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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년(현종 7)∼1702년(숙종 28). 조선 후기 유생. 자는 장통(長統)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임열(任說)의 후손으로, 증조는 좌승지(左承旨) 임연(任兗)이고, 조부는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임의백(任義伯)이다. 부친 임승(任陞)과 모친 우의정(右議政) 홍중보(洪重普)의 딸 남양홍씨(南陽洪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이정영(李正英)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5살 때 부친을 잃고 7살에 모친을 잃어 외조모
전주이씨(全州李氏)와 외숙부·외숙모 아래서 자랐다. 외숙부 감사공(監司公)이 근엄하고 엄격하게 가르쳤는데 어기는 일이 없었다. 자라서는
숙부와 외숙부 감사공을 정성을 다하여 섬겼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어 천륜의 지극함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 없게 하고자
함이었다.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문리가 날로 늘어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져 모두 큰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성품이 맑고 소탈하여
세상의 명리를 싫어하였으며, 옛사람의 글귀를 따다 문장 짓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제자백가서와 《사기(史記)》를 읽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패관잡기(稗官雜記)의 글에도 관심을 가졌다.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윤리가 무너지고 선(善)한 사람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더욱 세상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세상이
바뀌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술을 마시고 흥이 나면 맑고 아름다운 시를 읊조렸으며, 의기가 높았으나 평소에 교유를
일삼지 않았다.묘는 경기도 여주(驪州)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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