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인연, 작연필봉(作緣必逢)이라 했던가?
우리 남성고 30회 친구들이 삶이나 정치의 실상들이 뭔지도 모르던 유신정권시절인 1976년!
하늘을 찌를 듯이 원추형으로 높이 뻗은 가지들을 맘껏 뽐내며 웅혼한 기상으로 서기어린 아름드리 히말라야시다!
교정 입구 양 옆에 바로 그런 교목의 기상이 가슴벅차오르는 모습으로 늘어서 있고, 독수리 형상을 한 남중동 남성고교 교사를 도약의 보금자리로 함께 하고자 입시를 거치고 입학하면서 우리들은 만났다.
그리고 독특한 점은 선생님들 중에는 유달리 선배님들도 많았다는 것….
우리들은 남성고라는 보금자리와 교풍에 시나브로 젖어들며 인생의 가장 예민한 시기에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친구가 되고 벗이 되며 동료가 되었다.
이해나 삶의 색깔과 관계없이 한 배에서 함께 나온 618쌍둥이 친구들이다.
그렇게 선배님들에 이어, 후배들에 앞서 南星人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함께 고교시절을 보내며 아쉬운 整理와 跳躍을 꿈꾸며
저마다의 갈 길, 삶의 현장을 누비며 기성세대가, 어버이가 되어가고 그 대부분은 우리들 고교시절보다도 더 나이 많은 자녀들을 둔 친구들도 많게 된 50대에 접어 든 것이다.
세월도 참 무상하다.
그런데, 졸업 30주년을 눈앞에 둔 즈음 다들 고교시절로 돌아간 듯 들떠가는 분위기는 또 뭔가?
去者必返이 아닐 수 없다.
2008년도이던가... 우리 3반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반장을 맡으란다…. 하는 일이 좀 그래서 다른 친구들 시켰으면 했는데‥
불문곡직 등 떠밀리듯 내 사정은 내색도 못한 채 몇 차례 고사를 하다가 그렇게 맡게 됐다.
당시만 해도 회사일도 일이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책갈피 사이를 여전히 넘나들고 있어서 30주년 행사가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30주년 Home Coming Day를 앞두고 있지 않은가? ‘이런…’ 그 생각뿐….
좀 부담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공부가 있어서 친구들과 두루 연락도 못한 채 가까이 몇몇 친구들만 뜸뜸이 만나고 있는 정도에 불과 했던 내게 우리 급우들이 데모를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중 3때 입시준비의 부담도 큰데 어느 날 느닷없는 다른 급우들의 과오가 계기가 되어 그 불똥이 내게 튀어 담임선생님 역할까지 전적으로 도맡게 되었던 부담이 컸던 기억 때문에,
좀 홀가분하게 입시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과 맞아 떨어진 때문인지 부반장만 내리 하게 됐던 고교 시절은 그런 면에서는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편이었는데….
(2학년 때는 부반장을 다른 친구에게 맡겼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가 당시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시던 문홍남 선생님께 호되게 혼나고 오해까지 받기도 했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생각이 짧았었다. 후회도 되었다. 선생님께 죄송하다.)
그렇게 “남성고 30회 30주년 HomeComing Day” 와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까? 30주년 행사가 곧 돌아온다고 기대하고 있었던 친구들은 또 얼마나….
아마 기대보다는 다들 부담들이 더 컸으리라‥ 솔직히 회비 부담들이 더 컸을 것이고,
오죽하면 “南星 나온 罪로...” 란 말이 단연 단골 협박(?) 메뉴가 다 되었을까?
호남 사학의 명문이란 긍지는, "파이카치 파이톤~"의 그 기상들은 다 어디깄단 말인가?
그래도 이해는 갔다. 작금의 경제동향이나 전세계적 화두 "불확실성의 시대"인 상황이니...
누군들 자유로이 비켜나갈 수 있으랴 싶기도 했다.
作緣이면 必逢이라 했던가?
그렇게 반장을 맡고 나니 총회장인 황 회장이 또 도움 요청을 한다.
회사일로도 너무 바빠 김 총장을 적극 추천했다. (그 친구가 열의도 대단하고 여건도 되는 듯해서) 그러자 운영이사를 하란다.
반장대표도 맡아주고…. 재경과 지방이 함께 역할을 분담해야 하니 부반장도 좀 구성해 달라면서. 재경 강회장도 도와 달라하고….
그렇게 “남성고 30회 30주년 HomeComing Day” 준비위 운영위원장직을 겸하게 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를 계기로 찾아주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없던 힘이 나기도 했다.
세상일이란 게, 삶이란 게 저마다 다들 사정이 없는 입장이 어디 있으랴‥ 다만 흔히 말하듯, 소위 “기회비용” 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거나 무슨 시각 무슨 색깔의 입장에 있느냐에 따른 온도 차이일 뿐일 것이고…,
내가 아니하면 또 누군가는 해야만 할 피할 수 없는 역할이라면.
그래서 우선 먼저 시작했던 일이 우리 반 친구들 연락처와 근황을 지역별로 분류하며 파악하여 정리 작업.
한명, 한명 연락을 취해보니 대부분 세파를 빗겨나가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삶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會者定離라더니, 마음 아프게도 학창시절엔 별로 느낄 수 없었던 소위 저마다의 그 “定離”의 영역들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파들이 많이도 묻어나 있는 듯 했다.
부반장 적임자에 대한 의견들도 물었는데 다들 고사하거나 적임 대상자로 거론 되는 친구에 대한 의견도 그 친구는 사정상 힘들 것이란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다들 당사자들은 고사를 거듭한다….
그런데 그 친구중 제일 유력자이지만 당시 사업상 관계로 고사할 것이라던, 항상 바쁘다던 이신로 친구가 선뜻 맡아 주는 것이 아닌가? ‘신로야 고맙다...’
제일 먼저 우리 반이 부반장이 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잘 될 것이란 기대가 한 순간 들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순진한 오산이었다.
게다가 다른 반들도 챙겨야 했고 준비기간이 짧아 가을로 연기하자는 의견도 분분했다.
그러나, 준비위원들 간에 의기투합, ‘일단 하자, 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모아지면서 행사준비에 박차가 가해졌다.
은사님들께도 당연히 소식을 드려야 했는데, 행사 전 현장 답사차 내려간 4월 24일 김중수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3학년 때는 6반 담임이신 문홍남 선생님과 함께. 두 분 모두 내 입장에선 담임선생님이셨던 것이다.
한분은 2학년, 한분은 3학년... 그런데 두 분 모두 선배님들이시기도 하시다. 김중수 선생님은 6회, 문홍남 선생님은 8회.
그러니 사석에서 형님 동생하시며 오가는 정담은 더 정겨워 보였다. 남성에서만 볼 수 있는 참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문홍남 선생님은 여전히 기운차고 쩌렁쩌렁신 목소리로 남성에 얽힌 에피소드 말씀들이 구수 하셨고,
김중수 선생님은 내가 ’89년 석사특임장교로 1사단 사령부에 근무할 때 주례 부탁차 뵙고는 처음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를 가르치시던 모습 그대로인 듯 정정하셨는데‥
이젠 80을 앞두신 고령(올해 77세)으로 무릎도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신다….
그래도 남성이란 화두들로 한 말씀이라도 더 나누고 싶은 열정들은 누가 더 할 것 없이 한마음들이셨다.
마음이 짠하고 아파 눈물이 글썽였다. 우리 고교시절만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들보다 몇은 더 젊으신 연세에 의욕 넘치시고 우리들에 대한 제자사랑이 남다르셨던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어느 덧 세월의 무게가 그렇게 되었다니‥
건강하셔야 할 텐데….
40주년, 50주년에도 뵐 수 있어야 하는 데‥ 하는
그런 간절함 바람과 더불어 마음은 더 바빴다.
가능한 모든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각 반별로 연락처 파악과 회비 모금이 급선무였다.
행사플랜 설정과 당일 프로그램이나 행사 기념 선물도 세심한 부분까지 기념이 될 수 있도록 챙겨야 했고
(고급타올에 자수로 기념문을 새겨 넣기로 한 것, 행사장 양 옆에 현수막을 치고 현수막에 반별로 우리 친구들 이름 하나 하나를 새겨 넣어 맞이하기로 한 아이디어는 지금도 보람으로 남는다. 기쁘다, 막상 보니 더 좋았다…. 행사를 도와준 29회 안석근 선배도 극찬이었다...),
행사장 꾸미는 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30주년을 맞이했다.
또한, 운 좋게도 2010년 스승의 날은 토요일이라 은사님들 모두와 동문 동창회 임원이신 선배님들을 모시고, 또 다음 차례인 31회 준비위 임원인 후배들이 함께한 더 좋은 자리가 되었다.
본행사 전 족구대회에서는 우리 반이 1등까지 했다!
누가 저들을 50대 아저씨들이라 할까?
모두들 고교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불알친구들 모습 그대로였다. 생각보다 실력들도 녹슬지 않았다.
우리 반은 사정상 좀 늦게 참석하게 된 세 친구 외에는 모두가 참석한 자리였다.
용철이, 제찬이, 일관이, 창욱이, 정옥이, 원철이, 상근이, 태양이, 상인이, 장수, 조웅 원석이, 재섭이 모두가 교대로 선수로 뛰어서인지,
그 합심의 결과인지 1등을 한 것이다.
시상금도 당연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 시상금을 어떻게 할까 의논들도 하며‥
또, 행사 직전 기념 촬영도 하고, 공식행사 시간엔 스승님들께 그간의 은혜에 대한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들로 답례 행사도 갖고.
30년만에 스승님들을 모두 모시고 함께한 자리... 모두들 깊은 감회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본 행사 2부 유흥시간의 “소감 한마디” 장기 자랑에서 메기병장 이상원씨의 사회에 따라
우리 반도 빠질 수 없다며 성원철 친구가 대뜸 나가서 한마디... “야! 씨발~ 조~오~타”
이상원씨 왈 “ㅆ‥ ㅂ‥ 이 좀 그렇지만… 분위기에 딱이다…. 목소리도 제일 크고 멋진 대사다.” 라면서
다른 경쟁자들을 뒤로 하고, 원철 친구에게 거금 십만원권 상품권을 시상한 것이다.
원철이에게 그런 면모가 다 있었다니, 그것도 50대의 나이에! 대단해. 이에 이원철 친구가 한마디.
“여~ 달리 보여… 멋지다…” 좀 쑥쓰러워 하며 성원철 친구 말로는 그냥 기분이 그랬단다.
그 상품권 전액을 다 반창회 기금으로 쾌척까지 하고. ‘이유도 달 일이 없다.’ 기분이 그런 것이다.
30여년 만에 만난 자리…. 술잔을 부딪치며 “부라보~.”
서로 달리 다른 모습들로 살아오다 만난자리여서 서먹스런 모습들이어도 다들 좋았다.
더구나 역대 최고 참여인원이 된 자리라서 더 빛났다. 몇몇 아쉬움을 덮고도 남는 자리가 아닌가 싶었다.
세상사 이치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빛나게 되는 바로 그 섭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분위가 무르익어 가는 중에 선생님을 댁으로 모셔다 드리는데,
선생님께서 ‘뒤풀이 시간에 꼭 연락해 달라’고 거듭 당부를 하신다.
‘이렇게 제자들을 보니 너무 감회가 깊고 애들 많이 썼다’고 하시면서‥
우리들도 꼭 그러려고 했었기에 선생님께 꼭 그러겠다고 약속드렸다.
행사장으로 돌아오니 벌써 마무리 시간이었다.
모두들 한 덩어리가 되어 어깨동무 기차놀이도 장관이었다.
그 정겨운 시간들을 다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 남성인들이 모이는 곳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파이카치 파이톤~ ” 우렁찬 교호를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행사 뒤풀이는 여건 되는 친구들 간에 서로 시내에서 이어 하기로 하고.
그렇지만 우리 3반 친구들 간에 아쉬움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3반 친구들에게 선생님 부탁 말씀을 전하는 데, 재섭 친구가 만류했다. 고령이시니 쉬셔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이 또 짧았나? 그래도 아쉬운 걸…, 기다리던 친구들이 그랬다. ‘선생님 안 오셔 ?... ’
뒤풀이자리에서 내가 좀 상당히 취했는지 이신로 친구와 함께 스테이지를 한참동안이나 독무대이다시피 점했었단다.
“남성고 30회 30주년 HomeComing Day” 운영위원장으로서의 무거운 소임을 내려놓는 순간이었으니
그런 기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우리들 남성인 30회 친구들은, 또 우리 3반 친구들은 모두가 그렇게 작연필봉(作緣必逢)들을 했던 것이다.
작연이 없이 어찌 필봉이 있으랴….
그렇게 정신없고 바빴지만 가슴 훈훈했던 날을 보내고 20여일을 홀가분히 쉬며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데…
그런데, 이제는 또 재경 강회장이 아침에 전화와 “기념집 발간 편집위원장으로 결정됐는데 알고 있지?” 한다. “아니 처음 듣는데……?”, “아냐 그렇게 결정됐어‥” 그리고는 다음날 바로, 동기 전체 친구들에게 바로 문자가 날아갔다.
(그 후 자연 이어지게 된 발간준비를 위한 속사정 고충들은 <http://cafe.daum.net/namsung2030>에 들어가셔서 가늠해 보아주시길‥)
그래도 30회 동기들, 3반 친구들아, 함께 해주어, 이런 큰 행사에 모두들 십시일반 도와주고 격려해주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그 마음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30주년을 맞아 다시금 찾게 된 친구들.
(다른 반은 각 반장님들께 그 현황보고를 맡기기로 하고)
우리 3반은 졸업당시 재적 62명. 연락처 파악된 자 51명. 미 파악된 자 3명, 연락두절 5인, 작고 3명 이었다.
그 중 금번에 평생회비를 납입해준 친구들이 34명. 당일 참석해 함께 정을 나누게 된 친구들이 17명.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치 못한 친구들, 회비를 납입하지 못한 친구들도 다 우리들 동기요, 친구들이고 벗이다.
나중에라도 사정이 되면 다들 꼭 내겠다는 친구들도 많았다.
모두가 다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그러나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 있고 모래가 있고 먼 장래에도 우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으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들도 50대의 나이, 건강관리들도 잘해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황야와 같은 삭막한 세상, 만남과 인연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란 존재가 없다면 그저 물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한가운데서 많은 만남과 인연들이 이루어질 것이고 가꾸어 가려는 것일 것이다.
그 소중한 인연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필봉이 될 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그 만남들을, 그 인연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때 또 어디서 어떻게 나누게 될지도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속내를 홀가분히 털어놓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두지 못한 사람이 가장 외로운 법이란다….
그래서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이고 혼자일 때가 가장 힘든 것이란다.
그래서도 모태는 모태요 원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글이 있다…….
그 줄거리는 하늘의 천사 ‘미하일’이 하느님의 명령에 의심을 품고 그것을 이행하지 않아
인간계에서 ‘세몬’이라는 구두장이와 함께 살게 되며 하느님이 던진 질문 세 가지.
그 첫째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둘째는,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 셋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한 답을 찾고서 다시 승천한다는 이야기.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을 미하일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자신을 보살펴 준 세몬과 마트료나 부부 안에서 찾게 된다.
그들에게는 악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에는 사랑이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답은 다름 아닌 바로 사람의 내면에 깃든 ‘사랑’이었다는 것…….
두 번째 질문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에 대한 답은,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바로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生者必滅),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데,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 한다’ 는 것…….
그리고,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사랑’.
‘사람은 자신의 계획과 고민과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누군가 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랑으로 산다’ 는 것이다.
미하일은 그 세 가지 답을 깨닫고는 다시금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자신이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성원해주고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신날리도 만무할 것이고...
그래서 사람은 최소한 타인의 관심, 즉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이제 우리들 30회 친구들의 30주년 HomeComing Day를 맞아 必逢한 추억들과 그간의 소박한 상념들‥ 뒷이야기들을
우리들의 ‘30주년 기념집’에 담아 조금이나마 삶의 반추와 활력이 될 수 있도록 지면상으로 오래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서로를 보듬을 수 있으면 보듬어 가면서 삶들을 알차게 가꾸어가며 사랑으로 거자필반(去者必返)하여 작연필봉(作緣必逢)들을 했으면 합니다.
남성 30회 친구들, 그리고 3반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2010. 07. 15. 3반 반장 류만식.
※ 남성고 30회 3학년 3반 30주년 맞이 인원 현황
1. 총괄 : 졸업당시 재적 62명. 연락처 파악된 자 51명. 미파악된 자 3명, 연락두절 5인, 작고 3명
2. 30주년 행사 회비 납입한 친구들(34명)
전장수=100, 유상인=100, 채긍묵, 류만식, 성원철, 김종운, 국병곤, 안상근=100(+아이폰 90만원 상당 협찬), 황의성, 오길열, 조원석, 이승국, 유창기, 진재섭=200, 이신로=50, 박성래, 서정옥, 정 관호, 박일관, 정우전, 엄태양, 박창욱, 박상균, 김용철, 배선효, 김성일, 이현돈, 김제찬, 장동윤, 김승철, 이문기, 박내진, 전병유, 조웅
3. 행사당일 참석한 친구들(17명)
김용철, 김제찬, 류만식, 박래진, 박상균, 박일관, 박창욱, 서정옥, 성원철, 안상근, 엄태양, 유상인, 이신로, 전장수, 조웅 조원석, 진재섭,
첫댓글 멋져브러,만식아...?
참 다시 옛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네 정정요망:메기병장은 이상원이아니라 이상훈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