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서 ‘흔적’ 라이브 레스토랑 운영 모교에 기념비 세워져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아픔과 상처 치유하는 가수로 기억돼 뿌듯 ‘와인글라스’등 칸 영화제 울려 노래로 기억돼
- 가수 최유나 하면 ‘트로트의 여신’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데 어떻게 해서 가수가 되었나? 요즘 한창 흐름을 타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창시격인 “KBS 신인탄생”이라는 신인 발굴 오디션 프로에 연속 5주를 통과해 가수로 데뷔했다. “신인탄생”의 오디션 방식은 자기만의 선곡을 통해 1주부터 5주까지 연속으로 가창력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최종 신인탄생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데뷔 전에 정식으로 노래교육을 받아본 적 없었다. 무대에서 노래를 한 적도 없었는데 KBS 신인탄생을 통해 가수로 데뷔한 것이다. 제가 통과하기 직전에 가수 설운도씨가 통과했었다.
- 원래부터 가수가 되려는 꿈이 있었나? 처음부터 정식으로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내면에 잠재돼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송국 동요대회에 출연해서 상을 타곤 했었다. 특히 대학가요제에 관심이 많았고, MBC 서울 국제 가요제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정식 가수로 발탁돼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됐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늘 훌륭한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본인이 부른 노래 중 가장 큰 히트를 친 곡은? 아무래도 “최유나”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흔적”이 아닐까 싶다. “흔적”이라는 노래는 가수 “최유나”라는 이름을 널리 알려준 준 곡이다. 그 당시 58만장의 음반이 팔려 나갔다. 이 밖에 반지, 애정의 조건, 별난 사람,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와인글라스, 밀회 등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노래들이 많다. 특히 “애정의 조건”은 KBS 드라마 ‘애정의 조건’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노래다. 그리고 “별난사람”은 내 노래 중 가장 대중적인 노래로 6070세대의 팬 층을 넓혔던 노래다. “와인글라스”는 이창동 영화감독의 ‘시’라는 영화에 삽입된 곡인데 프랑스 칸 영화제의 등장과 퇴장 음악으로 칸 하늘에 울려 퍼졌던 노래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 10대 가수에도 선정되고, 성인가요 ‘히트 제조기’라고 불렸는데 최전성기 때 활동상은? 나의 최 전성기는 “흔적”이라는 노래가 히트를 친 1993년을 꼽을 수 있겠다. 김건모, 신승훈, 김종서 등과 같은 유명 가수들과 10대 가수로 선정돼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인기가 너무 좋아서 하루에도 3,4군데 지방 스케줄을 기본으로 전국방방곡곡을 누볐다.
- 가수 최유나의 창법의 특징은? 중저음에선 허스키 보이스, 고음에선 비성이 자연스럽게 투톤으로 나온다.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목소리다. 트로트와 발라드를 넘나들 수 있는 애수 있는 목소리, 온몸을 휘감는 듯 한 창법이 일품이라고 한다.
-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팬 카페 회원들도 3천명에 달하는데,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신곡 11집 앨범 타이틀 “미워도 미워도”로 방송, 공연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7년 전 팬들과 가까운 만남의 공간을 위해 시작한 라이브 레스토랑 “흔적” 외식사업에도 열중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있다. 지금도 이 레스토랑에서 저녁 9시 30분부터 무대에 서는 데 고향 목포 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찾아주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을 타고 한 일본 팬이 일본 후쿠오카 FM방송에서 내 노래를 소개했는데, 앞으로 해외 방송 출연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 이렇게 오랜 시간 가수로 장수하고 있는 비결은? 항상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실 되고 순수한 영혼의 음악을 전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장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원래 내면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외부로 발산되는 것 아닌가?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다가 갈수 있는, 그리고 대중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팬들로 하여금 좋은 평을 받는 듯하다.
- 특히 스캔들이 전혀 없는 가수로 유명한데, 자기관리 비결이나 원칙은? 공인으로서 항상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모범된 이미지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생각을 가다듬고 조심한다. 구설수에 오를 소지가 있는 자리에는 아예 가지 않는 다. 그리고 남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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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배종호회장과 담화를 나누고 있는 가수 최유나 | - 지금까지 가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내 노래가 상처있는 분들을 치유 하고,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힘이 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최근에 암 말기 환자인 어머니를 자녀들이 모시고 왔는데, 팬이라는 이 환자분이 내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 또 저하고 사진도 찍고, 내 사인도 받으시면서 얼굴표정이 확 밝아지셨다. 그러면서 더욱 힘내서 열심히 치료하시겠다며 즐겁게 돌아가시던 그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저를 좋아해주는 팬의 병원과 협력해서 농아인, 시력장애 등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릴 때 너무 행복했다.
- 목포여고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은? 목포여고 교정에는 내 이름을 새긴 가수 최유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학교측에서 가수 최유나의 공로를 인정해 학교 교문 옆에 이 기념비가 세워지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이 기념비 다른 한 면에는 ‘어진마음, 참된 모습’이라는 목포여고 교훈이 새겨져 있다. 부족한 저를 학교측에서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셔서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고3시절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삶이 부끄러워 학기말 고사 때 백지 답안지를 낸 사건이 생각난다. 그 때는 참 순수했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 같다.
- 목포는 가수 최유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가수 최유나의 오늘이 있기 까지 목포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목포는 나에겐 엄마 품속 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고향이다. 또한 목포는 내가 인동초 같이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쳐 준 곳이다. 바르고 곱게, 정도를 걸어 갈수 있도록 하는 한편 야성미 넘치는 기질과 끼를 만들어준 고향이다.
- 본인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또는 책은? 재클린 케네디이다. 그 분이 자서전을 통해 밝힌 “결코 평범하게 살지 않겠다”라는 부분이 젊은 시절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나도 재클린 케네디처럼 결코 평범하게 살지 않으려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가수 최유나인 것 같다. 재클린 케네디는 나의 인생관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분이다.
- 마지막으로 목포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목포 시민들, 그리고 목포 선배님들은 늘 나를 음으로 양으로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다. 내가 가수 활동을 하면서 어렵고 힘이 들 때마다 내가 다시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준 버팀목과 같은 존재들이다. 앞으로도 예향의 도시 목포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 더욱 많은 성원을 바란다.
최유나는 누구인가?
한국 대표적 트롯트 가수 ‘흔적’ 58만장 판매 기록 최유나는 목포가 낳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트롯트 가수이다. 1984년 KBS 신인탄생에 연속 5주 통과라는 대기록으로 데뷔한 이래, 히트곡 ‘흔적’이 무려 58만장이나 팔리는 등 수 많은 히트곡으로 ‘히트 제조기’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현재도 일선에서 힘차게 활동하고 있는 자기관리가 뛰어난 모범적인 국민가수다. 1985년 1집 '첫정'으로 데뷔한 이래 ‘흔적’, ‘애정의 조건’, ‘밀회’,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반지’, ‘별난 사람’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 이력 목포출생 목포여자고등학교 졸업 호남대학교 의상학과 학사 2005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진학 2010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졸업 2012년 파주소방서 홍보대사 2012년 국제 농업박람회 홍보대사
수상경력 KBS가요대상 올해의가수상 (2003) iTV 성인가요대상 여자가수상 (2006) WBS원음방송 트로트가요대상 본상 (2006)
<대담=배종호회장> < 기사출처 - 목포시민신문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