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진의 아닌 의사표시
Ⅰ. 총설
의사표시는 의사와 표시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양자가 일치하는 때 비로소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의 법률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거래의 실제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양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혹은 ⌜의사의 흠결⌟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본다.
1. 개념
제107조(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② 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
⌜진의 아닌 의사표시⌟란 '표시행위의 의미가 표의자의 진의와 다르다는 것, 즉 의사(내심적 효과의사)와 표시(표시상의 효과의사)의 불일치를 표의자 스스로 알면서 하는 의사표시'를 말한다. 비진의표시(非眞意表示), 단독허위표시(單獨虛僞表示)라고도 한다.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표시와 다른 진의를 마음속에 유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심리유보(心裡留保)⌟라고도 한다. 예컨대, 물건을 팔아버릴 생각이 없으면서 팔겠다고 하거나, 또는 그에 관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통정이 없다는 점에서 허위표시와 구별되며, 표시가 진의와 다름을 표의자가 알고 있다는 점에서 착오와 구별된다.
2. 취지
제107조 제1항이 비진의표시를 원칙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취급하고 상대방에게 악의(惡意) 혹은 과실(過失)이 있는 경우에만 무효로 하는 취지는, 표의자의 진의가 어떠한 것이든 표시된 대로의 효력을 생기게 하여 거짓의 표의자를 보호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하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에 대하여 악의 또는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대방을 보호할 필요가 없이 표의자의 진의를 존중하여 그 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무효로 돌려버리려는데 있다.
3. 독일 민법의 규정
프랑스 민법과 스위스 민법은 비진의표시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독일 민법은 이를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독일민법은 우리 민법과 달리 의사표시에 의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상대방이 모르게 유보하는 경우와, 상대방이 알 것이라는 기대에서 유보하는 경우를 나누어 다루고 있다. 전자는 심리유보로서 유효이나, 후자는 진지성의 결여로서 무효이다.
* 독일 민법의 규정 제116조 표의자가 표시를 원하지 아니함을 내심에 유보하였다는 그 의사표시는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행하여지고 상대방이 그 유보를 안 때에는 그 의사표시는 무효이다. 제118조 진정한 뜻으로 행한 것이 아닌 의사표시라도 진정성의 흠결이 오인(誤認)되지 않으리라는 기대하에 행하여질 때에는 무효이다. |
Ⅱ. 요 건
1. 의사표시의 존재
진의 아닌 의사표시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효과의사를 추단(推斷)할 만한 가치 있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교상의 명백한 농담, 배우가 무대에서 행한 대사, 교수가 강의 중에 예로써 행한 표시 등과 같이 법률효과의 발생을 원하고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의사표시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문제될 여지가 없다.
표의자가 진지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표시행위를 하지만 상대방이 진의와 다른 표시인 것을 알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하는 의사표시를 ⌜희언표시(戱言表示)⌟라고 하는데, 독일 민법(제118조)은 희언표시는 무조건 무효로 하되 표의자는 그의 과실이 없어도 상대방 및 제3자에게 신뢰이익을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민법은 이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문제가 되는데, 통설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의 일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판례] 강박에 의하여 행한 의사표시가 비진의표시에 해당하는지 여부 비록 재산을 강제로 뺏긴다는 것이 표의자의 본심으로 잠재되어 있었다 하여도, 표의자가 강박에 의하여서나마 증여를 하기로 하고 그에 따른 증여의 의사표시를 한 이상, 증여의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대판 2002. 12. 27, 2000다47631; 대판 1993. 7. 16. 92다41528). 판례] 원고인 종중의 명의신탁에 의하여 피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행해진 것이라는 피고의 진술이 비진의 표시에 해당하는지 여부 증거서류 중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 명의로 마쳐진 소유권이전등기가 원고의 명의신탁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의 피고의 진술부분은 사실의 진술일 뿐 의사표시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이를 강박에 의한 진술이라 하여 취소하거나 진의 아닌 진술로서 무효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대판 1992. 5. 26, 91다45578; 대판 1973. 3. 13, 72다963) |
2. 진의와 표시의 불일치
표시행위의 의미에 대응하는 표의자의 의사, 즉 진의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진의(眞意)⌟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표의자가 의사표시의 내용을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지는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것을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표시를 하였을 경우에는 이를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직원 제출 당시 진정으로 사직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상황으로는 사직을 하는 것이 징계면직처분 등을 받는 것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 이를 사직의 의사가 결여된 비진의표시라고 할 수는 없다.
판례] 사립학교법상의 제한규정 때문에 교직원 등의 명의를 빌려서 한 학교법인의 차금행위가 비진의표시에 해당하는지 여부 …위의 경우, 피고 역시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 소외인들의 의사는 위 금원의 대차에 관하여 그들이 주채무자로서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므로, 이를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80. 7. 80다639) 판례] 대출금채무자로서의 명의대여가 비진의표시에 해당하는지 여부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장애로 자기명의로 대출 받을 수 없는 자를 위하여 대출금채무자로서의 명의를 빌려준 자에게 그와 같은 채무부담의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그 의사표시를 비진의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대판 1996. 9. 10, 96다18182; 대판 1996. 8. 23, 96다18076; 대판 1980. 7. 8, 80다639) |
3. 표의자가 진의와 표시의 불일치를 알고 있을 것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되려면 표의자 스스로 그의 진의와 표시행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허위표시와 같고 착오와 다르다.
표의자가 진의와 다른 표시를 하는 이유나 동기는 묻지 않는다. 즉, 상대방이나 제3자를 속이려고 하는 경우이든, 또는 그들이 표의자의 진의를 당연히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여 한 것이든, 그 의사표시를 하게 된 이유 내지 동기는 이를 묻지 않는다.
판례] 비진의표시의 요건 : ‘내심의 효과의사’의 부존재 A가 B로 하여금 자신을 대리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도록 하여 그 대출금을 B가 부동산의 매수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승낙하였을 뿐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 A의 의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출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는 B에게 귀속시킬지라도 법률상의 효과는 자신에게 귀속시킴으로써 대출금채무에 대한 주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A가 대출을 받음에 있어서 한 표시행위의 의미가 A의 진의와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설령 A의 내심의 의사가 대출에 따른 법률상의 효과마저도 B에게 귀속시키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을 의사였을지라도 상대방인 금융기관이 A의 이와 같은 의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비로소 그 의사표시는 무효로 된다. 더욱이 B의 금융기관에 대한 개인대출한도가 초과되어 B명의로는 대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감사의 권유로 A가 아니라 B가 사용하기로 하였더라도 금융기관이 A의 위와 같은 내심의 의사마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대판 1997.7.25, 97다8403). |
Ⅲ. 효과
1. 원 칙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원칙적으로 표시된 대로 효력을 발생한다(제107조 제1항 본문). 따라서 표의자는 원칙적으로 의사표시의 무효를 상대방에게 주장할 수 없다. 표의자의 진의가 무엇이냐를 묻지 않고서, 표시된 대로의 효력이 생긴다. 이와 같이 표시주의의 이론에 따른 것은, 이 경우에는 표의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선의‧무과실의 상대방은 비진의표시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제107조 제1항 본문이 ‘대항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고 ‘효력이 있다’고 규정한 것은 표시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되 의사표시를 유효하게 하는 방법으로 보호하려는 취지로 이해해야 할 것이므로 이는 부정함이 타당하다(통설).
판례] 비진의표시가 표시된 대로의 효력이 발생하는 경우 채권의 총액이 57만6천6백원이었으나, 그 중 36만원만을 받으면서 영수증에 총완결이라는 문구를 부기한 경우, 그 총완결은 36만원을 영수하고 그것으로 모든 결재가 끝났다는 것을 표시하는 의사표시로 일응 해석되는 것이고, 그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그러한 의사표시가 진의 아닌 것으로는 알지 아니하였다면, 그 영수증의 작성경위가 그렇게 적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기에 궁박한 사정 아래에서 우선 돈을 받기 위하여 거짓 기재한 것이라 하여도, 그것 자체만으로는 총완결이라는 의사표시가 당연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대판 1969. 7. 8, 69다563) 판례] 사직원 제출의 경우 물의를 일으킨 사립대학교 조교수가 사직원이 수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사태수습을 위하여 형식상 이사장 앞으로 사직원을 제출하였던 바, 의외로 이사회에서 본인의 의사이니 하는 수 없다고 하여 사직원이 수리된 경우, 위 조교수의 사직원이 설사 진의에 이르지 아니한 비진의 의사표시라 하더라도, 학교법인이나 그 이사회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가 아니라면, 그 의사표시에 따라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다(대판 1980. 10. 14, 79다2168) |
2. 예 외(무효가 되는 경우)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는 무효이다(제107조 제1항 단서). ⌜알 수 있었을 경우⌟라는 것은, 과실(過失)로 알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즉, 보통사람의 주의를 베풀었다면 알았을 경우를 뜻한다. 이들 악의(惡意)또는 과실 있는 상대방은 보호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오히려 표의자 본인의 진의를 존중하여 그 비진의표시를 무효로 하는 것이다.
비진의(非眞意)는 사실을 알았느냐 알지 못했느냐 또는 과실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모두 행위의 당시, 즉 상대방이 표시를 깨달아 안 때를 표준으로 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즉 상대방이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은 ⌜상대방이 표시를 요지(了知) 한 때⌟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통설).
이에 반하여 의사표시의 효력발생시점에 관한 도달주의를 근거로, 의사표시가 상대방의 영역에 진입할 때에 도달의 요건이 갖추어지므로 이때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충분하다는 견해가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판례 역시 ⌜표시의사가 진의 아님을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의 여부는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에 있었던 의사표시 형성 과정과 그 내용 및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효과 등을 객관적인 사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의 유무는 무효를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하여야 한다.
판례] 상대방에게 악의 또는 과실이 있는 경우의 효력 해외근무자가 업무상의 재해를 치료하기 위하여 중도에 귀국함에 있어서, 미리 사직의 뜻이 담긴 귀국청원서를 제출하지 아니하면 귀국시킬 수 없다는 회사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본의(本意)에 반하여 귀국청원서를 제출하였다면, 그 사직의 의사표시는 비진의표시이고 당시에 회사도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면, 그 해고는 무효가 된다(대판 1992. 9. 1, 92다26260) 판례] 상대방인 예금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본 경우 예금계약에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가 정기적으로 지급되고 특정지점에서만 이러한 예금이 가능할뿐더러 예금을 할 때 암호가 사용되어야 하며, 예금거래신청서의 금액란도 빈칸으로 한 채 통상의 방법이 아닌 수기(手記)식 통장이 교부되었다면, 적어도 예금자는 대리인의 의사표시가 진의가 아닌 것을 알았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통상의 주의만 기울였던들 이를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대판 1987. 11. 10, 86다카371). 판례] 증권회사 직원이 증권투자로 인한 고객의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준 사안의 경우 각서를 단지 그 동안의 손실에 대하여 사과하고 그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경험칙과 논리칙에 반하지만, 그 각서가 남편을 안심시키려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작성된 경위 등에 비추어 비진의 의사표시로서 무효가 된다(대판 1999. 2. 12, 98다45744). 판례]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법리가 적용되는 경우 근로자가 갑(甲) 회사를 퇴직하고 같은 그룹계열사인 을(乙) 회사로 입사하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근로관계가 을 회사로 이전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갑 회사 소속 근로자로 재직하면서 다만, 을 회사의 업무로 변경된 종전 양돈장 증축공사 건축 감독업무에 종사하다가 그 파견기간이 끝나 갑 회사의 업무로 복귀한 뿐인 경우, 갑 회사에서 을 회사로 소속이 변경된 바가 없는 것으로 보아, 퇴직금을 이체한 것으로 처리하였다거나 근로자가 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갑 회사와 을 회사로부터 각각 퇴직금을 지급 받았다 하더라도, 근로자가 중간퇴직금을 지급 받으려는 내심의 의사 외에, 갑 회사의 근로관계를 종료하거나 퇴직금 산정에 있어서 근속연수를 제한하려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고 할 수 없고, 갑 회사도 근로자의 형식상의 퇴직의사가 진의 아님을 알았다고 할 것이어서, 위 퇴직금 수령은 비진의표시로서 무효이고, 따라서 근로자와 갑 회사와의 근로관계가 종료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98. 12. 11, 98다36294). 판례] 조합을 대표하는 자가 조합을 위하여 차용하는 것이 아님을 금원을 대부하는 자가 알 수 있었을 경우,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유추적용의 가부(可否) 조합의 이사장직무대행자가 자기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조합을 위하여 차용하는 것이 아님을, 대부자가 주의했더라면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하여 그 대차계약은 조합에 대하여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판례] 증권회사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채권과 채권매수대금을 교부받아 임의로 운용한 사안에서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하여 고객과 증권회사 사이의 채권 및 채권매수대금 위탁계약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 증권회사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채권과 채권매수대금을 교부받아 증권회사의 계좌에 입금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운용한 경우, 일반적인 채권 또는 양도성예금증서와는 달리 세금 공제 후의 확정이자가 지급되었고, 고객은 그 직원을 통하여야만 증권회사와 거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객 명의의 종합통장의 잔고는 없어지고 다만, 그 직원으로부터 잔액증명서나 보관증으로 그 직원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증권회사로부터 현금 또는 채권으로 인출할 수 없었다면, 고객으로서는 증권회사 직원의 의사가 증권회사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통상의 주의를 기울였던들 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 고객과 증권회사 사이의 채권이나 채권매수자금에 대한 위탁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대판 2001. 1. 19, 2000다20694; 대판 1999. 1. 15, 98다39602; 대판 1987. 11. 10, 86다카371). |
3. 제3자와의 관계
진의 아닌 의사표시가 예외적으로 무효로 되더라도 그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1) 선의의 제3자
⌜제3자⌟란 ‘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기초로 하여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자’만을 의미한다. 제3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대한 주장 및 증명책임은 제3자에게 있다.
⌜선의⌟란 ‘의사표시가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판단시점은 법률상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때이다. 선의이면 족하고 선의인데 대하여 무과실일 것 까지는 없다. 제3자는 일반적으로 표의자의 비진의표시를 알 수 없는 입장에 있으므로 제3자의 선의는 추정되고, 제3자의 악의를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선의의 제3자로부터 다시 전득한 자가 있는 경우, 그 전득자(轉得者)가 설령 악의이더라도 표의자는 의사표시의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 이를 ⌜엄폐물 법칙⌟이라고 한다.
(2) 대항하지 못한다
⌜대항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비진의표시의 무효를 주장할 수 없음’을 뜻한다(상대적 무효). 따라서 비진의표시는 당사자 사이에서 무효라 할지라도 선의의 제3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표시된 대로 효력이 생긴다.
4. 효력발생근거
비진의표시가 표시된 대로 효력이 발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통설에 의하면, 비진의표시에서는 효과의사가 없고 표시행위만 존재하므로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법이 표시된 대로 법률효과가 발생하도록 규정한 것은 우리 민법이 표시주의를 취한 결과라고 한다. 따라서 표의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이른바 ‘신의사주의이론’에 의하면, 비진의표시가 표시된 대로 효력을 발생하는 것은 표의자가 이를 의욕하였기 때문이다. 즉, 표의자가 진의를 상대방 모르게 숨기고 그와 다른 표시행위를 하면서 상대방이 표시된 대로 법률효과가 발생한다고 믿도록 하는 것 자체가 표의자의 의사이고, 이 의사에 따라 비진의표시는 표시된 대로 효력을 발생한다고 한다. 반면에 진의 아님을 상대방이 안 경우는 표의자가 일부러 자기의 효과의사와 배치되는 의사를 상대방 모르게 유보한 것이 아니므로 비진의표시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지 않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의사표시는 무효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의사주의이론’은 비진의표시가 효력을 가지는 것은 표의자가 이를 의욕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나, 이때의 의사는 효과의사가 아니라 표시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표의자의 진정한 의사는 의시표시의 효력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제107조 제1항 본문을 마치 의사주의에 입각한 규정처럼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5. 비진의 표시의 무효와 표의자의 불법행위
비진의표시가 무효로 되는 경우에(제107조 제1항 단서) 표의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가? 상대방이 비진의표시임을 알았을 때에는 손해배상의무가 발생하지 않으나, 상대방이 알 수 있었으나 과실로 몰랐을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통설에 따르면, 비진의표시는 상대방이 표의자의 의사표시가 진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족하므로 비진의표시가 무효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비진의표시를 알았을 경우와 알 수 있었을 경우는 구별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표의자의 비진의표시를 진의표시로 신뢰하여 손해를 입었을 경우에 표의자는 불법행위책임(제750조) 또는 계약체결상의 과실에 의한 손해(신뢰이익)를 배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도 진의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표의자는 상대방의 과실부분에 대하여 과실상계(제396조, 제763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 민법은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을 귀책사유로 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반대견해가 있다.
Ⅳ. 적용범위
1.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
예를 들어 甲이 자기 재산을 乙에게 유증하라고 유언을 하였으나 乙은 그 유언이 진의 아님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그 유언은 무효인가? 이에 대해서는 제107조 제1항 단서는 문언상 상대방 있는 의사표시를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그 적용이 없고, 따라서 그러한 의사표시는 항상 유효하다는 견해, 상대방 없는 의사표시에 기하여 특정인이 구체적인 권리의무를 취득하는 경우 그 자가 악의이거나 또는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유효로 할 필요는 없으므로 제1항 단서를 적용할 것이라는 견해,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에만 제1항 단서의 적용을 긍정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 등이 주장되고 있다.
2. 신분행위
신분행위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진의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므로 본조가 적용되지 않으며, 신분행위에 관한 비진의표시는 항상 무효이다.
가족법상의 행위는 당사자의 진의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제107조는 적용되지 않는다. 혼인과 입양에 관하여는, 이 뜻을 특히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3. 공법행위
공법행위는 형식적 확실성을 중요시하고 행위의 격식화(格式化)를 특색으로 하므로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적용은 없다. 판례는 ⌜공무원이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여 의원면직처분을 하는 경우에 그 사직의 의사표시는 그 법률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외부적, 객관적으로 표시된 바를 존중하여야 하므로, 비록 사직원제출자의 내심의 의사가 사직할 뜻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관한 민법 제107조는 그 성질상 사직의 의사표시와 같은 사인의 공법행위에서는 준용되지 아니하므로 그 의사가 외부에 표시된 이상 그 의사는 표시된 대로 효력을 발생한다⌟고 판시하였다.
판례] 여군단기복무하사관이 복무연장지원서와 함께 전역지원서를 동시에 제출한 경우, 전역자원의 의사표시는 조건부 의사표시로서 유효한지 여부 군인사정책상 필요에 의하여 복무연장지원서와 전역(여군의 경우 면역임)지원서를 동시에 제출하게 한 방침에 따라 위 두 개의 지원서를 함께 제출한 이상, 그 취지는 복무연장지원서의 의사표시를 우선적으로 하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전역지원에 의하여 전역하겠다는 조건부 의사표시를 한 것이므로, 그 전역지원의 의사표시도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위 전역지원의 의사표시가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 하더라도, 그 무효에 관한 법리를 선언한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규정은, 그 성질상 사인의 공법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할 것이므로, 그 표시된 대로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판 1994. 1. 11, 93누10057). |
4. 소송행위
소송행위는 진의 없이 행하여졌고 이를 반대당사자가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효로 되지 않는다.
5. 주식인수 청약
상법 제302조 제3항은 주식인수의 청약에 관하여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6. 유가증권에 관한 행위
제107조 제1항 단서는 어음 등 유가증권에 관한 행위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유가증권의 유통성이 확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7. 대리관계
대리관계와 얽혀서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甲의 대리인 乙이 본인(甲)을 위하여 할 의사는 없이 오로지 대리권을 남용해서 자기나 제3자의 이익을 꾀 할 목적으로 丙과 대리권한 내의 법률행위를 하고 丙은 乙의 진의를 알 수 있는 사정이 있었다고 할 경우에 그 행위의 효과는 甲과 丙 사이에서 발생하느냐가 문제된다.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적용해서 乙과 丙 사이의 대리행위는 대리행위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새겨야 한다.
*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유추적용론 제107조 제1항 단서는 형평에 부합하는 규정이므로 이해관계가 유사한 경우에 이를 유추적용함으로써 그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이 판례와 학설의 태도이다. 특히 대표권남용 및 대리권남용의 사례에서 동 조항이 유추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판례에 의하면, ⌜진의 아닌 의사표시가 대리인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그 대리인의 진의가 본인의 이익이나 의사에 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한 배임적인 것임을 그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민법 제107조 1항 단서의 유추해석상 그 대리인의 행위에 대하여 본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대판 2006. 3. 24, 2005다48253) |
판례] 배임적 대리행위에 대한 민법 제107조 제1항의 유추적용여부 및 상대방의 악의‧과실 여부의 판단 기준 진의 아닌 의사표시가 대리인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그 대리인의 진의가 본인의 이익이나 의사에 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한 배임적인 것임을 그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의 유추해석상 그 대리인의 행위에 대하여 본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고, 그 상대방이 대리인의 표시의사가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가의 여부는 표의자인 대리인과 상대방 사이에 있었던 의사표시 형성과정과 그 내용 및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효과 등을 객관적인 사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판 2001. 1. 19, 2000다20694; 대판 1999. 1. 15, 98다39602; 대판 1987. 11. 10, 86다카371). |
8. 준법률행위
제107조는 준법률행위에 관하여도 원칙적으로 유추적용된다.
Ⅴ. 근로자의 비진의 사직의사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제)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그러나 근로자와 사용자가 자유로운 합의에 의하여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근로자측에서 자진해서 사직하기를 원할 때에는 사용자에게 해지통고를 하면 통고기간이 만료되는 때 근로관계는 정당하게 종료한다(제660조). 그러나 이에 반하여 근로자의 사직의사가 비진의 의사표시이고 상대방인 사용자가 근로자의 비진의 의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근로자의 사직의사는 무효이다(제107조 제1항 단서). 이 경우에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직처분한다면 이는 근기법 제30조 및 제31조에 의하여 무효이다. 여기서 근로자의 진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리고 사용자의 고의‧과실은 구체적으로 어느 경우에 인정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된다.
판례에 의하면 진의는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을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그 의사를 표시하였을⌟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로자들이 사직의 의사표시를 마음속에서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할지라도 그 당시의 경제상황, 피고회사의 구조조정계획, 피고회사가 제시하는 희망퇴직의 조건, 퇴직할 경우와 계속 근무할 경우에 있어서의 이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결과 사직원을 제출한 것이라면, 근로자들과 회사 사이의 근로관계는 근로자들이 회사의 권유에 따라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유효하게 합의해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사용자가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후 이를 수리하는 이른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경우에는 해고에 해당한다⌟
그리고 근로자가 회사의 경영방침에 따라 사직원을 제출하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여 퇴직처리하였으나 즉시 재입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실질적인 근로관계의 단절이 없이 근로했다면 근로자는 퇴직의 의사 없이 사직의 의사표시(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한 것이고 사용자는 이를 알고 있는 것이므로 퇴직의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로자가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퇴직하고 퇴직금을 정산 받은 다음 곧 재입사하는 경우에는 퇴직의 의사표시는 유효하다. 그러므로 재입사 시점이 퇴직금의 새로운 기산일이 된다.
판례] 상대방이 알고 있는 비진의 의사표시 근로자가 회사의 경영방침에 따라 사직원을 제출하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여 퇴직처리를 하였다가 즉시 재입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근로자가 그 퇴직 전후에 걸쳐 실질적인 근로관계의 단절이 없이 계속 근무하였다면 그 사직원제출은 근로자가 퇴직을 할 의사 없이 퇴직의사를 표시한 것으로서 비진의의사표시에 해당하고 재입사를 전제로 사직원을 제출케 한 회사 또한 그와 같은 진의 아님을 할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므로 위 사직원제출과 퇴직처리에 따른 퇴직의 효과는 생기지 아니한다(대판 2005. 4. 29, 2004두14090; 대판 1999. 6. 11, 98다18353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