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대사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부분이 수 많은 기록속에서는 고구리와 백제 신라의 초기 역사는
지금의 중공 대륙 한가운데에 존재 했다라는 또렷한 기로들이 존재 하지만
이들이 언제 어떻게 한반도로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제의 경우 한반도에 존재 했던 백제와 대륙에 존재했던 백제와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륙에 존재 했던 백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백제의 건국은 두가지 기록이 존재 합니다.
하나는 召西奴가 그의 아들 沸流와 溫祚를 데리고 한반도로 남하하여 세웠다는 百濟이며
또 하나는 《隋書》 기록의 尉仇台가 세웠다는 百濟 입니다.
召西奴가 세웠다 라는 백제의 나라 이름 부터가 잘못된 역사 상식이며 溫祚가 세운 나라 이름은 東夫餘 입니다.
이것을 식민사관적 우리 국사는 東扶餘를 무시하고 溫祚王 부터 義慈王 까지를
하나의 백제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東扶餘의 王 仇台가 백제라는 이름으로 百濟 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건국한 때는 238년 公孫燕 멸망 이후 라는 것이 《隨書》의 기록입니다.
백제 왕조는 부여계 이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종족들은 倭人들로 보입니다.
東扶餘는 238년 公孫燕이 사마의에 의해 멸망할 때 함께 멸망한 것으로 보이며
仇台 왕조가 왜인들의 도움으로 세워진 나라가 百濟로 보여 집니다.
야요이의 倭人들은 長江과 楊子江 일대에서 벼농사(水田)을 경작하면 농경민족 입니다.
야요이의 倭人들은 멸망하여 남쪽으로 이동해 온 仇台 왕조를 옹립 하였던 것이며
이때의 倭는 지금의 타이완과 큐슈 그리고 한반도 남부 까지 분포되어 있었지만
국가를 만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며 仇台 왕조를 도와 百濟를 건국 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 열도에 그 동안 보이지 않던 대륙형태의 무덤들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250年代~538年 까지를 古墳時代(고훈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仇台 百濟는 近肖古王(재위 346~375년) 때에 전성기를 맞이 합니다.
仇台百濟는 근초고왕 때 최 전성기를 맞이 하는 것이며, 이때의 백제 영토는
“전성기에 吳, 越, 燕, 齊, 魯 나라를 모두 장악하였다”
"장강의 양쪽을 모두 점거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근초고왕 때 한반도 남부는 近肖古王 때에 이르러 백제 영토로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한반도 한강 남부에 4세기 중반이 돼서야 倭人인들의 무덤 형태가 나타 나는 것입니다.
백제 유물중에 가장 오래된 유물은 서울 방이동에 소재하는 百濟 古墳群 입니다.
이 백제 고분군은 4세기 중반 부터 475년 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 합니다.
475년은 개로왕이 고려태왕에게 참수되어 벡제가 사실상 멸망하는 때 입니다.
가끔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倭人들의 무덤 때문에 우리 고고학계와 역사가들은 화들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밝혀지면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이 사실로 들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百濟=倭國이며 한반도 남부는 近肖古王 때 부터 백제의 영토 였으며
한반도 남부에서 倭人들의 古墳이 발견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필자가 대륙백제를 주장하면서 한반도에 百濟 武寧王의 무덤이 발견되는 것에 대한 것을
의아 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백제 무령왕 때는 백제가 심각한 상태에 있었으며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 였으며
백제의 왕릉을 고스란히 보전하기 어려웠을 때 입니다.
따라서 백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반도에 武寧王의 무덤을 조성 했을 것입니다.
바로 근초고왕 시기 이후에 대륙의 백제인(倭人)들이
대거 한반도로 유입되는 시기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이후 660년 백제 멸망 후 한반도는 자연 스럽게 대륙 신라의 동쪽 영토가 되는 것이며
일본 열도는 663년 이후 스스로 일본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660년 이전에는 한반도는 신라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것이며
한반도에서 660년대 이전의 신라 유물은 찿아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라 유물 가운데에 가장 오래된 유물이 瞻星臺라고 하며
첨성대의 유물은 선덕여왕(632년~647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되지요.
그렇다면 필자가 한반도 남부는 660년 이전 까지는 신라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지요.
일본 열도에는 한반도 경주의 瞻星臺와 거의
같은 시기인 647년에 만들어진 占星臺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두 한일 양국은 서로 니네 것이 우리 것을 베꼈다라고 주장하며
가능하면 이 유물이 만들어진 연대를 올리려고 혈안이지요.
하지만 이 두 유물은 모두 백제의 기술로 만들어 졌다 라는 것은
한일 양국이 공히 인정하는 부분 입니다.
즉, 이와 같은 논란은 백제가 王朝만 夫餘系이지 그 根幹을 이루는
대다수의 백성들은 모두 倭人들이라는것을 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라와 경주의 역사는 1천년이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신라의 유물은
660년대 이후의 것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 까요?
한반도의 先住民族은 靺鞨係 이며 靺鞨係는 한강 남쪽으로 니려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큰 전쟁 없이 근초고왕이 한반도 남쪽을 영토화 했으며 한반도에 왜인들이
渡來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신라가 한반도를 지배 할 때도 비슷하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신라는 전혀 존재 감이 없었으며, 신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倭人들이 다수 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한반도 남부는 신라가 지배 하던
시기에도 여전히 倭人들이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 열도 그리고 중공 대륙 한족들의 혈통은 대부분 倭人들 입니다.
倭國=日本이라는 역사 프레임으로 인해 동아시아 역사는 근본적으로 왜곡되어 해석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한반도에 백제 신라를 비정하면서 통일된 대륙신라가 지배햏다?
한반도를 껴안고서 고대사를 풀겠다?
가능한가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