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본 학가산
예천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으로 오다 보면, 호명의 직산터널에서 도로는 산의 주맥 속으로 파고 든다. 당연히 호명 쪽에서는 학가산은 볼 수가 없다. 호명에서 예천 쪽으로 나아가면 서서히 예천 쪽 학가산의 특성이 나타나고, 호명에서 풍산 쪽으로 나아가면 안동 쪽에서 보는 학가산의 특징이 드러난다. 예천 쪽에서 학가산은 그 측면 북서쪽 중앙부분, 또는 서남쪽 후방 부분을 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물론 산이 동쪽 방향에 머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풍산을 넘어서면 학가산은 우뚝한 투구모양의 산세를 드러낸다. 자세히 보면 영주 쪽 학가산과 같은 형상이지만, 얼핏보아서는 그 점을 알아채기 어렵다. 왜인가? 영주 쪽에서 학가산은 살집이 풍부한 육산으로 조망되지만 안동 쪽에서 산은 바위로 뒤덮인 골산의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주 쪽에서 보는 것은 학가산의 북동쪽 전면 부분이고, 안동 쪽에서 보는 것은 그 남동쪽 전면이다. 안동쪽 학가산의 모습은 거칠다, 악산이다 라는 등의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안동쪽 학가산을 뒤덮고 있는 바위면이 만들어 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바위면의 울퉁불퉁한 모습은 안동쪽에서 보는 학가산도 영주 쪽에서 보는 것처럼 정상부가 평면으로 잘라진 모습이라는 것을 감추어 버린다.
첫 번째 답사로부터 일주일 뒤, 두 번째 답사는 택일을 제대로 하였다. 춥고 맑은 날, 멀리에서도 학가산이 깨끗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두 번째 답사는 안동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낙동강 너머, 정상동으로 향하는 안동 고등학교 쪽 다리 위서부터 학가산은 온전히 나의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정상동 동쪽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학가산을 조망하며 멈춰 서 있었다. 양쪽의 제방이 만들어 내는 평행의 횡선 속에 갇힌 낙동강의 물결은 얼기도 하고 녹아 흐르기도 하며 다양한 곡선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놓고 있었다. 그 직선과 곡선의 어울림, 흑 백의 조화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한 낙동강 영역 위로 시선을 옮기면, 제방의 횡선 위로 올라앉은 안동이 넓게 펼쳐져 있다. 새로운 안동, 여기저기 자리잡고 들어선 아파트의 밝은 색깔과 각진 수선들이 만들어내는 현대 안동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낙동강 건너, 멀리서 조망하기에 그 수선들이 갖는 낯설고 위험스러운 느낌은 거세되어 있다. 현대가 풍경 속에 녹아드는 것은 그렇게 먼 거리에서 뿐이다.
그 현대 안동의 수선들의 위쪽으로 안동을 북서 쪽에서 옹위하고 있는 산들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위쪽으로 학가산은 무겁고 둔중한 투구모양의 모습으로 모든 횡선들과 수선들을 한데 모아 중앙에서 눌러주고 있었다.
원경으로 보는 학가산의 넉넉하고 다정한 자태는 송야천 쪽에서 924번 도로를 타고 춘파 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금제의 초입에서 보면 길이 끝나는 전면에 학가산은 길게 이어지는 살지고 완만한 기슭을 대동하고 그 너머에 버티고 서서 고향집 대문께에서 길 떠났던 자식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마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따사로운 양광은 그 기슭에서 부서져 내리고, 우리는 그 산의 품에서 우리의 생활이 평안하리라는 느낌으로 조금쯤은 마음이 들뜨기조차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학가산이 서후의 주산임을 발견하게 된다.
“자품리, 대두서리가 학가산 마을이지요.”
강호일 서후면장의 말이다.
자품리에는 88가구 238명, 대두서리에는 115가구 322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백현, 간리, 천주, 자품, 창풍, 웃창풍, 구억마을, 한두실, 오동정 등이 있다.
학가산은 서후의 산이기도 하고, 또 북후의 산이기도 하다. 북후는 무엇보다도 면 소재지인 옹천에서 학가산을 질러 넘어서 영주시 문수면 쪽으로 나아가는 928번 도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학가산을 품고 있는 면이라고 할만하다.
“학가산이 분포하고 있는 면적으로 치면 서후 쪽이 더 넓습니다.”
안성종 북후면장의 말이다.
“그렇지만 서후하면 천등산이라고 보아야 하고, 아무래도 학가산은 북후와 더 관계가 있지요.”
928번 도로를 타고 학가산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디서부터 학가산 영역이라고 하여야 할지 나누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운산으로부터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선을 넘어서야 학가산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월전리까지는 학가산 영역에 편입시키기 어렵고, 석탑리, 신전리 쪽이 학가산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자연부락으로는 운곡, 구싯밭, 청골, 새터, 마우실, 북절골, 감나무골, 개랄, 구역들, 구듬실, 압령골 등이 있다. 북후면의 강문하 총무계장이 정리해 준 자료에 의하면 석탑리에는 69호 145명, 신전리에는 117호 275명이 산다고 한다.
우리는 928번 도로를 타고 학가산을 넘어 보기로 하였다. 옹천에서 출발하면서 자동차의 미터기를 눌렀다. 옹천에서 월전마을까지는 6키로미터. 경사진 고갯마루 끝의 터진 틈으로 학가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갯마루가 액자역할을 하여, 그 사이의 학가산의 모습은 조명을 담뿍 받고 있는 그림과도 같다.
고갯마루 위에 올라서자 학가산과 신전마을이 눈 아래 펼쳐진다. 산마을과 산의 굴진 능선들, 풀어헤쳐 놓은 밭들, 밭 사이에 휘돌아드는 농로의 모습까지가 신선하고 아름답다.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방장은 여러 번 와 본 곳이라서인지 내가 감탄하는 모습을 슬며시 넘겨다보며 카메라만 들이댄다. 이 양반은 마치 자신의 정원을 구경시키기라도 하는 듯이 나에게 감춰둔 비경을 슬며시 보여주고 나의 감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스스로 즐기는 취미를 갖고 있다. 나의 감동의 크기에 따라서 그가 마음 속으로 만들어 갖는 미소의 크기도 달라지리라.
“거기 신전리 밭에 메밀을 대대적으로 심어 봤는데, 메밀꽃 필 때 내려다 보면 경치가 좋아요.”
안성종 북후면장의 말이 기억났다.
“내가 볼 때는 설경이 제일 좋아요. 가을 단풍은 별로 없어요.”
설경과 메밀 꽃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동일한 미학적 관점이 안성종 북후면장의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리라. 학가산의 전경이 주는 감동은 석탑리를 지나서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석탑교를 넘을 때까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내성천 너머, 석탑교의 영주 쪽 끝에서 우리는 정차하여 석탑교와 저 너머의 석탑리, 그 뒤로 펼쳐져 있는 학가산 영역을 오래 돌아보고 있었다. 푸른 띠를 두른 안동버스가 석탑교를 넘어와 영주시 문수면 방면에서 돌아나가 석탑교 저편의 석탑마을 초입에 정거하여 있는 것이 보였다. 우연일까? 주홍색 띠를 두른 영주버스가 석탑교의 영주쪽 영역에서 정거하여 두 세명의 사람들을 내려 놓았다. 그들은 석탑교를 건너서 석탑리 쪽으로 걸어갔다.
“신전 석탑 주민들은 안동보다 영주를 더 자주 출입합니다.”
안성종 북후면장의 말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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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이 있는 유익한자료 많이 올려주셨군요.