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지면 해설 없이 시작)
1. (LD)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183 1악장 (9분)
Leonard Bernstein 지휘 Wiener Philharmoniker
* 도입 : 범상한 사람들의 대표(챔피언)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에 대해 갖는 찬탄과 질시의 이중적인 의식. "신은 왜 이런 추잡하고 천박한 놈을 자기의 도구로 삼으셨을까?" 영화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문학적 상상의 결과였다. 영화 속의 묘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살리에리는 누구인가? Antonio Salieri (1750. 8. 18∼1825. 5. 7) : 40곡의 오페라(아르미다, 폴스타프, 세미라미데 포함) 작곡. 1788년 비인 궁정악장 취임, 모차르트 생전에는 모차르트보다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 음악가였음.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의 스승. 베토벤은 살리에리로부터 노래 작곡법과 이태리어 가사 활용법을 배웠음. 베토벤은 하이든보다는 살리에리를 자기의 스승으로 여겼다. 1809년 살리에리를 방문했다가 출타 중임을 알고 베토벤이 남긴 메모에는 '당신의 제자 베토벤'이라고 쓰여져 있었음. 반면 베토벤은 "나는 하이든한테서는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5살 때 고아가 됨.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부속성악학교에서 배웠다. 그 곳 궁정악장 가스만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766년 가스만과 함께 비인에 갔고, 70년에는 여행중인 가스만을 대신하여 비인 궁정극장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74년까지 9곡의 오페라를 작곡. 74년 가스만이 별세한 후는 비인 궁정작곡가 및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자가 되었다. 75년 Theresia Helferstorfer(1755-1807)과 결혼, 8명의 자녀(7녀1남, 딸 둘만 남음).
77년 대표적인 오페라 Tarare를 파리 공연을 위해 작곡. 78년 이탈리아에 가서 베네치아, 로마, 밀라노 등 각지에서 자작의 오페라를 공연하였다. 이 무렵부터 의식적으로 글룩의 오페라 양식을 흡수하게 되었다. 1788년 빈 궁정악장이 되었으나 1790년 이후는 오페라 지휘를 그만두고 궁정합창단 지휘에 전념하였다. 1818년까지 <음악예술가협회>의 지휘자를 겸임하였다. 24년에 은퇴. 그는 빈 악단의 중진으로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등과는 친구 관계였지만 모짜르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독살설까지 유포되었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임종을 앞두고 강력히 부인할 필요 느꼈다고. 40곡이나 되는 오페라는 독일풍으로 씌어졌고 선율 및 극적 표현이 뛰어나며 특히 성악처리가 훌륭하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그의 오페라는 'Axur'라는 작품. 오페라 외에도 미사, 오라토리오 등의 종교음악, 기악곡도 남겼다. 이 분의 형 Fransisco도 작곡가였음.
2. (영화 VHS) 맨 앞 부분(K.183 나오는 대목) + 살리에리 독백(K.361 설명) (3-4분)
* 감상곡 소개--> 살리에리의 독백으로 대신함
3. (LD : Track 3-4) 모차르트 세레나데 Bb장조 <그란 파르티타> K.361 중
3악장 아다지오와 4악장 메뉴엣 (11분)
- Frans Brueggen 지휘 Orchestra of the 18th Century
* 감상곡 소개 --> 1773 가을 비인을 잠시 방문했을 때 작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만나기 전에 쓴 작품. 주제는 살리에리의 오페라 중 'Mio caro Adone'
4. (CD) 모차르트 작곡 살리에리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G장조 K.180 (7분)
피아노 : Walter Gieseking
* 해설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살리에리는 살인범인가?>
독살설 첫 언급한 공식 기록 : 1791. 12. 31 Berlin의 한 신문 "모차르트는 죽었다. 그는 프라하에서 돌아올 때 이미 앓고 있었다. Dropsy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비인에서 죽었는데, 시신이 부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독살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살리에리는 독살설 부인. 1823년 10월 베토벤의 제자인 Ignaz Moscheles가 비인 방문 중에 살리에리 만남 (Alservorstadt 교외의 종합병원) :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게 분명하지만,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하겠네. 내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그 터무니없는 소문 말일세. 아니야, 악의로, 순전히 악의로 꾸며낸 얘기야. 모셸레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게. 곧 죽어 갈 늙은 살리에리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말일세..."
전기작가 Hildemeier도 독살설 부인 : 얼마 뒤인 그해 11월 살리에리는 자살 기도하지만 실패. "1825년 5월 사망 직전 그가 독살을 시인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가 이런 얘기했다면 미쳐서 한 소리겠지. 하지만 그는 미치지 않았다. 따라서 믿기 어려울운 얘기인 듯...",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경쟁심과 갈등은 문학의 산물이다. 살리에리는 사회성이 있는, 타협적인 인물이고, 진지한 음악인으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리스트의 스승이었다." (Hildemeier가 쓴 전기)
부인 콘스탄체의 증언 (1829년, 전기작가 Novello와의 인터뷰) : 모차르트는 죽기 전 몇 주 동안 자기가 독을 먹은 것 같다고 몇 차례 얘기했다. "누군가 내게 aqua tofana를 먹였다" (참고 : aqua tofana : 서서히 효력을 내는 맹독성 약물. 17-18세기에 흔했음. Teofania di Adamo라는 발명자 이름 따서 지음)
아들 칼 토마스의 증언 : "아버지의 시체가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독살설을 입에 올렸는지는 불분명." "살리에리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했다는 말과는 달리 (독살설)을 믿지 않고 있다." Mary Novello와의 인터뷰(1829)
유족들의 증언에 대한 해석 : 시간이 흐르면서 독살설은 사라졌으나 "모차르트 자신이 독살로 생각했다"는 콘스탄체의 증언으로 독살설은 1820년대에 되살아남. 그러나 살리에리는 1781 모차르트가 비인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확고한 명성을 가진 요셉 2세의 신임을 받는 궁정 음악가. 1985년 복원된 오페라 는 훌륭한 작품. 그러나 살리에리는 진부한 음악가에 불과하고 모차르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게 후세의 평. 아무튼 1781-1791 시기에 살리에리의 지위는 모차르트에 비하면 확고하고 탄탄했다. 모차르트 입장에서 볼 때 살리에리는그는 가시같은 존재였다. 끝없는 음모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필요 이상을 음해하여 비참하게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여러 증언이 일치하는 점은 살리에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차르트를 실제로 질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Hildemeier의 전기 172-173) 비인의 언론인 Johann Schickh의 결론 : "내기를 해도 좋다. 살리에리의 말이 맞다. 모차르트가 죽은 상황을 종합하면 분명하다."
베토벤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베토벤은 살리에리 존경했으나 독살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미상. 조카 칼 :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확신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다." 제자 안톤 신틀러 : "살리에리는 파멸했다. 그는 자기가 모차르트에게 독약을 먹였고 모차르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냐, 그는 고백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5. (영화 VHS) 살리에리가 'Requiem' 받아 쓰는 장면 / 장례식 장면 (3분)
영화 속의 이 장면은 완전한 허구. <레퀴엠>을 주문한 사람은 Walsegg-Stupach 백작. 그는 자기 젊은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이 곡을 의뢰했다. 자기 작품인 것처럼 장난치기 위해 익명으로 의뢰했으며, 검은 바지에 회색 코트를 입은 메신저는 비인 시장의 아들이자 Stupach네 가정음악회에서 늘 연주하던 Anton Leitgeb이라고 함. Lacrimosa까지 총보 완성. 나머지 스케치는 제자 Su"ssmayr가 완성.
그렇다면 사인은? 하이든의 전기를 쓴 이태리의 작가 Siuseppe Carpani : "모차르트가 독살됐다고? 증거가 있는가? 없다. 모차르트는 infectious rheumatic fever에 걸려 죽었고 그 시기에 다른 사람들도 이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많다. 두 名醫 Closset과 Sallaba의 진단이 근거없는 얘기란 말인가?" 최종적인 사인은 Uremic Coma였다고 후세의 의학자들 의견 일치. 몇 가지 병의 마지막 단계를 일컬음. 수은 독살이 이 증상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 어떤 사람은 severe miliary fever, 또는 rheumatic inflammatory fever가 사인이었다고도 함.
"수은 독살설은 19세가 말까지도 남아 있었다." --> 푸시킨의 장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30), 이를 대본으로 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또는 음악 심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97)'...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독살설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위독한 줄 알면서도 과로를 유도하여 그의 죽음을 앞당기려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고해에서조차 살리에리는 자기가 살의를 갖고 있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참고 : Rimsky-Korsakov's 'Mozart and Slieri', a psychological musical drama(1897). In this work Rimsky-Korsakov quotes several tunes of Mozart. One, 'Batti batti o bel Masetto' from Don Giovanni, and parts of Requiem D minor including Lacrimosa, and a piano work, which I guess, is Mozart's original composition but the title or Kochel number I could not tell. In the drama Mozart is supposed to play this tune, so I think it IS Mozart's work, but I don't know what it is.
Anyway, this drama served as an inspiration of Peter Schaffer's play 'Amadeus' and which was followed, after considerable transformation, by the scenario of famous film 'Amadeus'.
Following is the explanation of the work 'Mozart and Salieri' in the CD (Label : Fidelio, Stoyan Angelov conduction Bulgaria Nat'l Radio Symphony Orch, etc) :
Pushkin's tragedy 'Mozart and Salieri', which served Rimsky Korsakov as a model for this opera , is distinguished by its clarity and conciseness of its exposition. It depicts the last few hours of Mozart's life - his poisoning by Salieri. The author drew his inspiraton from legend, according to which Salieri - as is well known, caused Mozart much anguish - poisoned him. The legend is perpetuated in the more romantic biographies of Mozart.
Rimsky-Korsakov follows Pushkin exactly, the first act being built around Salieri's two monologues, with two scenes depicting Mozart and Salieri interposed, and Mozart improvising on the piano in a central episode.
The second act has a beautiful and expressive introduction constructed around the lyrical theme of Mozart's piano improvisation, and the following dialogue recounts the story of the mysterious man in black, who gave Mozart an order to compose a Requiem. Salieri tries to distract Mozart and mentions the name of Beaumarchais. This raises the unexpected question "Is it true Beaumarchais has poisoned somebody?" followed by Mozart's remarkable phrase : "Beaumarchais was a genius.. Geniality and felony are incompatible."
After drinking the poison Mozart plays a fragment of his Requiem, but then he is taken ill. This tragic moments of farewell are depicted with exceptional poetry
and inner depth by Rimsky-Korsakov. The closing monologue is the logical completion of Salieri's image, leaving the question unresdued as to whether he is a genius or not.
Mozart dies, Salieri remains. However Rimsky-Korsakov gives the image of Mozart's continuing existence through a skillfully inserted fragment of Requiem, convincing us once again of the undoubted immortality of Mozart's music)
6. (CD : track 15, 19, 24)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일부만...) (8분)
Mark Ermler 지휘 Soloists and the USSR Bolshoi Theatre Orchestra
Mozart : Alexander Fedin(tenor), Salieri : Yevgeny Nesterenko(Bass)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1 (비인 정착에서 피가로의 결혼 초연까지) : 비인 정착 초기에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 지위와 경제력에서 비할 수 없이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세속적인 면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할 필요가 없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모차르트를 두려워 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살리에리 쪽에서는 모차르트를 경계한 결과 일종의 '음모'를 꾸미려 했다고 짐작할 수 있으며, 모차르트 쪽에서도 살리에리에 대한 경쟁심과 경계심이 자라나고 있었음을 다음 편지로 확인할 수 있다.
모차르트 : "뷔르템베르크 공주 일은 끝났습니다. 황제가 가로막았어요. 그는 살리에리만 좋아해요. 막시밀리안 대공은 그녀에게 나를 추천했고, 그녀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면 꼭 나랑 하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데 황제가 '노래 지도'가 중요하다며 살리에리를 추천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1781. 12. 5 아버지에게 쓴 편지. 방종하게 지낸다고 아버지한테 혼나고 쓴 답장. 콘스탄체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 위주)
아버지 레오폴트 : "보노가 죽으면 살리에리가 궁정악장이 될 거고, 슈타르처가 살리에리 자리를 메울 거고, 슈타르처가 있던 자리는 아직 후임자가 안 정해져 있다. (네가 그 자리를 노려라)" (날짜 미상)
모차르트 : "... 공주에게 나는 '선생님'(maestro)이고 이 점, 제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아버니는 모르실 거에요. 그녀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는 살리에리는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누구'와 함께 저에 대해 험담하는 것 뿐이지요. 거의 확실해요! 하지만 황제도 저를 이해하시고, 적어도 지난번 레슨 때 공주가 제 수업을 좋아했다는 것은 확실해요... " (1782. 8. 31 아버지에게 쓴 편지. 콘스탄체와의 결혼 생활을 보고하는 내용 위주)
전기작가 휴 오터웨이 : "살리에리는 모차르트 음악을 듣자마자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꼈을 것" (Hugh Ottaway : Mozart p.99)
모차르트 : "이 이탈리아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정중하게 대할 거에요.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그 사람이 살리에리 편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서는 아무 것도 나올 게 없어요." (1783, 5. 7 아버지에게 쓴 편지)
아버지 레오폴트 : "<피가로의 결혼>이 28일에 초연될 예정이다. (실제로는 5월 1일 초연됨). 이 작품이 성공한다면 아주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왜냐, (이 오페라에 대해) 놀랍도록 큰 음모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살리에리와 그의 계파가 다시 '하늘과 땅을 오가며' 준동하고 있어. 두셱이 최근 내게 말하기를, 네 동생이 이 모든 음모에 직면하게 된 것은 그의 놀라운 재능과 능력이 너무나 높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1786. 4. 18 레오폴트가 난네를한테 쓴 편지)
대본 작가 다 폰테 : 발레에 대한 시비 등 영화 장면은 다 폰테의 회상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모차르트와 의기투합했고 대체로 모차르트 편이었다. ('Mozart' by Peggy Woodford pp.112-113에 인용된 편지. 번역 생략)
7. (영화 VHS) <피가로의 결혼> 발레 장면 및 경연 (4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2
<피가로의 결혼> 초연한 시점부터 두 사람의 갈등, 정확히 말해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증오가 노골적으로 증폭된 징후가 있다. 살리에리와 리기니는 오페라 작곡가로 당시 모차르트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시즌 첫 공연 작품의 영예를 얻기 위한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황제는 두 오페라를 동시에 공연하여 겨루도록 했고, 결국 <피가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차르트는 <피가로>가 개막 작품으로 선정되지 않으면 악보를 불질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 경연에서 모차르트는 이겼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황제가 살리에리의 손을 들어주는 장면은 실제와는 반대!
전기작가 Stanley Sadie : "1787년 1-2월 <피가로>의 프라하 공연이 대성공을 거둔 뒤 프라하의 Impressario Bondini는 가을에 공연할 새 오페라를 주문했고, 비인에 돌아온 모차르트는 다 폰테에게 새 작품의 대본을 요청했다. 다 폰테는 살리에리와 Martin y Soler(스페인 사람. Martini신부 아님)와도 대본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돈지오반니> 작업에 즉시 착수했다." ( p.112)
콘스탄체 (1829년, 전기작가 Novello와의 인터뷰) : "살리에리는 자기가 원래 쓰려다가 '음악적 창조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내던졌던 <코시 판 투테>를 모차르트가 완성했기 때문에 적대감이 더 증폭됐다." 모차르트 자신도 <코시 판 투테>에 대한 살리에리의 음모 언급. "허사로 돌아간 살리에리의 음모를 모두 말해 주겠네." (1789. 12. 29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쓴 편지에서) --> 그러나 독살설로 연결시키는 건 논리적 비약.
살리에리는 위의 일이 벌어질 당시인 1788년 비인 궁정 악장으로 취임, 지위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모차르트에 비해 계속 잘 나가고 있었다.
모차르트 :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에서, 내 작품에 대한 사랑에서, 그리고 나의 재능에 대한 확신에서 감히, 그러나 정중히 요청합니다. 제2 궁정악장에 취임하기를 원한다고 황제에게 말씀해 주세요. 유능한 궁정악장 살리에리는 종교음악 양식에 한번도 헌신한 바 없는 반면 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 스타일의 음악을 익숙하게 다루어 왔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1790. 5 모차르트가 비인의 프란츠 대공에게 쓴 편지. , selected and edited by Hans Mersman)
(감상곡 설명 : 스토리와의 연관성 생각하지 말고 그냥 듣기로!)
8. (LD)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3막 발췌
(산들바람의 노래, 결혼식 장면) (12분)
Peter Sellars 연출, Craig Smith 지휘 Wiener Symphoniker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3 : 1786년 초 모차르트의 가극(Singspiel) <극장지배인> K.486이 완성됐다. 쇤부른 궁의 오란제리에서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의 작품과 함께 초연.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총독의 방문을 계기로 경연. 이 경연은 살리에리 승리로 끝났음. 상금 모차르트는 50 ducats, 살리에리는 100 ducats. 모차르트는 일반 악사들과 똑같은 개런티를 받았다고 함. Harnoncourt의 재미있는 CD가 있음.
10. (CD : track 7, 11) 모차르트 <극장지배인> 발췌 (9분)
Karl Boehm 지휘 Staatskapelle Dresden / 또는 Harnoncourt 지휘
지휘자 Harnoncourt : "Mozart's Schauspieldirekor and Salieri's Prima la Musica were composed for the same occasion. Both were commissiobed by the emperor Joseph 2 and dealt with the same subject - the creation of an opera and the establishment of an opera company. Both works had their premieres on 7th February 1786 in the orangery at Schoenbrun. Just as the main topic of the two little operas highlights and most cunningly parodies the competetion between rival singers, so these two works represent in themselves a competetion unique in the history of music theatre. By imperial decree the newly created German opera, the 'Singspiel', pitted itself, as it were, against the Italian opera buffa to prove its viability. Salieri had an advantage in that his librettist (Giambattista Casti) was vastly superior to Mozart's(Stefanie). This was why the plan of the Emperor, who presumably was hoping for Mozart and German opera to win the day, failed. The orangery was a long, narrow building with small stages at each end, on which the orchestras were seated. The audience was placed between them like so many umpires. They only needed to turn round. THE EVENING WAS A TRIUMPH FOR SALIERI AND AN ITALIAN OPERA. THE SCHAUSPIELDIREKTOR WAS A FLOP."
11. (CD) 살리에리의 중 1 대목 (5분) - N. Harnoncourt 지휘
(CD 못 구할 경우)
살리에리 작곡 플롯과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C장조 중
1악장 Allegro Spirituoso (7분)
- Claudio Simone 지휘 I Solisti Veneti
<아마데우스>에서 가장 훌륭한 장면은 <돈지오반니> 대목일 듯... 아버지에 대한 모차르트의 콤플렉스를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음.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됨. <돈지오반니> 서곡과 '기사장의 심판' 대목 D단조의 불협화음은 <아마데우스> 영화 전편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12. (영화 VHS) <돈지오반니> 피날레 (5분)
13. (DVD) <돈지오반니> 하이라이트 (15분)
-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 빈필. 안톤 데르모타의 , 리자 델라 카사의 , 그리고 기사장의 심판 장면.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결국 화해했는가? 모차르트의 마지막해인 1791년 두 사람은 화해했는가? 모차르트는 비인의 궁정에서 멀어졌고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잊혀지기 시작했다. 황제 요젭 2세가 죽은 뒤 모차르트는 궁정 오페라를 쓰라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 살리에리는 궁정 악장이었다. 이제 두 사람의 세속적인 경쟁은 이미 끝났는가? 그래서 더 이상의 경쟁과 반목도 불필요해 졌는가?
전기 작가 Wolfgang Hildesheimer : "1790년 이후 모차르트는 간과됐을 뿐 아니라 냉대받았다. 바이글과 살리에리는 연주생활을 계속했지만 모차르트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행사든 파티든... 연주자로서 생명 끝났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갈등으로 해석할 사건도 아직 남아 있었다. <황제 티투스의 자비> 작곡을 모차르트가 맡게 된 경위에 대한 증언이 엇갈리고 있는 것. 당시 대관식의 주인공이었던 레오폴트 2세는 '최고의 작곡가' 살리에리에게 이 오페라의 작곡을 맡기려 했는데 살리에리가 너무 바뻐서 모차르트를 시켰다고 알려져 있음. 그 실상에 대해 살리에리와 다 폰테는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살리에리 : "이탈리아 오페라 회사 감독 가르다소니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5번이나 프라하에서 비인에 왔는데... (바뻐서 응하지 못했다)"
다 폰테 : "레오폴트 황제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살리에리는 신경쓰지 말아라. 그 녀석과 카발리에리(살리에리의 애인)의 음모를 알고 있다. 살리에리는 자기네 성공 이외에는 신경을 안 쓰는 이기주의자다. 그는 너의 적일 뿐 아니라 모든 작곡가들의 적이다. 그는 나의 적이기도 하다. 왜냐, 그는 내가 자기를 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그의 계집을 내 극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쓴 편지)
그러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소탈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차르트가 대중들로부터 잊혀지기 시작한 바로 이 시점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겨 지휘하고 연주한 것이다.
당시 음악회 포스터 :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791년 4월 16, 17일 Lenten 연례연주회를 지휘했다. 첫 곡은 모차르트가 최근에 작곡한 대교향곡..." (어느 곡인지 미상. 전기작가 Robbins Landon에 따르면 40번 G단조 클라리넷 포함 version이라고... <1791, Mozart's Last Year> by Robbins Landon).
1791. 9. 6 St Vitus 성당에서 열린 대관식 미사에서 살리에리가 지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 C장조 K.317, 그리고 K.337(?), Offertory Motet Splendete te, Deus K.Anh.121 (Thamos, King of Egypt K.345의 'Schon weichet dir, Sonne를 편곡한 것). 1791. 9. 8 Convent 교회에서 살리에리 지휘 궁정악사들이 다음 곡들 연주. Missa Brevis C장조 K.258 (세 곡의 대관식 미사 중 가장 짧은 곡). 1791. 9. 12 보헤미아 여왕 마리아 루이사 대관식 연주회 St Vitus 성당에서. 살리에리 지휘 궁정 관현악단 K.337과 K.317 연주.
14. (영화 VHS) 마술피리 공연 중 밤의 여왕 아리아 (3분)
<마술피리> 공연장 분위기 : 모차르트는 장모도 공연장에 잘 모셔 갔다. 밤의 여왕을 맡은 사람은 아내 콘스탄체의 큰언니 요제파 베버였다(작은 언니 알로이지아 베버는 모차르트가 한때 좋아했었음. 세 자매가 모두 성악을 했음), 파파게노는 대본을 쓴 엠마누엘 시카네더가 맡았는데 그도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공연중에 모차르트가 그를 놀려먹은 일화 --> 모차르트는 시카네더가 노래할 때 장난기가 발동, 글로켄슈필을 치면서 노래 중 쉼표 자리에 arpeggio를 갑자기 넣어 시카네더를 놀라게 하고, 그 다음에는 일부러 안 넣어서 다시 약을 올림. 당황한 시카네더가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자 모든 사람이 폭소를 터뜨렸음. 당시 청중들은 파파게노가 들고 있던 종을 직접 연주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종 치는 시늉만 한 게 들통난 것. 모차르트는 대본 작업에도 참여. Pa-pa-pa... 대목은 원래 Papagona!, Papageno!였는데 모차르트의 아이디어로 Pa-pa-pa-pa...로 바꿈. 그렇다면 <마술피리>에 대한 살리에리의 실제 반응은?
모차르트 : "어제 13일(목) 저녁 6시, 나는 살리에리와 카발리에리를 모시러 마차를 보냈고, 박스로 그들을 모시고 갔다. 그 뒤 카알과 장모를 모시러 서둘러 마차를 또 보냈다... 그 두 분이 얼마나 내게 친절했는지 모를 걸... 그들은 나의 음악 뿐 아니라 책과 모든 것을 좋아했어요. 둘은 입을 모아 얼마나 훌륭한 오페라인지 모른다고 칭찬했어요. 가장 위대한 군주를 위한 가장 위대한 축제에서 공연해도 좋겠다고...그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유쾌한 작품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번 보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서곡이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합창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브라보', '벨로'를 외치지 않은 곡이 없어요... 공연이 끝나고 그들을 바래다 드린 뒤 카알과 함께 Hofer네 집에서 식사를 했지요...." (10월 14일 콘스탄체에게 쓴 편지. 이하, 아들 카알 얘기)
* 감상곡 유도...
15 (LD)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1막 아리아 "O zittre nicht..." (5분)
Soprano : Gruberova / W Sawallish 지휘 Bayerische Opera
16. (영화 VHS) Requiem 중 Lacrimosa 장면 (3분-4분)
모차르트 생시에 대한 마지막 증언 : "모차르트는 죽기 전날 몇몇 친구들과 Lacrimosa를 연습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 친구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마술피리> 파파게노의 아리아를 불렀으나 연습은 계속되지 못했다...."
장례식 : "모차르트의 장례식은 St Marx 교회 공동묘지에서 치러졌는데, 오토 얀의 전기에 따르면 현장에 살리에리, 쥐스마이어, 반 슈비텐과 두 명의 다른 음악가(Albrechtsberger, Hofer, Lange=처남)가 참석했다. 폭풍과 눈이 내렸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날씨는 맑고 포근했다."
* 마지막 감상곡 : 영화 <아마데우스> 클로징으로 쓰인 곡은 피아노협주곡 20번 D단 조의 2악장 로만체... 영화에는 이 곡의 1악장, 22번 Eb의 3악장 나옴. 영화에 안 나오는 더 좋은 곡을 듣는 것도 좋을 듯...
17. (LD)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A장조 1악장 (12분)
피아노 : Zoltan Kocsis
협연 : Jiri Belohlavek 지휘 Virtuosi di Praga
첫댓글 싸이트 소개의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싸이트에서 음악감상을 하면서 읽어 보시면 더욱 효과가 있을듯 합니다. 모짜르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