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북 (tortoise)
척추동물 파충강(爬蟲綱) 거북목 동물의 총칭.
분류 : 척추동물 파충강(爬蟲綱) 거북목
한자어로 거북을 귀(龜), 자라를 별(鼈)이라 하였다. 《물명고》에 거북은 머리 ·꼬리 ·네발을 한꺼번에 감출 수 있다 하여 장륙(藏六)이라 하였고, 한글로 거북 ·거복(居福) ·남성(南星)이라 하였다. 또, 거북류를 개충(介蟲)에 분류하였다. 《재물보》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개충류 중에서 거북이 으뜸이라 하였고, 《자산어보》에서는 바다거북을 개충에 분류하였다. 거북의 현생종은 12과 240여종이다. 한국에서는 바다거북과의 바다거북, 장수거북과의 장수거북, 남생이과의 남생이, 자라과의 자라 등 4종이 알려져 있다.
파충류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부터 화석으로서 알려졌다. 이들 화석종은 현존하는 거북류와 별 차이가 없으며 진화의 과정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거북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에우노토사우루스(Eunotosaurus)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으며, 늑골이 편평하고 둥그스름하게 몸을 둘러싸고 있다. 거북류는 특수화된 피부와 내골격과의 결합으로 이루어졌고, 등딱지를 가지는 등 다른 파충류(뱀 ·악어)와는 구별된다. 현존하는 거북의 대다수는 늪에 살면서 육지에서도 생활하는 양서적(兩棲的)인 것들이다. 이 상태가 2억 년 동안의 거북의 대표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용 ·봉황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고 있어 집을 지으면서 상량(上樑)할 때 대들보에 거북을 뜻하는 하룡(河龍) 또는 해귀(海龜)라는 문자를 써 넣었고, 비석에 귀부(龜趺)를 받쳐 장생(長生)과 길상(吉祥)을 염원하였다. 《삼국사기》의 구지가(龜旨歌)는 제왕의 출현과 관련하여 매개자(媒介者)의 의미를, 곤경에 빠진 주몽(朱蒙)을 도운 자라는 신의 사자(使者)라는 의미를 가진다. 무속 전승에서는 거북이 백제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하며, 귀복(龜卜)으로 길흉과 운세를 점치고 있다. 거북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풍습이 있다. 거북을 보은(報恩)하는 동물로 또는 신성한 존재로 한 《숙향전》, 용왕의 사자로 등장하는 《별주부전》 등의 설화가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는 가락국의 김수로왕 탄생설화에서는 거북은 제왕의 출현과 관련한 메시아의 의미로 쓰였고, 곤경에 빠진 주몽(朱蒙)을 도운 자라 하여 신의 사자(使者)라는 상징성도 있다. 무속 전승에서는 거북이 미래를 예언한다고 해서 귀복(龜卜)으로 길흉과 운세를 점치는데 고대 중국에서도 거북 등딱지를 태워 점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거북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長壽)를 상징하며, 반드시 은혜를 갚는 동물로서 《숙향전》《별주부전》 등의 설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거북은 빠르지도 않고, 사납지도 않으며 용맹스럽지도 않다. 신체적으로 공격에 유리하게 된 부분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방어에만 유리한 몸을 가지고 있다. 남을 공격하거나 뺏을 줄 모르고 오로지 제것으로만 생활하는 아주 서민적이며 평화로운 동물이 거북인 것이다. 서구인들의 상징을 부여하여 좋아하는 동물들이 대게 사납고 공격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동물은 대게가 온순하고 비공격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거북과 같은 동물은 저 넓은 바다에서 떠내려와 뭍으로 올라오는 상징성이 마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어떤 전령사같은 이미지에 부합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지가에서 보듯 왕의 출현을 예고하는 상징적 동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데 이 거북은 우리의 신선사상에서 그 사상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동물인 것 같다. 우리의 신선사상은 우리 민족이 자연발생적으로 체득한 민족정신임을 감안할 때 거북이라는 동물은 우리의 정신세계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매우 의미있는 동물이다
(3) 학 (鶴)
두루미목 두루미과의 대형 조류.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202호
지정연도 : 1968년
분류 : 조류
두루미 (동물학·동물병) 두루밋과의 새. 대형의 겨울새로, 목·다리·부리가 매우 긺. 온몸이 희며, 이마·목·다리와 날개 끝은 검고 부리는 녹색임. 머리 꼭대기에는 살이 붉은빛으로 드러나 있음. 천연 기념물로서 보호조임. 단정학. 백두루미. 백학(白鶴). 선금(仙禽). 선학(仙鶴). 야학(野鶴). 학.
한국에서는 평화와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 소나무 위의 그림이나 자수 등에서 볼 수 있으나 실제로 이 그림은 두루미[鶴]가 아니라 황새가 잘못 그려진 것이라 한다. 두루미의 수명은 지금까지 검은목 두루미에서 1986년이 최고 수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4)황새 (white stork)
황새목 황새과의 조류.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199호
지정연도 : 1968년
소재지 :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및 북아메리카의 북부를 제외한 전세계에 분포
분류 : 조류
규모 : 몸길이 약 112cm
황새가 한국에서 예로부터 흔한 새였다는 것은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황새를 송단(松檀)의 황새 또는 관학이라 하여 그림과 자수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능히 알 수 있다. 서구의 황새는 신화나 우화에서 모두가 행복과 끈기, 그리고 인내를 상징하는 새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아직도 유럽 여러 나라에 드물지 않게 살아 남은 것은 전설에 의한 보호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황새가 오면 아기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 출산을 축하하는 카드 중에 흔히 아기가 든 광주리를 입에 물고 나는 황새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구의 황새는 신화나 우화에서 행복과 끈기, 그리고 인내를 상징하는 새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독일 민족에게는 중세초기부터 '길조'로 통해왔다.
예로부터 학(鶴, 두루미)은 고고한 인품과 어떤 신선함의 상징이었으며 목이 길어 애처로움이 있고, 흰털과 검은 털이 극명이 대비되어 그 성격이 분명하여 잡것이 섞일 겨를이 없는 모습을 지녀 우리 민족이 가장 귀히 여긴 동물 중 하나였다.
학(鶴)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이른 바 교통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신선이 학을 타고 날아 다닌다하여 일찍부터 학을 선학(仙鶴), 혹은 선금(仙禽)이라고 하였으며 승화와 초월을 의미하였고, 천년 이상을 불로장생한다 하여 십장생(十長生)에 포함하였던 것이다.
옛적에는 관직에 나아가면 흉배를 하게 되는데 그 흉배에도 이 학을 수 놓았다. 흉배란 일종의 계급장과 같은 것으로 왕족의 경우는 보(補), 신하의 것은 흉배라고 하는데 단학흉배(單鶴胸背, 학 한 마리를 수놓은 흉배)는 당하관이하 문관용으로 흔히 북청색(北靑色) 운문단(雲紋緞) 바탕에 불로초를 입에 물고 나래를 활짝 편 학의 모습을 수놓아 덕망 높은 문관을 상징하였고, 사이사이에 물방울, 불로초, 칠보문양(七寶紋樣), 파도, 만자(卍字)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쌍학흉배(雙鶴胸背, 학 두 마리를 수놓은 흉배)는 당상관 이상 문관용인데, 흔히 홍색 소화단(小花緞) 바탕에 불로초를 입에 물고 나래를 활짝 편 쌍학을 중심에 두고 주위에는 구름을 비롯하여 바위, 물결, 파도, 보전문양(寶錢紋樣)등을 수놓았다. 이러한 흉배는 혼례식 때 신랑이 착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원래 학(鶴)은 두루미를 지칭하는 것이며 이 두루미를 닮은 황새와 백로, 그리고 왜가리까지를 혼돈하여 학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하면 학과 황새는 다르며 또한 왜가리와 백로 등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학을 귀히 여기고 그 의미를 높이 두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사상 중 한 주류가 신선사상(神仙思想)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신선사상이라고 하면 중국의 노장사상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의 신선사상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근본 사상이 바로 신선사상인데 훗날 중국의 노장사상이 유입되어 서로 어울려 모호해진 부분이 없지 않으나 중국의 노장사상과는 엄연히 구분되며 단군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신선사상은 옛적 우리 민족의 우주관과 생사관. 그리고 삶의 철학을 엿보게 한다. 우리의 신선사상은 노장사상에 기반을 둔 도교와 같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고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생활철학이며 세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5) 십장생 (十長生)
- 장생 불사를 표상한 10가지 물상(物象).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말하는데, 중국의 신선(神仙) 사상에서 유래한다. 10가지가 모두 장수물(長壽物)로 자연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원시신앙과도 일치하였다. 옛 사람들은 십장생을 시문(詩文) ·그림 ·조각 등에 많이 이용하였는데, 고구려 고분 벽화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사상은 고구려시대부터 있은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으로 보아 십장생 풍이 유행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에 십장생 그림을 궐내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 후 항간에서도 십장생 그림을 벽과 창문에 그려 붙였고, 병풍 ·베갯머리, 혼례 때 신부의 수저주머니, 선비의 문방구 등에도 그리거나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