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을(사26:1-4)
어떤 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천국이 있습니까?" 목사님은 "물론이지요.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그랬더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하고 일어났습니다. "아니, 왜 가시려고요?" "네, 천국만 확실하면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사님은 '뭔가 문제가 있구나' 생각하고 "앉으세요. 집사님이 천국에 대해 확인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말해 보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윤리와 도덕을 배웠지만 그것은 힘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은 많이 하지만 내 삶이 흔들릴 때 그것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 이것만 확실하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넉넉히 참고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분에게 천국에 대해 확인하려고 목사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제 대답을 들었으니 됐습니다.”
'사실'과 '현실'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여러분에게 천국은 분명한 현실입니까, 아니면 단순한 사실입니까?
사실과 현실은 다른 것입니다. 사실이란 분명히 있는 것이지만 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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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에 내 마음이 가서 붙으면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뉴스에서 매일 보도합니다. 그 전쟁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전쟁 때문에 내 삶이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아들이 그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면 달라집니다. 내 마음은 항상 거기에 가 있게 되고, 그 상황에 따라서 울고 웃고 마음을 졸입니다. 그 전쟁 때문에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전쟁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천국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 삶에 전혀 변화가 없다면 천국은 사실일 뿐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 땅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바라보고, 믿고, 사랑하고, 기대하며 오늘을 사는 힘을 거기서 얻는다면,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 목적, 방향이 천국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천국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천국은 사실입니까, 현실입니까? 현실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남은 자들'의 찬양
우리는 이사야서 24장을 통해 “그날에 이 땅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 심판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 땅에 기쁨의 근거를 두었던 사람들, 그들이 세상에서 믿었던 모든 것이 끊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은 슬피 울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남은 자'라고 하는데, 그들은 그날에 구원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쪽 편에게 심판은 다른 쪽에게는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25장은 남은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인지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이사야서 26장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천국이 있으며, 남은 자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먼저 그날에 남은 자들은 어떤 찬양을 할 것인가?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그날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을 보면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찬양할 것입니다. 심판은 무섭지만 심판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심판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지라면, 내가 사랑하는 분이라면 심판은 무섭지 않습니다. 그분이 올바른 심판, 제대로 된 심판을 하실 것이고, 그 심판은 나에게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들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심판자가 누군지를 자랑할 것입니다.
공의와 기쁨의 날
그런데 하나님은 심판을 아무렇게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뜻이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 땅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나님은 아셨고, 이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고,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정하신 뜻대로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기 때문에,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역사가 잘못되면 어쩌나? 역사가 악한 사람들의 뜻대로 진행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역사를 성실과 진실함으로 다스리십니다. 그 예가 나오는데,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괴롭히지만 하나님은 강한 자들의 시도를 꺾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압을 받던 자들이 기뻐하고, 남은 자들이 즐거워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마지막은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마지막에 엄청난 잔치를 베푸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잔치는 누구를 위한 잔치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고, 사모하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때로 박해를 받으면서도 자기의 신앙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 억울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견딘 사람들을 위한 잔치입니다. 그들에게 위로와 기쁨의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잔치와 함께 주시는 약속이 8절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즉 영생을 주시고,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시고 참된 위로를 주시고, 수치를 제하신다.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런 놀라운 약속이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도성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사 26: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성읍, 하늘의 도성이 있습니다. 그 성읍은 견고합니다. 아주 안전합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모든 것이 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성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성밖에 있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든지 짐승이 달려들거나, 도둑이 약탈하거나, 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이 있으면 벽이 있을 것 아닙니까? 성읍을 둘러싼 성벽과 외벽이 있는데, 성벽은 안쪽에서 성 사람들을 지켜 주는 벽이고, 외벽은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아 줍니다. 그러므로 성벽과 외벽이 견고해야 하는데, 성벽과 외벽의 이름이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은 돌로 쌓은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구원하고 보호하시기에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구원의 벽이 되시기 때문에 완전한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견고한 성읍이 우리를 위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4절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견고한 성읍, 영원한 도성이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는 견고하고 안전한 성, 영원한 내 집이 하늘에 있습니다.
이 성에는 누가 들어올 수 있습니까?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사 26: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는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자를 의미합니다. 요약하면 믿음으로 의로워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성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견고한 성읍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보이는 세상이 전부지."라고 하며 저 하늘에 영원한 도성이 있다는 것을 비웃습니다. 조롱하고 공격합니다. 영원한 도성에 대해 조롱하고 공격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가치관에 넘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이 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여기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누굴까요? 한번 마음을 먹으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이 심지가 견고한 사람인가요? 이것이 심지가 견고하다는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26장 3절에서 이야기하는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도성을 현실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 영원한 도성을 눈에 보이는 이 땅보다 더 확실하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 아무리 세상이 흔들어 대도 믿음을 지켜 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그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가? 평강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믿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을 붙잡고 사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평강의 근거로 믿었던 것이 많겠지만 그것은 결국 다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어떤 것을 많이 가지고, 여기서 내가 평강을 얻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진정한 평강은 영원한 도성이 있음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이 4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4).
세상의 헛된 것 믿지 마라, 하나님만을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세상보다 더 확실하게 믿고, 보이지 않는 저 천국을 보이는 나라보다 더 확실히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장 열망하는 것이 뭘까요? 평강 아닌가요? 평강이 없다면, 내 마음이 늘 불안하다면, 건강하면 뭐하고, 가졌으면 뭐하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인간은 평강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강은 모든 일이 잘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강은 최종 목적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현실은 조금 힘들고 복잡해도, 내 뜻대로 안 되고 불편함이 있어도, 이것을 넘어서서 내 영원한 미래는 저 위에 있고, 내가 갈 집은 견고한 성읍, 하나님이 준비하신 내 집이 있다. 그것이 나의 최종 목적지라는 것, 그 과정에 삶의 영고성쇠가 있다 할지라도 나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가를 확실히 알고, 거기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는 자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가수가 엄청난 재벌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초청장에는 '결혼식 후에는 지상 최대의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 피로연에 참석하시려면 미리 참석 여부를 알려 주십시오.' 이런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 가수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대답했고, 그날 결혼식에서 아주 감동적인 축가를 불렀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피로연장에 들어서는데,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막았습니다. 명단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내 이름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나는 조금 전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님, 죄송합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손님의 이름은 참석자 명단에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명단에 없는 분들은 아무도 입장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지 피로연에 참여하겠다는 회신은 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차장까지 정중하게 모셔다 드려." 그 가수는 내려오면서 지상 최대의 만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 순간 그 가수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최고의 잔치는 오늘의 잔치가 아니라,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가 아닐까? 그렇다면 주님의 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이 땅의 어떤 잔치보다 주님 나라의 그 잔치를 사모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잔치에 꼭 참여할 거예요. 주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최고의 파티에는 참석하지 못해도 됩니다.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저 영원한 잔치에 우리는 꼭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을 사실이 아니라 현실로 여기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어, 평강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출처
마음을 주께 드립니다, 황명환, 두란노, 2023, 266-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