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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 설악에서 목포까지 7구간 이화령 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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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천에서 만나 늘 그리움을 품고 지내던 구간. 희양이와 그의 똘마니 구왕이가 있는 곳. 쌍천에서 신나게 내려와 어둠을 맞이하고, 감마에서 마중을 나가 절절한 어려움을 달래던 곳. 여전히 산에 들면 사람들이 추억된다. 이화령이다. 배꽃과 관련된 이름은 정감이 있다. 늘 배꽃이 만발한 곳에서 자란 탓일지도 모르겠다. 전엔 이우리재라 했다. 고대 조선의 유민이 내려와 조령산 아래 터를 닦고, 하늘재 길을 내고, 고향 이우리재를 생각하며 이우리재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조봉에 갔고 누군가는 조봉을 끌어안고 뒤엉겼다. 나로서는 오늘 좀 떨리는 날이다. 처음 소개한 녀석을 어찌 볼지, 도중에 멈추기라도 하면 어찌할지, 어떤 클레임을 걸지, 공연히 불필요한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지, 여러 걱정이 든다. 이정표와 거리가 맞지 않아도 걱정이고 안내음이 이상해도 걱정이다. 시간을 넘기자 안내음은 “네 시간…”이라고 하는 것 같다. 지금 보니 “한 시간…”이라고 말해야 할 텐데 “일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수를 기수로 변경하는 작업을 하였다.
백두대간 전체를 보면 유독 불거진 곳이 있다. 북의 맹산 분지, 추가령 인근이 그렇고 이번 구간 분지리가 그렇다. 맹산 분지의 알지 못하는 물은 동해로 흐르고, 추가령 남대천은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역시 동해로 흐른다. 분지의 분지천은 쌍천으로 흘러 유명한 무도 쌍천환종주를 만들고, 다시 달천을 지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물은 산을 만들고 산은 물을 막았다. 산줄기는 프랙탈처럼 무한히 뻗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긴 산줄기는 이름을 갖는다. 이름 없는 산줄기조차 높고 빼어난 산을 품은 곳이 많으니 살면서 이 산을 모두 가 볼 수 있을지, 북이 열리면 다시 온전한 산길을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대는 새와 관련된 지명이 많아 보인다. 유명한 새재가 그렇고, 조령산, 조봉, 황학산(누런 학), 황계산, 백화산(봉황의 부리), 희양산(봉암), 조항산(새목)이 그렇다.
여러 추억과 이야기, 발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뒤섞어 걷다 보니 황학산에 다다랐다. 하늘은 아직 검다. 백화산 바위 등성이가 이리 거친 줄 몰랐다. 그리 어렵지 않게 넘던 바위, 오늘은 이슬이 맺혀 이끼가 푸르니 얼음장같이 미끄럽다. 바위 디딤에 신경이 곤두선다.
백화산 아래 옥녀봉과 성주산이 있고, 그 사이에 화산이 있다. 사람들은 불이 자주 나자 이름의 탓으로 여기고 상극의 의미를 담아 남호로 개칭했다. 성주산과 능곡산 사이에는 솥골이 있다.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택리지에 “문경 가은, 봉생, 청화에 빼어난 경치가 있다. 북으로 신선이 노닐 만한 선유동이 있어 산과 물이 기이하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주변은 모두 난을 피할 땅이니 은자가 살만한 땅이다”라고 적고 있다. 다름 아닌 오늘 7구간은 이 은자의 골을 둘러싼 산줄기를 걷게 되는 셈이다. 일대는 은자가 살 만한 골이 곳곳에 가라앉아 있다.
백화에서 갓밝이가 시작되었다. 아침을 먹고 구경을 하고자 하였지만, 대장 님의 탁월한 결정으로 평전치 지나 덱에 머물렀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리 춥지도 않으면서 사방으로 열리어 이름 아침이 전해주는 바람 빛을 보기에 그만이다. 운해가 낮고 두텁게 깔리어 산줄기는 보이지 않고 높은 산은 섬처럼 솟았고, 은자들이 산다는 일대 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2
선인들의 후기를 보면 금강산과 지리산이 많고, 소백산과 의외로 희양산 이 있다. 모 선생은 희양을 속리와 대등하게 보았고 속리에 법주사가 있다면 희양에 봉암사가 있다. 후기의 답사 중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유형이 있는데, 김종직 선생 두류산(지리산), 주세붕 선생 청량산, 이황 선생 소백산이고 희양산은 최치원 선생으로 인식된다.
희양은 봉암이고 골은 용곡이다. 낙동강에서 고개를 넘어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골의 기운은 너무도 강해 그 기를 누르고자 구왕봉에 철불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고, 1920년대만 해도 실제 존재했다고 했다. 최치원 선생은 봉암사 지증대사 비문을 8년간 준비하면서 “… 봉암, 용곡으로 지경이 괴이하여 … 산이 신령하여 갑옷을 입은 기사(구왕봉)를 마부추로 삼은 듯한 기이한 모습이고, 노을 진 저녁이면 붉은 봉황의 날개가 구름 속에 치켜 올라가는 듯하다. … 골은 물이 백 겹으로 띠처럼 두른 것을 보니 이무기가 허리를 돌에 대고 누운 것 같다.”라고 적고 있다. 터에 연못이 있어 용 한 마리가 살고 있어 구룡봉(구왕봉)으로 쫓아냈다. 그 기를 누르기 위해 매년 소금가마를 구왕봉에 묻어 기를 누른다.
어느 사진을 보니 구왕봉이 왼쪽 날개, 이만봉이 오른쪽 날개의 형상을 하여 마지 하늘로 날고자 날개를 막 펴려고 하는 커다란 새의 모습을 한 것이 보인다. 희양은 두 자 모두 햇살을 의미하고 후대의 후기에는 혁희봉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햇살을 의미한다. 희양은 북을 제외한 3면이 모두 바위로 되어 있어 이름이 어울려 보인다. 최치원 선생은 그 밖에도 백운대, (월)야유대, 고산유수명월청풍 등 다양한 흔적을 남기었는데 구간 산행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다름 아닌 달빛은 밝고, 산은 높은데, 골마다 물이 굽이쳐 흐르고 쾌적한 바람이 몸을 더듬는 “고산유수명월청풍”이다.
봉암사에 땅을 기증한 사람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계속되는 출입 금지 표지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일대는 신라대 선종 구산 중 희양산문의 본산인 봉암사의 영역으로 사람을 출입을 완벽히 차단하고자 산림유전 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사람이 있으면 자연은 황폐화되기 마련이다. 사람은 그렇다. 하지만 사람이 주거를 하고 화전을 일구고 도로를 내는 긴 시간에 걸쳐 그렇게 될 텐데, 늘 경계대상은 등산인이다. 잠시 머물러가는 등산인이, 위대한 자연과 문화를 탐방하는 탐방객이 자연이 훼손한다는 생각, 통제를 통해 보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어 보인다. 통제를 하고 학자들이나 들어가 연구를 하고 졸렬한 논물을 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지, 질서 있게 사람들이 탐방을 하며 자연과 더 친근해지고, 자연에 대한 소중한 마음을 갖는 것이 옳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처럼 달 밝은 가을밤이면, 그 옛날 최치원 선생이 달밤에 술을 마시며 놀던 야유대에 앉아 선생의 기상을 느껴보고 싶다. 더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정책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된다.
3
큰산, 대야산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버리미기재를 떠났다. 익숙하지 않던 다리가 점점 익숙해 지자 달빛이 부서져 쏟아지는 헬기장에 서서 넋 놓고 하늘을 바라본다. 달빛을 뒤섞은 달 바람이 등성이를 넘어 몸에 닿아 한기가 느껴지자 잠이 깬다. 오래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은 비몽사몽간에 휘영찬 달빛만 멍하니 바라보다 달빛을 벗는다.
바위지대가 시작됐다. 점점 대야의 공포가 다가온다. 어디쯤이 대야산일까? 이름처럼 된비알 촛대봉을 올랐고 대야로 다가갔다. 대야가 300미터 남았지만 대야의 직벽은 보이지 않고, 경고장만 날아들었다. 이런 식의 경고는 마음에 든다. 다만 위험하니 자신의 안전을 잘 지키며 무사히 올라가리를 바란다는 경고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경고 문구는 버릇없고 불친절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대야 직벽. 조르바 님이 선두로 올라가 덜덜 떨며 우는 화희님과 북극성님을 보듬었고, 오래도록 아래에서 지도를 하다 대장님이 쉽게 올라갔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신호가 없으니 직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직벽의 공포는 우선 축축한 바위에서 왔다. 어느새 소소하게 내려앉은 이슬은 바위를 촉촉이 적셨고 사람의 발을 거부했다. 최근 설치된 디귿 대는 나사가 풀려 두려운 생각이 들었고, 간격이 넓어 다리를 길게 찢어 올라서다 다음 동작이 막히기도 했다. 올라섰다 영 안될 것 같아 후퇴를 선택하면 내려오는 공포는 극에 달했다. 힘조차 빠진다면 벽에 붙어 매미가 되어 울 판이다.
자세히 보니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야 했고 이후부터는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공포는 먼저 올라간 환희 님과 북극성님의 비명에서부터 축적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올라가며 내뱉은 두려운 음성이 아래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더욱 무섭게 전달된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고,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감마에서 이 직벽을 내려온 사람들의 간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생각이 든다.
고산 명월 청풍. 바람을 막은 바위 옆 덱에 앉아 밝은 달을 바라보며 지난 두려움에 쫄보가 된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 다시 생각나는 말이다. 알지 못하는 깊은 산 달빛은 바위에 닿아 부서지고 바람이 넘어가며 조롱을 하는 대야의 새벽이다.
4
대야의 고비를 지났다. 나머지는 꽃길로만 알았다. 한데 고모재 고모바위사이물을 마시는 것 까진 좋았지만, 물맛이 끝내주고 더욱이 10미터로 가까이 있어 최고였지만, 고개 위로 조항산이 버티고 있었다. 새의 목덜미같이 솟은 조항산. 내가 보기에 목덜미는 아니고 희양 보다야 작지만 역시 새가 날개를 펴려고 하는 모습을 닮았다.
조항산 바위 등성이가 시작되자 바람은 세차게 등성이를 넘었다. 한기와 위태로움이 서려있는 조항 등성이는 다시 대야의 위태로움이 느끼어졌다. 잠시 바윗 사면 알바를 하고 들어선 등성이, 뾰족한 바윗길, 시간이 지체된다던 길, 좁고 가느다란 바위 등성이는 발이 엉성하게 닿아 바람에 넘어지면 아찔한 그러나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길이다.
때론 등성이를 돌아서 다시 등성이를 올라야 했고, 때론 좁은 등성이를 직선으로 가야만 했다. 위급한 순간은 뒤에서 넘어지며 비명을 지르신 분으로부터 왔다.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대야도 넘겼는데 다시 이곳에서 위기를 맞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 낭떠러지 반대편으로 넘어져 에헤질도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생각을 할수록 아찔했다.
긴 새의 어깨, 목덜미, 머리 다시 목덜미, 어깨를 지나 바람이 잦은 편안한 길이 이어지자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졸음이 쏟아진다. 비몽사몽 어디로 가는지 바위와 바람이 뒤엉키고 숲길과 까칠한 바위길이 반복되며 스르르 몸의 기력이 흩어진다. 바위 지붕 아래 누우니 바람이 차지만 스르르 잠이 온다. 이런 나를 보살펴 주신 분은 북극성님이다. 지난 장성봉 하산은 환희 선배가 돌봐 주더니 오늘은 이래저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길고 지루하고 졸린 산길을 걷고 걸으며 길가에 주저앉았다. 길을 몰라 삐지신 환희님을 만나 푸념을 듣고 다시 쫄래 쫄래 걷다 보니 바위 봉우리에서 환희 님과 조르바님이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밤 홀로 산속을 헤매는 것을 즐기시는 띠지의 주인공과는 달리 밤에 홀로 버려짐이 가장 두려운데 기다려준 시간이 너무 고맙다. 아직 갓밝이는 부족하지만 어느 바위 등에 검푸른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야속하게 환희 선배는 늘 “이리 와서 전망을 보라” 하고는 사라지기 일쑤다. 더 찬찬히 바라보고 싶지만 그럴 짬을 안 준다.
오늘은 지도가 있어 걱정이 없다. 지도를 보니 대장님은 벌써 청화산에 가까워지고 있고 아마도 북극성님이 뒤따르고 계실 것이다. 막 앞서간 환희 님과 조르바님이 있을 것이고 거리차는 500여 미터 정도이다. 다시 길 한가운데 앉았다. 점점 밝아지는 운해를 나뭇가지 사이로 보고, 아침을 맞이하는 벌들의 날갯짓을 들으며 자리에 누웠다. 어느새 랜턴은 불필요해졌다. 조르바님이 청화산은 전망이 없다는 이야기에 포기하던 갓밝이가 시작되었다.
청화 삼거리로 다가가니 해는 이미 떠올라 운무 위로 황금빛을 쏟아내고 일부는 나뭇가지 사이로 발아래 하얀 돌에 비추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속도를 높여 빠르게 가지만 좀체 나뭇가지는 사라질 줄 모르고 해는 성큼성큼 올라온다. 용케 비스듬한 바위대에 올라가 흔들리는 다리를 견디며 되지도 않는 손전화로 사진을 담았다.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는 순간이다. 아직 사진기 하나 늘 둘러멜 여유가 없다. 맹한 하늘에 떠오른 일출은 하늘이 별로지만 운해가 강렬하여 제법 손에 꼽히는 일출을 보여 주었다. 지도를 보니 대장은 벌써 청화산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청화 삼거리에서 벌써 도착했을 것으로 예상했던 조르바님을 만났다. 북극성님 청화로 오시다 시루로 가신 것으로 생각되어 시루 안부까지 내려갔다 왔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청화에서 대장님이 북극성님을 애타게 부르고 계신데 어찌나 그 소리가 큰지 아침 대간을 뒤흔들고 있다.
5
대장님은 알바생 찾으러 다시 청화삼거리를 지나 조항산 안부까지 내려갔고 조르바님과 쫄래쫄래 눌재로 내려왔다.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마무리 하는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고 하교를 하고 마시는 음료가 가장 달콤하다.
청화산농원휴게소는 우리를 위해 말끔한 화장실을 마련해 두었고 무엇보다 비데가 설치되어 기쁘다. 어느새 햇살은 따사로워 이 햇살을 받으며 속리 바위를 기어 올라간다는 생각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황학산
백화산으로 가는 길에
문경읍 일대
백화산
백화산 하산
평전치 지나 데크
푸른 하늘 아래 운해가 낮게 깔리었다
오늘은 어떤 생각을 하시며 이 산을 맞이하실까
성내일대, 멀리 감마때 어룡산 오정산 일까 ?
운해 위로 솟은 산은 섬이 되었다.
조르바님 점 점 산을 닮아간다.
성내
밝아지는 하늘
이 곳에서 간식을 먹고 가기로 한다.
짭조름한 새우젓 양념이 제맛이다.
역시 아침은 산에서 맞아야 제맛
산은 아침이 제일 아름답다.
더욱 밝아진 운해
백화산도 밝아졌다.
마을 사람들도 부스스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만봉으로 가 보자.
어김없이 좋은 조망처가 곳곳에 있다.
오늘 유독 두 분 닮았네요.
바위가 미끄러워 하산이 어렵다.
조심 조심
사다리재
사다리재
걸음이 사뿐사뿐
지난 구간의 산줄기가 쪼르륵
쪼르륵
보고싶은 혜성선배
바위가 미끌미끌
지나온 길
이 곳도 운해가 장난이 아닐세
숲과 바위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길이 좋고
이만봉
희양이 수즙게 숨어있고 2교시의 산줄기도 보인다.
전망좋은 곳에서
운해를 감상한다.
하늘도 보조를 맞춘다.
대장님은 여우같이 숨겨진 조망처를 찾아 우리를 부른다.
햇살 좋고 꽃 좋고.
바람 좋고.
기이한 바람이 휘감고 돌아가니 걸음은 더딜 수 밖에.
조금씩 왼쪽으로 이동하는 구름.
뇌정산 이만봉 사이 일 것 같다.
두 선배님도 오시어 비경을 즐기신다.
주섬주섬 갈 준비를 해야지.
참 구름 이뿌다.
주무시는건 아니겠져.
싱글벙글
가기 싫은디.
아쉬움에 띠지 한 장 부착.
아쉬움에 한 장 더.
조금 가니 다시 전망대가 도토로의 숲처럼 열려있다.
바위 위로 꽃이 올라와 전망을 독차지 하고 있다.
꽃도 한 장 담아보고
이만봉 다 왔다.
비석은 마음에 들지 않네.
내려가 볼까나?
분지리 방면.
드러난 희양이
시루봉 삼거리.
쌍천때 통과한 시루봉도 가 보기로
시루봉 비석도 실망스럽지만 산세가 마음에 든다.
원점회귀는 지루하지 지도의 실금을 따라 내려가 본다.
거리는 짧은데
길이 더럽다.
약간 알바 하고 조우
무거운 짐 짊어지고 오신 뿡이선배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희양산 만나러 가야죠.
희양산성도 보고
드디어 올라왔네요.
힘들어 하는거 아닙니다.
모두 지나치고 돌아올 적에 사진 찍는것이 정석
이라고 대장님이 말씀하심
희양산 고스락
속속 도착하시고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며 사진을 담습니다.
호기심에 바위틈으로 나가보기도 하고
바위도 올라갑니다.
어디선가 날아오셨네요.
대장님이 대충 찍고 오라고 합니다.
단체 사진은 고스락에서 찍어주신분이 다시 찍어주고
희양산 하산을 합니다.
미끄러우니 팔이 아픕니다.
좀 위험하기도 합니다.
지름티재 지나서
구왕봉 올라가야져
희양산의 똘마니에서 희양을 바라보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이 곳 비석도 별루네요. 구왕봉 땀 삐질삐질.
은티
마당바위
희양 구왕
좀 쉬어 갑니다.
악휘 삼거리
환희님 리드를 받으며 쾌속 하산
렌즈에 김이 서려 사진 다 베렸네요.
이런데 올라가서 쉬었다 가야 하는데 그냥 쏘시네요.
커다란 바위가 즐비하여
거인의 마을에 온 것 같습니다. 환희니이 부르지 않았다면 왼쪽 능선으로 내려갈 뻔
달빛아래 멍때리기
촛대봉
대야직벽
오늘 달이 유혹하네요
낮이라면 누워 한 잠 자기 좋은 곳이 이어집니다.
고모샘 가깝고 물맛이 좋아서
대간 샘 중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청화 삼거리 인근 일출 어렵게 봅니다.
청화 운해도 장난이 아닙니다. 시루봉 머리에 상투 틀었네요.
북진중인 젊은 대간꾼 만나 대화중인 대장님.
시루봉 언제 가봐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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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읽기도 이리 어려운데 어찌 다 쓰셨는지,
쓰기도 힘드셨을 길을 어찌 다 걸으셨는지.
바람은 또한
어느 천 년에 저런 절경을 빚어놓았는지.
바람이 빚은 절경이란 표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모든 것을 다 표현하기는 어렵고 불가능 했지만 후기 기록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네요. 읽을만한 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심차게 개발한 앱을 실질적인 실험 산행을 하는 날
긴장되고 설래는 마음으로 걷는
특별한 산행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조금 수정 보완할 부분이 있지만
많은 분들이 손 쉽게 사용할수 있는
아주 유용한 앱이라 생각합니다
산과 계곡 그리고 산과 물의 흐름을
연결하고
봉과 봉 사이 산과 산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들 까지 풀어내는 능력은
참 대단하다 느껴지고
쌍천환종주 종주길을 부각시키는 능력이
참 좋습니다
밤길을 홀로 즐기는 띠지의 주인공
길을 잃어 삐진 환희님
밤길에 혼자 버려진 자신의 모습
조항산에서 청화산 구간 이야기
표현은 별루네여..ㅎ
장거리를 하는 분들로서 하는 얘기는 아닌듯 싶어요..
꼭 띠지 주인공이 리딩을 안 하더라도
날이 밝아오는 그런 시점 정도는
잘 찾아 올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할듯 합니다..
공지 올릴때 트랙을 왜 올립닌까..
어렵고 위험한 구간은 서로
이끌고 끌어 주고 하는 건 당연 한거구
청화산 가는 길에 너무 멋진 풍경들에
이끌려 멋진 풍경을 담아 보여 주고픈
마음으로 조금 서둘러 오른거였는데.'.ㅎ
다 생각 차이이니
그러러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사히 마친 7구간 그져 감사할 따름이고
댓글 두 개 쓰는거 반칙입니다. ㅎ
후반부 글 불편한 점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지만 개인의 어려움이 너무 토로 되었나 봅니다.
앞에서 걷는 모습에서 가을이 느끼어 집니다. 감사합니다.
진천에서 뒷풀도 아주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들이 더 커지는
남은 구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번 보다 업그레이드 된 그림같은
사진들 아주 굿 입니다^^
그늘 아래 드러누워 조개를 구워먹는 맛이 최고였습니다. 가을이 다 가기전에 한 번 더 구워 먹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위 새들의 천국인듯~~
꼼꼼하게 알려주시니
눈앞에 펼쳐진 암름구간이 멋지게 서있는듯 하네요
하늘의 구름도 예쁘게 뜨고요
어려운 구간 무사히 완주하심을 축하드려요~
뒤풀 서포트 하시느라 수고했구요
즐겁게 잘 보냈어요~~^^
함께 한 시간이 소중합니다. 가을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밤이건 낮이건 점 점 대간에 파묻혀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려한 문장으로 술술 읽히는 멋진 산행기입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저희들 모두의 추억이 스며들어 있네요~^^
산행 내내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백화, 희양, 대야, 조항, 청화 모두 잊을 수 없는 산세와 느낌을 가지고 있었구요~!!
개인적으로는 버리미기재쪽으로 내려가는 산길의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선배님과의 즐거운 대화, 함께 걷기. 또 기다려집니다. 항상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조만간 또 뵈어요~^_^
글은 조선생님이시죠. 어느덧 추억이 쌓여 그리워 지는 대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며 오래도록 함께 산에서 뒹굴고 대야직벽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희망합니다. ^^
대장님,조르바님,바람아래님
후기와 사진으로 산행이 파노라마입니다
다시보니 내가 저렇게 걷고 멍때릴땐 저렇구나 싶군요 ^^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대야산 직벽입니다
저또한 안전시설이 생기기 전에는 다시는 안갈겁니다 ㅎ
후기,동행,사진,뒷풀이 장소제공 모든것이 감사합니다
잘 델꼬 다녀서 고마워요. 멋드러진 산을 함께 구경한 사람들의 추억이 깊을 것 같습니다. 맛난 머리고기도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머리고기 + 소주 먹고싶네요. 감사합니다.
선선해진 날씨에 짜릿하고 조망좋은 산길..
눈호강은 지대로하고 다리는 힘들고 ㅎㅎ.
선배님 안계시니 뭔가 이상합니다. 대야직벽에서 선배님이 더욱 그리워 지더라구요. 버섯도 풍성했습니다. 다음 구간에 뵈어요. 감사합니다.
바람아래운영자님~~
희양이, 구왕이로 산이 살아움직이는 듯 합니다.
희양산, 대아산이 포함되어
직벽을 오르고 내리고 힘도
많이 써야하고 어려운 구간
지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밤티재부터 시작하는 다음 구간도 초반부터 몸 좀 쓰셔야 겠네요.
늘 즐겁고 안전하게 산길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사진으로 봐도 정말 멋진 구간입니다.
여전히 힘에 부치는 길이지만 즐거운 길이더라고요. 다음 속리산도 기대가 됩니다. 백두대간 조금 둘러 보았는데도 좋은산이 이렇게 많으니 어쪈데요? 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