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영성(10)- 진월- 사는 것이 행복이다.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요즘은 여행을 떠나기가 과거보다 쉬어졌다. 편리한 교통과 풍부해진 경제력 덕택으로 여행을 큰 부담 없이 많이들 가는 편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특성상 몇가지로 분류해 볼수 있겠다. 첫 번째는- 성지순례나, 탐사 등 지식과 정보의 습득 및 교육을 목적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잘 먹고 잘 놀 수 있는 곳으로 가는 휴식과 건강을 위하는 목적이다. 세 번째는- 자연의 경치와 환경들을 보면서 신의 경이로움과 인간기술의 위대함을 감탄하는 여행이다. 그렇다면 걷기영성은 무엇일까? 이 세 가지 목적이 다 포함되고도 남는 여행일 것이다. 오늘은 걷기영성 열 번째이다. 아침 열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진상역에 도착하였다. 한 때는 통학생들과 상인들로 북적거리고 화려했던 진상역이 서서히 쇠퇴해가면서 얼마 전에는 아애 폐쇄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무슨 축산물 판매장인가로 사용하고자 리모델링 중이라고 한다. 주차장에 주차한 후 진월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옛 역사 앞에는 노오란 유채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었다. 그 옆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우리 일행들이 노오란 유채꽃과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같이 보인다. 어제까지 섭씨29도의 여름 같은 날씨를 보이던 일기가 오늘아침에는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것 같다. 아직은 티셔츠 만 입기에는 추운 날씨이다. 아침에 잠바를 겉옷으로 걸치고 나오기를 잘 한 것 같다. 진상 5일장을 지나 섬거 사거리를 지나 진월 쪽의 지원교를 건너갔다. 지랑 이라는 마을이 나왔다. 아침에 출발하기를 오늘은 농부네 텃밭도서관을 가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약도를 몇 장 프린트해서 나왔지만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종이쪽지를 보고 찾기는 난해한 문제였다. 이럴 때는 감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고는 무작정 농산물저장 창고를 지나 지랑 마을로 들어섰다. 골목골목 포장된 시멘트 길과 길옆의 꽃나무와 수목들, 다소 오래된 주택들이 잘 조화를 이루는 비교적 깨끗한 마을로 보였다. 꽃임이 왈 이 곳 이 그전에 패션다자이너 앙드레 김의 출생지였다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들은 소리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동네의 분위기속에서 예술 감각을 연상시켜 보았다. 길옆의 하얀 민들레꽃, 연분홍의 철쭉 꽃, 꽃잎이 지고 난 틈새로 가느다랗게 내미는 연두색 벚꽃나무 순, 몽실몽실 뭉쳐 피어나는 노란 황매화 꽃, 녹색의 푸릇푸릇 자라나는 길옆의 가지가지 이름 있는 들풀들, 집집마다 지랑길 29호.30호... 라는 흰바탕에 청색 글씨로 깔끔하게 표시하여 정 위치에 부착된 아크릴 주소 등 패션 감각이 받쳐주는 동네인 것 같다.
마을 을 한 바퀴 돌고 산을 넘어 가면 다음 동네가 농부네 집이 나올 것 같아서 올라갔지만 길이 막히고 말았다. 지금은 동네가 사방팔방 도로가 연결되고 확 트인 동네가 좋은 동네라고 한다. 그러나 옛날에는 길이 미로처럼 구불구불 막히고 끊기는 동네 길을 좋은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마을의 범죄 예방 즉 방범의 차원에서 그렇게 도시계획을 했다고 한다. 도둑이 들면 빨리 도망하지 못하도록 막다른 골목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포스코 단지 안에도 잘못 들어가면 차가 다시 돌려 나와야하는 불편을 느끼도록 아파트 단지 동별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을 그 전에 경험할 수 있었다. 단지 안에서 도주하는 차량은 꼼짝없이 차단될 수밖에 없다. 도둑놈의 퇴로를 차단시키는데 미로의 목적이 있다. 기독교 초기에 로마 네로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기독교인들은 지하 동굴로 피하여서 그 생명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 지하동굴은 카타콤이라 부르는데 그 용도는 무덤으로 시용되었다고 한다. 카타콤의 동굴은 미로형태로 되어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비밀암호가 없이는 길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만 가던 길을 돌아 나오다가 인생의 화려한 시기를 다 보내고 황혼의 해질녘만 기다리는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한 남자 분을 만났다. 우리는 길을 물었다, 길은 있다고 하였다. 우리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분은 따라오라는 것이다.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과연 이 동네 인심은 예술적이다. 콘크리트 포장된 골목길 옆 밭두렁으로 50센티 정도 되는 사람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가니 그 정취가 또한 사람 사는 맛을 더해 준다.
그래 길은 있다. 가면 길이다. 우리 인생에도 살다가 보면 길이 안보일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은 길을 아는데 유독 나 혼자만 길이 안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얼마나 당황했던가? 앞길이 막막하고 이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머리를 싸매고 가슴을 쥐어뜯고 괴로워 할 때가 있지 안했는가? 그 때, 우리는 막다른 골목 꼭 죽을 것만 같다고, 이제 끝장이다 고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가면 길이 다 나옵니다. 또 연결됩니다. 길이 없으면 논두렁 밭두렁, 험한 고갯길, 만들어 가면 됩니다. 인생에도 길은 다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 길을 갑시다.
그 길을 지나 동네 끝자락에 이르니 옛날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낸 우물이 있었다. 그냥 갈 수 없어 사진 한 장 찍고 둘러보고 뒤돌아서는데 예감이 이상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아보니 이동식 도서관이라는 경운기가 보였다. 오늘은 감으로 걷기로 했더니 바로 감으로 만난 것이다. ‘광양에 오시면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정말 좋은 예감이다. 우리는 항상 좋은 마음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행복은 기대하는 사람에게 먼저 올 것이다. 이곳이 오늘 찾으려고 한 농부네 텃밭 도서관이다. 29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손수 꼼꼼히 모은 도서들이 10여평 남직한 도서관에 꼼꼼히 쌓여있었다. 여기저기 예술성이 엿보이는 글씨나 소품들이 책들과 짝을 이루었다. 아니 예술성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철학과 고집이 서려있다고 하고 싶다. 책들도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적들이 비취 되어 있었다. 2-3년 전에 도서관 옆에 페타이어 소각로가 들어선다고 하여서 골리앗 앞에 다윗처럼 크나큰 홍역을 치렀다고 한다. 그의 공장건립을 막기 위한 투쟁은 대단한 고집이었으며 철학이었다. 촌놈의 오기였고 농부의 자존심 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승리했다. 엄청난 골리앗을 해 넘기고 말았다.
여기에 잠깐 그 당시 이동도서관이라고 개조한 경운기를 운전하고 전국도시를 돌며 도서관을 지키기 위한 홍보물을 잠간 소개해 보겠습니다.
“농부네 텃밭도서관”은 농부 서재환씨가 27년 전인 1981년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의 허름한 마을회관에서 500여권의 책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장서 18,000여권을 소장하고 운영하고 있는 자생적 문화공간으로써 주중이나 주말 할 것 없이 지역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텃밭 도서관 앞산에 올 해 봄부터 소각로 제조공장이 들어선다고 하여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문화공간인 “농부네 텃밭도서관”을 폐타이어 소각로 제조공장 건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농부시인이며 도서관장인 서재환씨가 20여 년 전 개조해서 이동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경운기를 다시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소각로 제조공장 건설의 부당함과 자연 환경 보존의 중요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17일 광양을 출발하여 순천 구례 남원 임실 전주 논산 대전 청주 천안 평택 오산 수원 안양을 거쳐 서울(12월 1일)에 도착할 예정인 “농부네 텃밭도서관 지키기 경운기 전국순회 대장정”은 시민들이 헌책 두 권을 가져오면 새 책 한권으로 교환하는 도서교환전과 아울러 텃밭도서관을 지키고 자연환경 보존을 위한 모금운동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많이 참여하셔서 격려도 해주시고, 행복을 나누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중략... 텃밭 도서관은..... * 20년 전에는 경운기를 이용하여 마을마다 찾아다니던 새마을이동도서관이었습니다. * 지금은 독서, 전통놀이, 전시와 공연 등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자생적 문화공간입니다. * 그런데 봄부터 개발우선행정과 상업적 이익에 밀려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 공장대체부지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의 작은 정성이 텃밭 도서관을 지키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큰 힘이 된답니다. 광양시 텃밭 도서관 전국 대장정 일정입니다. 장소 : 대전 월평동 다모아 아파트 일시 : 2007년 11월 24일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 행사 내용 : 쓰레기 폐소각장 반대 서명, 책교환전(헌책 2권 가져가시면 새책 1권과 교환할 수 있다고 하네요.)
텃밭 도서관 주인이 황토색 잠뱅이를 입고 아내와 함께 인근 밭에서 일하다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시간을 내주는 모양이다. 도서관 구경하고 차 한잔 하고 가세요!. 마당에는 갖가지 우리나라 농촌의 토속적인 소품들로 정리되어 있었다. 마당 옆에 널뛰기 판자를 보고 그냥 지나갈 우리가 아니었다. 신나게 동심으로 돌아가 널뛰기를 한 판 해보았다. 마음은 10대인데 몸이 영 따라주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을 그 누가 탓하겠는가? 청춘을 돌려다오!, 자전거 바퀴를 재활용한 도롱태 들이 보였다. 제법 실력들이 나온다. 우리를 30-40년 전으로 되돌려준 시간들이었다. 머그잔에 따라주는 시원한 배 즙을 한 잔씩하고 몇 마디의 담소를 나눈 후 일어섰다. 지금 많이 바쁜 철이지요? 묻는 말에 지금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적어요! 봄철에 씨 뿌리고 가꾸어 놓아야 여름과 가을에 풍성할 것이다.
정겨웁고 인심 좋은 농부네 집을 뒤로 하고 큰길 가로 나오니 길옆에 큼지막하게 텃밭도서관이라는 간판이 세워졌다. 이곳 동네는 인간성과 예술성이 살아있는 목과적인 동네인 것 같았다. 진월면을 향하여 길을 걸어갔다. 잘 포장된 도로이지만 차량통행이 뜸한 것 같다. 가끔씩 군내버스가 지나갈 정도였다. 길옆에는 나무나 도로가의 전주나 철망에 각종 색깔들의 리본들이 매어 있었다. 그것은 국토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표시해둔 리본들이었다. 국토횡단을 주로 자전거나 도로하는데 이 길이 순천 광양 진상을 거쳐서 진월면 섬진강을 지나 하동으로 이어지는 코스인 것 같았다. 우리들은 리본대신 풀잎과 나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기록해 두기로 하였다. 고개 길을 넘어가니 저 멀리 망덕포구가 보였다. 넓게 펼쳐진 논들을 아래로 바라 보며 산 중턱에는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월에 가는 것보다는 이곳의 마을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들판의 논 한가운데에 거대하게 지어진 파프리카를 제배하는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저수지 쪽으로 올라갔다. 파프리카 하우스를 지나가니 파프리카 냄새가 나는 듯 했다. 파프리카는 꽤 비싼 고급과일채소라고 한다. 한 개에 몇 천 원정도 한다고 하니 내뜸 편하게 사먹기는 부담되는 과일채소인 것이다. 그런데 그 파프리카를 원도 없이 질리도록 먹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쯤에 우리 동네에 착하고 마음씨 곱고 이쁜 철이 엄마가 채소수출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몇 개월 동안 맛있는 과일을 일주일에 몇 차례씩 갖다 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 때에 너무나 맛있게 먹었었다. 지금도 파프리카만 보면 그분이 생각나고 고맙고 감사하다. 항상 마음속으로 축복하기를 잘되고 좋은 일 있기를 기도한다. 비닐하우스를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서니 그리 크지 않고 낚시하기 좋은 조금마한 저수지가 있다. 어느새 낚시꾼 두세 명이 와서 낚시를 하다가 점심때가 되었는지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동네는 차사리라는 동네이다. 차사리는 지금으로부터 사 오백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차동과 사동이라는 마을을 합하여 차사리라 부른다고 한다. 차동마을은 옛날에 이곳 저수지 밑에까지 포구가 형성되어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차의 포소라는 이름이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지도에도 기록되었다고 하며, 이곳을 군사기지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마을 한 중앙에 고풍스런 오래된 기와집 가옥을 보았다. 흙과 돌로 높다랗게 쌓아올린 돌담에는 담쟁이 넝쿨이 새파란 싹을 내며 올라가고 있었고 집안 곳곳에는 관리하지 못하고 방치된 채 오래되고 폐허 된 흔적들이 역력히 보였다. 문패를 보니 안씨 성을 가진 집안형제들이 사는 집이었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고종12년(1875년) 문과에 등재하여 사간원 경연과 사헌부의 지평 등을 역임한 안창범의 출신지 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조에 8명의 광양인이 문과에 등재하였는데 이분이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 거주하는 안채선(1912년생)은 그의 선대와 교우하였던 황매천의 친필 서간문을 비롯하여 여러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허물어진 담장 틈으로 넘어가 마당에 들어서 보니 백여 년은 넘게 보이는 분홍색 철쭉나무가 새까만 고택과 어울리게 운치를 더해주었다. 개 짖는 소리에 뒷집에 사는 한 남자가 나와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아마도 60은 넘게 보이는 것으로 종손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가서 집안의 유래와 식구들, 서가에 소장하고 있는 황매천선생의 친필과 고서들을 구경하고 인터뷰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 분의 모습과 개 짖는 분위기로 보아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인 무뚝뚝하고 못마땅한 표정들이 여실히 묻어 있음을 감지하고 우리는 잽 싸개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 시골 동네가 사람과 가옥들이 갈수록 더 왜 이리 황폐화 되어 가는지... 때 마침 지구대 경찰의 순찰차까지 불과 우리와 10여 미터 떨어진 동네 어귀에서 경광등을 반짝거리며 기다리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옛날 같으면 분명히 간첩신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새까만 복장에 썬그라스를 쓰고, 할일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 틀림없이 간첩으로 오인받고 쉬운 모습이다. 간첩으로 몰러 꼼짝없이 붙들러 가서 취조 받고 고초를 당할 판이었다. 동네 인심이 왜 이러는지... 농부 네가 살고 있는 지랑 마을과는 영 딴판인 분위기다. 그 와중에 꽃임이는 우리가 붙들러 가면 틀림없이 자기남편이 와서 보증해주고 우리를 찾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왜 꽃임이가 매사에 자신 있게 큰소리 치는고 했더니 과연 그 남편의 바운더리(울)가 대단한 것 같다. 부부는 다 이런가 보다?... 남편을 끔찍이 신뢰하는 이런 아내와 같이 살아가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알고 보니 지구대 순찰차는 그냥 마을에 임무가 있어 순찰 온 것이었다.
동네 어귀를 나오니 정문이 세워지고 비석들이 4-5개정도 세워졌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이 마을에는 1893년에 세운 정문이 있다고 한다, 정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 문 앞에 세우는 붉은 색깔의 문이라고 한다. 이 마을의 정문은 고종 30년(1893년)에 국명으로 세워져 효자 안진묵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오면서 보니 마을에 몇 개의 효자비를 본 것 같다. 이 고을은 효자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열녀보다는 효자가 훨씬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 앞 저수지 물 가운데 바위들이 섬처럼 몇 개가 보였다. 이것을 용바구라 부른다고 한다. 바위모습이 몸길이 10여미터 정도 되는 용처럼 생겼는데 1976년 저수지 가 생기면서 물밑에 잠겨서 그 일부분 만 보인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마을의 규모가 튼튼했었던 것 같다. 이 마을에서 법조계와 문학계의 인물들이 지금까지 10여명 가까이 배출됐었다고 한다. 차동마을을 지나 사오백 미터 정도 돌아 나오니 사동마을 나온다. 이 마을의 대표적인 것은 정자나무이다. 정자나무(귀목나무)는 둘레 8미터 10쎈티, 높이 25미터, 수령 630여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판에는 수령이 1,300년이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둘레나 높이는 틀림없이 맞는데 수령이 의심스럽다. 300년이라고 써진 곳에 누가 1자를 써넣어 장난을 친 건가? 알 수 없다. 최소한 630년이상은 되어 보인다. 매실 밭 옆에 양봉 벌통이 100여개 정도 놓여 있었다. 몇 년 전만 하여도 논농사를 제일로 여겼지만 지금은 과수를 많이 재배하는 추세이다. 일손도 그렇고 추곡수매도 없어지고 낮은 쌀값으로 인하여 논농사보다 매실이나 감나무를 심어가고 있다. 어린 묘목이 심어진 매실 밭 옆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은 더 가깝게 여겨졌다. 오늘의 거리는 8-10키로 미터 정도인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3시 조금 지나서였다. 다음 주는 한 주간 쉬기로 했다. 그리고 29일 날 계속될 것으로 여겨진다. 기행기를 바로 올리지 못하고 하루정도를 숙성시킨 후 오늘 저녁에 올린다. 이렇게 숙성시켜서 올려드린 것도 맛이 색다르다. 녹차에는 숙성 차와 생차가 있다. 생차는 찬성분이 강하여서 몸이 냉한 사람에게는 갑자기 너무 많이 마시면 소화 장애가 올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숙성차는 냉한 사람에게도 완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인삼도 그렇다. 수삼은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나온다고한다. 그러나 홍삼으로 숙성하여 먹으면 열이 많은 사람에게도 좋은 보약이 된다고 한다. 우리도 인생도 그렇다. 나쁜 사람, 나쁜 것이 없다. 내가 어떻게 선택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해가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만들어 가고 내가 선택하여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선택하여 만들어 갑시다. 찹쌀떡, 찹쌀떡, 메밀묵, 메밀묵, 요즘은 우리 집에 있어도 저녁 9시30분만 넘으면 이런 소리가 들린다. 아련하게 들러오는 소리가, 그 옛날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같이 듣기 좋다. 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살았다. 인생은 살아가는게 행복이다. 사는 것이 곧,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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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4월 22일(수) 걷기영성은 휴무입니다. 29(수)일날 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기행기를 읽다 보면 미래에 책으로 한권 묶어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사물을 같이 보아도 보는 사람에 따라다른시각.....웃음지며 잘 읽었습니다. 가슴 찡!
피할수없어서 즐기는 하루를 보내는중 들어와봤더니 "역시" 입니다 . 지가 없어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네요..ㅋㅋㅋ 걷기 영성 화이팅 입니다.
가는 세월 흘러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수가 있을까 .....주님께서 주신 이귀한 인생 감사와 행복하게 다함께 삽시다 참고로 예쁜 꽃임이는 내가 최고라고 합니다 하 하 하. 여보 사랑해....
목사님 기행문을 읽다보니 내가 그곳에 갔다온것갔습니다.^**^ 걷기 영성을 하면서도 목사님께서는 참 많은것을 느끼고 보시면서 감동 하게 하신것같아요 .인생의 막다른 골목 같지만 길이 있다고...넘 경치가 아름다워서 다음에 다시 한번가시죠 내년 이맘때요^**^ 목사님 기행문을 보노라면 가슴이 따뜻하게 무엇인가 스며드는것 같아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같기도해요^**^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