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종주 13일차 (2023년 9월 22일, 금)
1) 코스 : 분지리~사다리재~곰틀봉~이만봉~지름티재~(희양산 왕복)~구왕봉~
주치봉~은티재~은티마을
2) 거리 : 약 13.0km (백두대간 구간 : 8.4km)
3) 산행 : 09:00 ~ 17:00 (8시간)
4) 일정 : 06:30 동서울터미널 => 문경 => 분지리 (고속버스와 택시)
09:00 분지리(안말) => 은티마을 (13.0km, 희양산 왕복 0.4km 포함)
18:00 은티마을 => 괴산 => 서울(동서울터미널, 22:00 도착)
9월 23일(토), 백두대간 종주 13회차 일정이 계획되어 있지만, 첫 손녀 돌잔치라 함께 하지 못하는 일정입니다. 그렇다고 13회차를 건너뛰고 14회차 산행기를 쓰려고 하니 한 곳이 텅 빈 느낌. 그리하여 13회차 코스를 단독 산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무모한 짓인데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특별한 의미 부여보단 그냥 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번 단독 산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이라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행히 동서울에서 6시 30분에 문경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문경에서 들머리인 분지리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 도착하니 8시 40분, 9시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 분지리(안말)에서 사다리재까지 (1.9km)
이곳 충북 괴산엔 어제까지 많은 비가 내려 계곡 물소리가 요란합니다. 산행 앱을 켜고 이만봉이 표시되어 푯말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올랐습니다. 정비된 계곡 100여 미터 끝 지점에서 산길로 올라섭니다. 산길은 미끄럽고 풀과 잎엔 비를 머금고 있어 스칠 때마다 적는 느낌입니다. 이곳은 백두대간 산군들이 아니면 찾지 않는 곳이라 잘 닦여 있는 도심의 산길과는 사뭇 다릅니다. 엊그제 많은 비가 내린 탓에 산길인지 물길인지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자치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꾼들이 매어놓은 띠지를 유심히 살피고 또한 산행 앱을 확인하며 오르니 진행속도가 더딥니다.
이곳을 초행길을 혼자 산행하는 것이 다소 위험한 점도 있으나 오롯이 홀로 걷는 매력(?)도 있는 듯합니다. 더욱이 이곳의 숲은 아주 건강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지리(안말)에서 사다리재(해발 855m)까지 1.9km, 표고차는 약 600m, 정비되지 않은 산길과 정상부근의 너들길이라 약 1시간 소요되었습니다. 특히, 푸른 돌에는 이끼가 있어 더더욱 조심해서 올라야만 했습니다.
2. 사다리재에서 곰틀봉 그리고 이만봉(990m)까지 (1.2km)
사다리재 푯말이 보입니다. 우측으로는 백화산, 좌측으로는 이만봉 1.2km, 옛사람들이 이곳을 ‘사다리재’라고 부른 이유는 정확히 확인할 순 없지만 높은 곳을 오를 때 필요한 것이 ‘사다리’였기에 그렇게 불렀던 게 아닌지 그냥 상상하며 다시 이만봉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곰틀봉, 옛날 ‘곰을 잡기 위해 틀을 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표지석은 없으나 산꾼들은 이곳에 띠지를 걸어 표시하고 있습니다. 대간 길을 기준으로 남쪽인 문경지역은 맑은 날씨지만, 북쪽 괴산지역은 아직 운무가 가득합니다.
북쪽의 운무는 마루금을 힘겹게 넘어 남쪽의 푸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자연의 현상을 보며 걷고 있노라니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인생이란 어쩌면 아침 안개와 같은 게 아닐는지.
3. 이만봉에서 구왕봉까지 (5.2km, 희양산 왕복 0.4km 포함)
이만봉 990m는 대간 길에서 약 300m 벗어난 희상산(999m) 보단 9m가 낮습니다만, 오늘 백두대간 길에선 최고봉으로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큰 표지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산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 호가 피난 온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만호라는 벼슬을 가진 이씨가 이 산에 들어와 살았다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다.
이만봉 옆에 누군가 세워놓은 돌탑(?)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으로 잠시 피로를 풀고는 이내 희양산으로 향합니다. 그동안 괴산의 운무도 걷혀 맑고 푸른 산들이 겹겹이 서 있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반도 70%가 산이라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약 20분을 진행하다 전망대에 서니 도드라지게 산이 보입니다. 직감으로 희양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흰 암봉의 위용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이만봉에서 963봉까지는 완만한 코스, 곳곳에 산꾼들이 세워놓고 안전과 소원을 빌었을 것 같은 돌탑들이 보입니다. 이후 배너미평전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입니다. 도착하니 시루봉과 구왕봉 갈림길 푯말이 서 있고, 은티마을까지는 2.4km입니다. 넓은 평지라 곳곳에 작은 물길이 있고, 요란한 계곡 물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은티마을로 흘러가는 물길인 듯합니다. 분지리에서 출발하지 2시간 50분, 약 5.1km, 계속해서 대간 길을 따라 구왕봉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약 6km, 출발 3시 반이 지난 12시 30분, 너럭바위에 앉아 새벽 5시에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었습니다. 지난밤에 만든 연근 모양이 이쁩니다. 가을 햇살 아래 점심을 먹고 챙겨온 바나나 1개로 마무리. 평소 배낭보단 한결 가볍습니다.
구왕봉 방향으로 진행하니 희양산성이 나타납니다. 능선을 따라 축성된 것으로.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로 신라 경순왕 3(929년)에 쌓았다고 합니다. 이곳 문을 통하면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푯말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구왕산 갈림길까지는 800m, 희양산 정상까지는 대간 길에서 약 200m 벗어난 곳입니다.
구왕산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오르면 희양산이지만 표지판은 없습니다. 약 200m 암봉길, 좌측은 그야말로 낭떠러지 그래서 절경은 과히 아름답습니다. 정상에 도착하니 백두대간 희양산 999m이라 새겨 놓은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추락 위험을 알리는 동남쪽 경계선에서 바라본 전망은 산꾼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양산(曦陽山)
‘햇빛을 받은 봉우리는 환하게 빛난다.’란 의미라 합니다. 옛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증대사는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려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되어있어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했다.’ 하여 감탄한 산이라고 전합니다.
태백산을 일으켰던 백두대간 줄기는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이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산세를 이뤄 놓았고, 이들 산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 그래서 그런지 갈림길에서 구왕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직벽 구간으로 ‘주의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노약자나 체력이 약한 등산객은 안전을 위해 되돌아가라.’
지름티재까지 1.3km, 표고차는 약 300m, 줄곧 내리막으로, 직벽 구간이 많아 여러 가닥으로 로프로 이어지니 유격 훈련을 방불케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오니 구왕봉 0.5km는 로프를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나중에 산행 대장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이곳 코스가 대간 길 중에 힘든 구간에 속한다고 합니다.
4. 구왕봉에서 주치봉 그리고 은티재까지 (2.4km)
구왕봉(九王峰), 해발 879m로 암봉임에도 동쪽의 큰 산인 희양산의 위용에 눌러진 산입니다. 이곳은 지증대사가 봉암사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메울 때 대사가 신통력을 이용하여 못에 살고 있던 용을 구룡봉으로 쫓았는데 그곳이 이곳 구왕봉이라 합니다. 봉암사에서는 이 산을 날개봉이란 창건 설화가 전해져 오며 매년 소금단지를 묻어 기를 눌러준다고 합니다.
구왕봉에 도착하니 벌써 3시가 지나갑니다. 출발 6시간, 오르고 내림이 반복된 구간을 지나니 조금은 수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르고 내림이 있으니 ‘산’이고 ‘대간 길’이니 어찌 피하길 바라겠는지요. 이 코스를 지났을 산꾼들이 아마 이곳에 당도하면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는지.
구왕봉에서 호리골재까지 1.6km, 다시 주치봉까지 약 15분가량 올라서면 주치봉이라는 안내판이 나옵니다. 이곳부터 은티재까지는 내리막길로 10여 분 소요됩니다.
5. 은티재 그리고 은티마을까지 (2.3km)
이번 13회차 코스에서 들머리인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3~4곳 됩니다. 어쩌면 백두대간이 은티마을을 감싸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분지리에서 이곳 은티재까지 오면서 만난 사람이 3명, 대부분 희양산에서 만난 분들입니다. 평일이라 그렇겠지만, 대간 길은 산꾼들만 걷는 길인 듯합니다. 그래서 산길은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티재에서 마을까지 약 30분, 그렇게 13회차 일정이 무사히 끝나게 되었습니다.
6. 마무리
첫 손녀 돌잔치로 인해 진행하게 된 백두대간 종주 13회차는 홀로 지리산 종주 이후 새로운 경험의 시간인 듯합니다. 총 거리 13.0km, 백두대간 거리 8.4km, 소요시간 8시간. 12회차 동안 거인산악회 21기와 함께 산행해서 좋았고 또한 홀로 산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노력한다면 예기치 못한 기쁨 또한 있다는 믿음.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지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 9월 22일(금)
백두대간 종주 13차 산행 후기.
PS : 사진과 함께 올려진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eric1960/223220326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