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으로 가는 길은 멀다. 땅끝에 도달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품고 달려간다. 무엇을 얻기 위한 길이 아니라 버리기 위한 여행이라면 좋을 길이다. 해남으로 가는 길은… 내 버디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고산 윤선도가 56세 때 금쇄동에 머물면서 지은 오우가(五友歌)이다.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치적 다툼으로 은둔과 유배 생활을 하게 되어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았다. 불의와 권세에 대한 저항에서 우러난 그의 유배생활은 시대의 불운아로서의 그의 모습을 말해주며 아무런 꾸밈새도 억지도 없이 스스로 노래하는 것을 신조로 삼아 소박하며 속되지 아니한 그의 시조들은 사람 냄새를 풍기는 소박한 것들이다. |
[해남윤씨 녹우당] 사적 제167호 |
녹우당 뒷산, 비자나무 300여 그루의 열매로 만든 비자 강정이 있다고 한다.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 종가에 내려오는 내림음식으로 독특한 향과 쌉싸래한 맛이 특징이라고 한다. 차례음식에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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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선도유적] 사적 제43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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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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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륵암마애불좌상 보물 제48호 암벽을 다듬어 불상을 조각한 뒤 목조 전실을 세운 석굴의 주존불로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본존은 두광과 신광이 모두 표현되어 있으며 양식상 고려 전기의 마애불을 대표한다. * 탑산사동종 보물 제88호 * 북미륵암3측석탑 보물 제301호 * 응진전 앞 3층석탑 보물 제320호 |
[미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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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숲속으로 난 길을 들면, 소나무와 동백나무 사이로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부도밭에 닿는다. 부도마다 거북, 게, 새, 연꽃, 도깨비 얼굴 등이 새겨져 있어 한적한 산속에서 뜻밖에 꾸밈없는 표정들을 만날 수 있다. 산 정상에서 보는 다도해와 서해의 낙조는 참 아름답다. |
[땅끝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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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세등리 까지 온다음 죄회전해서 용장리까지 가면 된다. |
[용장산성] 사적 제126호 |
고려시대의 석축산성으로 현재 용장산 기슭에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내에 행궁지, 용장사지 등이 남아 있다. 축성연대는 1270년 이후이며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여 진도로 옮긴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 대몽항쟁의 근거지였다. 삼별초는 이곳에서 개경의 정부와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고 이때 용장성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
[진도의 바닷길] 명승 제9호 |
다시 18번 국도를 타고 석현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향동리까지 오면 운림산방, 쌍계사를 돌아볼 수 있다. |
[운림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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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석성] |
임회면 남동리에 위치한 `남도석성 `은 당초에는 고려 원종 때 왜구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해안 방어용으로 쌓은 성이라고 하나 몽고의 침입 때 삼별초의 항쟁 지도자였던 `배중손`이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진 석성이다. 바다와 접해 있고 석성의 보존의 거의 완벽하여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
[숙박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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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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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특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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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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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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