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입추, 여름 더위는 말복을 앞두고 절정이다.
무더위는 ‘물+더위’로 물 머금은 더위를 말한다더니,
조금만 움직여도 옷에서 물을 바가지로 짜낼 만큼
땀이 줄줄 흐르는 지독한 무더위다.
8월 10일 아침 9시경…
회룡역 역사 앞을 점거(?)한 동문들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명찰을 찾아다느라 부산하다.
배낭엔 100회 산행 기념 리본도 달았다.
집행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단체 기념 촬영을 마치니 9시 30분, 사패산을 향해 출발!
의정부시 의정부동에서 양주군 장흥면에 걸친 사패산賜牌山(552m)은
북한산국립공원 북쪽 끝자락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동쪽으로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있으면서
속에 청정계곡과 함께 숱한 절경을 감추고 있다.
‘사패賜牌’란 임금이 토지나 임야 또는 노비를 하사할 때
함께 내린 문서를 말하는데,
하사품이 전답이면 사패전賜牌田, 임야이면 사패산賜牌山이라고 했다.
이곳 사패산은 조선조 선조가
6녀 정휘옹주를 부마도위 유정랑에게 시집보내면서
하사한 산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산 들머리 마을(호원동虎院洞)에 들어서자
커다란 당산나무(회화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450년 묵은 고목이다.
거슬러 셈하면 1560년경에 심긴 나무이니
여기엔 이미 선조(재위 1567~1608) 이전에 마을이 있어서
선조가 딸에게 산을 하사할 때
일대의 마을까지 함께 하사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이윽고 북한산둘레길, 깔끔하게 잘 닦인 길이다.
그 길을 따라 오르노라니
오른편으로 수려한 계곡이 자태를 뽐낸다.
수직폭포 물줄기가 사뭇 장하다.
조금 오르니 용틀임하듯 비껴 돌아 꼬며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며 세차게 흐른다.
그 흐름의 끝이 아마 저 아래 수직폭포일 게다.
잘 닦인 둘레길이 끝나고 오솔길로 접어들어 조금 오르니 회룡사다.
회룡사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재진, 병화랑 뒤처져 출발했는지라
그럴 짬이 없어 아쉽다.
회룡사回龍寺는 봉선사奉先寺의 말사末寺로,
681년(신문왕 1)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여 법성사法性寺라고 했는데,
1384년(고려 우왕 10)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건한 뒤에
이성계李成桂와 관련하여 회룡사로 고쳐 불렀다 한다.
여기에는 이성계와 무학이 관련된 설화가 깃들어 있는데,
용龍은 이성계를 이른 것이고, 그 용이 돌아왔다 하여
회룡사로 불렸지 싶다.
이후 회룡사는 수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는데,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전후에 비구니 도준道準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회룡사를 지나 4부 능선쯤에 이르자 철 계단이 시작된다.
등산에서 계단 특히 철 계단은 쥐약이다. 갑절로 힘들다.
계곡 물이 끊겼나 싶었는데,
드문드문 바위 사이를 뚫고 나와 내민 물이 있어 더위를 식힌다.
한 식경이나 올라서야 마지막 철다리를 끝으로 철 계단이 끝난다.
그새 산행 후미를 지나쳐 중미까지 따라 잡았나 싶었는데,
마지막 철다리 바로 위 쉼터에서 다들 땀을 식히고 있다.
잠시 동행했던 병화랑 주태 등 몇몇은 저 아래 시원한 소沼에서
물김치에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켜며 더위를 속이느라 종무소식이다.
쉼터에서 시원한 오이, 얼린 수박 따위를 죄 꺼내놓고 주거니 받거니
동기들, 선후배들 사이에 흐르는 정에 더위도 모르것다.
좀 있으니, 후미를 몰고 올라온 등반부대장 김주태(32회)가
배낭에서 큼직한 수박 한 덩이를 꺼내놓는다.
잘게 잘라 죄 풀어놓으니 그래도 다들 한 조각씩은 돌아간다.
이 무거운 놈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오르다니, 참 대단한 주태다.
어느 정도 땀이 가시자 다시 출발이다.
여기서부터는 등산 맛이 제대로 난다.
계단도 없고 가파른 산길이다.
그렇게 눈을 땅에 박고 7부 능선쯤 올랐을까,
문득 시원한 기운이 온몸에 느껴진다.
쳐다보니 사방이 탁 트인 산마루다.
먼저 오른 박병길(27회) 선배 등이 선풍기 부치는 시늉을 하고 있다.
다들 그 선풍기(?)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아! 이 상쾌한 바람이라니. 누군가 탄성을 지른다.
“바로 이 맛이야!”
이 산마루에서 정상까지는 40분이면 다녀올 터…,
그리 가늠하고 있는데
19회 선배님들은 벌써 정상을 밟고 내려오면서
“여기서 뭣하고 있냐?”며 혀를 찬다.
동기들의 정상 등정에 혼자 빠진 지인태 선배님이 그런 동기들을 보며
“저것들은 미쳤다”며 역공(?)을 펴보지만 나는 내심,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저리 펄펄 나는 열정이 부럽다.
다행히 구름이 끼어 햇볕은 없다.
계곡 사이로 안개가 흘러내리는 걸 보니
정상에 오르면 그도 장관일 듯싶다.
그러고 있는데, 산애山愛에서 행사 준비에 바쁜 부총무 현기가
빨리 내려오라며 닦달이다. 콘테스트 사진 하나가 잘못 붙었으니
내 배낭 안에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쉽지만 정상 등정을 접어야 했다.
앞서 내려가던 19회 선배님들을 뒤로 하고
구르다시피 내려가면서 바라본 상류 계곡은 적막강산이다.
먹장구름에 사위가 깜깜하다.
금세 한바탕 큰비라도 쏟아질 참이다.
계곡 하류에 이르니 음식점, 상가가 줄을 잇고
그 옆 계곡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길이 막혀 차들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상류, 하류 한 길 차이로
선경仙境, 진경塵境이 이토록 극명하게 갈린다.
산이나 바다나 다 ‘인간’들이 공해다.
그 ‘공해’를 면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스스로 공해가 되도록 어쩌지 못하고 있다.
산애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애 입구에서 34회 후배들(이정교, 정승수)이
우산을 들고 선배들을 안내하고 있다.
내려와 보니 35회 후배들도 와서 일을 돕고 있고,
용봉산에 동행했던 52회 신수민도 재회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들어가 보니 행사 준비는 이미 끝나 있다.
빗줄기는 시나브로 굵어져 자못 사나운 기세다.
비닐을 둘러쓰고 줄에 걸려 있는 수백 장의 사진을 보노라니
승식 형을 비롯한 집행부에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현기가 나더러
산에 가지 말고 남아서 도와달라고 했던 거구나!’
행사 계획은, 산행을 마치고 모두 12시까지 행사장(산애)에
도착하는 것으로 잡혀 있었는데,
후미가 1시가 넘어서 도착한 탓에 차질이 빚어졌다.
100회 산행 기념 공식 행사가 시작될 즈음에 비가 그쳤다.
비온 뒤끝이라 더위는 한결 누그러졌다.
행사에 맞추느라 나흘 만에 편집해낸 소책자를 보며
선배님들의 칭찬이 이어지니 민망하다.
(이 책자는 집행부의 의지와 황순효 선배님의 노심초사가 없었으면
애초에 나올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게다가 ‘역시 32회, 32회…’ 하시니 더욱 민망하다.
오늘 100회 산행의 금자탑을 이룬 산악회의 면목이
어찌 몇몇 사람 또는 특정 기수만의 공이겠는가.
여기에 참석해온 모든 회원들이 마음을 나누고
공덕을 쌓아온 덕분 아니겠는가.
물론 시작의 공이 따로 있고, 이끌어온 공이 따로 있겠지만
‘회會’(모임)라는 근본으로 가면, 누가 더하고 덜함이 있겠는가.
개개인이 제 아무리 잘났다 한들 따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가 한데 모였으니 동문산악회요, 위대한 하나가 아니겠는가.
100회를 맞은 기념행사장은 숙연하면서도 화기애애하다.
그간 각 분야에서 애쓴 공을 기려 시상이 이루어졌다. 상도 다양하다.
그간 노고가 큰 회원들을 빠짐없이 배려하려는 집행부의 고민이 묻어난다.
특히 ‘여성회원상’은 100회 행사가 우리 동문(정회원)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준회원(여성회원)들까지 망라한 범산악회 차원의 잔치가 되도록 배려한
집행부의 심모원려가 느껴지는 ‘명작名作’이다.
[영예의 첫 상을 받은 송인자 님(카페지기 24회 주기율 선배님 부인),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후배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후배 준회원님들의 모범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또 100회를 기념하는 사진 콘테스트는 신선한 기획으로
회원들 모두에게 적잖은 얘깃거리와 함께 큰 즐거움을 주었다.
한편, 재경총동창회에서 100회를 축하하며 적잖은 격려금을 전달했다.
역시 돈이 들어오니 회원들 박수소리가 가장 우렁차다. (^^)
2시, 기다리던 점심식사 시간이다.
동기, 후배들과 더불어 선배님들 식사를 챙겨드리고 나서
밖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여전히 분주한 재무이사 박재수(34회)를 밥 먹으라며 불러 앉혔다.
재수는 그 뒤에도 두어 번이나 자리를 떴다 돌아와서야
겨우 첫 숟갈을 떴다.
말없이 제일 고생하는 후배다. 게다가 제 동기들도 하나 없이….
식사를 마치고 선배님들 식탁을 둘러보는데
현기랑 함께 앉아 있던 황순효(16회) 선배님이 불러 앉혀
따듯하게 손을 잡아주며 후배님들 고생했고 고맙다 하신다.
옆에 있던 형수님이 환하게 웃으며 한 턱을 쏘신단다.
“순효 씨, 우리 32회 후배들 밥 한 끼 대접해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지만 또 받잡기 민망하다.
식사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져
여기저기서 얘기꽃이 만발이다.
10년 100회를 지냈으니 그 얘깃거리가 어찌 쉬 동이 나겠는가.
5시가 넘어가자 먼저 갈 사람들은 가고
박병길 선배의 주도로 족구판이 벌어졌다.
32회(단일)팀 대 연합팀의 대결이다.
연합팀은 35회 후배부터 24회 선배까지로 구성되었다.
심판은 25회 양판승 선배가 맡았다.
32회 팀은 첫 게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감독을 맡은 동기 유갑식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이다.
두 번째 게임에서 낙승한 32회 팀은
세 번째 게임에서는 전열을 정비한 연합팀에게 아깝게 졌다.
누군가 농으로 “져주느라 애썼다” 했지만 사실은 다리가 풀려서 졌다.
그러고 나니 땅거미가 내린다.
100회 산행과 공식 기념식, 그리고 비공식 족구대회까지 마친
우리는 크고 작은 과제를 뒤로한 채
아쉬운 이별인사를 나눴다.
재경순천중고동문산악회,
100회를 지켜온 “선배존경‧후배사랑” 정신이
앞으로 더욱 깊어지고 넘치기를 기대한다.
<終>
첫댓글 우리 동문들의 정이 어울여져 버물어진 모습이 반죽된
100회 동안의 산행을 속살까지 잘 들어낸 글인거 같네.
그동안 사패산에서 여러차례 산행이 있었지만 이처럼 생생하게 다시보기를 하는것도 첨일쌔~~ㅎ
금번 팜플렛보다 소책자에 가까운 작업을~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본의 아니게 고생시킨 선배들의 뜻을 잘 받아줘서 고마웠다네~~
원지니 홧팅!!~~
와우~~! 멋진 산행기 고맙네...^^ 특히나 다음 구절이 가슴에 와 닿네... 그려..^^
오늘 100회 산행의 금자탑을 이룬 산악회의 면목이
어찌 몇몇 사람 또는 특정 기수만의 공이겠는가.
여기에 참석해온 모든 회원들이 마음을 나누고
공덕을 쌓아온 덕분 아니겠는가.
물론 시작의 공이 따로 있고, 이끌어온 공이 따로 있겠지만
‘회會’(모임)라는 근본으로 가면, 누가 더하고 덜함이 있겠는가.
개개인이 제 아무리 잘났다 한들 따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가 한데 모였으니 동문산악회요, 위대한 하나가 아니겠는가.
뭔가 무거운 느낌은 원진이로서는 아직은 이르다~~ㅋ
잘한다 하면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잘하시면 됩니다~~~ ㅎ
델리케이트는 독자가 떨어질 수도 있어요~
"공식"후기는 자기 생각보다 중용이며~
내눈에 만 보이는 거보다 무겁지 않게 전체를 사진처럼 써야하며~
논하거나 평하거나 한쪽만 보아서도 안되고~
전체를 아우르며 미래를 향하는게 "공식후기" 일지니~~
유토피아는 있을 수 없지만 국민 대부분을 감동케 하는게 "공식" 일거야~
이 또한 "회"가 발전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라네~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도 잘 부탁 해 보면서~~~ㅎ
100회 산행 대미도 역시 32회가? 그중에도 타고날때 부터 진가를 발휘하도록 되어있는(원진) 원진이 후배가 물러가는2013
년의 여름을,100회 특집을 더욱 감칠나게 표시해줘 감사 하내 하시는일이 항시 잘되시길 기원하내...종종 보세나 애많이 썻내!
뭔 글을 이리 잘 써!
선배님 좋은 사진 있으니 적당히 삽입면 훨씬 좋겠구먼.
돈 드는거 아니니.
처음 회룡역에서 출발하여 산애 종착역까지 물흐르듯 시원시원하게 잘도 흘러가네
최민호 집행부와 주변에 말없이 헌신과 열정으로 행동하여준 후배님들 고맙구려
100회를 잘 마무리하였으니 기라성같은 젊은 엘리트들! 내년 8월9일? 10주년 행사까지 밀고가면 어떨까?
여러사람이 여러각도에서 본 산행후기가 많이 나올수록 우리의 역사는 깊어만 간다네!!!
원진이 멋진 산행후기 잘 읽었네~~~~
역시 출판계를 휘어 잡으니 필에 힘과 정, 감정이이 넘치는구만~~~~~
앞으로도 쭈욱 ~~~~~많은 기대를 하네~~~
짝짝짝 ~ !
습한 날씨에 땀흘리며 다녀왔던 산행을 후배님의 해설과 함께 돌아보니 더욱 정감 넘치고,
사패산의 농무속의 거대한 바위위에서 선배 동기 후배님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이 더욱 값지게 여겨 진답니다.
원진후배님 정성스러운 후기 잘 보고 갑니다.
새로운 리포터가 생기니 맘이 편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