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분 |
내 용 |
용 어 |
친일작가(친일의 모든 행위), 친일문학(친일작품) / 행위진전상태 : 친일(親日 : 일본제국주의세력과 친밀한 관계) -> 친일파(親日派 : 일본과의 이권에 관련한 세력) -> 친일문학(親日文學 : 일본제국주의 찬양지지 문학) -> 친일행위(親日行爲 : 일본제국주의 적극 찬양적 행위, 개인의 이익추구 등 부귀영화(권력 돈 명예 : 직책, 출세, 재산획득), 독립민주투사 직간접 고통(고재질 고문탄압, 재산압류, 독립저지 지연)) |
시 간 |
미협적(일본제국주의 식민지시대 36년 / 축약(중일전쟁-해방전)), 중간적(중세), 거시적(역사이래) |
공 간 |
1차(한반도내), 2차(일본), 3차(해외) |
행 위 |
직접적(광란, 적극적, 직책, 강연, 논설기고), 간접적(친일행동 간접권유) / 지 도층(높은 출세보장), 일반인(생계수단) |
영 향 |
미흡(매우 적음), 중간, 거대(동요 파급 매우 큼) |
자각 |
결론(후회(후회, 참회, 할복자살), 묵비권(적당 기회주의), 당위성(변명, 강조, 항변, 붙잡고 늘어지기, 시대상황론 운운, 과오 전무하다 항변)) / 표현방법(직접(스스로), 간접(주변사람)) / 매체(공개(언론매체), 중간(작품, 자서전), 간접(술자리), 유언, 아르레기 현상) |
2) 친일작가, 친일문학의 개념
친일작가(親日作家)란 신지식인 작가로서 민족의 주체성을 상실한 채 사대주의사상아래 일본제국주의 예찬과 추종 등 광복을 지연시킨 행동의 총체를 말하며 친일문학(親日文學)이란 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 협조한 문학작품을 말한다.
따라서 친일작가란 친일사상과 친일행위 및 친일작품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반민족적이고 반작품적이므로 국민민족적인 비판과 함께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친일문학(親日文學)이라 지칭하나 중국에서는 한간문학(漢奸文學), 대만은 황민문학(皇民文學) 또는 황도문학(皇道文學), 만주친일문학은 일본, 조선, 한족계로 구분한다.
2> 민족반역행위-친일작가, 친일문학의 실상
1) 최초의 칠일작가는 이인직
일제시대 최초의 친일작가는 국초(菊初) 이인직(李人稙,)이다.
경기 이천출생(1862.7.27)으로 구한국정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유학해(00.2) 일본에 호감을 갖다가 일본정치학교 졸업 후(03) 일본육군성 한국어통역관에 임명돼 노일전쟁 때 1군사령부에서 종군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귀국 후 친일의 국민신보 주필(06), 만세보 주필로서 <귀의 성(06)>과 <혈의 루(06.7-10)>을 발표했고 친일분자 이완용의 도움으로 대한신문 창간해(07) 사장에 재직하면서 <치악산(08)>, 자신의 소설 <은세계>를 원각사무대에 올려(08.11) 최초의 신극을 공연했다.
그는 이완용의 충실한 비서로 한일합방(10.8.28)시 결정적 과오역할을 한 후 경학원(성균관) 사성(종3품)으로 <모란봉(13>을 발표하는 등 근대문학의 업적과는 달리 친일문학 선구자로서 후배문인들을 끄는데 앞장섰다가 조선총독부병원에서 57세로 사망했다.(16)
2) 주요 친일작가 명단과 작품 수
90년대 들어 친일행위와 친일문학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조사결과는 미약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8월 14일 11시 의식 있는 단체들이 발표한 주요친일파 708명의 명단은 한국의 근대사를 이끈 각계의 인사로서 지금까지 명성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거 포함되었으며 그중 문인들도*) 많이 포함되어 실망과 충격을 주었다.
주요 친일작가 명단
구분 |
작가명(연령순, 등단순서는 아님) |
계(42명) |
시 |
최남선, 김억, 주요한, 김동환, 김상용, 김해강, 이찬, 모윤숙, 임학수, 노천명, 서정주, 김종한 |
12 (28.6%) |
소설, 희곡, 수필 |
이광수, 이서구, 김동인, 채만식, 송 영, 장혁주, 유치진, 유진오, 함대훈, 김소운, 이무영, 이석훈, 조용만, 정인택, 박태원, 정비석, 최정희, 함세덕, 박영호 |
19 (45.2%) |
평론 |
박영희, 김기진, 횽효민, 정인섭, 이헌구, 김문집, 최재서, 백 철, 김용제, 곽종원, 조연현 |
11명 (26.2%) |
월북했거나 사회주의계열의 문학활동을 펼친 박영희, 박태원, 이찬 등도 포함되었으나 일본어로 작품활동, 친일단체 참여, 창씨개명 등은 참고만 했기에 일어사용은 했지만 투쟁경력이 있던 김사량과 한 두 편의 글을 남긴 정지용과 김정한은 제외 시켰다.
때문에 시기와 친일성분을 확대한다면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그 중에서 주요 20명의 친일문인 중 개인별 친일작품 편수를 보면 무려 103편이나 발표한 춘원 이광수는 5년 반(66개월 : 1980일)동안 19.22일 만에 1편을 발표했으
며 다른 문인들도 정도만 다를 뿐 모두 정신분열증일 정도로 광란적이었다.
주요 친일작가의 친일작품(10편 이상) 수 현황
편수 |
시 |
소설, 수필, 논설 |
평론 |
계 |
100편 이상 |
- |
이광수(103) |
- |
1명(5%) |
40편 이상 |
주요한(43) |
- |
- |
1명(5%) |
20편 이상 |
김동환(23),김종한(22) |
- |
최재서(26),김용제(25) |
4명(20%) |
10편 이상 |
노천명(14),모윤숙(12), 서정주(11)
|
이석훈(19),최 정(14), 채만식(13),정인택(13), 유치진(12),함대훈(11) |
박영희(18),김기진(17), 백 철(14), 정인섭(11), 박영호(10) |
14명(70%) |
계 |
6명(30%) / 총 125편 / 평균 20.83편 |
7명(35%) / 총 185편 / 평균 26.43편 |
7명(35% / 총 121편 / 평균 17.3편 |
20명(100%) 총 431편 평균 21.6편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에서 발표한(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계간 실천문학,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 / 일제폭압이 극에 달했던 중일전쟁(1937년) 이후에서 해방 전까지 친일문학 발표대상으로 한 42명의 명단을 참고.
3. 신지식 주요 친일작가의 역사적 과오실태(일부 작품제목만 소개)
1> 음운으로 압축시킨 친일시인의 실태
1) 조선근대가 낳은 문학천재가 친일과 역사왜곡의 선봉장 - 최남선(崔南善)
- 친일행동 : 3.1운동(19 : 독립선언문 작성과 민족대표)으로 투옥(2년 6개월 형, 다음해 석방) 후 친일, 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27)후 위원, 조선총독부중추원 참의(38), 만몽(滿蒙)일보 고문, 일본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 교수(39), 귀국 후 유학생의 학병지원 권고 강연차 도일(43.동경).
- 친일작품 : <내일의 신광명 약속(37.8.15/매신)>, <만주건국의 역사적 유래(43.3/신시대)>, <보람있게 죽자(43.11.4/매신)>, <아세아의 해방(44.1/매신>, <성전의 설문(44.2/신시대)>, 수필 <아세아의 밤(43.1.11/매신)>, <성전의 선물(44.2/신시대)>.
* 논설 <나가자! 청년학도여(43.11.20/매신)> : " 청년학도 제군! 역사 있은 이래의 성전인 금번의 대동아전쟁은 지금 바야흐로 결전단계에 들어가서 마침내 우리 청년학도들의 출진을 요망 하게 된 것이다. 청년다운 정열과 학도로서의 예지를 쏟아서 우리들이 독특한 공헌을 이 세기적 성업에 이바지하게 됨은 실로 남자로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감격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중략)...제군! 대동아의 성전은 이름 비록 동아(東亞)이지마는 이는 실로 신시대, 신문화의 창조운동이며 세계역사의 개개조이다. 바라건대 일본 국민으로서의 충성과 조선남아의 의기를 발휘하여 부여된 광영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약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진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 해방 후 :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49/병보석 석방), 6.25전쟁 때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촉탁, 서울시사 편찬위원회 고문, 사망 후 기념비 건립(우이동/58).
2) 민족시인 김소월의 스승, 님 따라 나서자? - 김억(金億,)
- 친일행동 : 창씨개명(岸曙生), 국민총력조선연맹문화부 문화위원(1941),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 - 친일작품 : <국가와 개인(40.11.30/매신), <육군기념일에(42.3.10/매신), <아아 야마 모토 원수(43.6.6/매신)>, 신년송(44.1.4/매신)>, <님 따라 나서자(44.12.7/매신)>.
- 해방 후 : 수선사(출판) 주간, 6.25때 납북.
3) 팔굉일우와 일생동안 양지선택의 귀재 - 주요한(朱耀翰)
- 친일행동 : 창씨개명(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 : 일본이념인 팔굉일우(八紘一宇)에서 따 옴), 해산령 거부로 수양동우회 일제검거(37.6.6/150명중 2명 옥사)하자 전영택, 현제명, 홍난파 등 18명 전향성명발표(38.6.29)해 이광수 등과 친일파로 변질, 국방헌금조로 40
00원을 종로경찰서에 기탁, 시국유지원탁회의(부민회강당)에 참석해 내선일체 구현, 조선문인협회 간사(39), 조선문인보국회 시부회장(43), 조선언론보국회 평의원.
- 친일작품 : <동양해방(40.12/삼천리)>, <명기하라. 12월 8일(진주만 기습일 : 42.1/신세 대)>, <상해 조계진주일에 왕군에게 보냄(42.2/조광)>, <승리의 태평양(42.4/춘추)>, <징병령 실시와 조선청년(42.6/신시대)>, <성성전찬가(42.12.8/매신)>, <반도청년 궐기하라(42.12.11/매신)>,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43.6/국민)>, <다섯 가지 사명(五つの使命 : 43
.6/신시대)>, <불타는 희망(43.9/신시대)>, <나서라 지상명령이다(43.11.18/매신)>, <나의 결전 좌우명(44.1/신시대)>, <싸우는 연극의 자세(44.3/신시대)>, <적 미국의 사상모략(44.10/신시대)>, <파갑폭뇌(45.1.29/매신)>.
* 연설 <루즈벨트여 답하라(조선임전보국단 개최 미영타도강연대회(41.12.4/42.1,신시대)> : " 반도의 2400만은 혼연일체가 되어 대동아성전의 용사되기를 맹세하고 있다" / * 결전하 만주의 예문태세(44.1/신세대)> : 만주 신징에서 만주국예문가회의(43.12.4-5 : 금일의 문학은 다만 이 기기 위한 문학, 미·영 격멸을 위한 문학이 있을 뿐입니다. 동양이 오늘의 찬연한 문화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금일 미·영격멸의 피비린내 나는 문화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입니다.…… 우리들은 친애하는 만주제국 5000만 민중들 역시 하루라도 속히 직접 총을 잡고 포학한 미·영의 두상에 불의 세례를 내릴 것을 기원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 * <첫피(41.3/신시대>: (중략) 나는 간다, 만세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목 껏 부르고 대륙의 풀밭에 피를 부리고 너 보다 앞서서 나는 간다. 피는 뿜어서 누런 흙 우에 검게 엉기 인다. 형아! 아우야! (중략) 너들의 뜨거운 피가, 2천 3백만 너들의 피가 내 몸을 통해서 흐르는 것이다.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뿌려 지는 피다. 반도의 무리가 님께 바친 처음의 피다.(중략)만세, 만세.) / * <대동아행진곡(42.2)> : 천가지 풀에 물방울은 빛나고/이슬마다 맺힌 구슬에 어능위(御稜威), 빛나는 듯이/사방은 무성한 수풀처럼 괴괴히 웃으며 살다."
- 해방 후 : 언론계(정치경제논평),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민주당 민의원(초재선), 4·19 후(부흥부장관, 상공부장관), 5·16 후(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일보사 사장,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4) 혜성같이 나타나 내외동포에 고했던 - 김동환(金東煥)
- 친일행동 : 창씨개명(시로야마 세이주(白山靑樹)), 총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40), 임전대책협의회 발기인(41),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43).
- 친일작품 : <새로운 동양의 건설(39 : 삼천리)>, <일천 병사의 삶(39.12/삼천리)>, <탄환과 펜의 인연(40.7/삼천리)>, <신윤리의 수립(40.11.19/매신)>, <문화부대의 신궁공역봉사기(41.2.24-27/매신)>, <건국영웅과 문화(41.9.18/매신)>, <임전보국단결성에 제하여(41.11/삼천리)>, <비율빈 하늘 위에 일장기(42.1.10/매신)>, <미영장송곡(42.1.13/매신)>, <이십오만의 대진군(42.2.6-7/매신)>, <축삼배(42.2.6-2.7/매신)>, <내외 동포에 호소함(42.5/대동아)>, <군복 깁는 각씨네(42.5/대동아)>, <오호 태평양 상의 군신(42.3.9/매신)>,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43.8.7/매신)>, <적국 항복 받고 지고(44.1.6/매신)>.
* <권군 취천명(43.11.6/매신) : 부제-특별지원병에게 보내는 한 시인의 편지"> :“그대 안 나가 면 어떻게 되나-/변호사를 하겠지, 교사나 중역이 되겠지./그러나 한편 남대문과 종로에 폭탄이 떨 어지고/그대의 처자는 미영병(米英兵)에 모욕을 당하면 어떻게 하리./이일은 파리대학생과 이태리 학도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지 않았는가./'조국을 나아가 막지 않는 자엔 천벌이 내리느니라!'/또 그대가 안 나가고 이불을 쓰고 드러 누울 수는 있겠나./명춘(明春)엔 동생되는 중학생 수만이 징병으로 나서고/보국대로 좌우친화(左右親和)가 괭이 들고 자꾸 나서고/소년들까지 징용공으로 공장에 나갈 적에/양심있고 의리 있는 그대, 나가지 말란들 그리 될 까./어서 하루 급히 나서라, 벗이여, 학우여!
- 해방 후 : 반민특에 자수(49.2), 6·25때 납북.
5) 남으로 창을 낸다더니 그 속은 님의 부르심 받들라 - 김상용
- 친일행동 :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가 주최한(44.8.1-8.8) 징병축하행사에 참석(김팔봉, 김용제, 노천명, 김종한, 김동환, 이하윤)
- 친일작품 : <영혼의 정화(42.1.27/매신)>, <성업의 기초 완성(42.2.19/매신)>.
*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44.8.4/매신)>) : "물결 깨어지는 절벽 이마 위/가슴 헤치고 서서, 해천(海天) 향해 휘파람 부는 듯/오랜 구원 이룬 이날의 기쁨이여!/말 위에 칼을 들고 방가의 간성됨 이/장부의 자랑이거늘, 이제 부름 받았으니/젊은이들아 너와 나의 더 큰 영광이 무어랴.//나아가는 너희들 대오에 지축이 울리고/복락의 피안으로 깃발은 날린다/새 우짖고, 초목조차 환희를 속삭일 제,/결의 와 힘에 넘치는 너의 얼굴에/아침 태양은 더 정다이 미소하도다//감격의 대막 위에 점 털된 섬과 섬/거기 10억 동포는 묶여 살았다./그 사슬 끊이고, 해방의 노래 높은 날/낙토 건설의 첫 개척을 우리 맡았도다/명실(名實) 함께 1억 선진의 일원이 됨이여/어서 저 무잡 베이고,/여기 꽂을 꽃을 심자//촉선이 타, 일실에 빛은 넘치고/소아 멸해, 대아의 거듭남이 있다/충에 죽고 의에 살은 열사의 희원/피로 네 이름 저 창공에 새겨/그 꽃다움 천천만대에 전하여라."
6) 죽어간 조선청년 특공대를 적극적으로 찬양 - 김해강(金海剛)
- 친일작품 : <아름다운 태양(42.6/조광)>, <호주여(42.3.27-3.28/매신)>.
*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부제 : 특별공격대의 위훈을 추모하며/42.3.13/매신)> : "3월 7 일/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여-/특별공격대의 혁혁한 위훈이 발표되면/신문지에 박혀 나오는 출발 전의 절필(絶筆)!!/그것은 죽음의 대임(大任)을 앞두고/화충(和忠)의 정신과 웅대한 기우를 찍어놓은/불퇴전의 결의가 아니었던가/받을어 읽는 마음/누구나 가슴이 뛰고/피가 끓어오르지 않았으랴// 아름답고 위대한 죽음으로써/오오 우리 해군의 빛나는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한/그리하여 대동아전쟁 벽두에/제국불패의 태세를 반석 위에 세워 놓은/대동아 건설의 거룩한 초석이여!/소화(昭和)의 군신이여!/태평양상에 힘차게 펄럭이는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깃발 아래/고요히 잠자는 아홉 장사의 영광이여!/천고에 빛나는 불별의 무훈과 함께/황국만대에 영원한 영광을 가슴 높이 찬양하오니."(42년 3월 7일 버마침략과 군위안부 강제동원이 시작돼 남태평양(싸이판)의 한 전투에서 가미 가제 특공대로 죽어간 조선청년들을 찬양).
- 해방 후 : 전북도민의 노래작사, 한국예총 전북지부장, 시비조성(덕진공원).
7) 인쇄업에 종사하다 송출진학도로 변신 - 이찬(李燦)
- 친일작품 : <어서 너의 키타를(42.6/조광)>, <병정(43.3/신시대)>, 희곡 <세월(43.6-8/조
광)>, <송출진학도(44.1.19/매신), <송출진학도(44.2/신시대)>, <그나마 잘 죽어서(44.3/동양지광)>, 희곡 <보내는 사람들(44.8/신시대)>, <잔사(44.10/동광)>.
- 해방 후 :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45).
8) 종군위안부를 외치며 한세상 풍미했던 카멜레온의 여걸 - 모윤숙(毛允淑)
- 친일행동 : 조선문인협회(40), 조선임전대책협의회(41), 조선교화단체연합회(41), 조선임전보국단(일본심복활동 맹세한 단체) 사업부활동(41)과 그 산하기관인 부인대 발족(42) 간사.
- 친일작품 : <신생활운동과 오락취미의 정화(40.9.10/매신)>, <창조적인 생활(40.9.17/매신)>, <어머니의 힘(42.3.9/매신)>, <아가야 너는(43.5.27/매신)>, <내 어머니 한 말씀에(학도병 출신 격려/43.11.12/매신)>, <오시지 않았는데(43.12/신시대)>, <어린 날개(43.12/신시대:히로우카 소년 항공병에게 바침)>, <신년송(45.1.3/매신)>, <해군의 얼>, <꽃다발을 읽고>,〈대일본제국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하자>,〈일본군의 싱가포르함락을 찬양>,〈조선학도여 성전에 참여하라>.
* <여성은 전사다(부민관개최 결전부인대회연설(41.12.27/42.5/대동아)> :“이번에(중략)- 이 여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동양여성이면서 미국 발바닥을 핥아야 행복감을 느끼는 변태여성입니다. 미국의 온갖 향락성, 개인주의 관념에 잔뜩 물이 목은 이 여자는 그 생활이 말 못하게 향락적입니다.(중략) 이런 여성이 동양에 있어 사태를 어지럽힌다는 것은 동양여성으로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가슴에 대화혼의 무형한 총검을 가져야겠습니다.(중략) 가문에서 쫒겨 나더라도 나라에서 쫒겨 나지 않는 아내 며느리가 됩시다. / * <동방의 여인들(42.1/신세대)> : 새날이라서/상차려 즐기기 않겠습니다./입던 옷 그대로/먹던 밥 그대로/달가워 새 아침을 맞이하렵니다.(중략) /비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들어보세요/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미래를 창조하는/우렁찬 고함과/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산 발자욱 소리를/우리는 새날의 딸/ 동방의 여인입니다.(정신대와 종군위안부 참여를 강요한 시로 여성단체들의 집중성토).
- 해방 후 : 이승만의 총애(친미반공주의자, UN한국임시위원단장 큐리슈나 메논을 설득 남북한 분단(남한만 총선거 실시)), 국제연합총회 한국대표(48,49), 대한여자청년단장(50), 한국펜클럽 부회장(54), 서울문리대 강사(55), 문총 최고위원(55),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관학문화기구) 총회 한국대표(58), 아시아여성단체 연합총회 한국대표, 국제펜클럽 한국 위원장(60), 여류문인 협회장(69), 서울국제펜클럽대회 준비위원장(70), 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 전국구 : 72), 통일원 고문(73),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77), 문학진흥재단 이사장(80) / 하남시문화원(6·25 50주년 시비건립) / 대한민국 예술원상, 국민훈장 모란장, 3.1문화상, 금관문화훈장.
9) 친일파가 교수로 변신 후 다시 납북한 - 임학수(林學洙)
- 친일행동 : 조선문인협회 발기인(39) 및 간사(43), 황군위문작가단의 일원(김동인, 이광수 등)으로 중국 전선방문.
- 친일작품 : 펜부대 보고(39.5.21/국민신보), <전선시집(39/인문사)>, <보정성의 인상(39. 8/조광)>, <야전(39.9/조광)>, <야연(39.9/조광)>, <출전한 우인(40.7/인평)>, <자화상(41.11/국문)>, <학도총진군(43.11.8/매신)>.
- 해방 후 : 조선문학가동맹에 간여, 서울여대 교수, 고려문화사 주간, 고려대 재직(교수) 중 6·25때 납북.
10) 사슴의 시인이 천인침의 페미니스트 눈물을 - 노천명(盧天命)
- 친일행동 : 점령지 만주지방여행(찬양지지, 매일신보 기자로 일본대표단).
- 친일작품 : <시국과 소하법(41.7.8/매신)>, <싱가폴 함락(42.2.19/매신)>, <진혼가(42.2.2 /매신)>, <노래하자 이날을(42.3 /춘추)>, <전승의 날(42.3/조광)>, <흰 비둘기를 날려라 (42.12.8/매신)>, 여인연성(43.6/국문)>,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43.8.5/매신)>, <출정하는 동생에게(43.11.10/매신)>,〈신익(조선인출신으로 가미카제 특공대에 나가 최초로 죽은 마쓰이 오장을 노래)> / 시집〈창변(말미엔〈흰 비둘기를 날려라>,〈승전의 날,〈병정>,〈창공에 빛나는>,〈학병> 9편 일시 수록)>.
* <부인근로대(42.3.4/매신) :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
- 해방 후 : 신문기자(서울신문, 부녀신문), 시집 중 친일부분을 뜯어내 시판, 6.25전쟁 때 조선문학예술동맹에 참여(9.28수복 후 체포돼 20년 형(이적죄)을 선고, 시인들의 탄원으로 6개월 만에 석방), 반공애국시, 서라벌예대 출강(1955), 이화여대 출판부 근무.
11) 친일 죄를 모른 자가 무슨 국민시인? - 서정주(徐廷柱)
- 친일행동 : 창씨개명(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 ), 친일문학지(국민문학, 국민시가)의 편집관여.
- 친일작품 :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42.7.13-7.17/매신), 수필 <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춘추, 어머니에게(43.10)>, <인보(隣保)의 정신(43.9.1-9.8 / 매신)>, 수필 <스무살된 벗에게(43.10/조강)>, 일문시 <항공일에(국문)>, 단편소설 <최체
부의 군속지원(43.11/조광)>, <헌시獻詩(43.11.16/매신)>, <경성사단 대연습 종군기(43.11/춘추)>, <보도행(43.12/조광)>, <무제(44.8/국문)>.
* <송정오장송가(松井五長送歌 : 44.12.9/매신)> :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중략)/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중략)/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중략)/수백 척의 비행기와/대포와 폭발탄과/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그대/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장하도다/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한결 더 짙 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몇천 길의 바다런가//귀 기울이면/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아득한 파도소리.../레이테만의 파도소리..)>
- 해방 후 : 동아일보의 사회부장·문화부장(48), 문교부 예술국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54/회장(66) 회원, 대학교수(조선대, 서라벌예술대학, 동국대 문리대/59-79), 동국대학원 종신 명예교수, 현대시인협회 회장(71), 한국문인협회 이사장(13대, 77), 범세계 한국예술 인회의 이사장(84), 문학정신 발행인 겸 편집인(86), <전두환 생일 축시(87.1) /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5·16민족상, 자유문학상, 금관문화훈장.
12) 천황을 위해 목숨 받쳐 죽자고 외친 - 김종한(金宗漢)
- 친일행동 : 창씨명(月田茂), 친일 국민문학의 편집담당(42).
- 친일작품 : <시단개조론(40.3/조광)>, <항공애가(41.4/문장)>, <원정(42.1/국민문학)>, <춘복(42.3.16/매신)>, <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43.1.16/매신)>, <신진작가론(43.3/국민문학)>, <사상의 탄생 신시대(43.6)>,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자(43.8.6/매신)>, <병제와 문학(43.8/신시대)>, <생성하는 문학정신(44.7.14/매신)>.
* <합창에 대하여(40.4/국문)> : "그대는 반도에서 왔지 않았습니까?/도리라서 좀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런 불안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닙니다요/이봐 송화강 상류에서도 허둥 지둥/남경 변두리에서도 와 있지 않은가? 수마트라에서도, 보르네오에서도, 이제는/중경의 방공호서도 오겠지요/그럼 모두 나란히 서 주십시오-오오/포구 같다 정렬한 ㅁ.ㅁ.ㅁ.ㅁ.ㅁ/그것은 기다리고 있다/기다림에 지쳐 있다.".(팔굉일우(八紘一宇 : 천황의 품 안에서 모든 민족이 하나 됨을 의미) / * <살구꽃처럼(40.11/문장)> :“전쟁은 살구꽃처럼 만발했소-(중략) 전쟁처럼 살구꽃이 만발했소.”
- 해방 후 : 해방 전 사망(1944)
2> 장왕하게 유혹한 친일소설, 수필, 희곡작가의 실태
1) 위대한 업적에 정비례해 모든 것을 바친 - 이광수(李光洙)
- 친일행동 : 수양(修養)동우회사건으로 투옥(37/반년 만에 병보석 석방) 후 자진해서 친일 행위, 창씨개명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39), 대동아 문학자대회 1,3 차대회 참가(42,44), 조선문인보국회 이사(43), 학병 권유차 동경방문.
- 친일작품 : 시 <가끔씩 부른 노래(39.2/동양지광)>, <지원병장행가(39.12/삼천리)>, <창씨와 나(40.2.20/매신)>, <내선일체와 국민문학(40.3/조선)>, <지원병훈련소를 보고(40.3..2-6/매신)>, <내선청년에 고함 총동원(40.9)>, <배움의 감격(40.9.19/매신)>, <지원병
훈련소의 하루(40.11/국민총력)>, <반도 민중의 애국운동(41.9.4-7/신시대)>, 강연 <사상 함께 영미를 격멸하라(42.1/신시대)>, 시 <싱가폴 함락하다(42.3/신시대)>, 시 <진주 만의 구군신(42.4/신시대), <황민생활요령(42.7.30/매신)>, <개병의 노래 모집에 찬사(43
.2.27/매신)>, <키쿠치캉 의장께(43.3/대동아)>, 대동아전쟁의 교훈(43.8/녹기)>, 소설 <군인이 될 수 있다(43.11/신태양)>, <학병에게 감사(43.12.10/매신)>, <반도청년에 붙임(44.10/신시대)>, <대동아문학의 길(45.1/국민문학)>, <소개기(45.7.1-7.5/매신)>.
* <선시고심보(40.1.15/매신)> : "지금으로부터 2천 6백년 전 신부천황께옵서 어(御)즉위를 하신 곳이 가시와라(原)인데, 이곳에 있는 산이 가구야마(香久山)입니다. 뜻 깊은 이 산 이름을 씨로 삼아 '香山'이라 한 것인데, 그 밑에다 '光洙'의 '光'자를 붙이고, '洙'자는 내지식(內地式)의 '郞' 으로 고치어, '香山光郞'이라 한 것입니다." / * <모든 것을 바치리(45.1.18/매신)> : 황은지극(皇恩至極)하옵시니/피로써 나라를 지키라고 말씀하옵신 지 얼마 안되어 이제 또/정치력으로 황철(皇澈)을 익찬(翼贊)하여 받들라고 하옵신다./조선의 아들들이 총을 들고 전선에서 싸우는 것과 같이 충성스런/경륜을 안고 의정단상(議政壇上)에 나서리./병역의 엄숙한 의무이며 존귀한 황민(皇民)의 특권이었듯이 국정/참여는 공민(公民)의 특권인 동시에 극히 엄숙한 의무이니라./황국은 앞서 삼천 만의 폐하의 고굉을 더하였음과 같이 황국은/이제 또 삼천만의 보필(輔弼)의 신(臣)을 더하였다./일억일체(一億一體)로 황국을 지키사 일억일체로 황모(皇謨)를/익찬하자. 이제 피(被)와 차(此)가 없 다. 오직 하나니라./엇이 그를 이토록 만든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않되고 알 수가 없는 일이다.
- 해방 후 : 반민법으로 구속(병보석 출감), 6·25전쟁 때 납북.
2) 사람값을 한 감격축하로 아첨했던 - 이서구(李瑞求)
- 친일행동 : 창씨명(牧山瑞求), 조선연극문화협회 초대이사장(42).
- 친일작품 : <사람값을 한 기쁨(41.3/신시대)>, <감격과 축하(42.2.20/신시)>, <보도연습기(43.7/조광)>, <불이농장에서(44.6/신시대)>.
- 해방 후 : 신문기자, 공무원.
3) 문학귀재 평양갑부의 풍유친일의 말로 - 김동인(金東仁)
- 친일행동 : 창씨개명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출판법위반으로 4개월 투옥(19) 이후 자진해서 일제협력코자 총독부를 찾음, 병마에 시달리며 성전종군작가로 황군위문(39), 조선문인보국회 간사(43).
- 친일작품 : 소설 <백마강(41.7/매신)>, <감격과 긴장(42.1.23/매신)>, 소설 <아부용(42.2/조광)>, 소설 <성암의 길(국수주위자, 천황지지자인 일본인이 주인공 : 44.8-12/조광)>, <총동원 태세로(44.1.1-4/매신)>, <반도민중의 황민화(44.1.16-1.28/매신)>, <일장기 물결(44.1.2/매신)>, <문화인의 총궐기(44.11.10/매신)>, <전시생활소감(45.3.8/매신)>.
* <작품과 제재문제(41.3.23-3.29/매신)> : 신병으로 붓대를 놓은 지 만 2년,(중략) 때는 마침 일지사변(日支事變)이 최고조에 달하여 한커 우(漢口), 광둥(廣東) 모두 우리 손에 들어오고 국민의 애국세(愛國勢)는 그칠 바 모르게 올라가서 황군(皇軍)에게 대한 감사의 염(念)과 격려의 성(聲) 이 격우격(激又激)한 때였다. 초동(初動)할 수 없는 중병에 누워서 매일 신문을 보면서 여기 미조(微助)도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고 자탄해 마지 않았다. 더욱이 각 단체 각방이 앞을 다투면서 위문이라 헌금이라 할 때 문사층에서 잠자코 있는 것이 부끄럽기 한량없다.(중략) 11월 중순(1938년)에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게끔 되었다. 즉시 택시로 총독부를 달려갔다. 학무국의 문을 두드렸다. 당국의 내락만 있으면 문사 가운데서 대표 몇 사람을 뽑아서 현지에 보내서 황군 노고와 충용의 실정을 조사하여 조선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다. 국어(일본어)를 모르는 대다수 민중은 간단한 신문 이상의 실정은 모르는 바니, 이 불철저를 해소하고 싶다. 이렇게 원하였더니 당국에서는 대답이, 지금 위문이라 시찰이라 너무 많이 가므로 현지군에서도 매우 귀찮게 알고 또 그 보호의 폐가 하도 군 행동에 방해가 되어 가급적 막는 형편이다.……하니 우리로서도 찬성하기 힘들다. 가미시바이(그림연극) 창작에나 어디 유의하여 보자 하는 것이었다. 너무 머리의 생각과는 어긋나는 대답이므로 그냥 물러 나오고 말았다.
- 해방 후 : 작품활동
4) 작품 탁류처럼 홍대하옵신 성은으로 얼룩진 - 채만식(蔡萬植)
- 친일행동 : 붉은독서회 배우조종혐의로 경찰서연행(1938, 조선문인협회에서 편지가 날아와 구제) 후 친일파로 변신, 친일사찰위문단,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43).
- 친일작품 : 르포 <고 지인태 대위 유가족 방문기(37.7)>, <나의 '꽃과 병정'(40.7/인문평론)>, <대륙 경륜의 장도 그 세계사적(40.11.22/매신)>, <시대를 배경하는 문학(41.1.5/매신)>, 소설 <혈전(41.7/신시대)>, <영예의 유가족 방문기(육사출신으로 노몬한사건 때 외몽고 유매자부로에서 자폭전사(43.1.18/매신)>, <추모되는 지인태 대위의 자폭(43.1/춘 추)>, <홍대하옵신 성은(43.8.3/매신)>, <경금속 공장의 하루(44.6/신시대)>, 소설 <여인전기(44.10.5-45.5.15/매신)>.
- 해방 후 : 낙향(전북 옥구 임피) 작품활동.
5) 달밤에 산길 걸으며 영원한 충성 - 송영(宋影)
- 친일작품 : <국민극의 창작(42.1.15-1.20/매신)>, <극계의 총관 (42.12.16-20/매신)>, <영원한 충성(43.8.5/매신)>, <역사(43.9/연극경연대회)>, <연극의 결전체제(43.12.17- 12.21/매신)>, <신사임당(45.2/연극경연대회)>, <달밤에 걷던 산길(45.2/연극경연대회)>.
- 해방 후 : 월북(46.10).
6) 신체론에 의거 조선지식층에 호소하다 일본에 귀화한 - 장혁주(張赫宙)
- 친일행동 : 창씨명 노구치 미노루(野口稔), 신체제론에 의거 일문 친일문필활동, 황도조선 연구회(42), 대륙개척문학위원회 위원(4차례 만주시찰).
- 친일작품 : <가등청정(39.1/삼천리)>, <조선의 지식층에 호소함(39.4/삼천리)>, <개척지 시찰보고(42.6.13/매신)>, 소설 <어느 독농가의 술회(43.1/녹기)>, <역사에 불멸할 일순(43.6.6/매신)>, 소설 <순례(43.9.7-22/매신)>. <화랑도 정신의 재현(젊은 학도의(43.11. 11/매신), <새로운(44.1/녹기연맹)>.
- 해방 후 : 6·25전쟁 후 일본귀화(조총련계 활동).
7) 친일 국민연극에서 친미 반공연극의 연극마슬사 - 유치진(柳致眞)
- 친일행동 : 극영(劇映)동호회(홍해성, 서항석/31) 조직 후 친일부역배 극예술연구회 발족(이헌구, 이하윤), 조선문인협회 상무간사, 대동아문학자대회 2차대회 참가(43.8.25),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회장(44.6) 및 평의원(45).
- 친일작품 : <흑룡강(중일전쟁 발발 후 일제강압으로 국민연극운동)>, <대륙인식(40.7/인문평론)>, <국민연극 수립에 대한 제언(41.1.3/매신)>, <신체제하의 연극(41.2/춘추)>, <아름다운 도시(41.3/신시대)>, 평론 <국민연극 수립에 관한 제언(41.1.3/매일신보)>, 연극계의 회고(41.12/춘추)>, <축 싱가폴 함락(42.2.19/매신)>, <북진대 여화(친일의 선봉 이용구를 찬양/42.6/국민문학)>, <개척과 희망(42..7.30-8.5/매신)>, <만주분산 개척민촌을 보고(42.9/춘추)>, 희곡<대추나무(41.10-42.1/신시대)>.
* <싸우는 국민의 자세(43.6/국문)> : "조선문인 보국회는 강령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에 있어서의 문학자의 총력을 대동아 전쟁의 목적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조직된 단체다. 따라서 이회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들의 활동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대동아 전쟁의 완수에 있는 것이다. 적을 러 마지아니하는 정신으로 조서(詔書)에서 말씀하신 정전(征戰)의 목적을 관철하고, 대동아 10억의 적국 미영(米英)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며, 그리하여 아세아 민족의 아세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중략)... 불타오르는 이상과 높은 이 해 밑에, 10억의 아세아 민족이 모두 우러러보게 되는 작품을 작가는 생산할 수 없겠느냐? 그와 같은 작가가 태어나야만 아세아는 정말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있는 정신적 거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비로소 팔굉일우(八宏一宇)의 이상이 이루어진다."
- 해방 후 : 국립극장장, 반공통일연맹 이사, 동국대 교수, 드라마센터 소장.
8) 대동아전쟁의 당위성 강조한 헌법 만든 원로학자정치인? - 유진오(兪鎭午)
- 친일행동 : 조선문인협회 발기인(39),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41), 대동아문학자대회 1,2차대회 참가(42.113/43.8.25), 조선언론보국회 평의원(45).
- 친일작품 : 일문 <소감(40.7/삼천리)>, 평론 <지식인의 표정(42.3 /국문)>, 일문 <국민문학이라는 것은(42.11/국문)>, <동양과 서양(대동아전쟁의 당위성 역설(43.1.9-1.13/매신)>, <환멸(43.6/신시대)>, <부상견문기(43.10/신시대)>, <병역은 큰 힘이다(43.11.18/매신)>.
*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리라(44.9/신시대)> : "대동아전은 이미 최후에 돌입하고 말았습니다. 중략) 아니 미영(米英)이 동아의 침략을 시작하여, 이미 수세기에 걸친 장구한 전쟁의 최후의 막이 이제 바야흐로 닫혀지려고 하는, 실로 역사적인 숨막히는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귀추(歸趨)는 이미 명백한 것입니다. 침략자와 자기 방어자의, 不正者와 正義者의, 세계 제패의 야망을 붙들린 자와 인류 상애(相愛)의 이상에 불타는 자의, 일언이폐지하면 악마와 신의 싸움인 것입니다. 정의는 太陽과 같고, 사악은 黑雲과 같아서 구름은 마침내 태양의 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이며 정의자 일어설 때 그 승리는 명백한 것 입니다."
- 해방 후 : 제헌헌법 기초위원(일본과 미국헌법모방/47), 초대 법제처장, 한일회담(60.61) 한국측 수석대표, 4.19당시 고려대학교 총장(52-65), 국제법학회 회장(53), 학술원 종신 회원(54), 5·16혁명 후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유엔한국협회장, 대한교육연합회장(64), 법전편찬위원(65), 야당 대통령후보 추대(66), 신민당 대표위원(67)으로 제7대 국회의원, 고려중앙학원 이사(74), 통일원 고문(80)·국정자문위원.
9) 장정의 각오로 민족적 반역정신을 주입한 - 함대훈(咸大勳)
- 친일행동 : 조선문인협회(발기인(39), 문학부 상무간사(41), 간사(42)).
- 친일작품 : <남북조선편답기(39.7/조광)>, <문예시감(40.10.11-10.16/매신)>, <맥박과 호흡의 조화(40.12.9-12.10/매신)>, <우리들과 지원병(40.12/조광)>, <지도와 새 이념(41.1.5-1.9/매신)>, <전쟁취재와 문학(41.8.19-8.21/매신)>, <세계변혁의 날(42.2.18 매신)>, <남방문화공작과 건설문제(42.4.6-4.8/매신)>, <전쟁문학별견(42.11.18-11.21/매신)>, <전시수(43.8.10.10-8.14/매신, 조광)>, <우리들의 지원병(43.8.4/조광)>.
* 수필 <장정의 각오(43.8.4/매신)> : "지금 반도청년에게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 그 전에는 조선인은 병역의무를 가지려고 하나 가질 수가 없었다. 지금 기억되거니와 소화 15년 겨울인가 문인시 국강연회를 앞두고 육해군 간부들의 강연준비에 관한 말을 들었을 때 <조선인은 언제나 징역의 의무가 생기는 가>고 질문했더니 지금은 모(某) 요직으로 간 야마노우치(山之內) 참모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는 답변을 했었다. <해군에서는 조선인 지원병을 채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구로기 (黑木) 대좌도 <아직 그런 생각은 하지고 않았다>고 답변함을 듣고 나는 강연을 떠나면서 한편 서운 하였다. 그때 <조선의 청년아......육(陸)으로 바다로 가서 전정의 혼이 되라>고 외치고 싶은 심산이다 틀린 때문이었다. 이제 육군이 징병제도가 되고 해군에 특별지원병제도가 실시된 오늘 물론 그 분들은 그 당시 장래를 알고도 말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삼 년간의 세월이 그같이 조선동포에게 커다란 의무와 은전을 갖게 한 것은 다만 만공의 감사가 있을 뿐이다. 태평양의 높은 파도가 그대들을 부르고 대륙의 넓은 들과 높은 산이 그대들의 함성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청년의 의기를 높이고 성은에 봉답할 길은 터졌다. 반도청년은 다시 잊지 못할 행복의 시기인 것을 더욱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 해방 후 : 한성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안국장·공보국장,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장(47).
10) 일본 시인한테 사사받아 친일한 - 김소운(金素雲)
- 친일작품 : 일문 시 <야마모토 원수(일본해군 연합함대 사령관)의 국장일(43.6.8/매신)>,<제장(43.6.8/매신)>, 수필 <부조(父祖)의 오명을 일소(43.11.21/매신)>.
- 해방 후 : 도쿄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방(53/13년간 일본체류) 귀국 후(65) / 대한민국문화훈장 은관.
11) 시찰보고담을 아주 리얼하게 표현한 - 이무영(李無影)
- 친일행동 : 시찰보고단(45.5).
- 친일작품 : <대동아전기(42), 장편 <청와의 집(부산일보)> 제4회 조선예술상 문학상(조선 총독부), <가련한 처칠의 말로(42.2.19/매신)>, <문학의 진실성(42.317-21/경성일보)>, 개척촌을 보고(만주지역의 일본부대를 다녀온 감상문(43.2.25-28/매신)>, 소설 <향가(43 .5.3-9.6/매신)>, <소개 산 전투(45.5.5/매신)>, <시찰 보고담(45.5.13)>.
- 해방 후 : 대학출강(서울대, 연세대 : 소설론강의), 6.25전쟁시 해군정훈감(海軍政訓監 : 대령), 문총 최고위원(51), 단국대 국문과 교수(57-60) / 서울시문화상.
12) 러시아문학에 빠진 성지참배통신의 주역 - 이석훈(李石薰)
- 친일행동 : 창씨명(牧洋).
- 친일작품 : <함흥일기(41.2/신시대)>, <애견가의 수기(41.6/춘추)>, <반도의 신문화라고 하는 것(41.11/녹기)>, <전환기의 조선문학(41.12/녹기)>, <성지참배통신(42.1/조광)>,<성지참배통신(42.1/신시대)>, <나아가자 일장기와 함께(42.3/동양)>, <국민문학의 문(42.3.7-12/매신)>, <징병. 국어. 일본정신(42.7/조광)>, <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43.1.13 /매신)>, 소설 <혈록(43.8/동양)>, 소설 <최후의 가보(43.8/신시대)>, <김종한의 인간과 작품(44.11/국문)>.
* <성지참배통신(42.1/조광지)> : "法隆寺驛앞에서 점심을 먹고(중략) 이러한 조그만 事實도 참으로 日本文學을 理解하는데는 적지않은「힌트」가 된다는것을 알려드립니다...(중략)...原神宮驛은 聖地에 알맞을 만큼, 神宮形式의 그러한 氣品있는 建築物입니다. 지은 지 오래지 않어서 더욱 밝고 깨끗한 近代的이면서 日本의 傳統을 가진 古典的驛舍입니다.(중략) 다시 말하면 機械文明은 西歐의 것이기 때문에 工場의「메카니즘」이 西歐그대로 日本의 自然속에 따로 동떨어져서 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日本의 自然에 調和되고 日本人의 精神이, 들어있는 日本的인 메카니즘으로, 化하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感想을 나는 原神宮驛舍에서도 느낀 것입니다. 驛을 쓱나선 瞬間 그 밝고(明)도 깨끗한 느낌, 그것은 神都라는것이 決코 낡고 沈重하고 頹的이 아니라 恒常 뻗어나가는 國運을 象徵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밝고(明) 깨끗하고 希望에 넘치는 雰圍氣임을 알었습니다...(중략)...事實, 告自하면 나는 지금까지 日本文學의 섬세한 神經은 쓸데없는 近代的인 煩主義의 나쁜 影響으로 밖게 解釋치 않고 西歐의 文學만을 그럴듯이 評價하였습니다마는, 이번 旅行에서 特히 奈良을보고 비로소日本文學이 그렇게도 섬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理解하였습니다...(이하생략)"
- 해방 후 : 해군 정훈장교로 근무, 제대 후 6·25전쟁 때 납북.
13) 이동위문 공연목적에 적극 아첨한 - 조용만(趙容萬)
- 친일활동 :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기자, 학예부장, 논설위원/해방 전까지).
- 친일작품 : <만찬(41.7/춘추)>, <근로봉사일지(41.12/조광)>, <배 안에서(42.7/국문), <차중에서 생긴 일(42.7/동양)>, <삼군 부처와 나와(42.12/국문)>, <전국 현단계와 국민의 결의(44.1/국문)>, <도시 소개와 그 의의(44.3/신시대)>, <흑령탄갱의 감상(44.6/신시대) >.
* 일문희곡 <광산의 밤(鑛山の夜 : 44.1/)> : "노무자는 대개 국민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감정으로 움직인다. 조금만 친절하게 해주어도 곧 감격하고, 또 그 대신 조금만 냉대하는 것 같으면 곧 배반한다...(중략)...비단 광산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에서 다 그렇다. 직접 노무자의 감독지도에 당하는 사람이 노무자에게 잘 굴어야 한다. 소기(小磯) 총독은 말단행정의 개선을 역설하였다. 행정부문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지 말단에서 직접 대중과 접하는 사람이 잘 굴지 못하면 위에서 암만 목소리가 쉬도록 악을 써도 별 효과가 없다. 소기 총독의 이 말을 모든 생산부문의 감독자는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해방 후 : 코리아 타임스 주필(50),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53-74).
14) 조선문인보국회 소설부회장으로서 친일 - 정인택(鄭人澤)
- 친일행동 : 조선문인협회 간사(42), 조선문인보국회 간사(43) 및 소설부 회장(45).
- 친일작품 : <신이상의 수립(40.2.16/매신)>, 소설 <부상관의 봄(41.3/춘추)>, 소설 <청량리 계외소(41.11/국문)>, 소설 <행복(42.1/춘추)>, <대지의 역사(42.7.27-29/매신)>, <개척민의 감정(42.8/춘추), <옥토의 표정(42.9/신시대)>, <만주개척지기행(43.3/국문)>, 소설 <붕익(44.6/동양)>, <검은 흙과 흰 얼굴(42.11/조광)>, <해변(43.11/춘추)>, 창작집<조선도서주식회사(44)>.
- 해방 후 : 6·25 때 월북.
15) 아시아의 여명적 군국의 어머니 - 박태원(朴泰遠, 朴太苑)
- 친일행동 : 조선문인협회 발기인(41) 및 평의원(43),
- 친일작품 : <아세아의 여명(41.2/조광)>, <군국의 어머니(42/조광)>, <원구(45.5.16/매신)>.
- 해방 후 : 조선문학건설본부 소설부 위원(과거 카프의 핵심단원이던 임화, 김남천, 이원조 등 좌익문인들이 결성(45.8.16)), 조선공산당 지시로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소속 조선문화 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조선문학동맹으로 통합(45.12.13),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6·25전쟁 중 내려온 이태준과 안회남을 따라 월북, 평양문학대학 교수.
16) 일본은 지상낙원이라 외쳤던 - 정비석(鄭飛石)
- 친일행동 : 조선문인보국회 간사(43).
- 친일작품 : 소설 <조국으로 돌아가다(39.4.23/국민신보)>, 소설<한월(42.2/국문)>, <지식인(42.7/동양)>, <영예의 유가족을 찾아서(43.1.15/매신)>, 소설 <산의 휴식(43.4-5/신시대)>, <군대생활(43.7/신시대)>, <사격(43.7/국문)>, <철면피(43.7/국문)>.
* 일문꽁트 <국경(43.4/국문)> : "개개의 인간에게 이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낙원 밖에 없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이 조국 일본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이 일본을 지켜 나가는 건 자기 자신이나 백대 천대까지 이어질 자기 자손을 지키게 된다. 이것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업이지 결코 간단한 사업은 아니다. 피투성이의 전투인 것이다...(중략)...문화인이 휴머니티를 외치는 건 옳은 일임에 틀림없고, 그것 없이는 문화는 설 기반을 잃게 될지도 모르나, 일단 싸우기 시작했으면 무엇보다도 전쟁에 이겨야 한다. 전쟁의 의미는 승리에 있다. 오늘날 문화정책이 허용된다고 하면 그것은 승리를 위한 무기로서의 문화이지 않으면 안된다...(중략)...나는 오랫동안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계 구석구석까지를 탐색해 봤지만,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역시 자신을 최후까지 보호해 주 는 이 나라 일본밖에 없다. 지도에 칠해진 붉은 색이 무한한 친밀감으로써 내 전신에 번져 왔다."
- 해방 후 : 작품활동.
17) 일심동체의 친일부부로 군국의 어머니를 강조한 - 최정희(崔貞熙)
- 친일행동 : 2차 조선카프동맹 검거(34)로 투옥 후 친일.
- 친일작품 : <어머니의 마음(39.5.14/국민신보)>, <친애하는 내지의 작가 모던(40/일번)>
, <환상의 병사(41.2/국민총력)>, <동아의 새 아침(42.2.21/매신)>, <2월 15일의 밤(42. 4/신시대)>, <국가의 아들의 어머니에게(42.5.19/경성일보)>, <군국의 어머니(42.5/대동아)>, <꿈은 남녁으로(42.5/대동아)>, <야국초(42.11/국문)>, <푸른 하늘(42.12.12/경성일보)>.
- 해방 후 : 공군종군작가단 참가(50), 주부생활 주간(56), 예술원 회원(70), 여류문인회 고문(72),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 / 서울시문화상, 여류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18) 현대극장 단원의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간사장 - 함세덕(咸世德)
- 친일행동 :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간사장(44).
- 친일작품 : <신극과 국민연극(41.2.7-2.11/매신)>, 희곡 <추장 이사베라(42.3/국문)>, 희곡 <에밀레 종(42.3/대동아)>, <동경국민연극의 전망(43.3.2-/매신)>, 희곡 <거리는 쾌청한 가을날씨(44.11/국문)>, 희곡 <황해(44.11/국민연극경연대회).
- 해방 후 : 월북, 조선연극동맹에 참여, 극단 낙랑극회조직.
19) 동양극장 전속작가 국민연극경연대회 - 박영호(朴英鎬)
- 친일작품 : 희곡 <잔등불(40.2/문장)>, <수류(41.2/문장)>, 희곡 <갱생일가(42.2/국문)>,
<산돼지(42.9/국민연극경연대회)>, <물새(43.9/국민연극경연대회)>, 희곡 <좁은 문(43.12/조광)>, 희곡 <김옥균의 사(44.3-5/조광)>, 희곡 <혈서(44.7/신시대)>, <제2의 동키호테(44.11/동양)>, <별의 합창(45.2/국민연극경연대회)>.
- 해방 후 : 불분명.
3> 이성을 잃은 친일평론가의 실태
1) 문학운동 전시체제의 궤변론자 - 박영희(朴英熙)
- 친일행동 : 창씨개명(요시무라 : 芳村香道), 조선문인회 간사(39) 후 일본 북지파견군에 종군, 대동아문학자대회 1차대회 참가(42.11.3), 조선문인보국회 총무국장(43).
- 친일작품 : 서평 <보리와 병정(39.7.25-26/매신)>, <전선기행(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北支)를 다녀온 후 쓴 기행문 : 39/동광지광)>, <전쟁과 조선문학(39.10/인평)>, <국문의 건설(40.1.1/매신)>, <문장보국의 의의(40.4.25/매신)>, <문학운동의 전시체제(40.7.6/매
신)>, <지식인의 이론(40.8.4/매신)>, <포연 속의 문학(40.8.15-8.20/매신)>, <부여 신궁어조영 근로봉사에 참례하여(41.4/춘추)>, 일문평문 <임전체제하의 문학과 문학의 체제 (41.11/국문), <대동아문학자대회 출석을 앞두고(42.10.29/매신)>, <한층 더 좋은 작품을 (42.12/신시대)>, <이천오백만의 기대(43.2/춘추)>.
- 해방 후 : 6·25때 납북.
2) 님의 부르심을 받들라더니 해방 후 반독재투쟁을 - 김기진(金基鎭)
- 친일행동 : 창씨개명(金村八峯),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결성위원(38.7.3), 조선문인 부국회 상무이사 겸 평론수필부 회장(44), 제3회 대동아문학자 대회 참석(44), 조선언론 보국회 이사(45) / 적국 항복문인 대강연회(44.8.17, 부민관 : 이광수, 유진오, 주요한 참석)에서 <문화인에게 격(擊)함>을 연설, 조선학도들에게 전쟁참여종용을 민족의 유교적 의식에 호소, 가문의 명예와 나라에 충성이라는 명분).
- 친일작품 : <문예시감(40.2.27/매신)>, <아세아주의와 김옥균선생(41.11/조광)>, <국민문학의 출발(42.1.9/매신)>, <역사적 명령(42.1.28/매신)>, 시 <대동아전송가(42.2/조광)>, 시 <나도 가겠습니다(43.11.5/매신)>, 시 <가라, 군기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자발적인 황군입영 촉구/43.11.15/매신)>, 시 <의기충천(44.10.18/매신)>, <이 길로 가자(44 .9.6/매신)>, 탄환과 충언(44.1.5/매신)>, <신전의 맹세(44.1.19/매신)>, <금감단편(45.3.12/매신)>.
*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징병제 시행 첫 날(43.8.1) 매신)> : ....(중략).../반도의 아우야, 아들아 나오라!/님께서 부르신다, 동아 백만의 천배의/용감한 전위의 한 부대로 너를 부르신다/이마에 별 붙이고, 빛나는 별 붙이고 나가자/...(중략).../님이 나아가라 하시거든 불 속에라도, 물 속에라도,/은 날개 펼치고 나는 새보다 더 빨리/님이 머무르라 하시거든 밀운(密雲)과 격류 가운데서도/움직이지 않는 태산과 같이, 삼림과 같이...(이하 생략).
- 해방 후 : 출판인쇄 애지사 창립경영(45-50), 경향신문 주필(60), 펜클럽·문협 고문(72), 반독재 자유당정권 투쟁, 6·25전쟁(인민재판 회부, 기적적 회생) 후 육군종군작가단 부단장 / 금성화랑무공훈장.
3) 지원병 군사훈련을 보고 사람답게 된다며 감격한 - 홍효민(洪曉民)
- 친일행동 : 조선문인보국회 평론수필분회 간사(43).
- 친일작품 : <인생의 도(42.1/동양)>, <미소기 연성행(43.8.14-4.17/매신)>, <계와 일본정신(43.9/신시대)>, <미영(米英)사상의 본질(43.9/조광>.
* <감격의 1일(40.10.15-10.22/매신)> : "조선인으로의 군대, 곧 지원병은 오늘의 시국 아래서 귀한 존재이고 또 우리의 자랑거리인 것은 두말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중략) 역시 지원병 훈련생들도 사람인만큼 장점도 있고 결점도 있을 것이다. 허나 장점은 좋은 일에 속하는 그것일 것이나, 단점만은 없어도 좋을 일이다. 지원병 훈련생들의 단점이라고 하는 바 딱딱한 것이라든지, 책임감이 박약 하다든지, 의뢰심이 있다든지, 애타심이 부족한 것은 그들의 결점 뿐 아니다.(중략) 허나 이런 결점이 이 훈련소를 거쳐 나옴으로부터 교정된다면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이 훈련소는 다만 군사교 육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다웁게 되는 길에 있어서도 역시 없어서는 아니 될 존재라고 느꼈다.(이하 생략)."
- 해방 후 : 애국주의 문학론 주창.
4) 천황폐하의 은덕과 가미가제정신이 아름답다 - 정인섭(鄭寅燮)
- 친일행동 : 창씨명(東原寅燮), 조선문인협회 간사(39) 및 상무간사(41).
- 친일작품 : <애국문학의 제창(40.1.3-1.5/매신)>, <건전한 오락은 씩씩한(40.9.9/매신)>, 문인순회강연통신반(40.12.24/매신)>, <나의 보고서(41.2/신시대)>, <서양문학에의 반성(42.1/국문)>, <엄숙한 순간(42.1.29/매신)>, <꿈이 아니다(42.2.18/매신)>, <영국문화의 위기(42.2.24-3.2/매신)>, <대동아전을 맞는 나의 결의(42.12/매신)>, <시국과 조선문학의 장래>, <총후문학과 개척문학>, 문예통신강연반의 명의로 서신(40.12.14/매신).
- 해방 후 : 국제언어학자대회 한국대표, 펜클럽 한국본부 창설 및 위원장(56), 대학교수(서울대 대우(56),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5) 적 학병격최하고 화성돈에 일장기 날리라 - 이헌구(李軒求)
- 친일행동 : 창씨개명(牧軒求),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43).
- 친일작품 : <각고의 정신(41.1.5-7/매신)>, <적 학병격최하라(43.11.23/매신)>, <천재일우의 때(43.12/조광)>, <화성돈에 일장기 날리라(43.12/춘추)>.
- 해방 후 : 중앙문화협회 창립동인(45), 문필가협회 창립주역(46), 민주일보 편집국장, 민중일보 부사장 겸 편집국장, 공보처 차장(49), 이화여대 문리과대학 교수(54) 및 학장, 문총 대표 최고위원(54) 펜클럽 한국본부 창립동인,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 국민훈장 무궁화 장, 예술원 공로상.
6) 조선민족 발전적 해소론과 일본 귀화한 - 김문집(金文輯)
- 친일행동 : 창씨개명(오에 류노스케(大江龍之介),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간사(39),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 총재부 촉탁, 도일(41).
- 친일작품 : <축하할 죽음(39.7.16/국민신보)>, <일본문화의 특수성(39.9.23-9.28/매신)> <조선민족의 발전적 해소론 서설(민족최후의 길은 황국신민으로서의 재생뿐 :39.9/조광)>.
- 해방 후 : 일본에 귀화(41).
7) 극렬 천황숭배론자로 황군입영을 독촉한 - 최재서(崔載瑞)
- 친일행동 : 창씨명(石田耕造), 인문평론 창간(39) 후 친일작품, 국민문학 주간(41), 조선 문인보국회 이사(43), 천황숭배론자, 월간지 국민(황국)문학의 창간 발행인(창간호에 평론<국민문학의 요건(41.11)>과 <조선문학의 현단계(42.8)>를 통해 황국문학의 이론천명의 주도적 역할).
- 친일작품 : <전쟁문학(40.6 /인평)>, <문화이론의 재편성(41.1.14/매신)>, <문학체제화의 목표(41.2/녹기)>, <문학정신의 전환(41.4/인평)>, <징병감사와 우리의 각오(41.8.2/매신)>, <징병제 실시의 문화적 의의(42.5-6/국문)>, <선전의 효과(43.4.4/조선)>, <근로와 문학 국민문학 사상전의 첨병(43.6/국문)>, 소설 <보도연습반(43.7/국문)>, <대동아의 식에 눈뜨며(43.9/국문), <결전하의 내지(43.10/국총)>, <아세아의 해방(44.1.11/매신)>, <금년의 신인군(44.12/국문)>, 소설 <민족의 결혼(45.2/국문)>.
* <징병서원행(황군입영을 독촉 : 43.8/국문)> : "징병의 발표가 있은 날부터 나는 우리 상대인(上 代人)을 늘 생각한다. 물이 흐르듯 담담한 기분으로 일본에 귀화한 상대의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커다란 암시이며 고무이며 위안이 된다. 특히 성덕태자(聖德太子)에게 몸을 바쳐 순사(殉 死)한 혜자법사(慧慈法師)의 일은 생각할 적마다 가슴을 때린다...(중략)...일본의 매력이란 이것이다.(중략) 이렇게 하여 동양문화의 정수는 온통 일본에 모여 잘 보존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정련(精練)을 가하여 오늘의 빛나는 일본문화를 쌓아올린 것이다...(중략)...만주를 보라. 지나(支那)를 보라. 나아가서 태국, 불인(佛印-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그리고 말레이, 필리핀, 버마를 보라. 적(敵) 미·영(美英)의 마수로부터 해방되어 도의(道義)일본의 빛 밑에 산천초목 모두 소생하는 모습이 아니겠느냐? 이제 동도(東都, 동경)에는 이들 각 지역으로부터의 지도자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 그 들의 감회는 과연 어떠할까?
- 해방 후 : 교수(연세대, 한양대).
8) 천황폐하 어친열 특별관함식 배관근기의 평론가 - 백철(白鐵)
- 친일행동 : 창씨개명(白矢世哲),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국민문학론("일본적인 것을 체내에 받아들여 충분히 씹고 소화하여 문학속의 살아있는 생명의 흐름으로까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을 주장.
- 친일작품 : <이상의 필요(38.12.18/매신)>, <해석에서 주장으로(39.1.6-1.7/매신)>, <시국과 문화문제의 행방(39.4/동양)>, <전장문학 일고(39.10/인평)>, <전선시집 서평(39.10.4/매신)>, <전선기행 서평(39.10.15/매신)>, <금후엔 문화적 사명이 중대(1940.7/인평)>, <신체제와 저널리즘(40.11/인평)>, <내선유록이 깊은 부소산성(41.3/문장)>, <생활과 문화(41.5.3/매일신보)>, 평론 <낡음과 새로움(42.1/국문)>, 평론 <결의의 시대(42.11
/국문)>, <문학의 이상성(42.6-7/동양)>.
* 르포 <천황폐하 어친열 특별관 함식 배관근기(40.12/삼천리)> : 천황폐하께옵서 친히 열람하시는 특별관함식을 엎드려 구경한 기록.
- 해방 후 : 서울대 문리대 교수(52), 중앙대 문리대학장(55-73),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62), 예술원 회원(64), 중앙대 한국학연구소장(73),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73), 작가 기금 운영위원장(74), 한국저작권연구회 이사장(76), 신구대학 학장 / 대한민국 예술원상, 국민훈장모란장, 서울시문화상, 3·1문화상.
9) 조선청년들 황군입영 강요로 문예총독상 - 김용제(金龍濟)
- 친일행동 : 창씨명(金村龍濟),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37), 치안유지법(프로문화동맹 조선위 동경지부장) 위반으로 투옥(3년 복역)후 친일파로 변질.
- 친일작품 : <전쟁문학의 전망(39.3/동양)>, <내선일체의 가(39.4/동양)>, <민족적 감정의 내적청산(39.4/동양)>, <황군위문문사부대(39.4.9/매신)>, 조선문화운동의 당면 임무(36. 6/동양)>, 일문 <아세아 시집(39.7)>, <싸우는 문화이념(39.8/녹기)>, <전장의 미(40.1/ 인평)>, 시 <12월 8일(42.12/동양)>, 시 <어동정(御東征 : 일본건국의 시조라는 천황이 일본 서남부 가고시마에서 동쪽으로 정벌해 나가는 내용/43.2/녹기)>, <위대한 전사(43.7 .20/경성일보)>, 시 <보도시첩(보도반원으로 '황민화운동'의 선두에 서서 조선청년들에게 황군에 입영강요 : 46.6/동도서적/그해 제1회 고쿠코(國語) 문예총독상)>, <학도동원(44.9/동양지광)>, <입단하는 아침(44.11/문학보국)>.
* 시 <학병의 꽃(44.7/국문)> :‘앞장서 지원한 그대에 이어/그리운 학모(學帽)를 바람에 버리고/새로운 군모(軍帽)의 별을 받들어/붓을 검(劍)으로, 서책(書冊)을 지도로 대신할 때/ 몇 만(萬)의 발자국은 청운(靑雲)을/소용돌이쳤다.’
- 해방 후 : 흥사단 이사(53), 신군부 전두환정권 때 평통자문위원.
10) 친일 결전문학의 이념을 만든 - 곽종원(郭鍾元)
- 친일작품 : 평론 <문학의 지향성(44.2.16-2.19/매신)>, <적극성의 추구(44.3/동광지광)>,<학도 근로동원에 대해서(44.8/국문)>, <해양남아의 요람(44.9/국문)>, <문학의 함축성(45.2.16-19/매신)>,<창작월평(45.6.26~28/매신)>.
* 일문평론 <결전문학의 이념((44.4/국문)> : "역사적 자각에 의해 국민적 자각이 생기고, 국민적 자각에 의해 종래의 과오인 개인주의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타파하고, 전체주의적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확립을 희구해 마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수반되는 것들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문학관도 당연히 생겨나야 할 것이다...(중략)...인간생활에서나 흥미를 갖게 하고, 기쁨을 나눠주고, 정신을 윤택케 해줄 방향을 풍긴다는 것도 커다란 역할임에는 틀림없겠으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다 긴급한 대(大)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의 완수를 위해서라면, 문(文)이 총이 되고 검(劍)이 되어서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중략)...싸우는 문학이 거쳐야 할 당연한 순서는, 종래의 해석에 의한 예술성의 방기이며, 낡은 의미의 시학적 궤범성을 탈피하여 문학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결전 국민생활의 계몽에 있다. 문학이라는 특성이 갖는 예술성을 구애받아 구태의연하기를 고집하여 전쟁완수를 향한 중요한 기능을 회피해야만 한다고 할 자는 아무도 없다. 문학자는 문학이 정치에 통속화되었다고 탄식하지 말지어다. 이제 와서 문학과 정치를 이원적으로 대립시켜 둘 필료가 어디에 있겠는가. 비단 문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부문이 합목적으로 외길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 해방 후 : 한국문학가협회 창립 간부, 숙명여대 교수(1955-1968), 숙명여대 총장 직무대리, 건국대 총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예술원 회원 / 아시아 자유문학상, 대통령표창, 국민훈장모란장.
11) 친일웅변과 친일문학을 함께한 - 조연현(趙演鉉)
- 친일행동 : 창씨개명(德田演鉉), 대학시절에 친일문학평론, 친일지 동양지광이 주최(42.6)한 지상(誌上) 결전 웅변대회에 <아세아 부흥론 서설>로 3등 입상.
- 친일작품 : <동양에의 향수(42.5/동양)>, <강창천심에 대해서(42.10/동양)>, <문학자의 입장(43.1/동양)>, <평단의 일년(43.12/신시대)>.
* <아세아 부흥론 서설(42.6/동양)> : "이 대동아 전쟁은, 일로 전쟁이 단순히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의 동양침략에 대한 일본의 결사적 전쟁이었듯이, 단순히 일본과 영미(英米)와의 전쟁이 아니라 영미가 아세아와의 대등한 관계를 무시하고 아세아 민족을 학살하고 세계정복을 꾀하려는 영미적 세계사에 대한 일본의 폭탄적인 방비전이며, 아세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선 양하는 아세아의 자각전이기도 합니다...(중략)... 그 폭탄은 만세일계의 거룩한 옛 정신을 지켜온,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녀온 일본제국의 아세아의 자율과 독립을 위한 통쾌한 정의의 폭탄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이 폭탄은 동시에 전(全)아세아 민족의 폭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감격적인 대동아 전쟁에 의하여 우리 아세아의 전민족이 오랫동안 갈망하여 마지아니했던, 아세아의 부흥의 새벽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 * <자기의 문제로부터(43.8/국민문학)> : "내리는 눈이 백발이 되도록 천황을 섬기며 눈마저 고이 내리는 구나라고 다치니와(諸兄)가 노래했을 때 그는 단지 흔히 말하는 충군사상(忠君思想)의 외피를 쓴 것만은 아니었으며 자신의 길이 내면세계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그렇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허하게 부르짖는 충군사상 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이다."
- 해방 후 : 예술부락주재(45), 현대문학지 창간주간(55), 동국대 교수(64), 예술원 회원(66), 예술문화윤리위원회 위원장(71), 문학평론가협회장(71), 도서잡지윤리위원(72), 펜클럽 한국본부 부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14,15대(79-81), 한양대 문리대학장, 잡지협회장(81) / 대한민국 문화포상, 국민훈장 동백장, 3·1문화상.
4. 주요 친일작가 친일문학활동 종합현황분석
1> 주요 친일작가 친일작품관련 종합현황과 분석
1) 주요 친일작가들의 기초현황 및 분석
주요 친일작가들의 기초, 생사현황 및 분석
구분 |
내 용 |
출생 연도 |
1882년(이광수), 90년(최남선), 93년(김억), 99년(이서구), 1900년(김동인, 주요한), 01년(김동환, 박영희), 02년(채만식, 김상용), 03년(김해강, 송영, 김기진), 04년(홍효민), 05년(정인섭, 이헌구, 장혁주, 유치진), 06년(유진오, 함대훈), 07년(김소운, 김문집), 08년(이무영, 이석훈, 최재서, 백철), 09년(조용만, 김용제, 정인택, 박태원), 10년(이찬, 모윤숙), 11년(정비석, 임학수, 노천명), 12년(최정희), 15년(서정주, 곽종원), 1916년(김종한, 함세덕), 20년(조연현), 불분명(박영호)-> 00이전 4명, 00년도 25명, 10년도 10명, 20년도 2명, 불분명 1명 / 고향선후배 규율존재 가능성 |
성씨 (다순, 출생 순) |
김씨(10명, 24% : 김억, 김동인, 김동환, 김상용, 김해강, 김기진, 김소운, 김문집, 김용제, 김종환) > 이씨(6명, 14% : 이광수, 이서구, 이헌구, 이석훈, 이무영, 이찬) > 최씨(3명,7% :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박씨(3명, 7% : 박영희, 박영호, 박태원), 정씨(3명, 7% : 정인섭, 정인택, 정비석) > 유씨(2명, 4.8% : 유치진, 유진오), 조씨(2명, 4.8% : 조용만, 조연현), 함씨(2명, 4.8% : 함세덕, 함대훈)> 각 1명(2.4%) : 주씨(주요한), 채씨(채만식), 송씨(송영), 홍씨(홍효민) 장씨(장혁주), 백씨(백철), 모씨(모윤숙), 임씨( 임학수), 노씨(노천명), 서씨(서정주), 곽씨(곽종원) -> 당시 성씨 인구비례 됨, 약간 종씨영향 가능성. |
출신 지역 (다순, 출생 순) |
서울(최남선, 박영희, 송영, 유진오, 조용만, 정인택, 박태원 : 7명) / 평안(평양(김동인, 주요한), 정주(김억, 이광수, 이석훈), 위주(정비석), 안주(백철) : 7명)) / 영남(부산(김소운), 통영(유치진), 대구(장혁주, 김문집), 고령(곽종원), 울산(정인섭), 함안(조연현) : 7명)) > 함경(경성(김동환, 김종한), 원산(모윤숙), 북청(이찬), 단천(최정희), 명천(이헌구) : 6명)) > 호남(전주(김해강), 옥구(채만식), 고창(서정주), 순천(임학수) / 4명)) / 경인(안양(이서구), 연천(김상용, 홍효민), 인천(함세득) : 4명)) > 충청(청원(김기진), 음성(이무영, 김용제) : 3명)) / 황해(해주(최재서), 노천명(장연), 송화(함대윤) : 3명)) / 강원 제주(0명) / 불분명(박영호) -> 당시 지역 인구비례 됨, 지역 고향선배의 영향 가능, 의형제 관계 맺었을 것임. |
출신 생활 |
고아(이광수), 초기부유(김동인(1천석, 평양 400평 저택), 김동환), 여자관계복잡(김동인 : 기생들과 특급호텔 이용해 호화로운 생활, 일본 산보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들락거렸음), 말기 가난으로 처참(김동인) |
사망 |
40년대 2명(김종한(44), 함대훈(49)) / 50년대 8명(50년(이석훈, 함세덕, 이광수, 채만식), 51년(김상용, 김동인), 57년(노천명, 최남선)) / 60년대 2명(60년(이무영), 64년(최재서)) / 70년대 4명(74년(유치진), 75년(홍효민), 78년(송영), 79년(주요한)) / 80년대 10명(80년(김소운), 81년(이서구, 조연현), 83년(이헌구, 정인섭), 85년(김기진, 백철), 86년(박태원), 87년(김해강, 유진오)) / 90년대 6명(90년(모윤숙, 최정희), 91년(정비석), 94년(김용제), 95년(정인택, 조용만), 98년(장혁주)) / 2000년대1명 (2000년(서정주) / 불분명(김억, 김동환, 박영희, 김문집, 정인택, 이찬, 임학수, 곽종원, 박영호 : 8명)-> 조문애도 했을 것임) |
수명 |
20대(29세(김종한) / 요절1명) / 40대 5명(43세(이석훈), 44세(함대훈), 45세(함세덕), 47세(노천명), 49세(채만식)) / 50대 5명(50세(김상용), 52세(김동인), 53세(이무영), 57세(최재서), 59세(이광수)) / 60대 2명(62세(조연현), 68세(최남선)) / 70대 8명(70세(유치진), 72세(홍효민), 74세(김소운), 76세(박태원, 송영), 78세(백철), 79세(이헌구, 정인섭)) / 80대 11명(80세(주요한), 81세(정비석, 모윤숙), 82세(유진오), 83세(김기진, 이서구), 85세(김해강), 86세(김용제, 서정주), 87세(정인택), 89세(최정희)) / 90대 1명(94세(장혁주) / 불분명 9명(김억, 김동환, 박영희, 김문집, 조용만, 이찬, 임학수, 곽종원, 박영호) / -> 문우가 사망했다는 소식 전해 들으면 인생무상을 느꼈을 것임. |
성별 |
남성(39명 : 92.9%), 여성(모윤숙, 노천명, 최정희 : 7.1%) / 남성 절대다수 |
종교 |
천주교(최남선), 기독교(주요한 : 아버지 목사), 동학(이광수), 천도교(김해강) |
c chae soo myung 4
성씨, 출신지역별은 인구와 비례돼 의미가 없지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출신연도는 1900년이 26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망은 80년대(10명)가 가장 많고 다음은 90년대(6명)로 나타났다.
상호간 긴밀한 관계에 있었을 것이므로 사망 시 조문을 했을 것이며 해방 후에도 언제나 협력 체제를 이루었을 것이며 당시 평균수명 50대 초반에 비해 무려 20여년이나 많은 69세로 상당히 장수했는데 80세 이상 12명, 94세가 1명이었다.
이처럼 장수한 원인은 일제 때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고 해방 후 친일과오에 대한 비난과 중압감을 잊은 듯(민감하면 화병으로 사망) 당당하게도 특수층으로 활동한지라 경제적인 풍요와 건강관리, 후배제자들의 보살핌 등 복지문화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주요 친일작가들의 학력, 직업, 관계현황 및 분석
구 분 |
내 용 |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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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
옥성학교(김소운), 고보중퇴(배재고보(송영), 휘문고보(이무영)), 고보졸(인천상업학교 졸(함세덕)) / 대학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서정주) / 대졸(경성제국대(유진오, 최재서, 조용만, 임학수), 혜화전문(조연현), 이화여전(모윤숙, 노천명), 전주사범(김해강), 중앙보육학교(최정희)) / 총 14명 |
유학 |
일본 중퇴 : 동경제국대(김문집), 와세다대(이광수, 최남선, 채만식, 이찬), 와세대고등학원(이석훈), 가와바타미술학교(김동인), 릿교대(김기진) / 졸업 : 와세다대(이헌구, 정인섭), 도쿄고등사범학교 졸(백철), 도쿄세이소쿠영어학교(박영희, 홍효민), 동양대(김동환), 릿쿄오대(김상용, 유치진), 게이오대(김억), 니혼대(정비석, 곽종원, 김종한), 호세이대(박태원), 도쿄외국어대(함대훈) : 22명 / 중국졸(후장대(주요한), 1명) -> 총 23명 / 황성유학생(최남선), 친일파 일진회추천(이광수), 문학수업 차(김소운, 이무영) / 일본 장기체류(김소운 : 46년간(19-65)) | |
전공(대졸 ,중퇴포함) |
문과 6명(김억, 김동환, 김문집, 이석훈, 백철, 곽종원) / 영문과 12명(박영희, 채만식, 김상용, 김기진, 홍효민, 정인섭, 유치진, 최재서, 조용만, 모윤숙, 임학수, 노천명) / 불문과 1명(이헌구) / 노문과 1명(이찬) / 철학과 1명(이광수) / 예술과 1명(김종한) / 미술과 1명(김동인) /사범과 2명(김해강, 최정희) / 지리역사학과 1명(최남선) / 법문학과 1명(유진오) / 불분명 11명(이서구, 주요한, 송영, 장혁주, 김소운, 김용제, 정인택, 박태원, 서정주, 조연현, 박영호) | |
불분 |
5명(이서구, 박영호, 정인택, 김용제, 장혁주) | |
당시직업 |
기자 15명(이광수, 최남선, 김억, 김동환, 채만식, 김기진, 이헌구, 김소운, 백철, 이무영, 이석훈, 조용만, 정인택, 정비석, 노천명) / 방송국 2명(김억, 모윤숙) / 교수 5명(최남선, 김상용, 유진오, 정인섭 최재서) / 교사 5명(김억, 김해강, 장혁주, 모윤숙, 임학수) / 잡지기자 4명(김동한, 김동인, 홍효민, 모윤숙) / 전업작가 4명(박영희, 박태원, 서정주, 조연현) / 극장관련자 6명(이서구, 송영, 유치진, 함대훈, 함세덕, 박영호), 인쇄업 1명(이찬) -> 보이지 않는 규율이 존재했을 것임. | |
인간관계( 친밀, 앙숙) |
고향친구(평양 : 김동인, 주요한 : 라이벌 의식), 부부관계(김동환(2번째)과 최정희), 결혼과 파경(안호상과 모윤숙), 밀월(애정)관계(최정희->김종한, 이효석) |
c chae soo myung 5
학력의 경우 고보에 그친 자는 4명에 그친 반면 나머지는 대학진학(졸업, 중퇴) 특히 일본 유학율이 높아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이과전공은 단 한명도 없고 모두가 문과전공, 직업도 당시 선망의 대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기자, 교수, 교사로서 민족의식에 앞장서야 함에도 친일함으로서 참지식인이 아닌 민족을 저해시킨 지식나부랭이 보다 못한 역적 이였다.
주요 친일작가들의 등단현황 및 분석(*는 중복 우선순위)
구 분 |
내 용(연도) | |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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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
동아일보(김해강(27),희곡현상모집:이무영:31,정비석*(36),서정주(36)),조선일 보(정비석(37),김종한(37),함세덕(40)) |
발표 |
황성신문(최남선(01)), 동아일보(김기진(20),김상용(30),임학수(31)) | |
잡지
|
당선 |
조선문단(박태원(26)), 개조(장혁주(32)) |
발표 |
소년(이광수:08), 학지광(김억:14), 금성(김동환(양주동 추천:24), 조선문단(채만식, 김해강*:25), 개벽(송영:25), 경성방송국 연예주임(이서구:25), ?(김소운:26), 조선지광(유진오:27), 신시단(이찬:28), 제3전선 발행(홍효민:30), 비판(조용만:30), 문장(정인택:30), 문예월간(유치진:31), 개벽 편집장(백철:31), 나프(김문집,김용제:31), 신흥(최재서:31), 신동아(노천명:32),이석훈(33)), 삼천리(최정희:33), 조선문학(함세덕*:36), 만세일보(곽종원:38) | |
동인 지 |
창조(주요한,김동인:18), 장미촌(박영희:21), 해외문학(함대훈,이헌구:27), 색동회(정인섭:22), 시원(모윤숙(35), 조연현(42)), | |
연도
|
00년대 2명(01(최남선), 08(이광수) / 10년대 3명(14(김억), 18(주요한,김동인) / 20년대 14명(20(김기진), 21(박영희), 22(정인섭), 24(김동환), 25(채만식,김해강,송영,이서구), 김26(김소운,박태원), 27(이헌구,함대훈,유진오), 28(이찬) / 30년대 21명(30(김상용,홍효민,조용만,정인택,), 31(유치진,김문집,백철,최재서,이무영,김용제,임학수), 32(장혁주,노천명), 33(이석훈,최정희), 35 (모윤숙), 36(서정주,함세덕,정비석) 37(김종한), 38(곽종원) / 40년대 1(42 (조연현)) / 불분명(박영호) | |
최초(최남선(01), 최후(조연현(42) / 30년대 21명(31년 7명), 20년대 14명 / 평균 1927년 2월 초중순 | ||
등단 (연령) |
이광수(17), 최남선(12), 김억(22), 이서구(27), 김동인(19), 주요한(19), 김동환(24), 박영희(21), 채만식(24), 김상용(29), 김해강(23), 송영(23), 김기진(28), 홍효민(27), 정인섭(18), 이헌구(28), 장혁주(28), 유치진(27), 유진오(22), 함대훈(?), 김소운(20), 김문집(24), 이무영(24), 이석훈(26), 최재서(24), 백철(24), 조용만(22), 김용제(23), 정인택(22), 박태원(18), 이찬(19), 모윤숙(26), 정비석(26), 임학수(27), 노천명(22), 최정희(22), 서정주(22), 곽종원(24), 김종한(22), 함세덕(21), 조연현(23), 박영호(?) | |
12세 1명(최남선), 17세 1명(이광수), 18세 2명(정인섭,박태원), 19세 3명(김동인,주요한,이찬), 20세 1명(김소운), 21세 2명(박영희,함세덕), 22세8명(김억,유진오,조용만,정인택,노천명,최정희,서정주,김종한), 23세 4명(김해강,송영,김용제,조연현), 24세 7명(김동환,채만식,김문집,이무영,최재서,백철,곽종원), 26세 3명(이석훈,모윤숙,정비석), 27세 4명(이서구,홍효민,유치진,임학수), 28세 3명(김기진,이헌구,장혁주), 29세 1명(김상용), 불분명 2명(함대훈,박영호) / 22세(8명)>24세(7명)>27세와 23세(각 4명)>19세와 26세 및 28세(각 3명)>18세와 21세(각 2명)>각1명(12세,17세,20세,29세) / 최연소(12세:최남선), 최장자(29세:김상용) / 평균 23세 |
c chae soo myung 6
1901년 최남선이 황성신문에 발표해 등단한 이래 현상응모에 당선된 경우는 8명에 불과한데 정비석의 경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연이어 당선되는 영광을 얻었으며 대부분 다양한 문예지와 동인지의 발간을 통해 발표해 등단했다.
등단 연도별로는 30년대 21명으로(특히 31년이 7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20년대가 14명이며 가장 늦은 조연현은 1942년에 등단했으며 평균적으로 보면 1927년 2월 초중순이고 등단연령은 최연소 12세의 최남선, 최장자 29세의 김상용이고 등단연령은 22세가 가장 많고 다음은 24세였으니 대학재학중이거나 졸업직후였다.
2) 주요 친일작가들의 친일행동과 친일작품분석
구 분 |
내 용(연도) | |
연행, 투옥 후 친일(6) |
최남선(3.1운동 독립선언문 기초, 민족대표), 김동인(출판법(19), 언어실수), 주요한(혁문(19) 돌리다 적발), 이광수(수양동우회사건(37) : 반년만에 병보석 석방), 김용제(프로문화동맹 조선위 동경지부장, 치안유지법 3년 복역), 최정희(조선플로레타리아 예술동맹활동(34), 채만식(붉은독서회 배후조정(38), 경찰연행)) -> 온갖 협박, 고문, 회유에 의해 친일로 급회전 가능 / 1기(3.1운동직후), 2기(30년대 중후반)) | |
최악친일(징 병)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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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는 국민징용령을 선포(39)해 조선 인력을 전쟁에 동원키 위한 체제구축(대륙전진병참기지화 정책, 군수공업화 뒷받침/ 군수공장, 탄광, 비행장건설 등 강제노역), 태평양전쟁(41-45)으로 진주만 공격해 강제징병제 실시(43 / 지원병 약 2만명), 태평양전선 확대로 병력소모, 조선청년 강제군인동원 -> 대부분 전사 | |
친일 내용 |
유형 |
천황충성, 일제 찬양 / 행동, 문학작품, 관계기관 근무, 사설연설, 헌금기부, 기타 |
징용 학병 |
축하행사 참석(김동환, 김상용, 김용제, 노천명, 김종한), 시찰보고단(김동인, 장혁주, 이무영, 노천명), 황군위문단(임학수) | |
문협 활동 |
조선문인언론보국회(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동환, 박영희, 채만식, 김기진, 홍효민, 유치진, 이헌구, 최재서, 백철, 김용제, 정인택, 임학수, 정비석, 함세덕, 최재서) / 조선문인협회(이광수, 이헌구, 정인섭, 함대훈, 김문집, 박태원, 임학수, 함세덕) / 일본문인협회(모윤숙) | |
발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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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지 |
매일신보(총독부 기관지), 국민문학(친일문학지), 동광지광, 인문평론, 동광, 신시대, 조광 -> 친일(신문, 잡지) |
언론 |
친일문학지 관계(김종한, 서정주(국민문학, 국민시가)), 매일신보(논설위원 : 조용만) |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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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만행 전쟁과 비례해 점차 광적으로 변신해 해방된 그날 까지 연속됨. |
몇 명은 일제만행에 저항하다 투옥(1기(3.1운동직후), 2기(30년대 중후반))되 회유, 협박을 극복하지 못해 친일파로 돌아 선반면에 대부분 인맥관계에 의해 자진해서 친일한 친일파 조선문인언론보국회, 조선문인협회소속 이었기에 그 내용은 일본천황충성과 일제찬양으로 징용축하행사, 시찰보고 등이었다.
주요 발표지는 친일관련지였던 매일신보와 국민문학가 가장 많았고 동광지광, 인문평론, 동광, 신시대, 조광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를 위해 직접 참여하는 등 친일행동에 대한 긴밀하고 일사분란한 동조체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3) 주요 친일작가의 해방 후 활동분석
구 분 |
내 용 | ||
직업 |
정관계 (5) |
주요한(민의원, 부흥부장관, 상공부장관, 대한일보 사장, 대한해운공사 사장), 이헌구(공보처 차관), 유진오(당 대표, 국회의원, 야당 대통령후보), 모윤숙(국회의원), 이서구(공무원) / 군인 : 이석훈(해군정훈장교) -> 친일청산하지 않은 산물. | |
교수 (14) |
정인섭(중앙대, 한국외국어대), 유치진(동국대), 이헌구(이화여대), 유진오(고려대), 함대훈(국립경찰전문학교장), 백철(서울대, 중앙대, 신구대), 이무영(단국대), 최재서(연세대, 한양대), 조용만(고려대), 노천명(서라벌예대, 이화여대출강), 임학수(이화여대, 고려대), 곽종원(숙명여대), 서정주(동국대), 조연현(동국대, 한양대) -> 학자부재와 작품성에 치우쳐 민족사상성에 악영향. | ||
문협대 표, 전 업작가 |
문협 이사장(조연현(11, 14, 15대), 서정주(13대)) / 전업작가(김동인, 채만식(낙향), 홍효민, 김소운(이승만정권 비방)) -> 여과장치(친일청산)가 전무했던 관계로 작품성으로 국민작가로 대우받음. | ||
기자 (3) |
김기진(경향신문 주필), 노천명(서울, 부녀), 이서구 | ||
동향 |
좌파성향(2) |
해방후 우파와 좌파로 분열시 좌파계열의 조선문학술동맹 참여(노천명, 이찬)-> 추후 우파로 전향. | |
반민투 |
반민족 특위 회부 후 병보석 석방(김동한(1946년 사망), 이광수(월북)), 기타 반민족 특위로부터 어떤 특별한 조치와 자기반성 및 참회가 전무. | ||
월북 (12) |
해방후 월북(송영, 이찬, 함세덕,), 6.25 때 납북(이광수, 김억, 김동환, 박영희, 김상용, 이석훈, 박태원, 임학수 / 6.25 때 월북(정인택)) -> 상호 이해관계로 영향가능. |
14명(33.3%) 남한 외면(자기중심적 행위) | |
일본귀화(2) |
영구귀화(장혁주(조총련활동), 김문집) -> 완전친일(민족을 완전 외면했음), 김소운(이승만정권 비판(52)후 13년 만에 귀국(65)해 46년간 일본체류(19-65) | ||
훈포장 |
훈포장(일본귀화자와 월북자를 제외하고는 이런 저런 이유로 문인, 문협 등의 추천과 정관계의 로비를 통해 대부분 훈포장을 받음, 기록미흡), 3.1문화상(조연현, 모윤숙, 백철, 최정희) -> 작품성 하나만으로 훈포장(업적으로 명예존중) 받은 것은 민족국가 정체성과 교육상 심도 있는 조사연구가 필요함. |
여과 없이 너무 지나치면 친일행위를 인정, 찬양한 꼴이 됨(작품성, 친일행위실체를 밝혀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함. | |
문학상, 기념 비, 기념관 |
이런저런 이유(후배작가, 지자체 홍보용, 지역정치가)로 문학상제정과 기념비가 세워진 경우가 많고 기념관 건립도 상당수임 -> 남용에 대한 의식전환 필요. |
이들은 해방 후 어떠한 속죄와 참회도 없이 최고 엘리트직업이라 할 수 있는 대학교수가 가장 많고 장차관, 국회의원 특히 대통령후보도 있었으며 문협 이사장 및 기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때문에 어떤 한 사죄도 없이 과대포장되어 이 나라, 이민족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학생, 중고생, 국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쳐 그 여파가 지금까지 지속되어오고 있다는 점은 국가와 민족의 불행이자 심히 유감스런 일이다.
또한 일제시대 민족발전을 저해했으면서도 속죄하기는 커녕 해방 후에도 오직 자신만의 입지확보를 위해 좌파성향을 지니다가 월북한자가 무려 12명이며 무엇이 두려웠던지 영원히 민족을 등지고 아예 일본에 귀화한 자도 2명이나 된다는 점은 참담할 뿐이다.
2> 주요 친일작가 작품운용의 문제점과 사회책임성
1) 주요 친일작가 작품활용의 문제점
과거 십 수 년 전만 해도 친일작가들이 근대문학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위업과 작품성만으로 아무런 여과 없이 중고등 국어 교과서에 수록 편수가 많아 맹목적으로 찬양 추종하였다.
그러나 최근 그 수가 적으나 여전히 남아있어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있어 어떤 올바른 비판(작품수록의 의의와 진실성을 위해 최소한의 비판은 필요) 없이 수록되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문학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영햐을 고려해 교과편성 및 작품선정이 요구된다.
고교 교과서에 실린 친일, 항일작가작품 현황
구 분 |
내 용 |
편 수 | ||
친일 작품 |
주요친일 작가 |
시(2 : 최남선(해외계서 소년에게), 서정주(신부)) / 수필(2 : 정비석(산정무한), 김소운(가난한 날의 행복) / 소설(4 :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채만식(미스터 방), 함세득(동승) |
8편 |
11편 |
친일작가 |
이인직(혈의누), 홍난파(금강에 살으리랏다 : 음악 작곡) |
2편 | ||
일본근대 국민작가 |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경수필 <유리창 안에서(이 세상 사 람들이 죽어도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이 담긴 인간 의 삶의 본능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인식)> |
1편 | ||
항일 작품 |
특수작품 |
독립선언서(본문 최남선(친일), 부록 한용운) |
1편 | |
항일작가 |
이육사(절정, 광야), 윤동주(참회록), 한용운(님의 침묵) |
4편 |
또한 사상계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제1회(1955)과 그 심사위원 9명 가운데 6명(김팔봉, 백철, 최정희, 이무영, 정비석, 이헌구)이 친일문인)은 원죄이며 42명 가운데 6명(동인(조선일보), 조연현(한국문협), 육당시조, 소천비평문, 이무영, 미당(중앙일보)) 이외에 팔봉비평(한국일보)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시상되고 있다.
대개 친일문인출신의 문학상은 수상자와 심사위원에게 친일행적에 관대한 입장을 취하려는`묵시적인 유도가 내포될 수밖에 없으며 권위 있는 중앙 일간지들이 운영하다보니 경쟁적으로 수상하려 는 점은 아직 역사적인 의식문제를 뒤로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2) 주요 친일작가들의 일관된 변명
친일부역문인들은 한결같이 자기방어논리 중의 하나였다고 변명하였다.
서정주는 "나는 그때 일본이 200년은 갈 줄 알았다."(주류문학자들은 '진솔한 자기고백이다. 그 땐 다 그렇게 생각했다.')라는 말로 치부하였고 문학상제정과 함께 사후 고향 전북 고창 길마재에 국화향(억 송이 식재)으로 파묻힌 반면에 전북 군산옥구의 채만식의 문학상제정에 지역에서 반대하는 괴이한 현상은 시대상황과 집단적 힘에 의한 감성논리가 여전히 팽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채만식은 <민족의 죄인>에서 신문사를 함께 다녔지만 친일경력이 없는 친구 윤이 해방 후 찾아와 “신문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는 것은 친일행위.”라고 비난하자“먹고 살기 위한 일이다. 이마져도 죄가 된다면 일제하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본에 세금을 바친 일도 결국 친일죄가 된다. 검사의 논고가 옳고 변호사의 주장은 아무 소용도 없다. 나는 병든 사람처럼 꼬박 보름동안 누워 있다가 다시 시골로 내려갈 생각을 한다.”며 지사가 되지 못하고 쓰러짐으로서 민족의 죄인이 된 과거행적을 스스로 증언했다.
이처럼 친일문인들은 떳떳하게 참외하지 않고 보호해주기를 바라며 끝내 회피하다 모두 사망한데 반해 이항녕교수(홍익대)의 <참회록(20대 때 군수활동에 대한 자기반성)>은 오히려 수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자아냈다.
3) 문인과 문학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책임
원래 문학(文學)이란 미시적으로는 의도자의 정서와 사상을 상상(想像)의 힘을 빌어서 언어 또는 문자로서 표현한 창작예술작품을 의미한다.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글에 관련된 학문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모든 학문과 생활 및 인류문화의 기초가 되므로 문인은 항시 진지하게 토론하고 고민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참다운 예술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따라서 단순한 언어기교는 문학시늉에 불과하므로 시대정신 아래 심오한 사상아래 독창성을 통한 생명수인 동시에 시대상황이 어려수록 구원의 메시지로서 이상세계의 지표를 제시해 건전한 잠재에너지를 분출시켜 건전한 메시지가 담겨 부흥시키는 강인한 정신질량의 법칙이자 음지환경 돌파론의 근원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민족발전의 저해가 되는 매국활동을 하였다면 아무리 작품이 훌륭했다고 해도 그 근본인 작가사상이 불건전했으므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국가민족의 존립과 정체성을 확립시켜야 하나 이를 무시한다면 분명 국가민족을 뿌리 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자 행위이다.
특히 21세기 글로벌시대의 작가는 사상과 문학이론을 바탕으로 사회현상에 의한 독자적인 컨셉과 구성 및 언어표현은 예술 혼이어야 하므로 더욱 혹독한 자기성찰을 통해 타켓 고객감동을 전달함으로서 생명력을 갖는 글로벌사상가로서 특정분야 미디어전문가로의 변신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저변에 깔린 민족의식아래 투철한 인생관, 사상적 문학관, 도덕성, 자질, 창의력, 독자층확보, 파급효과, 등 건전한 정신에 건전한 언어표출을 통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최고지성인이기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인이 되어야 한다.
5. 저항문인 활동상
1) 독립투사 문인 이육사(17번 투옥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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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동주,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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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맺는 말
1> 주요 친일작가작품 조사분석 연구결과
첫째, 이들은 당대 상상도 못할 최고의 교육을 받았는데 몇 명만 제외하고는 국내 대학 또는 일본유학(대졸, 중퇴)을 하는 외형상 선택받은 최고엘리트로 성별, 지역별로 보면 인구비례적이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부유한지라 여유롭고 풍유한 세월을 보내면서 문학을 하였고 또한 조상의 경제와 직위를 지키고 오직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채 친일에 앞장섰으며 일제 또한 지식인들이었기에 활용가치가 높은 등 상호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둘째, 당대 최고엘리트(지덕, 직위, 경제)였던 문인들은 국가민족이 어려울 때 당연히 독립투쟁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친일행동과 친일작품발표 등 반민족적 만행을 저지르는데 앞장섰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친일의 길은 악성분자도 있었으나 몇 명은 저항하다가 투옥된 후 온갖 유혹과 협박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눈멀어 정신분열 광란적으로 일황을 위해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무지한 조선청년들을 선동해 전쟁터로 내모는데 앞장서 그들을 따랐던 수많은 동포들에게 고통을 준 것은 어떤 이유로든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식인으로서의 번뇌 속에 자신과 가족의 목숨보다도 조국광복에 대한 간절한 희구와 현실적 절망을 품고 온갖 타협과 협박에도 일제에 저항했던 윤동주(29세로 옥사), 이육사(41세로 옥사), 이상(출옥 후 27세로 사망),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민족문학을 굳게 지켜 독립운동) 등 민족저항문인(강한 신념과 삶에 대한 자세는 분명 독립운동가로서 예우와 존경 및 정신 이어나가야 함)들과는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셋째, 등단연도는 30년대가 21명(그중 31년 7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20년대가 14명이며 평균 1927년 2월 초중순이고 최연소는 12세의 최남선, 최장자는 29세의 김상용이고 연령분포는 22세 8명, 24세 7명으로 평균 23세였다는 점에서 대학재핛시절이나 졸업직후에 등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넷째, 3.1운동직후(친일 1기)에 시작된 친일은 중일전쟁(37)이후(친일 2기) 국민징용령(39), 태평양전쟁(41-45)을 일으켜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강제징병제(43) 등 집중적으로 만행을 저지르자 이에 적극 동조함으로서 정신분열 광란적으로 전쟁강도와 정비례했다.
매국의 주역 이완용의 비서로서 역할을 하였던 문인 이인직 등 친일분자와 총독부의 끈질긴 유혹과 압력아래 후배문인들이 저항하다 추후에 또는 순수하게 이를 따랐으며 전쟁범위와 깊이에 비례해 친일선동적인 행동과 문학에 매달려 점점 이성을 잃고 광란적인 결과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해 더욱더 높은 직위와 많은 혜택을 누리려 했다.
다섯째, 이들은 해방이 후에도 친일에 대한 어떠한 반성과 청산 없는 상태에서 과오를 숨긴 채 최고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아 막대한 영향은 물론 작품성 하나만으로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돼 존경을 받는 한편 일부 후손들은 그 후광아래 살고 있다.
반민특위가 설치되었지만 유명무실했기에 고스란히 명성과 위업을 이어 최고엘리트 지성이라는 교수, 정관계, 기자, 문협 이사장 등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결과 의식없는 자들 또한 개인의 성취달성을 위해 그들을 추종하게 된 결과 교육부재 및 민족정체성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다.
여섯째, 해방 후 혼란기를 틈타 또다시 이데오르기 문제로 갈등하다 자진 월북했거나 완전친일을 위해 일본에 귀화한 경우도 있었고 6.25때 납북 등 월북한 문인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은 과거 친일에 대한 반성없이 출세에 눈멀어 사상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증거이다.
일곱째, 당대 평균수명이 50대 초반인데 반해 이들은 20세 정도나 많은 평균 69세로서 대단히 장수했다.
이는 아마도 온갖 친일특혜 속에 살았고 해방 후에도 기득권세력으로 자리 잡아 명에, 돈, 권력을 누려 보호막과 비난과 속죄 없이 정신적인 편안과 건강관리기에 탁월한지라 29세에 요절한 김종환을 제외한 평균수명 40대가 5명인데 반해 50대 5명, 60대 2명, 70대 8명, 80대 11명 심지어 장혁주는 94세까지 살았다.
여덟째, 이들은 월북과 일본귀화 문인을 제외한 대부분 문인들이 이런저런 이유와 이해관계에 얽힌 인맥을 통해 각종 훈포장을 수상해 친일에 대한 죄를 희석시켰다.
업적을 높이 평가해 정신을 기리는 훈포장에 대한 지나친 남발은 결국 이에 대한 인식저하를 가져왔기에 엄격한 기준과 수여 등 학술조사연구는 물론 때로는 공청회 및 인터넷공개가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다.
아홉째, 구체적인 친일행위(선동자, 극렬분자, 연락병, 활동성향) 등에 대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며 이들은 긴밀히 교류한 결과 선배와(고향, 문학) 영향력 행사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일제때나 해방후에도 상호간 협력과 보호를 위해 긴밀한 연락하에 노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열 번째, 국회에서‘반민족행위 규정법’이 통과됨에 따라 2008년 중반까지 대혼란(가해자와 피해자, 사건관련자, 후손(재산압류, 소송재판)과 애제자들의 불똥 튈 전망, 정치사회적 충격과 혼란(훈포장 박탈, 기념비와 가옥파괴, 학회세미나 및 연구논문비판적)에 따른 문학계에서도 파장(조사협력, 친일행위 실체, 작가와 문학작품 재평가, 파벌갈등, 과거 칭송평론 삭제)이 예상된다.
2> 주요 친일작가작품 종합진단평가 및 발전방안
첫째, 선배문인들이 저지른 범죄는 어떠한 사죄도 없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후배문인들이 지금이라도 국민들과 독자들에게 속죄하는 의미에서 성명서채택에 따른 낭독을 할 필요성이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일제강점기에 오히려 친일앞잡이로서 반민족이고 반지성적인 친일행위는 예술성과 민족역사성까지도 팔아먹는 역사적 과오로서 냉혹한 비판을 우리 후배민인들이 감내해 민족과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하나 만약 그냥 치부, 비호하며 넘어간다면 이로 인해 문학은 더욱더 외면당해 설자리를 완전 잃게 될 것이라는 추정도 해본다.
둘째, 씻을 수 없는 과오인 친일역사와 친일문학에 대해 해방 후에도 자기반성과 청산이 없었기에 지금이라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데이터에(시기, 편수, 강도, 발표지) 의한 친일문학청산이 필요하다.
이는 목숨을 바쳐 옥사한 저항문인에 대한 예우이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독자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한편 친일문인들의 과오적인 교훈이자 민족정체성을 재확립하는 한편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위한 비판적 산교육이며 미래를 향한 민족의 비전이기도 하다.
셋째, 친일행위는 역사와 문학의 취지와 의무 및 책임을 역행한 치명적인 과오로서 친일에 대한 숨김없는 실체를 보여주는 자기반성차원에서 친일작가 친일문학백서 발간이 필요하다.
특히 독자들의 의식수준향상으로 친일문학에 대한 가중되는 비판과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 후배문인들의 창작부재로 등으로 인해 침체된 문학에서 벗어나 한 때 융성했던 만큼 제2의 문학르네상스로 거듭나는 유일한 방법의 하나이다.
넷째, 지금 와서 친일문학을 무조건적으로 터부하거나 보복한다면 또 다른 갈등과 보복을 낳으므로 독자들로부터 용서를 구해 사망한 친일문인을 잊지 말되 관용으로 용서해 화해무드를 조성함으로서 역사적 교훈으로 삼는 성숙된 면을 보여주어야 한다.
친일작가의 모든 작품은 무조건적으로 모두 외면해야 하고 항일저항문학은 작품성을 무시한 채 무조건 추켜세우고 존경해야 한다는 감성논리가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독일 나치에 4년간 지배받다 해방(1945)이 되자 좌우합작으로 민족국가를 수립 후 민족정기를 위해 반민족행위자 폴 트뷔에(당 79세)를 체포하여 법정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하는 등 철저히 숙청시켰으나 스페인의 경우 프랑코체제의 핵심인물들을 비판했으면서도 종교를 앞세워 화해를 모색했다.
다섯째,‘반민족행위 규정법’에 의한 앞으로 4년여간 친일문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도이루어 질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 숨김없이 적극적인 협조를(자료, 증언) 통해 진실을 가리는 한편 이를 기회로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작가의식을 고취시키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시대의 지식인 등 지도자의 언행은 파장의 여파가 깊고 오래가므로 국가 민족적 어려움이 깊을수록 지혜를 발휘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자기희생을 통한 대국적이며 민족의 에너지를 극대화시켜 슬기롭게 극복하고 도약을 위한 분수처럼 용솟음이 칠 수 있도록 선구자역할을 해야 한다.
일곱째, 시대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문학의 새로운 메카니즘(Mechanism : 구조)변혁과 패러다임(Paradigm : 모범)아래 시너지(Synergy : 협력상승작용)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연구노력이 절실하다.
특히 21세기 국제정세가 정보개방화물결로 기술경제논리가 강하다보니 순수문학예술주의가 자지를 잃어 마케팅경영과 융합한 문화콘텐츠로 급회전하고 있어 각종 파괴현상(시공간, 사고, 문화)으로 간접적인 식민지(경제, 기술, 문화)시대로 변신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순기능을 최대한 살리되 역기능대비가 요구된다.
여덟째, 지구촌시대에 한국적 문학을 육성시킬 수 있는 민족정체성을 바탕으로 마케팅기법을 도입해 글로벌 수요자인 타켓(target : 목표) 고객감동을 통해 우리의 정신과 사상 및 문화를 알리는데 기여하는 한편 거시적으로는 노벨문학상의 기대와 함께 풍성한 문학콘텐츠(Litera
ture Content : 문학만족내용)를 조성되기 위한 연구방법론이 필요하다.
아홉째, 언어묘사력에 머물지 말고 전체를 아우르고 문화의 물결을 리더하기 위해서는 과거(친일문인, 친일문학)를 살피고 현재를 투시하고 포착하여 미래 나아갈 지표를 명쾌하게 제시하는 문학 로드맵(Road Map : 2, 30년 후의 안내지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한동안 열병처럼 부각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 영역파괴)의 세계를 넘어 지구촌 글로벌시대엔 넓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정보화물결의 변화를 리더하고 거봉의 작가의 사상에서 나오는 시대적 산물이 되기 위한 연구노력이 절실하다.
종합하건데 친일문제를 거울삼아 민족의 정체성아래 문학마케팅기법을 도입한 문화창달의 초석이 되기 위해 시대정신의 근원지로서 문화생활의 용광로로 거듭 태어나도록 문학인들의 모든 에너지를 극대화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