빌어 줍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돈이 가장 높은 가치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선이고 돈이 가치고 돈이 진리가 됩니다. 세속주의란 모든 것을 돈으로 가치 환산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 어떤 사건,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액면가 얼마짜리인지를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물질적으로 이해관계를 따져 철저히 득과 실의 관계 속에서 행동합니다.
그리고 미가의 어머니는 돌려받은 돈으로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긴다’라고 합니다. 돈을 돌려 준 아들을 축복하기 위해, 그 아들이 잘 되도록 복을 빌기 위해 돈을 들여 신상(우상)을 만들기로 작정합니다. 돈으로 종교를 삽니다. 종교는 하나의 치장거리에 불과합니다. 세상에서 더 잘 되고 더 보호받고 더 많은 기득권을 행사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돈으로 신을 만들고 사유화해 버립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해 신을 소유합니다.
제사장도 자기의 아들로 세웁니다. 제사장은 레위지파로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의 유익과 이득을 위해서는 누가 되도 상관이 없습니다. 제사장도 내 편이어야 하고 하나님도 내 편이어야 합니다. 내가 잘 되면 그게 신앙의 목표이고 내가 부유하고 편안해져야만 하나님도 선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편의와 내 소득과 나의 이기적 만족이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돈에 의한 지배, 즉 자기가 신이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사유화하는 현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이렇게 적는 것입니다. 즉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건이 바로 레위인이 이 미가의 집에 와서 개인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레위인이 자기가 살던 베들레헴에 살지 않고 거주할 곳을 찾아 베들레헴을 떠나 떠돌다가 에브라임 산지까지 와서 미가의 집에 개인 연봉을 받는 사적인 제사장이 되었습니까?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타락하자 예배가 무너졌을 것이 뻔합니다. 그러자 하나님 앞에 드리던 십일조와 헌물을 포기했을 것이고 이에 가나안에 자기 기업이 없던 레위인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예배가 무너지고 제사장들이 먹고 살 길을 찾아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개인의 복을 빌어주는, 사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데려다 주는 종교 브로커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영적 건강성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레위인들이 먹고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이득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영적인 것,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패역한 세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레위인들에게 분깃을 주지 않으시고 나머지 11지파를 통해 십일조를 받아 살도록 하셨겠습니까? 이런 메카니즘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오로지 자기 자신 외의 모든 것들이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자기가 신이 된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도록 돕는 레위인들은 쓸모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13절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고 나에게 계획하시고 나를 택하셔서 어떤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게 복, 복을 내려주시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느냐만 중요합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내 소유를 늘려주고 더 견고하게 내 자리를 마련해 주기만 하면 뭐든지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언제든지 달려오고 나를 위해 언제든지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하나님, 교회, 목회자, 말씀이 있는 곳이면 얼마라도 투자할 수 있고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헌신도 하고 봉사도 하고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복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고 있고 어떤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오셨는가, 그 분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지 그 분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이 오로지 복만 주면 누구라도 내가 믿겠다는 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진멸하고 불태우고 쪼개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고 오로지 인간을 자기를 위한 욕망을 쫓게 만들어 결국 멸망하게 하는 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계명의 첫 번째요 두 번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딤후 4:2-4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사람들은 자기의 사욕을 채워주는 스승만을, 허영을 부추기고 오직 욕망을 채워줄 허탄한 진리를 따를 것이라고 합니다. 사사기의 시대나 바울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신이 되었고 돈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 무엇도 관심이 없으며 하나님을 자기 재산을 증식시키고 자녀를 보호해 주는 수호신 수준으로 전락시킨 이 시대의 우상종교를 버리고 오직 절망적 인생들을 구원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왕으로, 자기를 버림으로 등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모든 초점을 모으시는 복된 교우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도 나의 유익과 돈과 명성을 위해 가져다 쓰고 데려올 수 있다고 믿는
물질만능주의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이 시대에,
참된 믿음이 무엇이고,
진리가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목적지는 어디인지를 분명히 분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내게 세속적 복을 주는 신만이 선하고 참된 신이라고 속이고 있는 우상을 버리고
오직 나에게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되
그 선함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아버지가 되셔서 결국은 내게 참된 영적 복으로 결실해 내시는 분임을
오늘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