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젊은 무당 탄생! 이것이 '파묘'의 여주 이화림이 지금 받고 있는 찬사다. 현실에서는 기독교를 신앙으로 갖고 있는 그는 곧 김고은이다. '파묘'는 파죽지세의 기운으로 18일 만에 800만 명을 동원했다. 그들 연기고수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다. 궁금했다. 과연 묫바람의 피해와 잘못 건드려서 오는 동티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한 집안을 결단내기도 하고 정승판서를 내기도 한다는 풍수지리의 실체. 이런 영화도 있었다. '관상'이란 영화에서는 "내 얼굴이 왕이 될 상인가?"라며 역시 여기서도 묫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대권에 대한 꿈이 있는 자라면 부모님의 묫자리부터 정비한다. 용한 지관을 찾아 좋다는 방책은 다한다.
그런 한국인 정서에 맞는 영화가 나왔다. 절묘하게 관객의 핫버튼을 눌렀다. 영화 포스터도 한몫을 했다. 무당의 옷을 입고 쌍칼을 들고 굿자리에 서있는 이화림의 자태이다. 어떤 영화인지 무척 궁금했다. '파묘'를 보고 나오는 어떤 관객은 소금을 뿌려야겠다는 말을 했다 하니 더 궁금했다. 소금은 부정한 것을 물릴 때 쓰는 우리나라 전통의 양밥이다. MZ 세대인 어린 무당이 굿자리에서 입은 옷도 현대적 감각을 흠결 없이 살린 멋진 차림이었다. 첨엔 무당의 신발이 컨버스 운동화인 것이 살짝 거슬렸다. 운동화? 자꾸 보니 그것도 그럴듯해 보였다. 감독의 디테일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대살굿. 안 좋은 기운이 들었을 때 동물을 대신 올려놓고 액받이를 하는 굿인데 '파묘'에서는 돼지 다섯 마리를 올려놓고 비수를 가하는 굿을 한다. 돼지가 액받이를 대신한 것이다. 혼을 쏙 빼놓은 한바탕 굿장단에 정신이 멍해졌다. 극장 안은 숨죽인 듯 고요하다. 경문소리와 꽹과리 징소리가 인간의 숨소리마저 강제한 것이다. '아, 김고은은 다음 청룡영화제 여우 주연상 감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 인물을 녹여내기 위해서 그녀가 고뇌했을 엄청난 노력과 고증들 끝에 몸에 실린 신들린 그 연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묘'
사실 김고은은 2012년 첫 영화 '은교'에서 그해 신인상이란 이름이 붙은 모든 상을 다 독식할 만큼 기대주로 이미 인정받았다. 또 '쓸쓸하고 찬란한 신 도깨비'에서도 수많은 연인들에게 슬프고 아름다운 연기를 선사하였다. 도깨비는 내 최애 드라마기도 하다.
신세계 매장을 갔다가 슬그머니 8층 올라가서 '파묘'를 보았다. 혼자 영화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혼자의 시대라 영화를 혼자 보는 것이 딱히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옆자리 눈치는 슬슬 보게 된다. 까다로운 나의 관점에서도 '파묘'는 잘 만든 영화였다. 우리 세대와 통하는 무속신앙에 나도 핫버튼이 눌러진 것이다. 엄마제사를 모시고 다음 날 올케랑 다시 '파묘'를 보러 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양 두 번 본 것이다. 두 번째도 몰입되었다. 놓쳤던 부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파묘를 한 후 쪼그리고 앉았던 최꾸(최민식 할아버지)가 "잘 쓰고 갑니다"라며 100원짜리 동전을 무덤 속으로 던지는 장면에서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뭐 그런 느낌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