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 / 독일편] 발도로프 학교의 '전인교육'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학교 8학년 사라 로플러(14·여)는 요즘 수업시간에 나무로 빵 접시를 만들고 있다. 빵을 싫어하는 남동생을 위해서다. “동생이 좋아하는 코끼리 모양으로 만들 거예요. 접시에 빵을 담아 주면 맛있게 먹을걸요.” 사라처럼 발도르프 학교 아이들은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든다. 8학년이 되면 나무로 숟가락 주걱 접시를 만들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스케이트보드 의자 탁자까지 만든다. 졸업할 때쯤이면 옷장 침대는 물론 기타 바이올린 등 악기를 제작해 연주할 정도가 된다. 가구제작 및 돌로 석상을 만들고 털실로 스웨터를 짜는 것이 수업의 절반을 차지한다. 학생들은 부지런한 목공이자 석공이고 대장장이면서 농부다. “아이들은 머리로만 배우지 않습니다. 손(hand), 가슴(heart), 머리(head) 등을 모두 동원한 ‘행위’를 통해 배우지요. 칸트는 손을 ‘밖으로 나온 인간의 뇌’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자유 발도르프 학교 국제연맹 발터 힐러 사무국장)》
▽사물이 가르친다
가장 오래된 발도르프 학교인 슈투트가르트의 한 발도르프학교. 학생들이 목공실에서 책장 의자 침대 등 가구를 설계한 뒤 나무를 잘라 못질을 하지 않고 맞물려 조립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석공실에서는 돌덩이를 쪼아 공 같이 만들거나 사람의 머리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사는 돌덩이나 나무를 학생들의 ‘스승’이라고 설명했다. 재료에 대한 지식을 잘못썼을 때 학생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림과 맞지 않은 모습을 보임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발도르프 학교는 책이나 교사를 통해 배운 지식을 체험을 통해 반드시 확인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인
9학년생 요하나 베이스(15)는 “가게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발도르프 학교 졸업생들은 남의 도움 없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남녀 모두 뜨개질과 바느질을 배운다. 학년이 올라가면 난이도를 높여 치마 저고리를 만들고 카펫도 짠다. 수북이 쌓인 양털로 실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천도 직접 만든다.
요리는 기본이며 3학년이 되면 학교 안 텃밭이나 농장에서 씨뿌리고 추수하고 탈곡하고 가루로 빻아 빵을 굽는 전 과정을 배운다. 아이들은 감자 토마토 보리 등을 재배하는 데 적당한 토양은 어떻고 퇴비는 언제 주어야 하는지를 몸으로 터득하게 된다. 책상이 삐걱거리거나 퓨즈가 끊어져도 사람을 부르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
‘모든 수업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발도르프 교육자들의 믿음이다.
▽수학도 예술적으로
발도르프 학교는 교육을 ‘교육예술’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음악 미술 등 예술과목뿐만 아니라 국어 수학 물리 등 예술과 무관한 과목도 그림그리기, 노래부르기, 공작활동 등을 곁들여 예술적으로 배운다.
알파벳 ‘K’를 깨칠 때는 ‘K’로 시작되는 단어인 왕(king)을 K자 모양의 그림으로 그리고 ‘옛날 옛날에 어떤 왕이 살았는데…’하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라인강에 대해 배울 때는 발원지인 스위스의 풍경을 그리고 그 지역 사투리로 된 시를 읽고 민요를 부르고 연극도 한다.
수학 시간에도 손뼉치고 게임하고 노래하며 수의 개념을 배운다. 아이들에게 ‘5-3〓?’이라고 물으면 하품하지만 “장미 5송이가 있었는데 밤새 도둑이 3송이를 훔쳐갔다면 몇 송이가 남았지”라고 얘기를 꾸며 들려주면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린다.
▽자연과 가깝게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면이나 마 등 천연섬유로 지은 옷만 입는다. 1학년 때부터 배우는 피리도 나무로 만든 것. 장난감도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 나무 나비 등 자연물만 허락된다. 4학년 때까지는 TV도 못 본다. 학교에서 TV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모를 불러 경고한다. 인공적인 모든 것들로부터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는다.
발도르프 교육은 학생들의 육체와 영혼이 그가 보고 만지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모든 수업에 자연적인 재료들만 고집한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18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얀스 뮐러 교사는 “과학의 발달로 현대 사람들은 자연환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감각적 인식 능력이 점차 퇴화되고 있다”며 “친환경적인 생활태도를 강조하며 80년 전 시작된 발도르프 교육이 오늘날 더 빛을 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교육이 희망이다 / 독일편] 왜 '발도로프'인가?
독일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아비투어(고교 졸업시험) 합격자를 얼마나 냈는가 하는 것이다. 아비투어에 합격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발도르프 학교는 인문계 고교(김나지움)보다 예술이나 실업 교과의 비중이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아비투어 성적으로 평가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의 수도 적다.
주한 독일 대사관이 제공한 독일 통계연감에 따르면 98년 현재 발도르프 학교 졸업생 3792명 가운데 아비투어 합격생은 1923명으로 합격률 50.7%. 인문계 고교는 23만6272명 가운데 19만6164명으로 83%다. 기숙사 학교는 81.4%, 야간 인문계 고교는 76.9%. 아비투어 성적이 낮아도 발도르프 학교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발도르프 교육이 현대 학교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환경파괴 인간소외 학교폭력 마약 등으로 위기에 처한 사회일수록 충분히 발달된 감성과 지적 능력이 조화된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발도르프의 교육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발도르프 교육학이 독일이 세상에 기여한 것 가운데 가장 크게 성공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육이 희망이다 / 독일편] 발도로프 학교는?
“내게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겠다.”(솔 벨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도르프는 독일의 대표적인 사립학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상품이다.
지난해 말 현재 독일에 182개교(학생수 7만여명)가 있고 독일 이외의 나라에 630개교가 ‘발도르프’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96년 전 세계 발도르프 학교가 680개교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31개교 가량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독일을 제외하면 미국이 104개교로 가장 많고 네덜란드 98개교, 스웨덴 39개교, 영국 25개교, 남아프리카 14개교 등이다. 이웃나라 일본에도 1개교가 있다.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는 1919년 9월 독일 남부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담배공장 노동자의 자녀를 교육할 목적으로 개교했다. 학교 이름도 담배공장 ‘발도르프-아스토리아’에서 따온 것. 창시자인 독일의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라고도 한다.
슈타이너 박사는 7세에서 14세까지의 아동기에는 예술을 통해 풍부한 감성을 키워주어야 하며 그 이후에는 사고 발달에 중점을 두어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에 그림 음악 율동 등을 섞어 수업 전체를 예술적으로 구성한다. 교육 과정은 1학년부터 13학년까지. 13학년은 고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준비기간이다.
1개 학년에 보통 1개 학급씩, 한반에 30∼40명이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담임과 학생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가며 유급이 없는 것이 특징. 독일의 공립 중등학교는 30명 중 1명이 유급될 정도로 유급제도가 엄격하다. 9학년부터는 독어 수학 물리 외국어 등 교과 담당 교사에게 전문적인 내용을 배우게 된다.
발도르프 학교는 예술과 실업 교육 외에 외국어 교육을 강조한다. 1학년부터 영어는 필수과목이고 이외에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 1개를 더 배워야 한다. 3학년까지는 듣고 말하기 위주이고 문법이나 쓰기는 4학년부터 시작한다.
발도르프 학교는 사립이지만 학교 운영비의 60∼65%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입학은 선착순이 원칙이나 발도르프 유치원을 다녔거나 가족 중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권을 준다.
학비는 월 220마르크(평범한 회사원 월급이 2300마르크). 우리나라 사립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이 주로 다닌다.
발도르프 학교 교사는 4년제 발도르프 교사 양성센터에서 배출된다. 교사 경력자를 위한 1년 단기 양성코스도 있다. 발도르프 학교는 해마다 증가 추세여서 교사가 부족한 편.
우리나라에는 ‘한국슈타이너 교육예술협회’(회장 허영록 강남대 교수)가 발도르프 교육을 연구하고 있다.(문의 031-718-9581, 홈페이지www.waldorf.or.kr)
노래하는 나무 - 발도르프 학교에서 나의 체험 이야기
저 한주미 ㅣ 출판사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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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아이답지 않고 작은 어른으로 크는것 같은 요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아이답게 크도록 교사가 함께 크는 교육. 발도로프 교육은 우주에서의 인간 선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발도르프 교사 양성과정을 마친 한주미(36)씨는 자신의 교육 체험기 <노래하는 나무>에서 발도르프 교사 교육의 매력을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해야 하는 공부"라고 말한다.
발도르프 교육은 독일의 교육사상가인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가 `성장하고 진화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는 그의 인지학을 바탕으로 만든 교육모델이다. 이 모델 따라 1919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처음 `자유 발도르프 학교`가 만들어졌으며, 현재 전세계 30여개 나라에 700여개의 발도르프 학교와 1400개의 발도르프 유치원이 있다.
<노래하는 나무>는 한씨가 발도르프 교사 양성기관인 영국 에메슨 대학에서 3년 동안 공부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발도르프 교육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책이다. 한씨는 이 책에서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잠시 구경을 하기 위해 에머슨 대학에 첫발을 들여놓은 뒤 발도르프 교육에 빠져들게 되고 논문 발표를 마치기까지의 과정과 발도르프 학교의 교생실습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리듬과 예술활동을 강조하는 발도르프 교육의 특징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교사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발도르프 교육 워크솝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뒤, 워크숍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을 뽑아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궁금증을 풀어준다. 한씨는 "내 아이를 발도르프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교육시킬 방법이 없느냐"는 학부모들의 질문에 미술학원에 보내기 보다 아이와 한달에 한번이라도 같이 그림을 그리고, 책상 앞에 더 많이 앉혀 놓으려고 하기보다 아이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유한다. (2000.4.8) 이종규기자
/한겨레신문
목차
-글을 열면서
-징검다리를 놓으며
-작은 마을, 큰 학교
-강가에 나무를 심으려는데요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예술적 과정
-손과 마음 일깨우기
-아이들 바라보기
-발도르프 학교에서 지내 보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따로 하는 이야기
-발도로프 교과과정 나무
-소개하고 싶은 글들
아이들이 꿈꾸는 학교 - 발도르프 학교의 철학과 교과과정에 대한 소개 | 원제 Waldorf Education (2003)
마틴 로슨, 크리스토퍼 클라우더 (지은이), 박정화 (옮긴이)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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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스트 중학생을 둔 엄마와 함께 읽는 책
까마귀 2006-10-04
도서 > 사회과학 > 교육학 > 대안교육
도서 > 사회과학 > 교육학 > 교육-일반
추천기/획/전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교실의 생생한 모습과 교과과정의 예를 통해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과 철학적 바탕을 명쾌하게 정리한 입문서이다. 발도로프의 교과과정이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를 설명함으로써 발도르프 교육의 핵심을 잘 정리해서 전달한다.
슈타이너 발도르프 교육은 7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전 세계 900여 개 학교, 1700개 유치원, 50여 교사 양성기관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발도르프 학교 운동은 공통된 교육철학과 접근법에 따라 활동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육집단이다.
슈타이너 발도르프 교육은 발달단계에 따른 아이의 필요와, 교과내용과 학교 활동을 통해 기능을 발달시킨다는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교과과정에 통합시킨다.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한 반을 이루고 반 사이에 우열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어느 교실이든 아이들의 능력이 천차만별이다.
이 점은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어우러져 있으면,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습득할 수 있다. 경쟁이 심하지 않은 집단에서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존중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것이다. - 본문 32~33쪽에서
마틴 로슨 - 2006년 현재 영국 요크 발도르프 학교의 담임 교사로서 독일에서 영어, 예술사, 인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발도르프 교사 양성과 발도르프 교육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배움 준비하기>가 있다.
크리스토퍼 클라우더 - 네덜란드, 영국 발도르프 학교에서 영어, 역사, 예술사를 가르쳤다. 2006년 현재 영국 발도르프 학교 교사이며, 발도르프 교육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청소년기에 대한 고찰>이 있다.
박정화 -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학교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상황에 적응해며, 변화하는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다변하는 사회 속에서 발도르프 학교가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의 용기와 헌신 덕분이다. 이 책에서는 슈타이너 발도르프 학교의 현재를 묘사하고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모든 분석의 중심은 학생에게 두었다. - 크리스토퍼 클라우더, 마틴 로슨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책이 우리 교육에 영감을 주고, 교육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현병호, 격월간 민들레 발행인
머리말
1장 학교 축제
2장 어린이의 성장발달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동기의 중요성
세상의 의미를 찾아서
악을 마주하며 선을 찾는 일
발달론적 접근
긴 어린 시절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개인성
3장 아동기 초기 교육
놀이는 어린 시절의 진지한 작업이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 되찾기
유치원의 하루
민첩한 손에 민첩한 정신이 깃든다
4장 어린 날의 절정
5장 상급학교
6장 환경 교육
처음 만나는 생태학
전체에서 부분으로
어린 아이
자연에서 배우기
사람과 동물
식물학
참 노동
광물의 세계
상급학교
7장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더불어
학생을 돕는 배움 공동체
교사모임
가치를 찾아서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8장 기원과 전망
시작
삶을 위한 교육
안정을 위한 교육인가, 변화를 위한 교육인가?
교육은 새로운 도전이다
9장 교육의 새로운 도전 - 능력을 키우는 교육
도덕적 개인주의를 위한 교육
새로운 직업의 세계
삶을 위한 능력
변화하는 아동기의 조건
부록
[통권 50호] 독일의 대안교육을 말한다
[세계의 대안교육] 독일의 대안교육을 말한다
대담|헨릭 에벤벡·민들레 편집실
2006년 대안교육 10주년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헨릭 에벤벡 선생과 자유대안학교, 발도르프 학교를 비롯한 독일 대안학교의 다양한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서강대 정유성 선생님이 통역과 인터뷰 과정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자유대안학교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있다는 이야기 같다. 100개 학교 가운데 협회 회원 학교는 몇 개인지, 그리고 회원의 기준이나 자격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거의 모든 학교가 협회에 가입되어 있다. 회원 가입 여부는 총회에서 인준한다. 총회가 년 1회 열리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상임위에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회원이 되려면 앞서 설명한 8개 강령에 동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테면 교육과정을 아동중심으로 결정한다 등등…. 추상적인 원칙이어서 설립 초기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검증하기는 사실 어렵다. 가입했다가 도중에 자진 탈퇴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기독교 학교의 경우 몇 년 동안 회원으로 있었는데, 협회의 원칙과 학교의 교육방침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탈퇴했다.
대안학교답지 않은 대안학교가 생겨나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성이 흐려지면서 변질되는 학교는 없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성이 변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우리 학교의 경우 1990년에 시작할 때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포괄하는 학교로 출발했는데, 공간 등의 문제로 중간에 초등과 중등을 분리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초등에서 또 다시 중등과정을 따로 추진하고 있다. 분리된 중등학교와 교육 원칙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 학교에서는 전체총회를 없애고 대의제를 채택했다. 또 학습을 강조한다거나 하는 방향이 우리와 달랐다. 하지만 대안학교로서 정체성이 아주 변질된 극단적인 경우는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보면 교회에서 만든 학교들 중에는 대안학교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보기 어려운 학교들이 적지 않다. 독일은 어떤가?
종교적 상황이 한국과는 다를 것이다. 일반학교 가운데 종교계 학교가 많이 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각각의 협의회가 있고 자체 검증을 한다. 종교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종파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개신교도 루터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안학교운동에 기독교 색채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8개 원칙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특정 종교를 학교 교육이념으로 삼는 학교는 협회 회원이 될 수 없다.
독일도 의무교육이 의무취학으로 규정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법질서가 독일보다 엄격하지 않아서 의무취학 규정을 위반해도 사실상 법적인 규제는 없는 실정이다. 홈스쿨링을 하거나 비인가 대안학교를 다녀도 묵인되고 있다. 반면에 독일은 법규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어 비인가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거의 힘든 것 같다. 그래도 비인가로 운영되는 학교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의 서드베리 학교를 모델로 하는 학교가 인가를 받기가 더 어려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비인가는 몇 개 되지 않는다. 라이프치히에도 있는데, 서드베리 모델이 독일에서 인가받기 어려운 이유는 학교의 교육원칙이 독일 교육법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업참가 의무가 없다거나, 학습과정뿐만 아니라 학교운영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까지 의결권을 줘서 1인1표로 하는 것이 그렇다. 아이들 수가 교사 수보다 많기 때문에 아이들 중심으로 결정이 되는 수가 많다. 서드베리에서는 아이들이 교사 임명까지 결정한다. 독일법에 따르면 비정규직 교사라 할지라도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이럴 경우 교사의 권리 보장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또 서드베리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진학할 경우 이들의 학습 정도를 검증하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고 해서 인가가 어려운 걸로 안다.
정부에서 인가할 때 대안학교로 인가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인가하는가? 대안학교의 정체성이 국가에 의해 규정된다면 그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증 단계 학교는 교육 결과에 대해 학교 자체에서 책임을 지고, 인가 학교 경우는 국가에서 결과까지 책임진다. 독일은 교육과정 중에 학력(學力)을 검증하는 과정이 없다. 다만 졸업 및 자격 인증과정만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인증 단계의 학교이기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할 경우 학력 검증 과정을 따로 거쳐야 한다. 16개 주마다 교육주권이 있어 인허가 규정이 많이 다르다. 작센 주의 경우는 인증학교와 인가학교가 구분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주도 있다. 가령 인증 학교에서는 교생실습을 할 수 없다. 인가의 경우도 학교 시설 같은 형식적인 기준이 아니라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작센 주의 경우 대안학교 명칭으로 인가 신청할 경우 교육의 혁신성, 실험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의 교육지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새로 학교를 만들 경우 인가받은 모델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전체 100여 개 학교 가운데 비인가 학교는 10개 미만이다.
대안학교 교사라 해서 다 훌륭한 교사는 아니라고 본다. 동독 지역에서 그렇게 빠르게 대안학교가 생겨났다면 준비된 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안학교 교사양성기관 같은 것이 있는지?
공립학교 교사 중에도 존경스러운 교사들이 있고 대안학교에도 걱정되는 교사들이 있다. 어떤 노선이나 현장을 택했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아이들을 만나고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진보정당에 들어 있다고 진보적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말과 삶이 따로인 사람들은 어디나 흔히 있다. 이념성이 강조되는 곳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별다른 교사양성과정은 없다. 대안학교 교사양성과정이란 것이 따로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안적인 교육을 하는 데는 무엇보다 내가 받은 교육을 깊이 성찰해보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자녀 둘을 발도르프 학교에 보냈다고 들었다. 발도르프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큰딸은 12년을 다녔고 작은딸은 10학년까지 다녔다. 라이프치히 학교로 오기 전까지 나는 학부모회에서 임원을 맡아서 다른 발도르프 학교를 관찰할 기회도 많았다. 발도르프 학교가 설립 당시에는 혁신적이었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교육철학에 바탕한 실천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학교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본다. 예컨대 35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반에 있는 것(보통 발도르프 학교는 한 학급이 30명 정도인데, 독일 경우는 더 많은 편이다_편집실), 더욱이 그 아이들을 교실 정면을 보고 앉도록 배치하는 것, 슈타이너 시대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과학기술, 이를테면 컴퓨터나 인터넷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것, 이런 면들이 그렇다.
한국에서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반면에 독일 자유대안학교에 대한 소개는 별로 안 된 편이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지향하는 영성적인 면, 예술적인 면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지향하는 ‘자유를 향한 교육’과 자유대안학교에서 지향하는 자유교육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자유를 향한 교육이란 말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다. 교육이란 것 자체가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유를 준다는 말은 그 사람이 감옥에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원래 자유롭게 태어났는데 자유를 준다는 말이 가능한가? 누군가가 자유롭게 해줄 수도 없고 이끌 수도 없다고 본다. 되돌려주는 것도 남이 아닌 스스로가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영성에 대한 갈구가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너무 물질적인 면으로 치우친 반작용일 수 있다고 본다. 독일은 영성이나 정신성에 대한 추구가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발도르프는 영성을 추구하고 자유대안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학교를 방문한 어떤 사람은 마치 종교계 학교 같다고 했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자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인 자유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의식의 진화라든가, 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슈타이너는 사교집단의 교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영적인 상태라는 것이 초월 상태에서 머물러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발도르프 학교에서 슈타이너가 말한 단계에 도달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의식의 진화 같은 말이 허황되어 보일 때도 있다.
발도르프 교육은 교사중심 교육의 성격이 강하다. 교육이란 것의 속성이 본래 그런 것 같다. 교육에서 교육자의 의도를 배재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자유대안학교에서는 교사의 역할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비유적으로 답하자면, 자유대안학교 사람들이 모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속담이 있다. “들판의 풀은 우리가 잡아당긴다고 빨리 자라지 않는다.”
파리에 미술치료 공간이 있는데 텅 빈 공간에서 누구든지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런데 그 많은 그림들을 보면 하나도 같은 그림이 없다. 예술성을 꼭 발도르프 식으로 길러야 한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집단적 방식이 아닌 개인적인 예술적 취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의도를 가진 교육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부작용이 있다고 본다. 신뢰할 만한 인간관계만 제공된다면 그 안에서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학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발적인 학습능력에 대한 과학적인 발견들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만약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변화시키려 할 때 그 관계는 깨어진다.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번에 와서 한국의 상황을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이 여행이 갑작스러운 선물 같았다. 너무 아름다운, 또 고마운 여행이었다. 이 먼 곳에서 뜻을 같이하고, 고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축복이었다. 한국의 교육운동가들의 열정이 놀라웠고 용기를 얻고 간다. 독일의 경우 대안교육운동은 소외집단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운동이 부럽기도 하다. 공교육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과 동서독 주민 간의 심리적 분열 때문에 저마다 제 살 길 찾기에 바빠 대안적인 삶의 운동은 침체되어 있다. 예컨대 녹색당이 기성정당으로 자리잡으면서 처음의 뜻과 달리 관료적으로 변화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안교육운동의 역동성과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은 아주 인상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