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서 처음으로 문해교육을 시작한 강천 씨 “늦깎이 한글교육은 설움을 풀어주는 일” | ||||||||||||||||||||||||
적십자에 몸담아 50년 동안 봉사인생 “살아 있는 동안 학생들 위해 살고 싶어” | ||||||||||||||||||||||||
| ||||||||||||||||||||||||
“나이 들어 늦깎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한글교육은 단지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만은 아니에요. 수십 년 간 가슴 속에 맺힌 한(恨)을 풀어주는 일이지요.” 현재 해나루시민학교(교장 문선이)에서 초급반 문해강사로 봉사하고 있는 강천 씨는 일생의 대부분을 적십자에 몸담고 나눔을 실천해온 사람이다. 1964년부터 적십자 활동을 시작한 이래 대한적십자사 당진지구협의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거쳐 지금까지 쉼 없이 지역사회와 타인을 위해 살아왔다. 그는 어려운 이웃에게 물품을 지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난했던 시절 문턱 높았던 학교 “구호물품을 전달하면 꼭 본인에게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에이, 알아서 해주세요’라면서 자필서명을 피하시는 분들이 여럿있더군요. 알고 봤더니 한글을 깨치지 못해 이름을 쓸 줄 몰랐던 거예요.” 20~30년 전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의 문턱을 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오빠나 남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쉬쉬하던 사람들을 보며 강 씨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해교육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1992년, 당시 이홍근 씨가 운영하던 윤성학원에서 첫 한글교실을 열었다. 낮에는 비교적 한산한 학원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을 매일 두 시간씩 가르쳤다. 남편과 가족 몰래 글을 배우러 다닌 사람들도 많았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글을 배우겠다는 사람들과, 맨몸으로 이 일에 뛰어들어 한글을 가르쳐야겠다는 강천 씨의 열정이 4년 넘도록 이어졌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7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강 씨는 “한글을 배운 뒤 스스로 이력서를 써서 신성대에 취업한 사람도 있다”면서 “최근에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더라”며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까막눈’ 멸시받으며 맺힌 한 학교에 가는 게 당연하고, 쉽게 글을 배우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학교의 문턱이 높던 당시엔 글을 몰라 고생하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당진’, ‘서울’이라는 글자조차 읽을 수 없어 혼자서 버스도 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한글교육은 어두컴컴했던 곳에서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강 씨에게 글을 배운 이들이 이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음을 담아 전한 편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만큼 감동이라고. “제 때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그들 마음에 분노와 한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형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고 희생한 댓가는 ‘까막눈’이라는 천대와 멸시뿐이었던 거죠.”
자존감 세우는 한글교육
그는 글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문해교사가 자신을 소개하며 커다랗게 한문으로 이름을 써놓자, 학생들이 다시는 그를 찾지 않았다는 것을 예로 들며,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듬는 마음이 문해교사가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꼽았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이 친근하게 알 수 있도록 일상생활과 밀접한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아들이 낫을 들고 있는 모양 ‘ㄱ’, 둘째 아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모양 ‘ㄴ’이라고 설명하고, 온몸을 이용해 ㅏ, ㅑ, ㅓ, ㅕ와 같은 모음을 만들어 낸다. 일흔이 넘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 만큼은 활동적이고 열정이 넘쳐 난다. 강 씨는 “교사는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안 되고, 진실함과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50년 동안 수많은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사람이 변화하는 것만큼 감동적이고 기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해교실이 한글을 가르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배움의 현장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해교사 처우개선 필요 글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이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강천 씨는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에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또한 그의 삶과 교수법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며 문해교사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한편 한글학교나 문해교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배움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들에 대한 정확할 실태조사와 더불어 질 좋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 기관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문해교육은 다른 평생교육처럼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문맹자들에겐 절실한 교육이에요. 때문에 재정적·행정적 관리와 지원도 확대돼야 하죠. 교육을 자원봉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문해교사의 처우도 합리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