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을 비는 농경의례 소놀이굿
이두현
양주 소놀이굿은 경기도 양주 일대에 전승되는 굿이다. 이 굿은 주로 기호지방(畿湖地方)
과 해서지방(海西地方)에서 연희되어 왔음을 알 수 있는데, 오늘날 해서지방에는 월남한
평산(平山) 소놀음굿이 있고, 기호지방에서는 양주군(楊州郡) 일대에만 전승되고 있다.
양주군 노해면(蘆海面) 출신으로 1937년에 작고한 무부(巫夫) 팽수천(彭壽天,1901-1937)에 의해 이 놀이가 양주 일대에 퍼졌다고 하는데, 이것이 다른 지방에서 배워 온 것인지 아니
면 양주지방 무속(巫俗)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팽수천은 어려서부터 무당인 작은어머니의 굿을 따라 다녀서 무가(巫歌)를 잘 알았고, 나중에는 작은어머니의 신딸인 이씨(李氏)와 재혼하여 무당 서방이 되었다. 폐결핵으로 항상 몸이 약한 재사형(才士型)이었던 그는 염불․타령․소놀이굿 외에도 수많은 무가․잡가를 잘했다고 한다. 그에게서 소놀이굿을 배운 사람들에 의해 전승되는 가사(歌詞)를 보면 대단히 세련된 것이어서, 양주 공립보통학교를 삼년 중퇴했다는 그의 학력에 비추어 전적으로 그의 창작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디서 또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이제는 알 수 없으므로, 그 작자와 구체적인 전승과정 및 연대를 알 수가 없다.
이 소놀이굿에 대한 기록은 1964년 정월, 이월, 삼월 세 차례, 1967년 칠월과 팔월 두 차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친 면접과, 두 차례의 연희 관찰을 통해 얻은 결과이다.
처음 1967년 십이월에 양주 소놀이굿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상신(上申)했으나 결정을 보지 못하고, 그후 구 년이 경과된 1975년 십이월에 다시 상신하였으나 그때는 우용진(禹龍辰)을 비롯한 대부분의 원마부역의 연희자가 사망하고, 우용진에게 배워 곁마부역을 맡던 조만봉(趙萬奉)과 그의 곁마부역을 맡은 김인기(金仁起)만 생존했다. 그러나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 칠십 호로 재정될 때는 조만봉마저 사망한 뒤여서 원마부로 김인기, 악사로 고희정(高熙貞) 두 사람을 보유자로 지정했다.
1.역사적 유래
인류가 우마(牛馬)를 가축으로 쓰기 시작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착 농경이 일찍 시작되었던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기원전 육천오백 년경에 이미 보리 재배와 소와 말의 사육이 시작되었고, 이라크의 자르모(Jarmo)에서 발견된 가축화한 소의 뼈는 약 오천 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인류 문명의 여명기로 보는 기원전 오천 년경에 속하는 하남(河南)․감숙(甘肅) 방면의 앙소기문화(仰韶期文化) 유물 속에서 소의 뼈가 발견되었다.
고대 오리엔트와 인도 그리고 중국의 고대 문명권에서 소는 말보다 앞선 중심적인 가축으로서 농경 및 농경의례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왔다. 고대 중국에서의 말은 주로 왕조고가 귀족의 교통 및 수렵․전투용 동물이었으나, 소는 대지(大地)의 동물로서 농업용으로 길들여져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이천여 년 전에 소가 사육되었고 농경 및 식용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나, 아직은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삼 세기경의 한반도 내의 여러 부족 생활을 기록한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동이전(東荑傳)을 비롯한 기타 중국 문헌을 보면, 부여에서는 제천 의식에 소를 희생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신라에서는 지증왕 삼년(502년)에 우경법(牛耕法)을 장려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보인다. 고려에는 목우장(牧牛場)을 설치한 바 있고, 조선초에는 조정에서 종우(種牛)를 소유한 바도 있었다. 소와 더불어 이루어진 농경의례는 고려 성종 칠년(998년) 중국의 토우의례(土牛儀禮)를 받아들인 기록에 보이고, 우리나라에서 토우(土牛)가 목우(木牛)로 바뀐 예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입춘조(立春條)에 보인다. 중국에는 농민들이 입춘(立春)에 행하는 풍습으로, 토우를 때리고 깨뜨려서 홍수와 가뭄의 재해를 접치고, 술과 안주로 토신(土神)을 제사 지내는 행사가 있는데, 이것을 타춘(打春)․편춘(鞭春)․편우(鞭牛)라 한다. 이것은 봄의 부활을 맞이하여 풍요한 힘의 상징인 토우를 잡는 주술 종교적 성격을 가진 행사이며, 널리 동아시아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해마나 열리던 디오니소스 제전에도 바우포니아(Bouphonia)라 불리던 수소 희생(oxmurder)이 있었다. 장중한 의식 속에서 소를 도살하고 참여자 모두 고기를 먹지만, 죽은 소는 가죽 속에 짚을 넣고 다시 꿰매어 경작할 때처럼 쟁기에 맨다. 죽은 다음의 부활이 따른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번식력과 생명력의 표시이며, 고기를 먹는 행위는 소의 힘과 생명력을 주기 것으로 소유하고 그 혜택으로 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풍습에는 제주도에서 약 오십여 년 전까지 행해졌다는 입춘굿이 있는데, 역시 목우(木牛)를 썼고, 경남 창녕군 영산의 목우희(木牛戲)도 음력 정월 보름에 행해져 왔다. 특히 해서와 기호지방에 많았던 소멕이놀이는 정월 보름과 팔월 추석에 행해졌는데, 장정 두 사람이 멍석을 뒤집어쓰고 소가 되어, 여러 가지 동작과 춤으로 농악대와 함께 동리를 돌아다니며 음식과 술을 얻어 먹는 놀이다. 이 놀이를 하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것에 기호지방의 거북놀이가 있는데, 이 역시 풍년을 비는 행사이다. 그 예로 경기도 안성군 서정리의 거북놀이는 명칭과는 달리 실제는 소와 송아지가 등장했고, 육십여 년 전까지 행해졌다고 한다. 양주 소놀이굿은 이러한 원시적인 소멕이놀이와 거북놀이에서 발생하여 오늘의 형태로 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상에서 소놀이굿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농경의례에서 살펴보았는데, 소놀이굿 발생에 대해서 현지 연희자들이 구전하는 바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양주지방에서 신산(神山)으로 여기는 감악산(紺岳山)감악사(紺岳祠)에서 나왔다.
2. 농경의례의 하나로 풍년을 비는 데서 나왔다.
3. 소장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
4.궁중의례에서 흘러 나왔다.
5. 굿의 여흥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소놀이굿 기원설의 전반적인 배경은 되지만, 그 어느 것에서도 직접 발생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소놀이굿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되는 마마배송굿이 있다. 이혜구씨(李惠求)씨가 소개한 청수골 손님굿과 왕십리(往十里)안정사(安靜寺)배송굿의 간략한 설명에서도 소놀이굿과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1. 손님굿이나 소놀이굿이 남무(男巫)나 마부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은 같고,
2. 무당과 마부와의 대화로 진행되며, 먼저 마부를 찾는 소리로 시작하고, 노정기(路程記)가 있으며,
3. 손님굿이 육갑(六甲)과 진언(眞言)을 외고 잡귀를 보냄으로써 끝나는데, 소놀이굿에서는 무당 대신 마부의 축원(祝願)․덕담(德談)에 이어 살풀이로써 놀이를 끝맺는다.
4. 손님굿이 배 모양의 옹고에다 오쟁이를 싣고 싸리말에 일산(日傘)과 기(旗)를 꽂는데 비해, 소놀이굿은 규모가 커서 장정 대여섯 명이 소로 가장하여 등장한다.
5. 소놀이굿에서는 콩을 말에 담아 바치는데, 배송굿에서는 소반에 물을 얹어 놓고 절을 할 뿐으로 그 규모가 작음을 알 수 있다.
6. 이 두 놀이가 모두 연극적인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며 놀이(연희)로서의 효과를 내고있음은 공통적이나, 배송굿이 보다 무의적(巫儀的)이고 원초적인 형태라면, 소놀이굿은 보다 규모가 크고 발전된 연희 형태이다.
이상에서 논의된 것을 종합해 보면, 소놀이굿은 농경의례인 소멕이놀이과 같은 ‘전(前)소놀이굿’형태를 바탕으로, 그 위에 ‘마마배송굿’과 같은 무의(巫儀) 형식의 도입을 계기로 삼아, 보다 발전된 형태의 소놀이굿 연희로 이룩된 것이 아닌가 상정해 볼 수 있겠다.
소놀이굿이 실제로 행해졌던 곳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양주군(楊州郡)의 은현면(隱縣面)․백석면(白石面)․주내면(州內面)․회천면(檜泉面)․남면(南面), 의정부시, 파주군의 조리면․호석면․탄현면․적성면․백학면․임진면, 연천군의 이원면․왕징면․영근면, 고양군의 신도면, 장단군의 고랑포, 포천군의 일동면.
황해도 연백군의 연백, 봉산군의 문정면, 사리원, 신계군의 신계, 곡산군의 곡산, 평산군의 평산읍, 신금천.
평남 평양.
강원 원주군.
서울의 왕십리, 노량진, 시흥.
이상은 소놀이굿의 마부를 지냈거나 과거에 구경한 일이 있는 관람자들이 소놀이굿이 행해진 고장이라고 증언한 지명이다. 이 분포 지역을 보면 소놀이굿이 대체로 기호와 해서지방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2. 소놀이굿의 특징
양주 소놀이굿은 소놀이굿․소놀음굿․소굿․쇠굿․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며, 경사(慶事)굿의 일부로서 제석거리에 이은 하나의 새로운 절차로 행해진다. 즉 환자가 생겨 악귀를 쫓거나 달래는 우환(憂患)굿과는 달리 ‘잘 되라’고 하는 경사굿이며, 농사나 사업등이 잘 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비는 굿이다. 이른바 서울지방 굿의 기본이 되는 열두 거리굿 절차는 소놀이굿이 끼어서 바뀐 것이 아니고, 다만 그 규모나 비용이 커졌을 뿐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소놀이굿을 가리켜 ‘돈 써버리는 굿’이라고도 한다.
한국 무속의 기능을 사제(司祭)․점복예언(占卜豫言)․무의(巫儀)․오락예능(娛樂藝能)의 넷으로 나누다면, 소놀이굿은 오락예능적 기능의 비중이 큰 것이며, 의례(ritual)에서 연희(drama)로 발전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먼저 연희의 과정을 보면, 소놀이굿은 제석거리에 이어 시작한다. 무당은 제석거리 복색 그대로 마루에서 안마당을 향해 서고, 잽이(악사)들은 무악(巫樂) 연주를 위해 역시 안마당을 향해 마루로 앉는다. 그리고 이 놀이의 주인공인 원마부(馬夫)는 마루 앞 봉당에 선다.
앞마당에는 고무래를 집으로 싸서 머리를 만들고 멍석을 뒤집어 쓴 소가 송아지를 데리고 선다. 이와 같이 무대가 마루에서 봉당과 앞마당으로, 주역(主役)이 무당에서 마부로 바뀐 덕담, 마부의 동작과 춤, 소의 동작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연희로서의 구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굿(巫儀)이나 판소리가 대개 무당이나 광대의 독연(獨演) 형태인 데 비하여, 소놀이굿은 마부와 무당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무당과 악사, 원마부와 곁마부, 가장(假裝)한 소의 주요 배역들과 많은 구경꾼의 참가로 이루어진다.
마부가 부르는 소리는 잡가(雜歌)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며, 극히 세련된 평민 가사체의 노래이다. 소놀이굿의 소리대목은 ‘누가 나를 찾나’를 비롯해서 이십여 가지나 되는데, 주로 소의 모습에 관한 것이기는 하나 그 다양성이 돋보인다. 소리 대목을 대략 적어 보면 아래와 같다.
1. 누가 나를 찾나 2. 마부 노정기(路程記) 3. 보물타령 4. 마부 대령 인사 5. 소의 머리 치레 6. 절타령 7. 소 뿔 치레 8. 소 귀 치레 9. 소 눈 치레 10. 소 입 치레 11. 소 이 치레 12. 소 혀 치레 13. 소 꼬리 치레 14. 소 다리 치레 15. 소 굽 치레 16. 소 모색 치레 17. 소 글 가르치기 18. 마부 복식 치레 19. 소의 굴레 치레 20. 잡곡(雜穀)타령 21. 소 흥정하는 대목 22. 말뚝타령 23. 소장수 마누라타령 24. 성주풀이 25. 축원과 덕담 26. 살풀이
이 소놀이굿은 제석거리에 이은 것인 만큼 무가(巫歌)와의 밀접한 관계와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소리 내용과 진행 형식은 무의(巫儀) 특히 제석거리에 종속된 일부가 아니고 독립된 하나의 연희이다. 그러므로 제석거리의 연장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 형식을 갖춘 소놀이굿이라는 놀이가 경사굿의 제석거리와 결합되어 지금과 같은 연희 형태를 갖춘 것 같다. 무의(巫儀) 열두 거리 중에서 제석거리와 결합하게 된 이유로는, 제석거리가 자손의 창성(昌盛)과 수명 장수를 빌고, 또 제석항아리의 곡신(穀神)적 성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풍년을 비는 농경 의례적인 요소와 불교적 요소가 습합(習合)되어 있어, 소놀이굿과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소놀이굿 순서와 거리별 내용
1967년 칠월에 참여 관찰한 소놀이굿은 경사굿의 무의(巫儀) 열일곱 거리 중 열세 번째 거리인 제석거리와 열네 번째인 호구거리 사이에 행해졌다.
참고로 열일곱 거리는 행추물림, 부정, 불사맞이, 본향, 초가망, 조상, 대감놀이, 성주맞이, 상산, 별상, 신장, 산신대감, 제석, 호구, 성주, 창부, 뒷전이다.
제석거리가 끝난 뒤, 불사맞이상을 제석상(帝釋床)으로 사용하되 장고 앞의 목두(木斗)에 콩을 수북히 담고, 소 고삐를 맬 말뚝이라 하여 북어 한 마리를 꼬리가 밑으로 가도록 해서 꽂아 놓는다. 마다을 향해 악사와 조무(助巫, 장구를 맡음)가 앉고, 소가 들어오기 전에 서주(장구․피리․해금)가 굿거리 장단을 울리면, 고깔을 쓰고 흰 장삼을 잎은 무당(主巫)이 오른손에 흰 제석부채를 들고 마루 끝에 나와 선다.
1.소와 마부의 등장
먼저 송아지가 춤추며 들어와서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마당을 돈다. 그리곤 굿청에 뛰어들어 무녀와 입을 맞추며 장난을 하고 뛰어 나간다. 송아지가 다시 들어와서 먼저보다 빠른 동작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며 마당을 돌다가 나가면, 무당이 “마부우, 소장수우, 소장수우”하고 부른다. 그러면 송아지가 대문을 향해 돌아서고, 마부가 소를 인도해 들이는 시늉으로 뒷걸음질쳐서 들어온다. 원마부는 전립과 전복에 홍띠를 띠고, 오른손에 삼신부채를 들고, 왼손에 소의 고삐를 잡고 천천히 들어온다. 소의 고삐는 명주나 무명으로 만든다. 곁마부는 보통 복색을 갖추지 않고 원마부를 따르며, 채찍을 든다.
마부가 들어서며 “야, 소장수가 뭐냐? 소장수 서방님이라고 해라” 할 때, 소와 송아지가 서로 맞비비다가 송아지가 뒤로 돌아서 앞으로 나와 선다. 소와 송아지가 꿈틀거린다. 무당이 “소장수 서방님”하고 부르면, 마부는 왼손에 고삐를 잡은 채 타령조로 ‘누가 나를 찾나’타령을 부른다. “기산(箕山) 영수(潁水) 별건곤(別乾坤) 소부(巢父) 허유(許由)가 나를 찾나? 천하 문장 김생원이 풍월을 허자 나를 찾나? 진대(晋代) 풍류 자랑코자 죽림칠현 나를 찾나?”
이어 무당이 소장수 서방의 이름을 묻자, 마부가 타령조로 “황성 폐하의 임금 우(禹)자는 성(姓)자가 되어 있고, 동해 수중에 용 룡(龍)자는 가운데자 되어 있고, 천상 옥경에 별진(辰)자는 우용진(禹龍辰)이 분명하니 자세히 똑똑히 알겠느냐”고 ‘성명풀이’를 한다.
이렇게 소장수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이어 소가 어디서 왔는가의 ‘마부 노정기’, 소가 싣고온 보물이 무엇인가의 ‘보물타령’, 마부들이 대령했는가에 답하는 ‘마부 대령 인사’가 사설과 타령으로 진행된다.
2. 소 마모색타령
소와 소장수가 등장하여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이어서 소의 마모색에 대한 타령으로 넘어간다. 즉 앞에서 소리 대목을 소개한 바와 같이 소의 머리․뿔․귀․눈․입․이․혀․꼬리․다리․굽․색(色)을 타령으로 소개하고, 소에게 글 가르치기, 소의 굴레타령을 거쳐 잡곡 농사 씨타령으로 끝낸다. 이들은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무당이 물어보면 마부가 답하는 사설이나 타령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대화에서 익살을 부린다.
우선 ‘소의 머리 치레’는 다음과 같다. “용대기(龍大旗) 우에는 용두머리, 남사당패 꼭두머리, 남산으로 누에머리, 용산 삼개는 돌머리요, 양근 지평에 용머리, 인력거꾼에는 상고머리요, 꼬불꼬불은 곱수머리, 너울너울은 조바머리, 구시월이 돌아오니 울긋불긋 단풍머리, 칠십 노인 헌(흰)머리냐, 늙은 마누라 쳇머리냐, 낭자 쪽도리 큰머리냐, 만신 마누라 엉둥머리냐, 석가 세존의 공덕머리냐, 어떤 머리를 섬기리까?” 이에 무당이 맞서 “그 중 한머리를 셈기면 셈겼지, 만신 마누라 엉둥머리를 왜 섬기오?”하고 따져 묻자, 마부 대답하기를, 제일 소중한 게 엉둥머리라 한다. 그 이유를 묻는 무당에게 “그 엉둥머리는 원도 나구 사뚜두 나구 대통량도 생기구 국회의원두 생기구 시체 병장도 생기구 깡패도 생기구 여러 가지가 생기는데 그 엉둥머리를 아래 위로 툭 잘라 버리면 엉둥머리만 해도 값이 쇠머리 값보단 많소”라 답한다. “잘라버리면 사람이 사나요?”라 묻자, 마부는 “발을 두면 도망을 가고 대가리를 두면 밥을 먹으니까 아래 위를 잘라 버리고 가우데만을 두지요”라 답하고, 썩어 빠져서 어떻게 하냐는 힐난에, “아 그런가요?” 한다.
이어 대청 성주에게 인사(절)를 드리는 ‘절타령’으로 넘어간다. “고령으로는 보광사 절이요, 불곡산(佛谷山)으로는 백화암사(白華庵寺), 수락산으로는 석림사(石林寺), 도봉 망월사, 천축사(天竺寺), 백운대 너머는 원통사(圓通寺)요, 서울 시내는 각황사(覺皇寺), 합천(陜川)산 삼막사(三幕寺)요, 경상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절인데, 어느 숙배를 섬기리까?” 타령이 끝나면 성주에게 인사를 시키기 위해 봉당에 서 있는 구경꾼을 비껴 서게 하고, 마루 대청을 향해 소가 세 번 절을 한다.
다음은 ‘소 뿔 치레’이다. “우각뿔이면 작박뿔이냐? 쌍쌍 을러라 사족뿔(발), 별백인 노구거리 흑각(黑角) 비나는 물소뿐이요, 대천 바다의 새우뿔, 인삼 녹용은 사슴의 뿔이요, 정월 보름 횃불인데 만신 마나님 쥐뿔이나 아느냐? 무신 뿔을 섬기라오?”
‘소 귀 치레’도 역시 동음자 놀이다. “열귀냐 떨어진 귀냐, 나무로 올라 잎사귀, 잎사귀밑에는 가장귀, 가장귀 밑에는 토막귀, 토막귀 밑에는 뿌렁귀, 나무꾼의 수건귀냐? 총각 되련님(도련님) 당지(唐只)귀, 아주먼네는 초마귀요, 상제님네는 두건(頭巾)귀, 외 발가지는 돌쩌귀냐? 두 발 가지는 까마귀, 세 발 가지는 풍농귀, 네 발 가진 건 당나귀요, 앵무공작이 지저굴 때 소래 듣던 토끼의 귄데, 무슨 귀를 섬기리까? 만신 아주머니의 걸레귀는 알고도 아니 하오.” 이에 무당이 걸레귀가 무어냐고 따져 묻자, “종로 한 마루턱에서 신사양복을 입구서 왔다갔다하는 양복쟁이 넥타이 귀같이 축 늘어진 걸레 있지 않아요?”라고 마부가 답한다. 무당이 화를 내며 듣기 싫다고 하자 마부는 얼른 화제를 바꾼다.
뿔도 귀도 좋으면 눈도 좋겠다 하여 ‘소 눈 치레’가 이어진다. “산중의 영웅 범의 눈, 모들띠기는 가재미 눈이요, 발샅에는 티눈이요, 꽁무니 백힌 꼴뚜기눈, 뜨고도 못 보는 해태눈이요, 천하 명산 승지(勝地)간에 경개 보던 토끼의 눈, 적토마를 제껴 타고 조승상을 좇아갈 때 부릅뜨던 범의 눈인데, 어느 눈을 섬기리까?”
무당이 이어, 입은 어떤 입인지 들어 보자 하여 ‘소 입 치레’가 이어진다. “양류(楊柳)청청
의 버들잎이냐? 사시장춘의 솔잎이냐? 들락날락은 들입이냐? 주엉 같은 용마의 입이냐? 우수 경칩이 돌아오니 떨어졌다 개구리입, 넓적허다고 미여기(메기)입이오, 키가 크다 난초입이오.” 다음은 ‘소 이 치레’이다.“흙을 이뤄 지어낸 이, 토금(土金)으로 지은 이냐? 동서양에서 나온 합성금으로 지은 이냐? 제삼시 점지하니 만복 없는 옥니로구나. 이 이 저 이 다 제껴 놓고 천하 명산 승지(勝地)간에 꽃 따먹던 토끼의인데, 어느 이를 섬기리까?”
‘소 혀 치레’는 무당의 청이 없는데도 마부가 스스로 타령한다. “여보 만신, 들어 보려요? 쇠의 내력을 들어를 보오. 경상도(황해도?) 자령쇠냐? 전라도 우비철 상철 토찰애에 유기 방짜(당철?) 그런 쇠가 아니오며, 수풀 밑에는 배암이 쇠요, 산 지고 앉은 거북의 쇠요, 비를역에는 미륵쇠요, 인도옥연엔 난간쇠요, 절궁수에는 나사쇠요, 각 대장간의 기인쇤데, 우리 소쇠는 짚신짝쇠니 이 쇠 저 쇠를 다 버리고 육쇠(肉舌)라고 지으리오.”
‘소 꼬리 치레’는 다음과 같다. “앉은 고리는 동고리요, 선고리는 문꼬리요, 조회 많은 용의 꼬리냐? 나는 고리는 꾀꼬리, 나무꾼의 지겟고리, 총각 되련님 당기꼬리, 아주먼네는 초마꼬리, 서까래 조종(祖宗)은 가재미꼬리, 신농씨(神農氏)의 백초약 이슬 떨던 토끼의 꼬리인데, 어느 꼬리를 섬기리까?”
이렇게 좋은 꼬리니 잘라다가 총채나 만들지 말라고 한 뒤, ‘소 다리 치레’와 ‘소 굽 치레’가 이어진다. “동대문 밖으로 북차다리냐? 동대문 안으로 두 다리, 종로로 올라 방충교다리 냐? 육조 앞으로 추정다리, 무화관으로 석다리요, 무학고개로 칭칭다리, 남대문 밖으로 썩 나서서 염충교도 다리요, 한강으로 내달아서 철물교 인도교 다리요” “ 북두칠성은 일굽이요, 당명황의 양구비요, 관청 서기의 월굽이냐? 신랑 신은 나막신굽, 만신마니 배꿉이냐? 어느 굽을 섬기리까?” “아참 굽 좋소이다. 만신 마누라 배꿉은 왜 게다 넣소?” “그게 웃음 거리로 한마디를 하는 거라요, 노하지 말우.”
이렇게 소의 모양이 좋으니 색(色)은 어떠냐는 말에 마부의 ‘소 모색 치레’가 나온다. “옥동 도화 만사춘에 가지 가지 봄빛이요, 녹음 방초 다 지나고 구시월이 돌아 오니 울긋불긋은 단풍빛, 사월 남풍 대맥황(大麥黃), 동서 사방의 누른빛, 청산의 보은 대추빛이오, 구년지수(九年之水) 비 올 적에 원수 같은 햇빛이냐? 칠년 대한(大旱) 가무는데 보기 싫은 볕이로구나. 어느 빛을 섬기리까? 우리 소의 빛은 황색이오, 황색을 모르건 누렁소란 말 똑똑히 들어두시오.”
이처럼 소의 모색에 대한 타령이 일단락되면, ‘소 글 가르치기’ ‘마부 복식(服飾) 치레’ ‘소의 장식 치레’가 뒤따른다.
먼저 ‘소 글 가르치기’는 마부가 소에게 글을 가르치는데, 소가 그 글에 따라 알맞은 동작을 취한다. 마부의 타령과 대사는 다음과 같고, 소는 대사 없이 동작만 취한다.
(타령조로) “자시(子時)에 생천을 하니 구후청청의 하날 천(天).
(소에게 대사로) 번쩍 들어라, 옳지. (소가 머리를 든다)
(타령조로) 축시(丑時)에 생지하니 만물 장성은 따 지(地).
(대사로) 내려, 수구려, 옳지.(소가 머리를 수그린다)
(타령조로) 춘풍세우호시절(春風細雨好時節)에 연주 남강 감을 현(玄).
(대사로) 누우란 말이야.
(타령조로) 동서 사방의 몇 만리냐, 중앙 황토는 누루 황(黃).
(대사로) 소 입 맞추라는 격이야.
(타령조로) 법중 률(律), 법중 여(呂)자. 춘향아 술 부어라 넘쳐간다 기울 책.
(대사로) 자꾸 하니까 고만 하라구.
이처럼 똑똑한 소의 마부 복식은 어떤가의 ‘마부 복식 치레’로 넘어간다. “백공단 바지냐, 법단(法緞) 저고리 왜단(倭緞) 조끼 떨쳐 입고 법수화주 마고자에 거영나니 속버선에 몽고 삼승(三升) 덧버선을 모양있게 신었구나. 찬포단 대님을 하나 일자로 제껴 매고, 남대단 허리띠는 무릎 아래 느즈 매고, 허리 불쑥 염랑에는 쪽 삼끈이 제격이오, 홍공단 주머니에 북두칠성에 수를 놓아 주홍방단의 열 매듭은 모양있게 졸라 매고, 백수화주 두루마기에 남갑사전복을 떨쳐 입고, 남전댕이 띠를 띠어 타꼴치 미투리에나 꼬리 들메 제격이오, 의열낭금은 쥐꼬리당줄, 개미상투는 산호 동곳 호박 풍잠 달았구나. 안올림 벙거지 밀화파양에 남일광단(藍日光緞)으로 안을 받쳐 수문갑사 너른 끈을 양귀 밑으로 졸라 매고 소상반죽(瀟湘斑竹) 육렬 채찍 오른손에 넌짓 들어 미러 툭 쳐 놀아가니 구군복이 제격이라.”
소의 장식물로는 굴레와 관자가 타령의 대상이다. “외령 미명 전폭에다 삼색 물감을 갖추들여 보기 좋게 어울려서 양산겹 당모겹에, 양귀 밑에 쌍열베며, 느릅나무 꼬뚜레에, 관자치장을 볼 짝이면 명주 팔사 열두 겹을, 보기 좋은 은장식은 술상모 물렸구나. 듣기 좋은 풍경 소래 양귀 밑에 달았구나.” “느릅나무 길마가지에 물푸레나무 송이가지에 버드나무 둥우리에 왕굴숙배 작은치며 반목삼에 제격이요, 삼장 언푹 길마를 지고 함경 쇠나무 껑거리에 양머리 당모차가 숙배 때를 매여 노니 수만 석시 끌여들여도 마사 비룡이 천리행이라.”
소가 이렇게 좋은데 농사는 잘 짓느냐며 “무신 곡식을 심었나, 잡곡 농사 씨 타령을 한번 돌려 주오” 하는 무당의 말에 마부가 ‘잡곡타령’을 읊는다.
여주 이천은 자채(自蔡)베냐 천군만병 오조냐
김포 통진의 밀다리(密多里)베 짝짝 발아진 괭이월 차조냐
청산 보은의 대초베냐 익어도 퍼런 건 청차조
드메 양반의 상투베 꽁지가 몽뚝 박달차조
앞에 양반의 양화베냐 만리 타국의 왜강낭콩
허연 백발 노인베냐 이팔 청춘의 푸르대공
일락서산에 저문 베냐 초감 포수의 깜장콩이냐
마당 쓰레기 검불베냐 무안을 보았다 불구대콩이냐
우물 앞에는 새암베 참깨냐 들깨 드들깨
의전 앞에는 상모찰이오 영창 같은 아주까리
삼수갑산의 수머조 흑두 작두는 개파리 동부
삼에 용강의 모래조 잔뜩 싣고 들어왔네
이렇게 소가 아주 좋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남은 것은 소를 사고 파는 흥정이다.
3. 소 흥정
무당이 “이 집 성주에서 소를 받겠다고 하니 흥정을 해서 사고 팝시다.”라고 하면, 마부가 “소주천이 몇 천 냥에 이룩 천 여기로다. 소주천 몇 백 냥에 진주천 몇 천금 이천 냥 남으시고 저리 천 냥 남으시고 수천 냥의 떼를 미어 억수 장마에 비 퍼붓듯 대천 바다의 물밀 듯이 무럭무럭 늘은 재산 수십백 석 되었구나”하며 ‘소 흥정하는 대목’을 부른다. 그러면 무녀는 그 집주인을 재세워 콩을 담은 목두에 북어 꽂아 놓은 것을 명주끈으로 된 고삐에 걸어주게 한다. 그리고 소 값으로 마부에게 돈을 준다. 이때 마부는 ‘말뚝타령’을 한다.
여보 마신 들어를 보오 마주 섰다 은행나무
말뚝의 내력을 아뢰리다 입을 맞치여 쪽나무냐
십리 밖에 시무나무 아흔아홉에는 백자나무
십리 안에는 오리나무 열아홉에 시무나무
한 다리 절뚝 전나무냐 낮에 보아도 밤나무냐
동에 가서두 북나무냐 그런 말뚝은 다 제쳐 놓고
앞뒤 없는 대나무 원산 말뚝을 대령하오
이렇게 해서 소의 흥정이 끝나는데, 진행하는 동안 술을 먹게 되면 ‘뜨물타령’을 부르기도 한다. “좁쌀 뜨물에 입쌀 뜨물 그런 뜨물은 다 싫고 막걸리도 싫고요. 이바지 약주만을 잡수시오. 무슨 안주를 찾으시나. 꺽꺽 푸드득 꿩도 싫고 돼지융만 주면 잘 먹소이다.”
소의 흥정에 이어 ‘소장수 마누라타령’이 곁들여진다. 소장수의 부인은 넷인데 무당이 이름을 묻자 타령으로 답해 준다.
도화 만발 점점홍 동지 섣달 설한풍에
보기 좋구나 화선이냐 변치 않을 손 송죽이며
환국 방토 돌아오니 넷째 부인은 당신인데
떨어졌다 목엽이냐 고깔 장삼 제격이라
이런 소장수 부인의 의복 치장은 다음과 같다. “한삼 세모시 백의 고쟁이 안주 당황나 너른 바지주 불란사 덧초마에 봉모사 어깨걸이 뒷판 조끼 속적삼에 견화양산 덧적삼은 비추 연풍 달았으니 맵시있게 입었구나. 유두분면에 풀머리 단장 비추 비녀 석류 자매 서북장계 푸리를 볼량이면은 남수인 허리띠에 홍공단 주머니에 술상끈 넌짓 달아 금북 은북 연통 귀불 타레 안경집 채집까지 갖추갖추 달아 차고 오른손에는 영미소며 왼손에는 양산을 들고 구명(후면?) 화초 구경 가니 춘홍 적적 난만게요 봉학 펄펄 날아드는데 부부(보보?) 향풍 긋는 바람 홍도화 낙화진다.”
4. 성주풀이 및 축원
소의 매매가 끝나면, 소놀이굿은 종반에 접어든다. 그래서 ‘성주풀이’와 ‘과거풀이’ 및 ‘축원’으로 소를 산 집이 잘 되기를 바라고, 마지막에는 ‘살풀이’를 해서 살을 막아 주는 것으로 소놀이굿을 끝낸다.
‘성주풀이’는 소놀이굿 전체를 통해 가장 긴 타령이다. “성주 본향 어드메냐. 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이 본일레라. 제비원에 솔씨를 받아 소평 대평 던졌으니 그 솔이 점점 자라 소부동 되었구나. 소부동이 점점 자라 대부동이 되었구나. 대부동이 점점 자라 청상목이 되었구나. 청상목이 점점 자라 황장목이 되었구나. 황장목이 일취월장 도리 기둥 되었구나. 그 재목을 내려 할 제 서른세 명의 역군을 들여 소산 대산을 찾아갈 제 소산 대산을 올라가면 고사 정성이 없을소냐. 왼소머리 받쳐 놓고 통돼지 잡아 드린 정성 지성으로 축원허니 고사 정성을 마친 후에 금도체 은도체로 동을 을러 서를 찍고 서를 을러 북을 비어 어지끈 뚝딱 베어 넴겨 궁글 뚤너 떼를 몰 제 원근 산천에 칡을 끊어 양구 양천 흐르는 물에 어리둥실 띠여다가 이치모 하올 적에 갖은 편수 모였는데, 김편수냐 이편수냐 두 편수의 거동을 보소. 목자 먹통 손에 들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대단히 바쁘게 시키누나. 이 집을 이룩할 제 집터 한 번 닦아보자. 자좌오향(子座午向) 쇠를 놓아 사방으로 둘러보니, 뒷 산천을 바라보니 팔봉산 솟았는데 오봉산 오형제요 팔봉산은 장원급제 열일이 날 자리라 자좌오향의 주추를 놓고 인의예지 기둥 세고 삼강오륜 대들보를 얹고 외천지 무궁무궁에다 응천상지 마룻대여 선하 자손은 서까래요 우애지심은 평부대며 암키와 수키와는 아귀로 물렸구나. 용두머리 막새집에 은자추녀 되었구나. 소로 벽부 분명하니 문치장이 없을소냐. 영창 가창에 열 미닫이 만(卍)자창에 가로닫이 국화물림 좋을시고, 내우분합 물린 후에 외우황토 초적하고 시토시새 새벽 후에 황분지 초배하고 백능화 정배 후에 쳐다보니, 소라반자 내려다보니 각장 장판 소란 병풍 둘렀는데 천하 명화 좋은 그리 여기저기 붙었구나.” 이와 같이 사방 벽의 그림 치레, 안방 치장, 마루 치장, 부엌 치장을 끝내고, 집 밖으로 나온다. 노적 치레, 집의 각 기둥에 붙은 주련(柱聯) 치레를 거쳐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이만 허구서 사는 집에 사랑 앞에다 연못 파고 연못 가운데다 섬을 모아 섬 가운데 육모 정 짓고 이 댁 가중에 주인 대주 사방 네 귀에 풍경 달아 풍경 소리를 운을 맞차 오현금(五鉉琴) 빗겨 안고 남풍시를 화답하니 그런 경사 또 있느냐. 이만 허고 사는 집에 명과 복을 발원인데, 석숭(石崇)에 복을 빌고 강태공의 나이를 빌어 상 팔십 후 팔십에 발원이로다.”
‘성주풀이’가 끝나면, 무당이 이렇게 잘 사는 집의 ‘과거(科擧)풀이’나 해 달라고 하여 마부의 ‘과거풀이’가 이어진다. “이 집 가중에 어린 아기 한두 살, 세 살, 네 살, 삼사인 자랄 적에 오이 붓듯 일취월장 잘 자라니 글이나 한번 읽혀 보자. 천자 한 권 읽은 후에 시전 서전에 논어 맹자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배우니, 필법은 왕희지요, 풍채는 두목지(杜牧之)요, 이태백의 문장이라. 이때 하면 어느 때냐. 국태가 민안하고 세화(時和)가 연풍(年豊)하니 나라에서 태평과 뵈인단 말 풍편에 넌짓 듣고 과장(科場) 기구를 채릴 적에 장장창 머리채를 반달 얼레로 설설 가려 보기 좋게 엎어 따서 갑사 당기를 끝물렸다. 오복수 저고리에 백공단 바지에 법단 조끼 떨쳐 입고 백수화주 마고자 고양난이 속버선에 몽고 삼승 덧버선은 모양 있게 신었구나. 한포단 댄님은 고무래 정(丁)자로 제껴 매고, 도리불수 행정에다 오복수 두루매기 남갑사 전복이며 술띠를 눌러 매고, 머리에는 검은 갑사 복건에다 준주 눌림 얹었구나. 서산 나귀 솔질하여 송구 안장 지어 타고, 앞에는 설동자 뒤에는 밀동자 주야 배로 올라가 한양성 내에 도달허니 의성문이 여기로구나, 백포채일은 구름 같고 팔도 선배 다 뫼였다. 글씨를 강론한다. 시지를 펼쳐 놓고 황모(黃毛) 무심필 덤뿍 풀어 용연(龍硯)에 먹을 갈아 백농설화 간지상에 일필휘지 선장하니 서시관 보시고 고성대독(高聲大讀)으로 호명한다. 호명소리 반겨 듣고 어전에 복지하니 실내를 재촉헌다. 머리에는 어성화 몸에는 금폭대 청동 쌍개를 앞세우고 허리에는 호리병요 손에는 옥홀을 쥐고 금안 백마에 높이 앉아 청동 쌍개를 앞세우고 장안하고 대도상에 완완히 실내하니, 골목골목 뫼인 사람 인산 인해 하였구나. 삼일유가(三日游街)를 마친 후 본택(댁)으로 돌아와서 선산에 소분허고 부모님 전에 배앙(배알)하니 이런 경사 또 있는가. 원근지족 모아다가 대연을 배설하고 삼사 일 쉰 후에 다시 상경허였구나. 한림학사 다 지내고 승지 참판 되었다가 내직으로 계셨으니 이런 경사가 어디 또 있느냐.”
이리하여 이제 무당은 소장수더러 이 집 ‘축원’이나 한 번 잘 해 달라고 한다. “국태민안 범율전 세화년풍 돌아든다. 왕씨낭군 이후로구나. 이씨가 한양에 등극하니 삼각산 기봉하여 봉학이 되었구나. 봉의 머리에 터를 닦아 학의 등에다 대궐을 짓고 재궐 앞에는 육조로다. 여기 저기 오영문 십이대장이 결진하고 삼각산 왕십리는 무학 천룡(청룡)이 되었구 동구재 만리재 백호로다.”
‘삼재팔난 살풀이’는 소놀이굿의 맨 끝타령이다. 무당이 “살이나 막어 주구 그만 둡시다” 하면 마부가 살풀이타령을 한다. “지나갔던 행운년은 꿈결같이도 갔건마는, 올같이 험한 시절에 이 집의 살을 풀어 보자. 산으로 올라 산신살, 들로 나려 적용살, 용마루에는 용충살이요, 안마당의 벼락살이요, 마루 대청의 성주살, 안방으로는 삼신살, 거름방으로는 곰방살이냐? 부엌으로 주앙살, 부뚜막에는 주앙 각시, 아궁이에는 검덥 귀신, 사릉에느 댕그렁 각시, 굴뚝에는 굴대 장군, 물독에는 용녀 부인, 자루 속에는 부녀 각시, 쌀독에는 제석 말명, 이 살 저 살 휘몰아다가 방맹이 맞은 북어 한 개 탁주 일귀 안동하여 의주 월강 소멸하니, 만조 옹노 여귀에 부귀영화를 누리노라. 살을 풀어보자.”
이상으로 소놀이굿이 끝난다. 소놀이굿 이후에 경사굿의 무의(巫儀)는 계속되어 열네 번째 거리로 호구거리를 논다. 소놀이굿의 마부 소리(타령)는 일종의 잡가(雜歌)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무가(巫歌)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타령(치레, 대목)은 각각 독립적으로 나열되며, 그 사이사이는 마부와 무당이 주고 받는 사설(대화)로 채워진다.
4. 소놀이굿의 준비과정
1. 소(큰 소)
재료는 고무래, 종이, 명주 또는 광목, 짚신이나 고무신, 짚, 멍석 등을 사용한다. 소머리는 고무래에 짚을 사서 윤곽을 잡고, 소 얼굴 모양을 백지에 그려 붙인다. 귀와 혀는 짚신이나 고무신 바닥으로 하며, 고삐는 명주 또는 광목으로 한다. 소 몸뚱이는 큰 멍석을 반으로 접고 그 안에 대여섯 명이 들어간다. 뿔은 짚을 꼬아 만든다. 얼굴 길이 오십 센티미터, 얼굴 너비 이십 센티미터, 뿔 세로길이 이십 센티미터, 혀 가로길이 팔 센티미터, 혀 세로길이 십오 센티미터, 귀 가로길이 십 센티미터, 귀 세로길이 이십오 센티미터, 고무래 자루 팔십 센티미터, 멍석(두 장) 전체 길이 삼백이십 센티미터, 꼬리 길이 일백십오 센티미터의 크기로 만든다.
2. 송아지
재료는 소와 같다. 제작 방법도 큰 소와 같으나, 크기가 다르다. 한 사람이 짚멍석을 뒤집어 쓰고 고무래로 만든 소머리를 든다. 송아지는 얼굴 길이 이십오 센티미터, 얼굴 너비 이십일 센티미터, 혀 가로길이 팔 센티미텨, 혀 세로길이 십삼 센티미터, 고무래 자루 사십이 센티미터, 귀 세로길이 십구 센티미터, 귀 가로길이 구 센티미터이며, 꼬리는 없다.
3. 원마부
검은 전립을 쓰고, 남색 전복을 입으며, 홍띠를 띤다. 오른손에 삼신부채, 왼손에 소의 고삐를 잡는다.
4. 곁마부
원마부와 같은 복색이다. 보통은 약식으로 복색을 갖추지 않고 원마부를 따르며, 원마부와 교대하여 소놀이를 하게 되면 원마부의 복색으로 갈아 입는다. 손에 채찍을 든다.
5. 무당
제석거리에서 입은 복색대로, 흰 고깔을 쓰고 흰 장삼을 입으며, 오른손에 흰 제석부채를 든다.
6. 조무(助巫)․악사(樂士)
보통 무의의 복색과 같다. 반주 악기로는 장고․피리․해금을 사용한다.
소놀이굿 연회자
우용진(禹龍辰, 1904~1971) 원마부
전춘성(全春成, 1901~1967) 곁마부
조만봉(趙萬奉, 1909~1980) 곁마부
김인기(金仁起, 1914~ ) 원마부
김봉순(金鳳順, 1936~ ) 무녀
고희정(高熙貞, 1921~ ) 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