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하비로 도주한 여포를 쫓아가 압박합니다. 철옹성 같다며
호언장담하자마자 닥친 공격에 여포가 뜨끔 했을 것입니다. 조조가
여포에게 자신의 수하가 돼달라며 회유하지만 조조의 간계를 알아챈
진궁이 화친 제안을 거절하고 하비 성을 닫아걸어 대치상태를 유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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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난공불락의 하비 성을 함락하기 위해 의견을 타진하던 중 책사
곽가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우기에 제방을 쌓고 성을 빗물에 잠기도록
하는 작전을 펴는 한편, 삐라를 뿌려 여포를 잡는 장수들에게 현상금을
준다는 작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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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 여포도 작전을 짭니다. 몰래 한무리가 성 외곽으로 빠져나와 적을
포위하는 양면 공격 작전입니다. 하지만 출병직전에 초선이 몸이 아파서
드러눕자 여포는 출병을 뒤로 미룹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오판을
했으니 여포도 이제 명이 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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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작전은 폐기 되고 조조는 때 맞춰 내려준 비로 하비 성을 물에
잠기게 합니다. 조조는 하비성이 불안감을 느끼는 틈을 타 여포의 목을
가져 오는 자는 큰 상금을 내린다는 격문을 보냅니다. 이것을 본 병사들은
동요되기 시작합니다. 끝내 여포는 잠을 자다가 부하들에 의해 꽁꽁 묶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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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포되었고 이번에도 안에서 성문이 열려 조조는 무혈입성에 성공을 합니다.
여포는 조조 곁에 앉아 있는 유비에게 옛정을 참작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가
하면 조조의 부하가 되겠다며 매달렸으나 참형에 처해졌습니다.(하비전투/
여포사망 198년) 유비가 말한 정원-동탁-왕윤처럼 양아버지가 되어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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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여포를 죽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여포의 양아비가 되는 순간 모두
죽는다는 제안을 조조가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여포는 화살
받이로 처형됩니다. 고대에는 활을 쏴 죽이는 처형방법을 왜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임 꺽정’도 수 백 개의 화살을 맞고 장열이 최후를 맞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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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중 가장 용맹한 장수를 꼽는다면 진나라 말기의 역발산 기개의
초패왕 '항우'와 삼국지의 '여포'를 꼽을 수 있지만 그토록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업를 이루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의 실패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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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들은 유방이나 조조에 비해 훨씬 더 정이 많고 인간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인심을 얻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베푼 정이 대중을 포용한 큰 덕이 아니라 개인적 감정에 치우친 사사로운
인정이었습니다. 둘째 인재를 활용하는 용인술에서 부족함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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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자신이 스승으로 모셨던 범증의 충고를 끝내 듣지 않았고, 여포는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진궁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셋째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부족했습니다. 지금도 깡패들은 수명이 짧아요. 2022년 기준 현역
대장이 47살 용띠입니다. 머리가 텅빈 깡패는 징역살다가 끝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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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이 두 사람이 그 용맹에다 지모를 갖춘 완벽한 인간이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 있었겠지만, 인간을 창조하는데 있어 장단점을 함께 부여하는
조물주의 공평함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한편 장요는 조조를 향해
나라의 큰 도적이라며 꾸짖자 노한 조조가 직접 장료를 죽이려 했고 관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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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말렸습니다. 또 유비는 조조에게 장료는 "마음이 곧은 사람이니 살려
두어 크게 써야합니다" 이에 조조는 동감을 표하며 손수 장료의 결박을 풀어
주고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입혀 주었고 장료는 조조의 후대에 감격하여
조조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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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조는 예정을 생각해서 진궁을 살려주려 했으나 진궁이 장수를 욕
뵈지 말고 빨리 참형하라고 해서 진궁을 죽여버립니다. 그나저나 천하의
사랑꾼 여포는 초선을 두고 어찌 갔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