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누가 몇 시에 출근했는지 개의치 않을 만큼 자율적이다. 주당 35시간이라는 짧은 근무 시간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감동적인 고객 서비스로 업계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어 창립 이래 34년 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고, 매년 평균 15% 정도의 성장을 해왔다. 이 놀라운 회사가 바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작은 도시 캐리에 본사를 둔 SAS Institute다. '행복한 젖소가 우유도 더 많이 생산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가진 CEO 짐 굿나잇(Jim Goodnight, 1943- )은 매우 분명한 비즈니스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직원이 피곤할 때는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지 않도록 금지 시켰다. 피곤하지 않으면 실수가 적고 실수가 적으면 실수를 찾아 수정하는 시간과 인력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최대의 비상장 소프트웨어 회사인 SAS는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코드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제품을 검사하는 직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1/3 수준에 머문다.
짐 굿나잇 회장은 "가장 소중한 회사의 자산은 직원이다. 내가 할 일은 매일 회사를 떠나 퇴근하는 직원이 다음 날 아침 다시 회사로 돌아오도록 근무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직원은 가족이다. 병가에 제한이 없고 병으로 개인이 지불한 비용의 90%까지 회사가 환급해 준다. 거대한 피트니스센터에는 미용실, 마사지실, 에어로빅등 다양한 레크레이션 시설이 갖춰져있다. 이 회사는 레크레이션 강사나 맛사지사 정원사에 이르기 까지 비정규직이 없다. 아웃소싱이 아니라 모두 정규직이다. 1976년 창립한 이래 비즈니스 환경이 어려워도 한 번도 강제 해고는 없었다. 자발적 퇴직율은 2%에 지나지 않는다. 이 회사가 사원의 복지에 이토록 천착하는 이유는 짧은 근로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몰입하여 쏟아 내게 하기 위해서다. 온갖 잡다한 회의를 없애고, 늘어지는 일을 잡아주고, 빨래에서 육아까지, 자동차 관리에서 건강관리까지 가지가지 생활의 필요들을 최대한 회사가 도와 줌으로써 직원은 오직 일에 창조적으로 집중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SAS연구소는 포쳔지 선정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를 2년 연속 차지했다. '타율 1할 대의 선수를 계속 놔두는 것은 바보 짓'이라고 말하는 20세기 경영의 아이콘 잭 웰치가 냉정한 합리성으로 직원을 성과를 위한 도구로 인식했다면, 짐 굿나이트는 만족한 직원만이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믿음을 입증시키는 21세기 감성경영의 혁명가인 셈이다.
하드 워크가 결코 미래 성장의 열쇠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직원을 소진시키고, 건강을 위협하며, 몰입을 방해하고 분산시켜 실수하게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 객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일본을 제외하고 서구 선진국 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사기업 근로자들 중에서 1/4은 전혀 휴가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경제 조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약 40% 정도는 향후 6개월 동안 휴가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역시 미국인 중 약 40% 정도가 여름 휴가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유럽인들에 비하면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서 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오랫동안 빈가솔린통에 기름을 채우듯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며 일하는 미국인들은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그럼에도 미국이 가장 잘 사는 나라는 아니다. 유럽에 이미 미국보다 잘사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2007년 미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4만 6천달러 수준이었다. 7만 6천달러인 노르웨이를 필두로 룩셈브르크, 스위스, 덴마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순으로 7나라가 미국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높다. 이중에서 인구 규모가 적은 아이슬란드와 룩셈부르크를 빼더라도 미국인들은 겨우 세계 7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7위를 유지하는 이유는 빡센 근로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짐 굿나이트같은 위대한 실험자들이 미국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힘을 가진 이유는 창조적 관심과 열정이 스스로 그들을 이끌었기 때문이지 시키는 일을 밤새워 하는 노동 때문이 아닌 것이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야간 잔업, 휴일 근무로 이어지는 빡센 노동이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왔다는 거의 절대적인 믿음을 가슴 속에 각인시켜두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회사를 위한 근면한 희생이 한국의 경제 기적의 제 1의 비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는 근면과 복종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새로운 미덕, 즉 상상력과 창의성, 그리고 몰입과 열정이라는 우뇌적 기능을 조직차원에서 훈련하고 계발하지 않고는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응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소진적인 하드 워크가 아니라 일과 삶이 서로에게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선순환 사이클인 스마트 워크를 통해 양이 아니라 질이 제품과 서비스의 품격을 좌우하도록 해야한다.
스마트 워크는 '하면 좋은' (nice to have) 전략적 선택이 아니며 인터넷과 스마트 폰으로 상징되는 기술적 도구를 활용하여 할 수 있는 '무엇'은 더욱 아니다. 스마트 워크는 일과 삶을 상생시킴으로써 고효율청정 에너지로 직원을 가득 채우는 기업문화혁명이며, 장기적 경쟁을 위한 집중 몰입 근로 방식이 되었다. 만약 경영자들이 늦은 밤 사무실을 꽉 채운 직원들을 무조건 든든해하고, 초저녁에 사무실이 텅 비어 있으면 불안해하고, 회사에 오래 남아 일하는 것이 회사에 대한 헌신과 열정의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스마트 워크는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 삶의 자유를 찾아 주당 근로 시간을 줄여가기에 성장율이 둔화되고, 그렇게 자족했기에 몇몇 분야에서 한국에 추월당하고 말았다는 승리감에 위로받고 있다면, 스마트 워크는 요원하다. 이제 겨우 따라가기 시작했는데, 지금 그들처럼 삶의 질을 요구하면 언제 선진국을 쫓아갈 것이냐는 회의에서 벗어 날 수 없다면, 우리는 개인을 풀어 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보상, 즉 상상력과 창의성과 열정이라는 보물을 얻을 수 없다.
바로 이 믿음의 부재를 극복할 때 비로소 일과 삶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선순환 체계인 스마트 워크는 기업의 현장에서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 워크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며 문화인 것이다. 스마트 워크는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소진된 직원을 가지고는 미래의 선도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율의 힘을 믿고, 개인을 통제하는 대신 응원하여, 그 상상력을 풀어 줌으로써 열정과 창의성을 현장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을 일에서 배제시키는 대신 그들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맞아들임으로써 직원이 늘 충만한 에너지로 채워지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직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직원의 에너지 원천인 가족이라는 전원(電源)에 접속하여 강력한 응원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